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유통채널로 급부상하고 있는 TV홈쇼핑 방송 제작 모습.
“다시 한번 생각해봐!”
TV홈쇼핑을 통해 하루가 멀다 하고 물건을 사들이는 아내를 감당할 수 없었던 남편이 짜낸 묘안이다. 그는 전화기 위에, 그리고 현관문에 이렇게 써 붙여놓음으로써 아내의 충동구매를 막아보려 했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 소개된 내용이기는 하지만 현실에서도 이런 고민을 하는 남편이 늘고 있다.
2002년, 계속되는 경기침체 속에 백화점과 할인매장 등 유통업체들이 마이너스 성장률을 보이는 등 고전을 면치 못한 반면, TV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을 비롯한 온라인 쇼핑몰은 최대 호황을 누렸다. 국내 최대 홈쇼핑인 LG홈쇼핑은 2002년 총 매출을 1조8040억원 정도로 집계하고 있다. 이는 전년도인 2001년 1조637억원보다 크게 늘어난 수치. LG홈쇼핑의 인터넷 쇼핑몰인 LG이숍은 2002년 처음으로 50억원 규모의 흑자를 냈다.
CJ홈쇼핑 역시 2002년 11월, 월 단위로는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1500억원 매출을 기록했고, 2002년 총 매출을 1조4700억원 선으로 잠정 집계하고 있다. 이 때문에 홈쇼핑 업계에서는 2002년을 ‘온라인 쇼핑몰이 새로운 유통채널로 자리매김하는 원년’으로 평가하고 있다.
문제는 지난해 온라인 쇼핑몰을 이용한 소비자의 피해 역시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는 점. 한국소비자보호원(이하 소보원)에 따르면 지난해 TV홈쇼핑과 인터넷 쇼핑몰 등 온라인 쇼핑몰에 대한 소비자 피해 상담 건수는 전년도인 2001년과 비교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TV홈쇼핑을 통해 물품을 구입한 소비자의 피해 상담 건수는 2001년 2764건에서 2002년 4634건으로 증가했고, 인터넷을 통한 물품 구매에서 비롯된 피해 상담 건수 역시 1만452건(2002년 12월24일 현재)으로 2001년의 5179건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보원에 접수된 총 상담 건수가 2001년 32만건에서 2002년 31만여건으로 줄어든 것을 감안하면 TV홈쇼핑과 인터넷 구매 등 온라인 쇼핑몰을 통한 소비자 상담이 급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장 많이 팔린 식료품 상담도 최고
TV홈쇼핑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상담 품목은 식료품·기호품(987건), 정보통신기기(695건), 의류·섬유·신변잡화(632건), 가사용품(606건) 순. 이는 올해 TV홈쇼핑에서 히트상품으로 포장김치와 양념갈비세트 등 먹을거리와 건강식품을 선정한 것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가장 많이 팔린 품목이 소비자 피해 상담 의뢰도 가장 많았던 것. 소보원 농업·섬유팀 한표국 팀장은 “홈쇼핑이 활성화되면서 판매자가 구매를 종용하는 현상이 나타나 구매자의 충동구매에 따른 부작용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휴대폰이나 개인용 컴퓨터, 컴퓨터 주변기기 등 정보통신 관련 제품에 대한 소비자 피해 상담 건수도 부쩍 늘었다. 방송된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제품이 배달되거나, 품질보증기간이 지난 제품을 사전에 알리지 않고 판매한 경우, 동일한 모델임에도 불구하고 일반 대리점에서 판매하는 것과 부품이 다른 경우 등이 적발됐다. 이처럼 판매자의 과실이 명백할 때는 대부분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다. 소보원 자동차통신팀 유정임씨는 “TV홈쇼핑 광고는 대개 순식간에 진행되기 때문에 방송내용을 입증하기 어려운 만큼 구매 전에 그 내용을 재차 확인받고, 되도록 서면으로 남겨두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러나 소비자단체에서도 손을 쓸 수 없는 ‘구멍’이 있다. 온라인 쇼핑몰이 판매자와 구매자가 직접 대면하지 않는 거래라는 점을 악용한 사업자가 계획적으로 사기를 치거나 본의 아니게 부도를 내고 달아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 소보원 이창옥 상담팀장은 “온라인 쇼핑몰이 대부분 선불제이기 때문에 구매대금만 챙기고 물건을 배달하지 않거나 광고와 다른 물건을 보내는 악덕 사업주가 많다”고 말했다. 이들에게서 피해를 볼 경우 현실적으로는 구제받을 방법이 없는 형편이다.
이러한 소비자 피해를 발생시키는 주범은 중계 유선방송을 통해 ‘광고방송’ 형태로 나오는 유사 홈쇼핑업체. 현재 방송위원회로부터 사업승인을 받은 홈쇼핑업체는 LG CJ 현대 우리 농수산 등 5개이고, 이외에 사업승인은 받지 않았지만 사전 방송심의를 받아 케이블 TV의 일정 시간대를 임대해 방송하는 업체(인포머셜)는 50여개로 추정되고 있다. 문제가 되는 유사 홈쇼핑은 이들과 달리 사전에 방송심의를 받지 않고 영세한 지역 유선방송사를 통해 무단으로 방송하고 있다. 유사 홈쇼핑업체를 주요 수익원으로 인식한 일부 유선방송사들은 하루 종일 홈쇼핑 광고를 내보내는 실정이다. 방송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유사 홈쇼핑업체가 특히 농한기에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 농가의 피해가 우려되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이 활성화되면서 충동구매로 인한 소비자 상담도 늘고 있다.
인터넷 쇼핑몰에도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전체 인터넷 쇼핑몰 2500여개 중 종업원이 50명 이상인 업체는 30여개에 불과하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도산의 우려가 높고, 이는 소비자 피해로 연결된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되도록 법적으로 허용된 TV홈쇼핑과 이미 오프라인을 통해 검증된 업체가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할 것을 당부했다. 뿐만 아니라 충동구매를 소비자 당사자의 문제로만 돌릴 수 없는 상황인 만큼 전문가들은 “일을 저질렀다 싶으면 바로 소비자 상담을 요청하고, 피해 구제방법을 모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난해 개정된 방문판매법에 의하면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 물건을 구입하고 7일 이내에 반품을 요청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LG홈쇼핑을 비롯한 대부분의 대형 TV홈쇼핑에서는 30일 이내에 반품이 가능하도록 조치하고 있어 불필요한 물건을 구입했거나 하자가 있을 경우 적극적으로 소비자단체나 홈쇼핑업체 고객센터 문을 두드려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