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으로 들어가는 것보다 식탁 밑으로 흘리는 음식이 더 많고, 시도 때도 없이 질금질금 새어 나오는 오줌 때문에 기저귀를 차고 다녀야 하고, 새벽녘 벌떡 일어나 며느리 몰래 요를 빠는 노인들의 모습이 구질구질하다고?
작가는 언뜻 김빠진 맥주처럼 보이는 노인들의 삶에서 여전히 보글보글 탄산가스 같은 생명력이 피어 오르고 있음을 놓치지 않았다. 만화에서 자식 눈치, 세상 눈치 보면서도 때때로 “너도 늙어봐라”며 배짱을 부리는 노인들의 모습은 발랄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65편의 에피소드로 이루어진 ‘로망스’는 특히 노인들의 성(性)에 대해 솔직하다. ‘신도시1’편에서 손자를 떠맡은 할아버지가 놀이터에 나와 역시 손자를 데리고 나온 예쁜 할머니와 눈맞춤을 하는 것은 가장 점잖은 수준이고, ‘걱정’편은 노골적인 이부자리 신이다. 섹스를 하면서도 자식 걱정이 끊이지 않는 늙은 부모. 둘째네 융자 이자, 넷째의 맞선, 부부싸움한 딸네…. 걱정이 바뀔 때마다 그들의 체위도 바뀐다. 정상체위에서 앉은 체위로, 후배위로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여의치 않자 노인들은 ‘에이 휴’와 ‘흐이유’만 반복한다.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할머니 “걍… 자끄나?”, 민망한 할아버지 그래도 오기는 남아서 “하던 거 끝냅시다.” 마침내 그들은 벽치기를 시도한다.
노인을 소재로 만화를 그리는 일은 분명 작가에게 껄끄러운 작업이었을 것이다. 젊은 독자들의 외면은 불 보듯 뻔하고, ‘어르신’을 우스개로 만드는 일이니만큼 표현수위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자칫 “고얀 놈” 소리나 듣지 않을지. 그러나 윤태호의 손에서 마른 나무 같던 노인들이 생기를 찾고, 오히려 삶에 지친 젊은 세대에게 웃음까지 선사하니 ‘로망스’가 얼마나 활력 넘치는 만화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고토 마코토의 ‘120세 불로학’(동방미디어 펴냄)과 피너 G. 피터슨의 ‘노인들의 사회 그 불안한 미래’(에코 리브르 펴냄)는 마냥 가벼운 마음으로 읽을 책은 아니다. 그러나 한 번은 치러야 할 홍역처럼, 나이 드는 것을 조심스럽게 준비하도록 만든다. 로망스/ 윤태호 지음/ 애니북스 펴냄/ 224쪽/ 7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