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의 희망이자 보루로 여겨졌던 퇴직금이 노후대책이 되기는 커녕 가정불화를 가져오는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최근 민영화된 고속도로관리공단 구조조정 과정에서 퇴직한 박모씨(50)는 앞길이 막막하기만 하다. 만 15년6개월 만에 회사를 그만두면서 박씨가 손에 쥔 돈은 1000만원이 채 안 됐다. 2000년 공기업 개혁작업의 일환으로 전 직원이 퇴직금을 중간정산해버렸기 때문. 그때 박씨가 세금을 공제하고 받은 돈은 4800만원이었다. 그러나 쉽게 만져보기 힘들었던 이 목돈은 퇴직금을 중간정산한 지 2년 만에 허공으로 날아가버렸다.
“주식시장이 한창 활기를 띨 때였어요. 당시 은행이자도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식투자 안 하는 사람은 바보라고 할 정도로 너나 할 것 없이 주식시장으로 몰렸지요.”
더욱이 박씨는 퇴직금에다 여유자금까지 보태 1억원이 넘는 돈을 주식에 투자했다. 그러나 주식시장에서 1억원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불과 몇 개월 뒤 박씨가 사들였던 현대건설 주식이 감자조치에 따라 휴지조각이 돼버렸고 27만원에 사들였던 새롬기술 주식 역시 지금은 3000원대로 주저앉아버렸다.
2000년을 전후해 퇴직금을 중간정산 받은 직장인들 중 상당수가 박씨처럼 퇴직금을 들고 증권사 객장으로 몰려갔던 것이 사실이다. 99년 말 퇴직금을 중간정산 받은 근로복지공단의 한 직원도 “당시 동료들 중 70%는 퇴직금을 주식에 투자했다”며 “직장인들의 퇴직금을 이용해 주식시장을 키우려는 국가적인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는 또 “가정살림에 보탬이 되어야 할 퇴직금이 가정불화를 몰고 온 불씨로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중간정산 후 주식투자 순식간에 빈털터리
2000년을 전후해 퇴직금을 중간정산 받은 직장인 상당수가 주식에 손을 댔다가 손해를 봤다.
이렇다 보니 일부 사업장에서는 아예 노사합의에 따라 퇴직금 중간정산이 가능한 요건을 만들어놓기도 했다. 중소제조업체인 세진전자도 그런 경우. 이 회사는 1999년경 학자금, 주택구입, 병원비, 경조사 비용 등으로 쓰일 경우에 한해 직원이 희망할 경우 퇴직금을 중간정산할 수 있도록 단체협약을 맺었다. 같은 해 입사 15년 만에 퇴직금을 중간정산한 A씨는 3500만원을 받은 뒤 수원에 7000만원짜리 23평 아파트를 사서 이사했다. A씨가 노사협약에 따라 중간정산 받은 뒤 마련한 이 아파트 시세는 현재 1억원을 뛰어넘었다. A씨는 “월급쟁이가 몇 년 사이에 3000만원 모으기가 쉽냐”며 “퇴직금을 이용한 재테크로 재미를 톡톡히 봤다”고 말했다.
결국 사용목적이 분명히 정해져 있는 퇴직금은 자산을 늘리는 데 ‘효자’ 역할을 하지만 사용처가 정해져 있지 않은 목돈은 ‘애물단지’가 될 뿐이라는 말이다. 1999년 인사팀장으로 근무하다 아남전자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14년간의 직장생활을 마감한 박홍제씨(44). 회사를 떠나야겠다고 결심하기 훨씬 전부터 박씨의 목표는 창업이었다. 이미 목표를 정하고 직장생활을 접었지만 당시 박씨가 손에 쥐고 있던 돈은 회사를 그만두면서 받은 퇴직금 6000만원이 전부였다. 마흔이 넘은 나이였지만 박씨의 금융자산은 ‘제로’였다. 말하자면 퇴직금 하나 믿고 평온한 직장생활 대신 모래바람 부는 창업전선에 뛰어든 것이다. 퇴직금 6000만원에 주택담보대출금과 프랜차이즈 업체가 주선한 창업자금 대출금 등을 합쳐 2억2000만원을 들여 신대방동에 숯불구이 치킨집을 연 것이 99년 12월.
