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증시가 종합주가지수 840~850 선에 막혀 며칠째 제자리걸음을 하다 825.27로 내려앉은 3월8일 늦은 오후. 서울 여의도 증권가의 간판 펀드매니저 동양투자신탁운용 김자혁 상무(48)를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 왠지 모르게 빨라졌다. 지수 1000포인트까지 오르기 위한 ‘마지막 관문’으로 통하는 지수 840~850 선은 도대체 언제나 넘을 수 있을까, 주가가 단기간에 너무 많이 올랐는데 지금 주식시장에 뛰어들어도 괜찮을까, 김상무가 오랫동안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등 묻고 싶은 내용이 많았기 때문이다.
5천억원 자산 규모 24개 펀드 운용
김자혁 상무는 현역 최고령이자 최장수 펀드매니저. 30대 중반만 넘어도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펀드매니저 업계에서 아직도 컴퓨터 단말기 앞에 앉아 증권 시세를 확인하고 직접 주식을 운용할 수 있는 것은 오랜 기간 뛰어난 수익률을 올렸음을 의미한다. 지난해 내외경제신문이 선정하는 최고의 운용사로 동양투신이 꼽힌 것도 그가 이 회사 주식형 자산의 43%를 운용하면서 높은 수익률을 올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얘기는 한마디로 ‘실망’스러웠다. 증시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주식은 중장기 투자를 해야 한다” “공기업의 철밥통 깨뜨리기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달성하지 못하면 한국 증시는 ‘병목’에 걸릴 것이다” 등의 내용은 이미 상식에 속하지 않는가.
그러나 김상무의 말을 듣다 보면 바로 그 상식에 충실한 자세가 오늘의 김상무를 있게 한 원동력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기본과 원칙에 따른 투자. 증권 투자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기는 어려운 방법이다. 그러나 김상무는 만 10년 넘게 펀드매니저 생활을 하면서 우직스럽게 이를 고수해 왔다.
“1년 이상 중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되 철저히 우량 종목에만 승부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분산투자를 했습니다. 10년 넘게 펀드매니저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이 원칙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작전 종목이라고 소문난 종목은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어요.”
그가 현재 운용하는 펀드는 24개, 자산 규모 5000억원 정도다. 모닝스타 등 펀드 평가회사에 따르면 그의 펀드는 거의 모두 상위 10% 이내에 들어 있다. 그가 자신의 펀드에 가장 많이 편입한 종목은 삼성전자이며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등이 그 뒤를 잇는다.
그러나 나머지 편입 종목에 대해서는 공개를 거부했다.
“4위부터 20위까지의 종목은 다른 펀드매니저들의 편입 종목과 조금 다를 것입니다. 10여년 이상의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나름의 종목 연구 등을 통해 편입한 종목이므로 공개할 수 없지만 수익률은 자신하고 있습니다. 뮤추얼펀드 업계의 ‘전설’로 통하는 피터 린치는 ‘펀드매니저는 장이 좋고 나쁨을 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좋은 종목은 장과 상관없이 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종목을 발굴하는 게 펀드매니저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그는 펀드매니저에게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성실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펀드매니저라면 저녁 늦게까지 각종 리포트와 자료집을 읽고 틈틈이 세미나에 참석해야 하는 등 고된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관리를 하지 않으면 1년도 버티지 못한다는 것. 그는 지금도 주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주말이면 반드시 산을 찾는다. 담배는 펀드매니저들에게 특히 해롭다고 강조한다.
그가 발굴한 종목 가운데 대표적인 ‘대박’ 종목은 롯데칠성과 태평양. 두 종목 모두 최근 2년 사이에 5배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태평양은 그가 80년대 초반 종합금융회사에 근무할 때부터 대출 심사를 담당하는 등 인연을 맺은 이래 주시해 온 종목. 그러다 구조조정 성과가 가시화될 것으로 보고 승부를 걸었는데,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롯데칠성은 다른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들이 놓친 부분에 승부를 걸었다.
“2년 전 롯데칠성 컨소시엄이 해태음료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국내에서 유명한 한 음식료업종 담당 애널리스트에게 롯데칠성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롯데칠성은 좋은 회사이긴 한데, 기업 지배구조 리스크가 문제’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것은 한 측면만 본 것입니다. 나는 롯데칠성이 해태음료를 인수하면 국내시장을 휩쓸 것이라고 예상했고 결과는 대박이었습니다. 기업의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지요.”
그가 이처럼 우량 종목 중심으로 투자하는 것은 그의 독특한 경력과도 무관치 않다. 78년 서울대 법대 졸업 후 1년 반 정도 직장생활을 하다 해군장교로 입대한 그는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에 차출돼 첩보판단 장교로 일했다. 수많은 첩보 가운데 정보 가치가 있는 것을 나름대로 판단해 이를 정보로 가공하는 일이 그의 업무였다. 83년 초에 제대해 중앙투자금융에 입사, 88년 말 ‘주식시장의 미래를 보고 연봉이 절반 이하로 깎이는 것을 감수하고’ 동양증권으로 옮기기 전까지 여신 심사 업무를 담당했다. 두 곳에서의 경험이 기업 분석에 대한 안목을 키워준 셈이다.
