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아버지를 암살하려 했던 사담 후세인에 대한 ‘목 베기 공격’으로 이번 전쟁을 시작했다.
이 전쟁을 위해 미국은 꽤 비싼 대가를 치러야 했다. 미국은 프랑스 독일 러시아 중국 인도네시아 인도 등 주요 동맹국가들과 등져야 했다.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는 반전시위의 시위대 규모는 베트남전 이후 최대다. 왜 미국은 굳이 이 길을 가는가?
부시는 대통령후보 때부터 미 동맹국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클린턴 행정부가 동맹국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 것을 호되게 비판했고, 91년 걸프전을 승리로 이끈 아버지 부시의 국제동맹 구축력을 높이 평가했다. 또 미국의 동맹국들은 ‘위성’이 아니라 ‘파트너’라고도 했다.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안보보좌관도 “미국은 동맹국의 협조 없이는 군사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했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지금 동맹 없이 홀로 갈 길을 가고 있다. 외교정책에 실패했다는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미국은 이라크의 무장해제를 줄기차게 외쳐대고 있지만, 다른 나라들은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나 후세인 정권의 붕괴보다는 안하무인격인 미국의 힘자랑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게다가 미국은 다른 나라들의 동의를 얻기도 전에 한발 앞서 이미 동의를 얻은 것처럼 행동했다.
국제사회 비판에도 “나 홀로 간다”
미국 전략 및 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제임스 만은 3월16일자 워싱턴 포스트에 기고한 ‘부시는 자기 독트린과 동맹을 원했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부시 행정부는 앞뒤가 바뀐 원칙, 즉 예방 전쟁이라는 독트린을 생각의 한가운데에 설정해놓고 다른 우방국들의 협조가 중요하다는 원칙론에만 집착했을 뿐, 실제로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다”며 부시 외교팀의 일방주의를 비판했다.
제임스 만은 이 같은 부시의 외교정책의 배경에는 두 가지 잘못된 논리가 깔려 있다고 지적한다. 하나는 클린턴 행정부의 대(對)이라크 정책이 너무 나약했던 까닭에 동맹들이 미국을 지지하기를 꺼린 것이므로 미국이 더욱 강력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강자의 논리’다. 또 하나는 미국이 앞장서면 우방들은 선택의 여지 없이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추종의 논리’다. 만은 이런 논리의 주창자였던 현 국방차관 폴 월포위츠의 97년 주장을 상기시킨다. “의지를 가지고 일방적으로 행동하는 것이 집단행동을 이끌어낼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만의 이런 지적이 아니더라도 부시 행정부의 외교정책 밑바탕에는 애초부터 두 가지 큰 흐름이 있었다. 미국 제일주의에 대한 확신과 국제기구 및 국제협약에 대한 의구심이다. 미국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해야 하며, 힘을 가진 자는 그 힘을 써야 한다는 것이 부시 행정부를 이끌고 있는 강경 매파들의 논리다. 이미 클린턴 행정부 때인 90년대부터 공화당 우파 인사들은 공공연하게 이런 주장을 해왔다. 이라크 정권교체도 이들의 주장에 단골로 등장했음은 물론이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후 대북관계가 악화된 것도 이런 논리와 맥을 같이한다.
물론 국제사회는 이 같은 논리에 대해 “신보수주의에 바탕을 둔 패권주의와 일방주의의 산물”이라며 맹렬한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워싱턴의 민족주의자들이 펼치는 미 국익 우선의 논리는 주눅들지 않았다. 이라크전을 앞두고 펼쳐졌던 미국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이하 안보리) 회원국 사이의 치열한 신경전이야말로 국제질서를 주도해 가려는 미국과 이를 저지하려는 국가들 사이의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
미국은 유엔 안보리에서 오로지 이라크의 무장해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러나 미국을 제외한 다른 회원국들은 이라크의 무장해제보다는 이라크 문제 때문에 발생할 안보리의 분열을 더 우려했다. 특히 프랑스와 러시아는 논쟁의 주제를 이라크 문제가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미국의 역할 쪽으로 바꾸어보려고 무던히 애썼다. 대량살상무기 보유라는 국제적인 위기는 유엔 안보리를 통해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하며, 미국이 이끄는 군사행동을 통한 것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었다.
