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반지의 제왕’이 개봉 2주 만에 3억 달러(약 3600억원) 이상의 흥행수익을 올리며 전 세계를 들썩이게 하고 있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 ‘블레이드 러너’ ‘링’ 등에서부터 최근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조앤 K. 롤링 원작,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까지 매스컴의 주목을 받은 수많은 베스트셀러 소설들이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제작과 흥행, 비평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반지의 제왕’과 같은 극찬을 받은 경우는 처음일 것이다.
블록버스터 영화들로 막강 영화제국을 구가하던 할리우드가 ‘타이타닉’ 이후 영화 속의 배처럼 서서히 침몰하는 듯하더니 드디어 탈출구를 찾아낸 것일까. 20세기 팬터지를 만들어낸 J.R.R. 톨킨의 소설적 상상력이 한 고집스러운 천재 감독의 영상 미학과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21세기의 문화적 키워드를 읽어낼 수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은 세계적으로 1억부 이상 팔려나간 원작소설의 무게를 등에 지고 태어났다. 소설 ‘반지의 제왕’은 1954년 최초로 출간한 이래 지금까지 팬터지의 제왕으로 흔들림 없이 그 지위를 누려온 작품이다. 영국의 ‘더 타임스’가 선정한 20세기 영미문학의 10대 걸작에 포함된 것을 비롯해 현재도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 아마존 소설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책에 관련한 수만개의 인터넷 사이트와 각종 화집, 음반, 설정집, 게임 등이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언어학과 교수였던 톨킨은 고대 영어와 인물, 지리, 역사 등에 대한 치밀한 연구를 통해 거의 완벽에 가까운 하나의 세계를 구축했다. 켈트와 게일어 및 웨일스 방언을 비롯하여 북구 언어들에 대한 그의 정교하면서도 해박한 지식은 소설의 문체에 품격과 아름다움과 정교함을 부여했다. 따뜻한 지중해를 주 무대로 하는 그리스·로마 신화부터 북구의 거칠고 추운 환경 속에서 자라온 수많은 신화와 민담까지, 그의 치열한 탐구정신은 소설의 육체에 인류학적 정신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소설 ‘반지의 제왕’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인류가 낳은 최고의 문화상품 중 하나인 ‘팬터지’의 세계를 빈틈없이 정교하고 치밀하게 구축해,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력만으로도 현실 세계에 비견되는 또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볼 수 있는 기쁨을 선사한 것일 터이다. 이것은 너무나 완벽에 가까운 리얼리티의 실험이었기에 문학평론가 김종엽씨는 이렇게 반문한 적도 있다. “어떻게 인간이 방대한 묘사의 세계를 아무런 경험적 근거 없이 구축할 수 있겠는가?”
영화 ‘반지의 제왕’은 이 완벽한 허구(또는 상상)의 세계를 우리 눈앞에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관객들은 영화의 첫 장면이 시작되자마자 재현되어 살아 움직이는 환상의 세계 앞에서 등골을 타고 내려가는 전율감에 사로잡힌다.
엔야의 아일랜드풍 음악, 뉴질랜드의 광활하고 아름다운 자연 풍광, 아홉 명이나 되는 주연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 오크와 트롤, 발록 등의 괴물들과 벌이는 화려한 액션 장면, 난쟁이들의 위대한 도시 모리아의 카잣둠의 묘사, 어둠 속을 질주하는 흑기사들의 카리스마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관객들의 오감을 빨아들인다. 몇몇 스토리상의 왜곡은 사소하게 느껴지며, 감독이자 각색가인 피터 잭슨은 원작의 거대한 서사들을 이미지들 위에 자유롭게 배치하면서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냈다.
