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그다드에 사는 아부 핫산의 집은 3월22일(이라크 현지시각) 밤 벌어진 미·영 연합군의 ‘충격과 공포(Shock & Awe)’ 작전 대공습으로 벽과 마룻바닥에 금이 가고 창문이 모두 깨졌다. 핫산의 가족은 밤새도록 잠을 못 이룬 채 모여 앉아 공포에 떨어야 했다. 지금 당장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외에도 12년 전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라 이들을 괴롭혔다. 핫산의 아들과 손자는 1991년 걸프전 때 전사했다. 핫산의 며느리는 “과거처럼 가족을 잃는 일이 또 생길까봐 밤새도록 울었다”며 마르지 않는 눈물을 닦았다.
핫산의 가족은 바그다드의 빈촌인 ‘사담 시티’에 살고 있다. 그들은 다른 바그다드 빈민들처럼 전쟁을 예감하면서도 도시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피난을 가면 당국에 집을 압수당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돈이 있는 사람들만 짐을 챙겨 바그다드를 떠났다.
”전쟁 전에 아기 낳자” 임산부들 개전선언 직후 너도나도 병원 찾아 제왕절개
3월20일 새벽의 공습으로 발발한 전쟁은 사막의 폭풍처럼 이라크 전역을 휩쓸고 있다. 미국의 양대 뉴스채널인 CNN과 MS NBC는 1차 걸프전처럼 실시간으로 공습 장면을 보여주며 “연합군이 파죽지세로 이라크 남부를 점령하고 수도 바그다드를 향하고 있다”는 보도를 되풀이하고 있다. MS NBC의 앵커는 뉴스중 아라비아 반도 지역의 일기예보를 내보내며 “전쟁하기에 딱 좋은 날씨”라는 황당한 멘트까지 서슴지 않았다.
CNN은 전쟁을 중계하면서도 공습의 ‘폭음’을 10초 이상 들려주는 경우가 드물다. 낮은 배경음으로 처리한 채 기자들의 목소리만 키우거나 아예 소거해버린다. ‘폭음’을 소거한 공습 화면은 오렌지빛 버섯구름이 바그다드 시내에서 피어오르는 가운데 샛노란 불티들이 흩어져 할리우드 전쟁영화의 한 장면처럼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미국의 방송에 등장한 전쟁은 새로운 도전, 미국의 ‘용기’를 전 세계에 천명한 사건처럼 보인다. 이 같은 방송의 보도태도 때문일까. 개전 후 미국인들의 70%가 이번 전쟁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이라크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쟁은 이처럼 ‘흥미진진한 게임’이 아니라 처절한 공포며 생명에 대한 위협이다. 바그다드 바스라 티크리트 등 이라크 전역에 가해진 공습으로 인해 23일까지 130여명의 이라크인들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소한 750만명의 이라크인이 이번 전쟁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입을 것이다. 전쟁 직전까지 바그다드에 머물다가 요르단 암만으로 나온 한국 이라크반전평화팀의 임영신씨는 “더 이상 CNN에 귀를 기울이고 싶지 않다. 그들이 담아내는 것은 전쟁이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요르단 암만에서는 카타르의 알 자지라 방송을 24시간 볼 수 있다. 이 방송은 이슬람권의 입장에서 전쟁을 보도한다. 메인 앵커가 나오는 전쟁 뉴스 배경화면에는 이라크 국기가 미국 국기 위에 그려져 있다. 영미권 방송과는 달리 알 자지라 방송은 바그다드 공습 상황 ‘폭음’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폭음과 함께 전달되는 알 자지라 방송 중계를 보는 동안 화면을 응시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다. 한 요르단 고위 외교관의 딸은 미국 유학을 했으면서도 “죽고 싶다. 당장 바그다드로 가서 싸우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중동인들은 당연히 이슬람어로 나오는 알 자지라 방송을 본다. 국외에 나와 있는 이라크인들은 바그다드 공습 화면을 보면서 지금 섬광이 터진 데가 어느 사거리, 어느 건물 근처인지 알아차리고 있었다. 서울 사람들이 사진만 보고 광화문과 여의도를 알아보듯이.
