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또 예기치도 못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마늘분쟁을 둘러싼 공은 이제 우리에게 넘어왔다. 국가간 무역협상 문제인 한중 마늘협상에서 중국은 정작 팔짱만 끼고 있고 나머지 당사자인 우리 정부와 농민들만 사분오열해 싸우고 있는 상황이다. 책임론은 책임론이고 어쨌든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 첫 단추가 7월29일 무역위원회의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조사 개시 여부에 대한 결정이다.
현재 정부는 재협상이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만약 무역위원회의 조사를 거쳐 우리 정부가 최종적으로 세이프가드 연장을 결정할 경우 당연히 중국 정부의 보복조치가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예상되는 중국의 보복조치는 지난 2000년 세이프가드 발동 당시와는 확연히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2000년 당시 WTO 비회원국이었던 중국은 한국이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마늘 총액 1500만 달러에 대해 5억 달러 규모의 휴대전화기 및 폴리에틸렌 제품에 대한 수입중단 조치를 내렸다. 30배가 넘는 무차별 보복이었다.
중국 WTO 가입해 무차별 보복은 불가능
그러나 WTO 회원국이 된 중국은 이제 이러한 ‘막가파식 보복’은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전에는 링 바깥에서 몽둥이를 휘둘렀다면 이제는 헤드기어와 글러브를 끼고 똑같이 링에 올라온 것이다. WTO 협정문에 따르면 중국은 우리가 세이프가드를 통해 수입제한 조치를 내린 것에 ‘상응하는 수준의 보복’(substantially equivalent level of concession)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1000만 달러 손해에 대해서는 1000만 달러 수준의 보복만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외교적인 마찰은 감수해야겠지만 무조건 ‘보복이 두려워 안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정부와 국회, 농민단체들의 주장은 ‘한번 해보자’는 입장과 ‘해봤자 안 된다’는 입장으로 확연히 갈리고 있다. 통상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상황을 푸는 해법은 엇갈리게 나올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민주당 김영진 의원(농림해양수산위)은 “프랑스의 경우 통상협상에서 정부가 농민들의 격렬한 시위를 등에 업고 협상을 벌이기도 한다”면서 “합의문 부속서는 개인 자격으로 써준 것인 만큼 우리가 다시 협상에 나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고려대 박노형 교수(통상법)도 “중국이 보복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WTO 규정상 상품무역이사회의 사전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언제까지 중국에 끌려다닐 수는 없는 만큼 WTO 규정이 정한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송유철 박사는 “중국에서 재협상에 응해줄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재협상에 따른 실익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우리 정부가 추가적인 세이프가드 조치를 내릴 경우 중국은 보복조치를 단행할 것이고 이 경우 WTO 분쟁해결 절차에 따라야 하는데, 만약 승소하더라도 이미 상당한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90년대 말 산업자원부에서 한미자동차 협상을 주도했던 서강대 안세영 교수(국제협상론)는 “미국이나 유럽연합 국가와 달리 중국은 정보통신 제조업 등 우리의 약점만을 골라 대응보복해 올 것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무책임한 재협상론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물론 무역위원회가 세이프가드 발동 요건인 국내 마늘산업의 ‘심각한 피해’(serious injury)를 인정하더라도 당장 수입제한 조치가 내려지는 것은 아니다. 