김상무는 개인투자자들에게 간접투자를 권한다. 요즘 주식시장은 선물이나 옵션을 알아야 할 정도로 전문적인 시장이 되었고, 과거와 달리 투신사의 투명성이 향상돼 외국의 유수한 투신사들이 국내에 진출해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운용하는 투신사 등에 돈을 맡기는 게 훨씬 낫다는 것.
“그동안 주식시장에서 소위 ‘개미들’은 거의 실패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나 기관투자가에 비해 정보와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굳이 직접투자를 하겠다면 우량 종목에 투자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가령 삼성전자 같은 종목은 그동안 너무 많이 올라 먹을 게 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지금 사도 괜찮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을 겁니다.”
그가 이처럼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은 한국 증시를 낙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주가지수 1000포인트는 별 의미가 없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 증시는 지수 1000을 훌쩍 넘어 완만한 상승을 계속할 것으로 보고 있는 것,
한국 증시를 낙관하는 근거는 증시의 근본적인 변화. 그에 따르면 과거 한국 증시는 한마디로 먹고 튀는 ‘먹튀’ 시장이었다. 작전 등 갖가지 불공정 행위를 통해 한탕 한 다음 튀는 행위가 서슴없이 자행되었다는 것. 귀가 얇은 개미들은 이런 소문에 쉽게 현혹돼 피해 보는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92년 자본시장 개방을 계기로 선진화 길을 걷던 한국 증시는 IMF 이후 시장의 투명성이 향상되는 등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또 한국 기업의 주가가 상당히 저평가돼 있습니다. 여기에다 현재와 같은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중산층들이 노후를 대비한 재테크 수단으로 주식 투자를 많이 할 것이고, 이는 그만큼 증시 수요 기반이 확대된다는 얘기입니다.”
김상무라고 해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그가 발굴한 종목들은 움직임이 느렸기 때문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도 없었고, 외톨이로 지냈다. 그런 자신이 최근 들어 각광받고 있는 것은 한국 증시가 선진 시장으로 변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정석 투자 기법이 먹혀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반면 과거 각광받던 스타 펀드매니저들은 어느새 현장을 떠나고 없다고. ‘가장 나중에 웃는 자가 가장 잘 웃는 자’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5천억원 자산 규모 24개 펀드 운용
김자혁 상무는 현역 최고령이자 최장수 펀드매니저. 30대 중반만 넘어도 ‘할아버지’ 소리를 듣는 펀드매니저 업계에서 아직도 컴퓨터 단말기 앞에 앉아 증권 시세를 확인하고 직접 주식을 운용할 수 있는 것은 오랜 기간 뛰어난 수익률을 올렸음을 의미한다. 지난해 내외경제신문이 선정하는 최고의 운용사로 동양투신이 꼽힌 것도 그가 이 회사 주식형 자산의 43%를 운용하면서 높은 수익률을 올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그의 얘기는 한마디로 ‘실망’스러웠다. 증시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주식은 중장기 투자를 해야 한다” “공기업의 철밥통 깨뜨리기와 노동시장 유연화를 달성하지 못하면 한국 증시는 ‘병목’에 걸릴 것이다” 등의 내용은 이미 상식에 속하지 않는가.
그러나 김상무의 말을 듣다 보면 바로 그 상식에 충실한 자세가 오늘의 김상무를 있게 한 원동력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기본과 원칙에 따른 투자. 증권 투자자라면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기는 어려운 방법이다. 그러나 김상무는 만 10년 넘게 펀드매니저 생활을 하면서 우직스럽게 이를 고수해 왔다.
“1년 이상 중장기적 관점에서 투자하되 철저히 우량 종목에만 승부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분산투자를 했습니다. 10년 넘게 펀드매니저 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이 원칙에서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작전 종목이라고 소문난 종목은 근처에도 가보지 않았어요.”
그가 현재 운용하는 펀드는 24개, 자산 규모 5000억원 정도다. 모닝스타 등 펀드 평가회사에 따르면 그의 펀드는 거의 모두 상위 10% 이내에 들어 있다. 그가 자신의 펀드에 가장 많이 편입한 종목은 삼성전자이며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등이 그 뒤를 잇는다.
그러나 나머지 편입 종목에 대해서는 공개를 거부했다.