암만으로 피난 나온 이영철 현대건설 바그다드 지사장의 이라크인 부인은 22일 새벽까지 공습 상황을 지켜보다가 송진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저긴 옛날 국방부 건물인데….” 그 건물은 그녀의 본가에서 멀지 않다. 거기에는 그녀의 여동생이 남아 있다. 임신 5개월이다. 확인 결과 그녀는 살아 있었다. 다져 누른 솜뭉치를 집어넣은 귀를 다시 손바닥으로 누른 채로. 악몽 같은 밤을 새며 그녀는 유산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이라크인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전쟁을 한다”는 부시 대통령의 선전포고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부시 대통령이 개전을 선언하자 바그다드의 임신한 여성들은 서둘러 병원을 찾아가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았다. 제왕절개를 하기에는 너무 이른 경우도 많았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전쟁이 본격화하면, 그래서 사상자가 늘어나면 병원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사실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91년 걸프전 때 병원의 전기가 끊어지거나 아예 병원 자체가 폭격을 당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반전운동단체인 이라크평화팀(IPT) 소속으로 바그다드에 머물고 있는 베테조 파살라쿠아는 “바그다드의 병원에 입원해 있던 소아암 환자들도 전쟁 직전 대부분 퇴원했다”고 전한다. 하루라도 치료를 받지 않으면 죽을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이들의 부모들은 아픈 아이를 퇴원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부모의 심정을 그 누가 알까.
첫번째 ‘충격과 공포’ 대공습이 있었던 22일 밤이 지나자 연합군측은 20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밤새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그다드 각처의 병원으로 실려왔다. 이라크 당국은 바그다드에 머물고 있는 외신기자들을 병원으로 데려가 부상자들을 보여주었다. 영국 BBC 방송의 폴 우드 기자도 이 기자들의 무리에 섞여 있었다. 다섯 살 난 남자아이인 아메드 랄렙 알리는 머리에 부상을 입은 채 겁에 질려 “엄마, 아빠!”만 연신 부르며 울었다. 아메드의 아버지는 아들을 촬영하는 서방기자들에게 저주와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 옆에는 역시 다섯 살 난 여자아이 하심이 의식을 잃은 채로 누워있다. 간밤의 공습으로 척수를 다친 하심은 응급수술을 받았지만 앞으로 다리를 못 쓰는 불구자가 될 것이다. 바그다드 알무스탄샤니아 대학병원의 의사 하비브 알 헤자이는 “간밤에 실려온 민간인 중 12명이 수술중 사망했다”고 말했다.
공습이 계속되는 동안 집안에 머물러 있던 바그다드 시민들은 일요일인 23일부터 조금씩 거리로 나오고 있다. 22일 이후로는 낮에도 공습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들은 전쟁 이후 10배 가까이 가격이 뛴 물과 식량을 구하느라 분주하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방독면 같은 기본적인 장비조차 없다. 특히 물 부족이 이라크인들을 위협하고 있다. 어제 한 병에 800디나르였던 물이 오늘 1500디나르, 그리고 내일은 2000디나르로 오르는 판국이다. 그나마 수도인 바그다드는 나은 편이다. 연합군이 휩쓸고 간 지방의 상황은 더욱 나쁘다. 이라크 제2의 도시인 바스라는 22일 이후 전기와 수도가 끊겼다. “바스라 시민 60%가 현재 물 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큰 재앙이 눈앞에 다가온 것 같아요.” ‘수돗물 공급을 재개하기 위해 갖은 짓을 다 해봤지만 실패했다’는 국제적십자연맹(ICRC) 플로리안 웨스팔 대변인의 말이다.
연일 공습이 계속되고 있는 바그다드 거리 곳곳에는 회색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하늘 역시 자욱한 연기 때문에 회색으로 보인다. 간밤의 대공습과 바그다드 인근에 있는 유정에서 난 불 때문이다. 이라크 당국이 유정에 불을 질렀다거나 2000여발의 크루즈 미사일이 발사된 지난 밤의 공습은 ‘서막’일 뿐이라는 소문, 연합군이 화생방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소문들이 바그다드에 떠돌고 있다. 무엇보다도 연합군과 공화국 수비대의 시가전이 벌어지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피해가 생길 것이라는 사실을 바그다드 시민들은 잘 알고 있다.
연기 때문에 한낮에도 연무가 희뿌옇게 떠다니지만, 티그리스 강 유역에는 봄을 맞은 새들의 지저귐이 한가롭다. “춘분이 지난 바그다드의 날씨는 더없이 화창한데, 마치 지옥을 기다리는 기분”이라고 IPT 설립자인 캐시 켈리는 이야기한다. IPT 창설자인 그녀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알제리 캐나다 호주 등 각국에서 온 다른 24명의 IPT 회원들과 바그다드에 남았다. 켈리는 올해의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라 있다. 그러나 정작 전쟁이 끝나면 켈리를 비롯해 미국과 영국에서 온 IPT 회원들은 전범으로 징역형을 받거나 벌금을 물게 될 것이다.
MS NBC 방송은 23일 새벽 ‘폭음’이 소거된 공습 화면 아래로 다우존스와 나스닥에 상장된 종목 주가 하나하나를 뉴스 바(bar) 형태로 한참 동안 빠르게 흘려보냈다. 개전 후 미국의 증시는 연일 상승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비명에 귀를 막은 돈의 질주로 보였다.