14년 동안 책상머리에서 서류업무만 해온 박씨였지만 그는 이내 사업수완을 발휘해 치킨집을 창업한 지 3년 만에 월매출 600만원 수준의 견실한 업체로 키워놓았다. 직장생활 당시와 비교해보면 대략 월수입은 3배 정도. 게다가 매일같이 회식이 계속되던 직장생활과 비교해보면 아예 돈을 쓸 일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박씨는 지난해 신대방동에 48평 아파트를 마련했다. 부평의 33평 아파트에 살던 시절과 비교하면 집값은 2억5000만원이나 뛰어오른 셈. 그 과정에서 박씨가 ‘안정’보다는 ‘모험’을 선택하면서 받은 퇴직금 6000만원이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법정관리에 들어간 기업에서 퇴직금을 모두 받은 박씨의 경우는 그래도 나은 편이다. 이미 부도가 난 기업에서 퇴직금을 제대로 챙기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2001년 10월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 직장을 잃게 된 이성주씨가 받은 퇴직금은 단돈 900만원이 전부였다. 나름대로 건실하던 정보통신 부품제조업체에 8년간 꼬박 근무한 퇴직금치고는 ‘푼돈’에 불과했다. 원래 이씨가 받을 수 있는 법정 퇴직금은 1700만원. 그러나 회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관리부에서는 ‘손해를 보더라도 퇴직금을 받겠다’는 각서를 요구했고 당장 생활비에 쫓긴 이씨는 이런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다. 법정 퇴직금의 절반밖에 받지 못한 이씨가 6개월 동안 받은 실업급여만도 450만원. 8년간 일한 직장에서 받은 퇴직금이 실업급여의 두 배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현행 퇴직금 제도의 허상을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이씨는 정부가 퇴직금 제도의 대안으로 내놓은 퇴직연금 제도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근로자들이 낸 국민연금도 회사가 전용하거나 떼어먹는 마당에 퇴직연금을 도입한다고 해서 근로자들의 퇴직금이 보장되겠느냐”는 게 이씨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이다. 그만큼 퇴직연금을 도입하기 위해서는 ‘제도 마련’보다도 ‘관행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부도기업에서 퇴직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뿐 아니라 퇴직금을 제때 받지 못하는 체불 비율도 무시할 수 없는 형편이다. 지난해 퇴직금 체불액만도 3400억원 수준에 이르며 매년 30% 안팎의 근로자들이 퇴직금을 제때 받지 못하고 있다.
세계 유일 일시금 형식 퇴직금 개선 목소리
부도난 기업이 아니더라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퇴직금은 근로자들의 노후자금이 아니라 회사 회생을 위한 ‘희생양’으로 둔갑하기도 한다. 수많은 워크아웃 기업에서 근로자들의 퇴직금을 중간정산해 우리사주 형태로 전환해온 것. 현재 워크아웃작업이 진행중인 쌍용건설은 3월19일 계약직을 제외한 800여명 전 직원의 퇴직금 320억원을 중간정산해 우리사주로 전환하는 작업을 최종 마무리했다. 우리사주 전환 이후 우리사주조합은 2대 주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런 결정은 직원들의 자발적인 아이디어라기보다는 경영진과 채권단의 권유에 의한 것. 퇴직충당금이 회사에 고정부채로 남아 부담을 주는 만큼 경영정상화에 걸림돌이 되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벌써부터 주변에서는 워크아웃 기업 근로자들의 퇴직금을 채권단의 권고에 따라 우리사주로 전환하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런 방식으로 퇴직금을 우리사주로 전환했다가 회사의 합병이나 경영상태 악화로 손해를 보는 일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실 정리 과정에서 공적자금을 투입받은 우리은행의 경우도 그런 사례에 해당한다. 우리은행의 전신인 상업, 한일은행 직원들은 99년 두 은행이 합병하면서 80년대 말부터 보유하기 시작했던 우리사주 주식을 감자당했다. 또 한빛은행으로 새 출발 하면서 다시 구입했던 우리사주 역시 2000년 12월, 해외투자자금과 함께 완전 감자됐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그때 손해본 수천만원을 아직까지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며 “당시 직원들이 몇 차례 손해를 보고 나서 우리사주 매입을 꺼렸으나 상당수의 동료들이 퇴직하는 상황에서 심리적 압박감을 느껴 마지못해 구입한 경우가 상당수였다”고 말했다. 이쯤 되면 퇴직금이 대다수 근로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오히려 ‘애물단지’가 되어버린 셈이다.
이미 세계은행 등 국제기구들도 일시금 형식의 ‘한국형’ 퇴직금이 노후소득의 재원으로 활용되지 못할 뿐 아니라 비용 대비 효과 또한 낮다고 꾸준히 지적해왔다. 노사 모두 현행 퇴직금 제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인식하고 있지만 퇴직연금 도입 등 최근 정부의 개선안에 대해서는 이견의 폭을 전혀 좁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한 가지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동안 ‘노후 안전판’으로 인식돼온 퇴직금 제도를 그냥 유지한다고 해서 노후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직장인들의 퇴직금 타령이 ‘부르다 내가 죽을’ 노래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