“4위부터 20위까지의 종목은 다른 펀드매니저들의 편입 종목과 조금 다를 것입니다. 10여년 이상의 경험과 노하우, 그리고 나름의 종목 연구 등을 통해 편입한 종목이므로 공개할 수 없지만 수익률은 자신하고 있습니다. 뮤추얼펀드 업계의 ‘전설’로 통하는 피터 린치는 ‘펀드매니저는 장이 좋고 나쁨을 논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좋은 종목은 장과 상관없이 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종목을 발굴하는 게 펀드매니저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그는 펀드매니저에게는 철저한 자기관리와 성실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펀드매니저라면 저녁 늦게까지 각종 리포트와 자료집을 읽고 틈틈이 세미나에 참석해야 하는 등 고된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자기관리를 하지 않으면 1년도 버티지 못한다는 것. 그는 지금도 주중에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주말이면 반드시 산을 찾는다. 담배는 펀드매니저들에게 특히 해롭다고 강조한다.
그가 발굴한 종목 가운데 대표적인 ‘대박’ 종목은 롯데칠성과 태평양. 두 종목 모두 최근 2년 사이에 5배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태평양은 그가 80년대 초반 종합금융회사에 근무할 때부터 대출 심사를 담당하는 등 인연을 맺은 이래 주시해 온 종목. 그러다 구조조정 성과가 가시화될 것으로 보고 승부를 걸었는데, 맞아떨어졌다고 설명했다. 롯데칠성은 다른 애널리스트나 펀드매니저들이 놓친 부분에 승부를 걸었다.
“2년 전 롯데칠성 컨소시엄이 해태음료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국내에서 유명한 한 음식료업종 담당 애널리스트에게 롯데칠성을 어떻게 보느냐고 물었어요. 그랬더니 ‘롯데칠성은 좋은 회사이긴 한데, 기업 지배구조 리스크가 문제’라고 하더군요. 그러나 그것은 한 측면만 본 것입니다. 나는 롯데칠성이 해태음료를 인수하면 국내시장을 휩쓸 것이라고 예상했고 결과는 대박이었습니다. 기업의 다양한 측면을 종합적으로 봐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지요.”
그가 이처럼 우량 종목 중심으로 투자하는 것은 그의 독특한 경력과도 무관치 않다. 78년 서울대 법대 졸업 후 1년 반 정도 직장생활을 하다 해군장교로 입대한 그는 보안사령부(현 기무사령부)에 차출돼 첩보판단 장교로 일했다. 수많은 첩보 가운데 정보 가치가 있는 것을 나름대로 판단해 이를 정보로 가공하는 일이 그의 업무였다. 83년 초에 제대해 중앙투자금융에 입사, 88년 말 ‘주식시장의 미래를 보고 연봉이 절반 이하로 깎이는 것을 감수하고’ 동양증권으로 옮기기 전까지 여신 심사 업무를 담당했다. 두 곳에서의 경험이 기업 분석에 대한 안목을 키워준 셈이다.
김상무는 개인투자자들에게 간접투자를 권한다. 요즘 주식시장은 선물이나 옵션을 알아야 할 정도로 전문적인 시장이 되었고, 과거와 달리 투신사의 투명성이 향상돼 외국의 유수한 투신사들이 국내에 진출해 있기 때문에 전문가들이 운용하는 투신사 등에 돈을 맡기는 게 훨씬 낫다는 것.
“그동안 주식시장에서 소위 ‘개미들’은 거의 실패했습니다. 외국인 투자자나 기관투자가에 비해 정보와 지식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굳이 직접투자를 하겠다면 우량 종목에 투자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가령 삼성전자 같은 종목은 그동안 너무 많이 올라 먹을 게 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지금 사도 괜찮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을 겁니다.”
그가 이처럼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은 한국 증시를 낙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주가지수 1000포인트는 별 의미가 없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한국 증시는 지수 1000을 훌쩍 넘어 완만한 상승을 계속할 것으로 보고 있는 것,
한국 증시를 낙관하는 근거는 증시의 근본적인 변화. 그에 따르면 과거 한국 증시는 한마디로 먹고 튀는 ‘먹튀’ 시장이었다. 작전 등 갖가지 불공정 행위를 통해 한탕 한 다음 튀는 행위가 서슴없이 자행되었다는 것. 귀가 얇은 개미들은 이런 소문에 쉽게 현혹돼 피해 보는 경우가 많았다는 얘기다.
“그러나 92년 자본시장 개방을 계기로 선진화 길을 걷던 한국 증시는 IMF 이후 시장의 투명성이 향상되는 등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습니다. 또 한국 기업의 주가가 상당히 저평가돼 있습니다. 여기에다 현재와 같은 저금리 기조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중산층들이 노후를 대비한 재테크 수단으로 주식 투자를 많이 할 것이고, 이는 그만큼 증시 수요 기반이 확대된다는 얘기입니다.”
김상무라고 해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그가 발굴한 종목들은 움직임이 느렸기 때문에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적도 없었고, 외톨이로 지냈다. 그런 자신이 최근 들어 각광받고 있는 것은 한국 증시가 선진 시장으로 변해가고 있는 상황에서 자신의 정석 투자 기법이 먹혀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나름대로 분석했다. 반면 과거 각광받던 스타 펀드매니저들은 어느새 현장을 떠나고 없다고. ‘가장 나중에 웃는 자가 가장 잘 웃는 자’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