핫산의 가족은 바그다드의 빈촌인 ‘사담 시티’에 살고 있다. 그들은 다른 바그다드 빈민들처럼 전쟁을 예감하면서도 도시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피난을 가면 당국에 집을 압수당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돈이 있는 사람들만 짐을 챙겨 바그다드를 떠났다.
”전쟁 전에 아기 낳자” 임산부들 개전선언 직후 너도나도 병원 찾아 제왕절개
3월20일 새벽의 공습으로 발발한 전쟁은 사막의 폭풍처럼 이라크 전역을 휩쓸고 있다. 미국의 양대 뉴스채널인 CNN과 MS NBC는 1차 걸프전처럼 실시간으로 공습 장면을 보여주며 “연합군이 파죽지세로 이라크 남부를 점령하고 수도 바그다드를 향하고 있다”는 보도를 되풀이하고 있다. MS NBC의 앵커는 뉴스중 아라비아 반도 지역의 일기예보를 내보내며 “전쟁하기에 딱 좋은 날씨”라는 황당한 멘트까지 서슴지 않았다.
CNN은 전쟁을 중계하면서도 공습의 ‘폭음’을 10초 이상 들려주는 경우가 드물다. 낮은 배경음으로 처리한 채 기자들의 목소리만 키우거나 아예 소거해버린다. ‘폭음’을 소거한 공습 화면은 오렌지빛 버섯구름이 바그다드 시내에서 피어오르는 가운데 샛노란 불티들이 흩어져 할리우드 전쟁영화의 한 장면처럼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미국의 방송에 등장한 전쟁은 새로운 도전, 미국의 ‘용기’를 전 세계에 천명한 사건처럼 보인다. 이 같은 방송의 보도태도 때문일까. 개전 후 미국인들의 70%가 이번 전쟁을 지지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그러나 이라크에 있는 사람들에게 전쟁은 이처럼 ‘흥미진진한 게임’이 아니라 처절한 공포며 생명에 대한 위협이다. 바그다드 바스라 티크리트 등 이라크 전역에 가해진 공습으로 인해 23일까지 130여명의 이라크인들이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소한 750만명의 이라크인이 이번 전쟁으로 직·간접적 피해를 입을 것이다. 전쟁 직전까지 바그다드에 머물다가 요르단 암만으로 나온 한국 이라크반전평화팀의 임영신씨는 “더 이상 CNN에 귀를 기울이고 싶지 않다. 그들이 담아내는 것은 전쟁이지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요르단 암만에서는 카타르의 알 자지라 방송을 24시간 볼 수 있다. 이 방송은 이슬람권의 입장에서 전쟁을 보도한다. 메인 앵커가 나오는 전쟁 뉴스 배경화면에는 이라크 국기가 미국 국기 위에 그려져 있다. 영미권 방송과는 달리 알 자지라 방송은 바그다드 공습 상황 ‘폭음’을 그대로 전달하고 있다.
폭음과 함께 전달되는 알 자지라 방송 중계를 보는 동안 화면을 응시하는 것 자체가 고통스럽다. 한 요르단 고위 외교관의 딸은 미국 유학을 했으면서도 “죽고 싶다. 당장 바그다드로 가서 싸우고 싶다”며 눈물을 흘렸다.
중동인들은 당연히 이슬람어로 나오는 알 자지라 방송을 본다. 국외에 나와 있는 이라크인들은 바그다드 공습 화면을 보면서 지금 섬광이 터진 데가 어느 사거리, 어느 건물 근처인지 알아차리고 있었다. 서울 사람들이 사진만 보고 광화문과 여의도를 알아보듯이.
암만으로 피난 나온 이영철 현대건설 바그다드 지사장의 이라크인 부인은 22일 새벽까지 공습 상황을 지켜보다가 송진 같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저긴 옛날 국방부 건물인데….” 그 건물은 그녀의 본가에서 멀지 않다. 거기에는 그녀의 여동생이 남아 있다. 임신 5개월이다. 확인 결과 그녀는 살아 있었다. 다져 누른 솜뭉치를 집어넣은 귀를 다시 손바닥으로 누른 채로. 악몽 같은 밤을 새며 그녀는 유산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들에게 “이라크인들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전쟁을 한다”는 부시 대통령의 선전포고는 어떤 의미로 다가왔을까.