무역위가 세이프가드 연장을 건의한 뒤 결정권자인 재경부 장관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또 수입제한 조치는 취하지 않은 채 세제 지원 등의 구조조정 방안만을 건의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정부가 재협상 부담을 지지 않으면서도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부가 부처간 책임 공방이나 마늘 농가의 집단 반발 등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사태를 ‘초동진압’하기 위해 아예 무역위의 조사개시 결정 이전에 어떤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세이프가드 조사 개시 및 발동 요건 등을 명시한 불공정 무역행위조사 및 산업피해구제에 관한 법률 16조3항에 따르면, 조사 개시 전에 국내 산업의 심각한 피해 또는 피해 우려를 구제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지는 경우에는 무역위원회는 산업피해 조사를 개시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무역위원회가 조사개시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7월29일 이전에라도 마늘농가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질 경우, 세이프가드 연장을 위한 조사 자체가 실시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1차적으로 세이프가드 연장 여부에 관한 열쇠를 쥐고 있는 전성철 무역위원장은 “농협의 세이프가드 연장 신청을 기각할 근거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외교통상부의 월권(越權)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현재로서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정부가 피해 구제 조치를 취할 경우 무역위원회는 법 절차에 따라 조사 개시를 하지 않을 명분을 얻게 되는 셈이다. 실제 무역위원회 내부에서도 재협상론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우리 정부가 합의 내용을 인정하는 이상 구두계약이라 하더라도 ‘세이프가드 연장 불가’ 합의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농협의 연장 신청 기각할 근거 없다”
외교통상부 관계자 역시 “‘마늘농가 구제방안 발표 후 피해조사 신청 기각’이라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어차피 마늘 농가의 피해를 줄일 방안을 마련해 발표해야 하는 것이라면 늦출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해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문제는 남는다. 우선은 정부책임론을 주장해 온 농민들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또 무역위원회나 정부가 WTO가 규정하고 있는 국내 산업 피해 구제 절차조차도 활용하지 못했다는 비난에 휩싸일 공산도 있다. 서강대 안세영 교수는 “무역위원회가 조사 개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물론, 강성 기조를 유지하면서 이러한 카드로 중국과 협상하는 것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길”이라고 충고했다. 실제 유럽연합 등 농산물 관련 통상 현안이 빈발하는 국가에서는 이런 협상전략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재미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국내 상황을 대외협상에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협상 전문가가 과연 있느냐는 것으로 모아진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우리 통상외교가 처한 현실이다.
현재 정부는 재협상이란 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만약 무역위원회의 조사를 거쳐 우리 정부가 최종적으로 세이프가드 연장을 결정할 경우 당연히 중국 정부의 보복조치가 뒤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경우 예상되는 중국의 보복조치는 지난 2000년 세이프가드 발동 당시와는 확연히 다를 것이라는 전망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했기 때문이다. 2000년 당시 WTO 비회원국이었던 중국은 한국이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마늘 총액 1500만 달러에 대해 5억 달러 규모의 휴대전화기 및 폴리에틸렌 제품에 대한 수입중단 조치를 내렸다. 30배가 넘는 무차별 보복이었다.
중국 WTO 가입해 무차별 보복은 불가능
그러나 WTO 회원국이 된 중국은 이제 이러한 ‘막가파식 보복’은 할 수 없는 형편이다. 전에는 링 바깥에서 몽둥이를 휘둘렀다면 이제는 헤드기어와 글러브를 끼고 똑같이 링에 올라온 것이다. WTO 협정문에 따르면 중국은 우리가 세이프가드를 통해 수입제한 조치를 내린 것에 ‘상응하는 수준의 보복’(substantially equivalent level of concession)만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1000만 달러 손해에 대해서는 1000만 달러 수준의 보복만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외교적인 마찰은 감수해야겠지만 무조건 ‘보복이 두려워 안 된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기 어렵다는 말이다.