피터 잭슨은 1961년 뉴질랜드 태생으로 지금까지 ‘브레인 데드’(Brain Dead·우리나라에서는 ‘데드 얼라이브’로 개봉), ‘고무 인간의 최후’(Bad Taste), ‘천상의 피조물들’(Heavenly Creatures) 등 엽기적 컬트영화의 천재 감독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영화들에서 그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규범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유감없이 펼쳐내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지구에 쳐들어온 외계인을 잔인하고 무시무시하고 어이없는 방법으로 먹어치우는 지구인들, 잔디깎이로 괴물이 된 인간들을 싹쓸이하는 주인공, 자매애에 빠져 모친을 살해하는 소녀를 그린 감독에게서 ‘반지의 제왕’이라는 또 다른 영화적 실험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즉 그는 처음부터 세계가 하나의 동전과 같이 일상적인 세계와 비일상적인 세계라는 두 면이 존재함을 이해하고 있는 감독이었다. 그래서 그는 “나는 늘 팬터지야말로 영화의 마지막 미개척지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것은 진정으로 정복되지 않은 유일한 장르다”고 했다.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주인공들은 악과 맞서 절대적인 파멸의 힘을 가진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악의 소굴로 향한다. 그러나 난쟁이 김리의 말처럼 독자들은 그들과 함께 여행하며 서서히 선한 자에게만 행복과 선함이, 악한 자에게만 불행과 악함이 따르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나는 암흑의 고통을 무엇보다 두려워했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생각은 하지 않았네. 하지만 빛과 환희의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여행을 떠나지 않았을 걸세.” 원작을 읽지 않았더라도, 원작 팬터지 세계의 설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영화를 보며 관객들은 위와 같은 질문을 되새기게 될 것이다. 선을 위해 싸우겠다던 주인공들의 흔들리는 마음과 권력을 향한 의지, 산산이 깨어지는 반지 원정대의 결속 등을 통해 ‘선과 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것.
‘반지의 제왕’이 소설로서 영화로서 지금 같은 찬사를 얻고 있는 것은 이러한 보편적 주제에 대한 작가와 감독 모두의 깊은 천착이 있었기 때문이며, 훌륭한 작품은 결국 리얼리티의 모사가 아니라 리얼리티의 구축임을 독자나 관객들에게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피터 잭슨의 영화적 상상력에 만점을 주기에는 아직 이르다. 톨킨의 소설 원작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을지 몰라도 영화는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관객의 기립 박수를 받을지, 용두사미가 될지는 3부까지 모두 끝나 원작과 마케팅 등으로 인한 이 모든 하이퍼 현상이 사라진 2004년이 되어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줄거리가 궁금한 사람은 일단 소설로 만나보자. 그리고 올 겨울 개봉할 영화 제2부 ‘두 개의 탑’을 기다리자.
블록버스터 영화들로 막강 영화제국을 구가하던 할리우드가 ‘타이타닉’ 이후 영화 속의 배처럼 서서히 침몰하는 듯하더니 드디어 탈출구를 찾아낸 것일까. 20세기 팬터지를 만들어낸 J.R.R. 톨킨의 소설적 상상력이 한 고집스러운 천재 감독의 영상 미학과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는 21세기의 문화적 키워드를 읽어낼 수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은 세계적으로 1억부 이상 팔려나간 원작소설의 무게를 등에 지고 태어났다. 소설 ‘반지의 제왕’은 1954년 최초로 출간한 이래 지금까지 팬터지의 제왕으로 흔들림 없이 그 지위를 누려온 작품이다. 영국의 ‘더 타임스’가 선정한 20세기 영미문학의 10대 걸작에 포함된 것을 비롯해 현재도 세계 최대 인터넷 서점 아마존 소설 베스트셀러 1위를 달리고 있을 뿐 아니라, 이 책에 관련한 수만개의 인터넷 사이트와 각종 화집, 음반, 설정집, 게임 등이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 언어학과 교수였던 톨킨은 고대 영어와 인물, 지리, 역사 등에 대한 치밀한 연구를 통해 거의 완벽에 가까운 하나의 세계를 구축했다. 켈트와 게일어 및 웨일스 방언을 비롯하여 북구 언어들에 대한 그의 정교하면서도 해박한 지식은 소설의 문체에 품격과 아름다움과 정교함을 부여했다. 따뜻한 지중해를 주 무대로 하는 그리스·로마 신화부터 북구의 거칠고 추운 환경 속에서 자라온 수많은 신화와 민담까지, 그의 치열한 탐구정신은 소설의 육체에 인류학적 정신을 불어넣었다.
하지만 소설 ‘반지의 제왕’이 지닌 가장 큰 매력은 역시 인류가 낳은 최고의 문화상품 중 하나인 ‘팬터지’의 세계를 빈틈없이 정교하고 치밀하게 구축해, 독자들로 하여금 상상력만으로도 현실 세계에 비견되는 또 하나의 거대한 세계를 볼 수 있는 기쁨을 선사한 것일 터이다. 이것은 너무나 완벽에 가까운 리얼리티의 실험이었기에 문학평론가 김종엽씨는 이렇게 반문한 적도 있다. “어떻게 인간이 방대한 묘사의 세계를 아무런 경험적 근거 없이 구축할 수 있겠는가?”
