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관 전 동아일보사 명예회장 부인 고 안경희 여사의 1주기 추모식과 추모비 제막식이 있던 7월14일 오전, 하늘도 그날의 충격을 기억하는 듯 어김없이 비를 뿌렸다. 유례없이 가혹한 언론사 세무조사의 철퇴를 맞고, 가족과 친지들에게까지 시달림을 나눠야 하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유명을 달리한 고인의 추모식에는 가족을 비롯해 김학준 동아일보사 사장과 한승주 고려대 총장, 동아일보 전·현직 임직원 등 300여명이 참석했다.
김학준 동아일보사 사장은 추모사를 통해 “고인은 정치도 권력도 경영도 몰랐던 평범한 주부였고, 1996년 12월 동아일보사 구 사옥을 보수해 개관한 일민미술관장을 맡아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미술분야에 조예를 쌓으려고 노력했을 뿐이다”며 “권력의 비정(秕政)이 그 소박한 꿈마저 일찍 접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사장은 또 1987년 신동아 사태 때 당시 안기부가 기사를 문제 삼아 압력을 가하자 제작진에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1993년 4월 동아일보가 석간에서 조간으로 전환할 때도 홀로 사찰을 찾아가 3000배를 올릴 정도로 각별했던 고인의 애정을 되새겼다. 김사장은 마지막으로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동아일보 82년 역사가 그랬듯이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정확하고 바른 보도와 논평으로 독자와 국민의 사랑을 받는 신문으로 다시 설 것”을 약속했다.
고인의 친구 대표로 추모사를 낭독한 정영희씨는 “하늘이 맑다는 이유로, 난초에 꽃이 피었다는 이유로 기뻐 어쩔 줄 몰라했던 소녀 같은 형님”으로 고인을 추억하며 “애통하고 원통한 고인의 죽음이 단지 시대적인 비극에 그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는 우리들이 되겠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이날 제막된 추모비에는 동아일보 가족의 뜻을 담아 “한 사랑으로 동아일보 아껴오신 님/ 어둠 속에 빛 더하고 스러졌으니/ 그 넋 자유언론으로 영원하리라”는 추모시가 새겨졌다.
김학준 동아일보사 사장은 추모사를 통해 “고인은 정치도 권력도 경영도 몰랐던 평범한 주부였고, 1996년 12월 동아일보사 구 사옥을 보수해 개관한 일민미술관장을 맡아 평소 관심을 갖고 있던 미술분야에 조예를 쌓으려고 노력했을 뿐이다”며 “권력의 비정(秕政)이 그 소박한 꿈마저 일찍 접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사장은 또 1987년 신동아 사태 때 당시 안기부가 기사를 문제 삼아 압력을 가하자 제작진에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1993년 4월 동아일보가 석간에서 조간으로 전환할 때도 홀로 사찰을 찾아가 3000배를 올릴 정도로 각별했던 고인의 애정을 되새겼다. 김사장은 마지막으로 “고인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동아일보 82년 역사가 그랬듯이 어떤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정확하고 바른 보도와 논평으로 독자와 국민의 사랑을 받는 신문으로 다시 설 것”을 약속했다.
고인의 친구 대표로 추모사를 낭독한 정영희씨는 “하늘이 맑다는 이유로, 난초에 꽃이 피었다는 이유로 기뻐 어쩔 줄 몰라했던 소녀 같은 형님”으로 고인을 추억하며 “애통하고 원통한 고인의 죽음이 단지 시대적인 비극에 그치지 않도록 더욱 노력하는 우리들이 되겠다”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고인의 안타까운 죽음을 기억하기 위해 이날 제막된 추모비에는 동아일보 가족의 뜻을 담아 “한 사랑으로 동아일보 아껴오신 님/ 어둠 속에 빛 더하고 스러졌으니/ 그 넋 자유언론으로 영원하리라”는 추모시가 새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