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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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주에서 남해까지 남도 온통 덮은 ‘신록의 향연’

  • < 양영훈/ 여행작가 > www.travelmaker.co.kr

    입력2004-10-05 13:3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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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에서 남해까지 남도 온통 덮은 ‘신록의 향연’
    1년 열두 달 가운데 나들이하기에 가장 좋은 달은 아마 5월과 10월일 것이다. 계절의 여왕 5월에는 연둣빛 신록이 눈부시고, 무르익은 가을철의 10월에는 오색단풍이 현란해서 절정에 이른 자연 풍광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천리(天理)에 맞춰 월령(月令)이 되풀이되는 농부들에게는 이 두 달이 가장 바쁜 철이다. 일손이 모자라 제때 새참을 챙겨 먹기도 어려운 듯하다. 무주군 적상면 길왕리의 산달밭에서 만난 농부 내외도 대체로 오후 서너 시쯤 챙기는 새참을 저녁 여섯 시가 훨씬 지난 뒤에야 먹고 있었다. 그런데도 ‘팔자 좋은 한량’같은 객(客)에게 “이리 와서 함께 먹자”며 인정 나누기를 잊지 않는다.

    무주에서 남해까지 남도 온통 덮은 ‘신록의 향연’
    전라북도 동북부 지역의 무주, 진안, 장수군은 흔히 ‘무진장’이라 뭉뚱그린 지명으로 불린다. 오지의 대명사인 함경남도(지금의 자강도)의 ‘삼수갑산’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이 지역은 백두대간의 주맥과 소백산맥의 멧부리들이 종횡으로 우뚝해 전라북도의 지붕 구실을 한다. 특히 무주군과 장수군에는 덕유산(1614m), 무룡산(1491m), 남덕유산(1507m), 깃대봉(1014m), 백운산(1278m), 장안산(1236m) 등 해발 1000m가 넘는 백두대간의 주봉들이 줄지어 솟아 있다. 이 봉우리들로 연이어진 백두대간과 전라북도 동부산간의 남북을 관통하는 19번 국도는 약 5~10km의 거리를 두고 병행한다. 그러니 차창 밖의 풍경은 온통 신록에 물든 산자락뿐이다.

    무주 땅을 벗어난 19번 국도는 장계면과 장수읍을 거쳐 수분재를 넘는다. 말 그대로 ‘물길이 나뉘는 고개’, 즉 분수령(分水嶺)이다. 고갯마루를 중심으로 북쪽 기슭의 물길은 금강에 합류되고 남쪽 것은 섬진강으로 흘러간다. 고갯마루 옆의 수분마을 뒷산에는 길이 401km의 금강 물길이 시작되는 ‘뜬봉샘’이 있다. 그런데 수분재의 북사면(北斜面)은 평지나 다름없이 완만해 해발 539m의 고개라는 게 별로 실감나지 않는다. 번암면 쪽의 남사면을 내려서야만 고갯길다운 행색이 엿보인다. 장수군 일대가 평균 해발고도 430m의 고원지대기 때문이다.

    무주에서 남해까지 남도 온통 덮은 ‘신록의 향연’
    번암면 소재지를 지나면 이내 춘향골 남원 땅에 들어선다. 19번 국도가 거쳐가는 남원시, 구례군, 하동군은 이른바 ‘지리산권역’이다. 어딜 가나 지리영봉(智異靈峰)과 섬진청류(蟾津淸流)가 눈앞에 펼쳐진다.



    19번 국도는 남원시 외곽에서 근래 새로 개설된 우회도로를 타고 곧장 밤재터널을 지나 구례 땅으로 넘어간다. 남원 관광단지 내의 국립민속국악원에 들러 동편제 판소리 한 대목을 감상하거나, ‘원조’ 남원 추어탕을 맛보거나, 광한루에 들러 옛 풍류를 음미하거나, 남원 특산품인 목기와 식칼 하나 구입하려거든 우회도로로 올라서지 말고 곧장 남원 시내로 들어간다. 그리고 지리산 골짜기의 맑은 물에 잠시 발을 적시며 쉬어가기에는 이 우회도로의 주천IC에서 지척 거리인 구룡계곡이 제격이다.

    무주에서 남해까지 남도 온통 덮은 ‘신록의 향연’
    남원 우회도로의 시점에서 구례 화엄사 입구까지의 19번 국도 구간은 고속도로처럼 곧고 시원스럽다. 화엄사 입구 삼거리에서 조금 더 남쪽으로 가면 구례군 토지면 오미리다. 이 마을부터 토지면 구산리 구만마을까지의 섬진강 유역에는 조선 팔도에서 가장 비옥하고 살기 좋다는 ‘구만들’이 펼쳐져 있다. 실학자 이중환도 ‘택리지’에서 “구만촌은 강가에 자리잡아 강산과 토지에서 많은 수확을 거두고, 거룻배를 통해 생선과 소금을 쉽게 얻을 수 있어 정말 살기 좋은 곳”이라 했던 그 들녘이다. 이처럼 풍요로운 구만들이 시작되는 곳에 자리한 오미리에는 운조루(雲鳥樓)가 있어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한다.

    넓고 기름진 구만들을 질러온 19번 국도는 토지면 파도리의 동방천 삼거리를 지나서부터 섬진강 물길과 나란히 달린다. 동방천 삼거리에서 하동포구의 섬진교까지는 약 70리 길. 우리나라에서 가장 운치 있는 강변 드라이브 코스다. 더욱이 인근의 지리산 자락에는 피아골, 화개동천, 범왕골 등과 같은 풍광 좋은 계곡과 연곡사, 쌍계사, 칠불암 등 내력 깊은 고찰이 즐비하다. 영호남의 산물과 사람이 이합집산을 거듭하던 화개장터, 대하소설 ‘토지’의 주무대인 악양면 평사리, 하동군을 ‘백사청송(白沙靑松)의 고장’으로 만든 하동 송림도 19번 국도변에 위치한다.

    무주에서 남해까지 남도 온통 덮은 ‘신록의 향연’
    내내 19번 국도와 나란히 흘러온 섬진강 물길은 하동군 고전면 전도리를 지나면서부터 시야에서 사라진다. 전도리를 지나자마자 남해고속도로와 만난 국도는 하동군 금남면과 남해대교를 거쳐 남해도에 들어선다. 그래도 19번 국도의 종점 미조항까지는 족히 100리 길이 넘는다.

    남해도는 예로부터 ‘일점선도’(一點仙島)라 불릴 만큼 풍광이 수려한 섬인데, 해안선을 따라 두 개의 국도와 하나의 지방도로가 ‘8’자형을 이룬다. 이 도로들은 막히거나 겹치지 않는 순환도로이기 때문에 섬 전역을 둘러보기가 수월할 뿐 아니라 드라이브 코스로도 안성맞춤이다. 그러니 19번 국도만 고집스레 따라갈 필요는 없다. 특히 해안 드라이브 코스로는 1024번 지방도가 훨씬 더 유용하다. 여수만과 앵강만이 한눈에 조망되는 이 길에서는 남해의 때묻지 않은 자연과 남해 사람들의 남다른 근면성을 상징하는 계단식 논밭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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