영화 ‘반지의 제왕’은 이 완벽한 허구(또는 상상)의 세계를 우리 눈앞에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관객들은 영화의 첫 장면이 시작되자마자 재현되어 살아 움직이는 환상의 세계 앞에서 등골을 타고 내려가는 전율감에 사로잡힌다.
엔야의 아일랜드풍 음악, 뉴질랜드의 광활하고 아름다운 자연 풍광, 아홉 명이나 되는 주연 배우들의 생생한 연기, 오크와 트롤, 발록 등의 괴물들과 벌이는 화려한 액션 장면, 난쟁이들의 위대한 도시 모리아의 카잣둠의 묘사, 어둠 속을 질주하는 흑기사들의 카리스마 등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관객들의 오감을 빨아들인다. 몇몇 스토리상의 왜곡은 사소하게 느껴지며, 감독이자 각색가인 피터 잭슨은 원작의 거대한 서사들을 이미지들 위에 자유롭게 배치하면서 새로운 내러티브를 만들어냈다.
피터 잭슨은 1961년 뉴질랜드 태생으로 지금까지 ‘브레인 데드’(Brain Dead·우리나라에서는 ‘데드 얼라이브’로 개봉), ‘고무 인간의 최후’(Bad Taste), ‘천상의 피조물들’(Heavenly Creatures) 등 엽기적 컬트영화의 천재 감독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 영화들에서 그는 평범하고 상식적인 규범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세계를 유감없이 펼쳐내며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지구에 쳐들어온 외계인을 잔인하고 무시무시하고 어이없는 방법으로 먹어치우는 지구인들, 잔디깎이로 괴물이 된 인간들을 싹쓸이하는 주인공, 자매애에 빠져 모친을 살해하는 소녀를 그린 감독에게서 ‘반지의 제왕’이라는 또 다른 영화적 실험을 기대하기란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즉 그는 처음부터 세계가 하나의 동전과 같이 일상적인 세계와 비일상적인 세계라는 두 면이 존재함을 이해하고 있는 감독이었다. 그래서 그는 “나는 늘 팬터지야말로 영화의 마지막 미개척지라는 생각을 해왔다. 그것은 진정으로 정복되지 않은 유일한 장르다”고 했다.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주인공들은 악과 맞서 절대적인 파멸의 힘을 가진 반지를 파괴하기 위해 악의 소굴로 향한다. 그러나 난쟁이 김리의 말처럼 독자들은 그들과 함께 여행하며 서서히 선한 자에게만 행복과 선함이, 악한 자에게만 불행과 악함이 따르는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나는 암흑의 고통을 무엇보다 두려워했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생각은 하지 않았네. 하지만 빛과 환희의 위험이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여행을 떠나지 않았을 걸세.” 원작을 읽지 않았더라도, 원작 팬터지 세계의 설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더라도, 영화를 보며 관객들은 위와 같은 질문을 되새기게 될 것이다. 선을 위해 싸우겠다던 주인공들의 흔들리는 마음과 권력을 향한 의지, 산산이 깨어지는 반지 원정대의 결속 등을 통해 ‘선과 악이란 무엇인가’라는 인간의 가장 근원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는 것.
‘반지의 제왕’이 소설로서 영화로서 지금 같은 찬사를 얻고 있는 것은 이러한 보편적 주제에 대한 작가와 감독 모두의 깊은 천착이 있었기 때문이며, 훌륭한 작품은 결국 리얼리티의 모사가 아니라 리얼리티의 구축임을 독자나 관객들에게 증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피터 잭슨의 영화적 상상력에 만점을 주기에는 아직 이르다. 톨킨의 소설 원작은 이미 고전의 반열에 올라 있을지 몰라도 영화는 진행중이기 때문이다. 관객의 기립 박수를 받을지, 용두사미가 될지는 3부까지 모두 끝나 원작과 마케팅 등으로 인한 이 모든 하이퍼 현상이 사라진 2004년이 되어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줄거리가 궁금한 사람은 일단 소설로 만나보자. 그리고 올 겨울 개봉할 영화 제2부 ‘두 개의 탑’을 기다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