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존의 인공지능 프로그램에서는 짝짓기부터 그 결과에 대한 평가까지 일일이 프로그래머가 명령하고 결정해야 한다. 하지만 이 프로그램은 디자인 구성 요소와 사용자의 취향, 올 여름의 패션 경향 등 초기 조건만 정해주면 나머지 과정은 프로그램이 알아서 결정한다. 일종의 자기 결정권을 가진 셈이다.
조교수의 프로그램은 기존의 인공지능 프로그램과 다른 인공생명 프로그램이다. 퍼지이론이나 카오스 이론으로 대표되는 기존의 인공지능 연구는 로봇이나 세탁기, 냉장고 등의 가전제품에 적용됐지만 환경에 대한 조건과 정보를 미리 입력해야 하는 근본적인 한계를 갖는다. ‘예’와 ‘아니오’가 아니라 ‘아마도’ 같은 불확실성을 요구하는 상황이 더 많은 생명체 환경은 기존의 인공지능 기술로 모방하기에는 너무 복잡하다. 생명은 단순한 부분의 합 그 이상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의 한계를 극복할 인공생명 연구는 생명체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서 출발한다. 생물체가 갖는 자율성과 적응, 학습, 진화, 자기복제와 자기증식 등의 특징을 모방한 뒤, 이를 통합해 인공적인 매체 위에 생명체를 ‘창조’하려는 노력이다. 최근의 연구는 컴퓨터상에서 인공생명을 구현하려는 소프트웨어 분야와 실리콘칩이나 로봇과 같은 하드웨어 분야로 나눌 수 있다.
‘진화 알고리즘’이 선두주자

여러 세대에 걸쳐 이뤄진 돌연변이 중 최적의 해만 골라내는 과정은 인간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의지’다. 인간이 해야 할 일은 집단을 구성하고 적당한 돌연변이 변수를 도입한 뒤 돌연변이 된 개체 중 조건에 적합한 인자를 선택케 하는 과정을 프로그래밍하는 것으로 끝난다. 나머지 과정은 생물의 진화가 그렇듯 프로그램 내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진다. 돌연변이가 생기면 환경에 적합한 개체만 살아남고 그렇지 못한 것은 도태된다는 생물의 진화 과정을 그대로 모방한 것이다.
최근 개봉된 애니메이션 ‘스피릿’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정교한 장면들이 나온다. 특히 수많은 말들이 떼로 몰려다니는 군집행동은 너무나 자연스러워 감탄을 자아낸다. 바로 진화 알고리즘을 사용한 결과다. 진화 알고리즘은 이처럼 예술의 범위까지 넘나들며 보다 정교하고 실감나는 표현을 가능케 한다.

또한 최근 각광받고 있는 애완 로봇이나 인간형 로봇 휴머노이드에도 진화 알고리즘이 사용되고 있다. 일본의 소니사가 출시한 로봇 강아지 ‘아이보’(AIBO)는 매우 정교한 제어기를 갖고 있어 몇몇 행동은 살아 있는 강아지와 거의 유사하다. 하지만 아이보의 제어기 역시 프로그래머가 설계한 것이기 때문에 전체적인 행동은 여전히 부자연스럽다. 이를 진화 알고리즘으로 보완해 주인과 상호작용을 통해 서로 우정을 쌓을 수 있도록 하는 연구가 진행중이다.
생명체를 모방하려는 인공생명 연구는 하드웨어도 진화시키고 있다. 하드웨어를 진화시키기 위해서는 자신을 복제하고 유전적 변이를 적용할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바로 ‘재구성이 가능한 하드웨어’(reconfigurable hardware)다.
재구성이 가능한 하드웨어는 환경의 변화나 오차를 이용해 자율적으로 구조를 바꿔, 구조는 물론 기능까지 복잡하고 다양해지는 반도체 집적회로를 말한다. 따라서 복잡한 반도체 제조공정을 거치지 않고도 다양한 구조의 반도체를 스스로 만들 수 있다. 특히 이 시스템은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결함을 스스로 복구할 수 있는 하드웨어 시스템을 구축할 수 있어 주목된다.

또한 진화 하드웨어칩은 디지털 이동통신 분야에도 없어서는 안 될 핵심 기술이 될 전망이다. 디지털 통신에서 중요한 문제 중 하나는 수신 과정에서 망가진 신호를 복구하는 기술인 ‘채널 균등화’(channel equalization) 문제다. 디지털 통신은 정해진 대역 내에서 신호를 주고받지만 정보를 보내는 환경이 계속해서 변하기 때문에 일부 신호는 제대로 수신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 진화 하드웨어칩을 이용하면 환경에 따라 변하는 디지털 정보도 깨끗이 복구할 수 있다.
인공생명 연구는 아직 그 구체적 성과물이 많지 않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한계를 극복한 인공생명 연구는 인간의 위치와 역할을 재검토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복제양 돌리에 이은 복제인간의 가능성, 외계에 지능을 가진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일부 과학자들의 주장과 함께 인공생명은 다음과 같이 되묻고 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