이 때문에 정부와 국회, 농민단체들의 주장은 ‘한번 해보자’는 입장과 ‘해봤자 안 된다’는 입장으로 확연히 갈리고 있다. 통상 관계자들 사이에서도 상황을 푸는 해법은 엇갈리게 나올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민주당 김영진 의원(농림해양수산위)은 “프랑스의 경우 통상협상에서 정부가 농민들의 격렬한 시위를 등에 업고 협상을 벌이기도 한다”면서 “합의문 부속서는 개인 자격으로 써준 것인 만큼 우리가 다시 협상에 나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고려대 박노형 교수(통상법)도 “중국이 보복조치를 취하기 위해서는 WTO 규정상 상품무역이사회의 사전승인을 받아야만 한다. 언제까지 중국에 끌려다닐 수는 없는 만큼 WTO 규정이 정한 절차에 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송유철 박사는 “중국에서 재협상에 응해줄 것인지도 의문이지만 재협상에 따른 실익이 얼마나 되는지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만약 우리 정부가 추가적인 세이프가드 조치를 내릴 경우 중국은 보복조치를 단행할 것이고 이 경우 WTO 분쟁해결 절차에 따라야 하는데, 만약 승소하더라도 이미 상당한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90년대 말 산업자원부에서 한미자동차 협상을 주도했던 서강대 안세영 교수(국제협상론)는 “미국이나 유럽연합 국가와 달리 중국은 정보통신 제조업 등 우리의 약점만을 골라 대응보복해 올 것이기 때문에 정치인들이 무책임한 재협상론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물론 무역위원회가 세이프가드 발동 요건인 국내 마늘산업의 ‘심각한 피해’(serious injury)를 인정하더라도 당장 수입제한 조치가 내려지는 것은 아니다. 무역위가 세이프가드 연장을 건의한 뒤 결정권자인 재경부 장관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 방법도 있을 수 있다. 또 수입제한 조치는 취하지 않은 채 세제 지원 등의 구조조정 방안만을 건의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정부가 재협상 부담을 지지 않으면서도 선택할 수 있는 몇 가지 방안이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정부가 부처간 책임 공방이나 마늘 농가의 집단 반발 등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사태를 ‘초동진압’하기 위해 아예 무역위의 조사개시 결정 이전에 어떤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세이프가드 조사 개시 및 발동 요건 등을 명시한 불공정 무역행위조사 및 산업피해구제에 관한 법률 16조3항에 따르면, 조사 개시 전에 국내 산업의 심각한 피해 또는 피해 우려를 구제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지는 경우에는 무역위원회는 산업피해 조사를 개시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무역위원회가 조사개시 여부를 결정하기로 한 7월29일 이전에라도 마늘농가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가 취해질 경우, 세이프가드 연장을 위한 조사 자체가 실시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 말이다.
1차적으로 세이프가드 연장 여부에 관한 열쇠를 쥐고 있는 전성철 무역위원장은 “농협의 세이프가드 연장 신청을 기각할 근거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외교통상부의 월권(越權)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러나 여기에는 ‘현재로서는’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정부가 피해 구제 조치를 취할 경우 무역위원회는 법 절차에 따라 조사 개시를 하지 않을 명분을 얻게 되는 셈이다. 실제 무역위원회 내부에서도 재협상론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분위기다. 우리 정부가 합의 내용을 인정하는 이상 구두계약이라 하더라도 ‘세이프가드 연장 불가’ 합의를 존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농협의 연장 신청 기각할 근거 없다”
외교통상부 관계자 역시 “‘마늘농가 구제방안 발표 후 피해조사 신청 기각’이라는 방안을 검토한 바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어차피 마늘 농가의 피해를 줄일 방안을 마련해 발표해야 하는 것이라면 늦출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고 말해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문제는 남는다. 우선은 정부책임론을 주장해 온 농민들의 격렬한 반발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다. 또 무역위원회나 정부가 WTO가 규정하고 있는 국내 산업 피해 구제 절차조차도 활용하지 못했다는 비난에 휩싸일 공산도 있다. 서강대 안세영 교수는 “무역위원회가 조사 개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물론, 강성 기조를 유지하면서 이러한 카드로 중국과 협상하는 것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는 길”이라고 충고했다. 실제 유럽연합 등 농산물 관련 통상 현안이 빈발하는 국가에서는 이런 협상전략을 자유자재로 구사해 재미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국내 상황을 대외협상에 적절하게 활용할 수 있는 협상 전문가가 과연 있느냐는 것으로 모아진다. 그러나 여기에 대해서는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는 사람들이 더 많다. 우리 통상외교가 처한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