사실 지난 10년 동안 러시아 중국 프랑스 등은 독주하는 미국을 견제하고 국제사회를 다극화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했지만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라크 문제를 계기로 이들은 동병상련의 입장으로 한편에 서서 미국의 발을 묶어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워싱턴 포스트는 3월9일자 사설에서 “이라크에 대한 무력 사용 반대는, 달리 말하면 미국의 무적 파워에 대한 반대”라고 밝혔다.
미국은 미국대로 유엔 안보리를 시험했다. 과연 유엔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같은 국제적인 위기를 다룰 만한 곳인가. 미국은 이미 ‘아니다’라는 대답을 가지고 있었다. 유엔은 그런 역할을 하기에 적합한 기구가 아니며, 미국의 군사행동만이 해답이라는 것이 신보수주의 매파들이 진작부터 마음속에 품고 있던 생각이었다. 결국 유엔 안보리의 결의안이라는 것은 딕 체니, 럼스펠드, 월포위츠, 리처드 펄얼 등 미 행정부 내의 전쟁론자들과 이라크전의 고수(鼓手·drummer) 역할을 자처한 빌 크리스톨 등 우파 논객들에게는 형식상의 절차에 지나지 않았다. 이들은 유엔 결의안을 이끌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파월 국무장관을 뒤에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매주 화요일에 열리는 공화당 상원의원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평소 침묵을 지키던 체니 부통령은 3월11일 모임에서 오랜만에 입을 열었다. “안보리 회원국들이 꼴사납게 달려드는 것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안보리 결의를 늦추고 있는 것은 자기 당과 행정부 내에서 곤경에 처해 있는 토니 블레어의 체면을 살려주려는 것 뿐이다.”
부시 행정부는 이라크전 개시와 동시에 21세기 새로운 세계전략의 문턱을 막 넘어섰다. 이 새로운 군사전략의 논리적 바탕과 명분을 제공한 것은 물론 9·11 테러다. 전쟁 반대론자들은 제2의 9·11테러론 앞에 맥을 못 추고, 부시 행정부는 이 논리를 유효 적절하게 활용하고 있다.
미국이 치르는 이라크전은 ‘석유 전쟁’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표를 달고 있다.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만은 “이라크전은 석유 때문에 치른다고도 할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부시 팀의 행동을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체니 부통령은 “사담 후세인이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10%를 깔고 앉아 있다. 그런 사담이 곧 핵무기를 갖게 될 것이다”고도 했다. 이라크가 세계 2위의 석유 매장국이 아니었더라도 부시 행정부가 이렇게 이라크에 집착했겠느냐는 반문은 이미 오래 전에 나온 것이다. 미국은 세계 석유 매장량의 2%밖에 가지고 있지 못하지만 매일 전 세계 1일 석유 소비량의 26%를 소비하는 나라다. 소비량의 절반은 수입에 의존한다. 그런데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67%는 페르시아 만 국가들의 사막 밑에 묻혀 있다. 이 가운데 이라크 땅에 묻힌 것이 확인된 매장량만으로도 10분의 1에 달한다. 실제 매장량은 두 배가 넘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런 이라크가 유독 미국에게만은 고분고분하지 않았다. 12년 전 이라크는 쿠웨이트가 중동산 석유를 장악하려는 미국의 손발 노릇을 한다고 판단해 쿠웨이트를 침공했다가 혼쭐이 났다.
이라크가 미국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듯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정권 역시 미국이 주도하는 카스피 해 석유 공급 전략에 반기를 들었다가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부시 대통령 집안과 체니 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보좌관 등이 석유 재벌과 연을 맺고 있다는 사실은 석유 전쟁 비판론자들이 상기시키는 단골 메뉴가 되다시피 했다.
이라크전은 중동지역 질서재편의 신호탄일 뿐이다. 중동지역은 팔레스타인-이스라엘 문제를 제외하고는 과거 10년 동안 그런대로 평온한 지역이었다. 그러나 아랍권은 이제 둘로 나뉘었다. 이라크를 거드느냐, 아니냐가 기준이라기보다는 미국과의 관계 설정이 기준이다. 미국이 추구하는 21세기의 세계전략은 이제 중동지역에서 막 펼쳐지기 시작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