부시 대통령이 개전을 선언하자 바그다드의 임신한 여성들은 서둘러 병원을 찾아가 제왕절개로 아기를 낳았다. 제왕절개를 하기에는 너무 이른 경우도 많았지만 이들은 개의치 않았다. 전쟁이 본격화하면, 그래서 사상자가 늘어나면 병원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사실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이들은 91년 걸프전 때 병원의 전기가 끊어지거나 아예 병원 자체가 폭격을 당했던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반전운동단체인 이라크평화팀(IPT) 소속으로 바그다드에 머물고 있는 베테조 파살라쿠아는 “바그다드의 병원에 입원해 있던 소아암 환자들도 전쟁 직전 대부분 퇴원했다”고 전한다. 하루라도 치료를 받지 않으면 죽을지 모르는 상황인데도 이들의 부모들은 아픈 아이를 퇴원시킬 수밖에 없었다. 이 같은 선택을 강요받을 수밖에 없는 부모의 심정을 그 누가 알까.
첫번째 ‘충격과 공포’ 대공습이 있었던 22일 밤이 지나자 연합군측은 207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밤새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바그다드 각처의 병원으로 실려왔다. 이라크 당국은 바그다드에 머물고 있는 외신기자들을 병원으로 데려가 부상자들을 보여주었다. 영국 BBC 방송의 폴 우드 기자도 이 기자들의 무리에 섞여 있었다. 다섯 살 난 남자아이인 아메드 랄렙 알리는 머리에 부상을 입은 채 겁에 질려 “엄마, 아빠!”만 연신 부르며 울었다. 아메드의 아버지는 아들을 촬영하는 서방기자들에게 저주와 욕설을 퍼부어댔다. 그 옆에는 역시 다섯 살 난 여자아이 하심이 의식을 잃은 채로 누워있다. 간밤의 공습으로 척수를 다친 하심은 응급수술을 받았지만 앞으로 다리를 못 쓰는 불구자가 될 것이다. 바그다드 알무스탄샤니아 대학병원의 의사 하비브 알 헤자이는 “간밤에 실려온 민간인 중 12명이 수술중 사망했다”고 말했다.
공습이 계속되는 동안 집안에 머물러 있던 바그다드 시민들은 일요일인 23일부터 조금씩 거리로 나오고 있다. 22일 이후로는 낮에도 공습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이들은 전쟁 이후 10배 가까이 가격이 뛴 물과 식량을 구하느라 분주하다. 대다수의 시민들이 방독면 같은 기본적인 장비조차 없다. 특히 물 부족이 이라크인들을 위협하고 있다. 어제 한 병에 800디나르였던 물이 오늘 1500디나르, 그리고 내일은 2000디나르로 오르는 판국이다. 그나마 수도인 바그다드는 나은 편이다. 연합군이 휩쓸고 간 지방의 상황은 더욱 나쁘다. 이라크 제2의 도시인 바스라는 22일 이후 전기와 수도가 끊겼다. “바스라 시민 60%가 현재 물 공급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더 큰 재앙이 눈앞에 다가온 것 같아요.” ‘수돗물 공급을 재개하기 위해 갖은 짓을 다 해봤지만 실패했다’는 국제적십자연맹(ICRC) 플로리안 웨스팔 대변인의 말이다.
연일 공습이 계속되고 있는 바그다드 거리 곳곳에는 회색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하늘 역시 자욱한 연기 때문에 회색으로 보인다. 간밤의 대공습과 바그다드 인근에 있는 유정에서 난 불 때문이다. 이라크 당국이 유정에 불을 질렀다거나 2000여발의 크루즈 미사일이 발사된 지난 밤의 공습은 ‘서막’일 뿐이라는 소문, 연합군이 화생방무기를 사용할 것이라는 소문들이 바그다드에 떠돌고 있다. 무엇보다도 연합군과 공화국 수비대의 시가전이 벌어지면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피해가 생길 것이라는 사실을 바그다드 시민들은 잘 알고 있다.
연기 때문에 한낮에도 연무가 희뿌옇게 떠다니지만, 티그리스 강 유역에는 봄을 맞은 새들의 지저귐이 한가롭다. “춘분이 지난 바그다드의 날씨는 더없이 화창한데, 마치 지옥을 기다리는 기분”이라고 IPT 설립자인 캐시 켈리는 이야기한다. IPT 창설자인 그녀는 한국을 비롯해 미국 영국 알제리 캐나다 호주 등 각국에서 온 다른 24명의 IPT 회원들과 바그다드에 남았다. 켈리는 올해의 노벨평화상 후보에 올라 있다. 그러나 정작 전쟁이 끝나면 켈리를 비롯해 미국과 영국에서 온 IPT 회원들은 전범으로 징역형을 받거나 벌금을 물게 될 것이다.
MS NBC 방송은 23일 새벽 ‘폭음’이 소거된 공습 화면 아래로 다우존스와 나스닥에 상장된 종목 주가 하나하나를 뉴스 바(bar) 형태로 한참 동안 빠르게 흘려보냈다. 개전 후 미국의 증시는 연일 상승하고 있다. 그것은 사람들의 비명에 귀를 막은 돈의 질주로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