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인 지난 1월4일 휴가를 끝내고 TV 카메라 앞에 선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연두 기자회견에서 밝힌 화두는 역시 ‘구조개혁’이었다. 일본 경제의 장기 침체로 경제 회생 의지와 가능성을 모두 잃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국민들에게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 경제는 아직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자신과 희망을 갖고 구조개혁에 매진하면 회생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근 국내외를 막론하고 일본 경제의 앞날에 대해 쏟아져 나오는 비관적 시나리오는 고이즈미 총리의 이런 다짐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새해를 맞으면서 미국 경제 회복론이 본격적으로 대두되고 유럽 경제의 앞날에 대해서도 긍정적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유독 일본 경제만이 ‘잃어버린 10년’도 모자라 앞으로도 경기 회복은커녕 파산론까지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일본 사회에서는 ‘3월 위기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기업들의 3월 말 결산을 앞두고 일본 기업들의 경영 실적이 공개되면 숨겨진 부실 규모가 드러나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도산기업이 속출하리라는 시나리오다. 이런 비관적 시나리오와 맞물려 최근 들어서는 아예 일본의 몰락을 점치는 책들도 출간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2003년 일본국 파산’의 저자인 아사이 다카시(淺井隆)는 일본이 향후 5년 안에 파산할 확률이 95%라고 단언한다. 마이니치신문 사진기자 출신의 독특한 경력을 가진 경제 저널리스트 아사이 다카시는 불황 대책이라는 명목 아래 공공사업이나 금융기관의 구제를 위해 공적자금을 양수기로 물 퍼대듯 계속 투입한다면 몇 년 가지 않아 일본 재정은 완벽하게 파탄지경을 맞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사이 다카시는 이렇게 극단적 비관론을 전개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연간 세수 52조엔의 16배가 넘는 800조엔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부실채권에서 찾고 있다.
그가 ‘2003년 일본국 파산’에서 인용한, 일본 경제기획청연구소 작성 비공개 보고서에는 ‘일본의 차입금을 100년 사이에 제로로 만들려면 무려 35%나 되는 소비세율을 100년간 부과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대목마저 들어 있다.
또 일본 잡지 ‘선데이마이니치’의 특집기사에서 경제평론가 이노우에 다카시(井上隆司)는 일본 GDP의 1.3배에 이르는 일본의 현재 차입금 규모는 태평양전쟁을 수행하던 1943년과 비슷하며, 막부 시대 말기인 에도 막부 당시의 상황과도 비슷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두 시기의 공통점은 한 국가가 패망하거나 종말을 고하기 직전이라는 것.
침몰 직전의 ‘일본호(號)’를 구하기 위해 나선 고이즈미 총리는 이에 맞서 구조개혁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극심한 불황에도 불구하고 ‘30조 엔 이상으로는 국채를 발행하지 않겠다’는 배수진도 쳤다. 그러나 고이즈미의 일본 내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식 개혁을 바라보는 경제전문가들의 시각은 별로 호의적이지만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일본의 시사잡지 ‘중앙공론’(中央公論)에 기고한 특집기사에서 고이즈미의 개혁 프로그램에 대해 신랄한 비난을 퍼붓고 있다. 크루그먼은 “고이즈미의 구조개혁 정책은 애매모호할 뿐 아니라 경기 성장 지속에는 도움을 줄 수 있으나 파국을 피하는 데는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크루그먼은 구조개혁은 정치적 슬로건일 뿐 소비심리를 부추겨 경기를 활성화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인플레이션의 필요성을 강조한 뒤 이러한 역할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일본 중앙 은행을 비난하기도 했다.
고이즈미에 대한 개혁 기대심리에도 불구하고 정작 기업들이 느끼는 실물경기 역시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12월 일본 중앙은행이 발표한 일본 기업의 단기경제 관측지수. 이 관측지수를 보면 9월 조사 때보다도 기업들의 체감경기가 더욱 나빠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의 실물경기 체감도를 나타내는 경기판단지수(Diffusion Index)는 9월 조사 때보다도 4포인트 하락한 -47을 기록했다. 경기판단지수는 경기가 좋다고 대답한 기업의 비율에서 나쁘다고 대답한 기업의 수치를 뺀 것으로, 마이너스 수치로 갈수록 기업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기가 좋지 않다는 말이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9월 조사에서 2포인트 정도 개선될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결과는 5포인트 하락으로 나타나 4분기 연속 악화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이 최근 주요기업 100개를 대상으로 경기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더라도 31개 기업이 ‘급속히 후퇴’라고 응답했고 60개는 ‘서서히 후퇴’, 9개는 ‘침체상태’라고 응답했다. 나아지고 있다는 응답은 한 군데도 없었다.
서방의 경제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고이즈미가 구조개혁을 내세우면서 일본 내에서 얻고 있는 인기 역시 ‘거품’에 불과하다고 폄훼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의 고이즈미에 대한 평가는 차라리 독설에 가깝다.
“고이즈미의 인기는 과거 지도자들에 비해 ‘개혁지도자’의 이미지를 얻는 데 성공했기 때문일 뿐이다. 일본에서는 9·11 테러사태 이후 어떤 정치지도자도 어떤 정책을 펴는지에 관계없이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고이즈미는 테러사건으로 구제된 것이나 다름없다.”
또 일본 내에서 소수기는 하지만 아예 고이즈미 내각에 대해 완전한 방향 전환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리츠메이칸대(立命館大) 다카하시 노부야키(高橋伸彰) 교수는 특수법인 민영화 등 고이즈미 개혁이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꿰고 있다며 생산성 증대만 목표로 하는 구조개혁 작업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다카하시 교수는 공기업 민영화 정책이 오직 생산성 향상만을 위한 수단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정부=비효율적, 민간=효율적’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구조개혁 작업이 계속되면 결국 경제의 장기적 안정이 깨지고 부담이 늘어난 데 대한 청구서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역대 정치지도자들에 비해 매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도 이래저래 시험대에 올라 있는 셈이다. 항해의 방향은 제대로 잡았더라도 풍랑에 휩쓸려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거나 바닥에 물이 차오르는 상태에서는 목표를 향해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나도는 항간의 시나리오대로 일본 경제가 몰락하면 그도 함께 몰락하고 일본 경제가 소생하면 그도 함께 소생하는 것이다.
지난해 말부터 일본 사회에서는 ‘3월 위기설’이 나돌기 시작했다. 기업들의 3월 말 결산을 앞두고 일본 기업들의 경영 실적이 공개되면 숨겨진 부실 규모가 드러나면서 주가가 폭락하고 도산기업이 속출하리라는 시나리오다. 이런 비관적 시나리오와 맞물려 최근 들어서는 아예 일본의 몰락을 점치는 책들도 출간되고 있다.
최근 국내에서도 번역 출간돼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2003년 일본국 파산’의 저자인 아사이 다카시(淺井隆)는 일본이 향후 5년 안에 파산할 확률이 95%라고 단언한다. 마이니치신문 사진기자 출신의 독특한 경력을 가진 경제 저널리스트 아사이 다카시는 불황 대책이라는 명목 아래 공공사업이나 금융기관의 구제를 위해 공적자금을 양수기로 물 퍼대듯 계속 투입한다면 몇 년 가지 않아 일본 재정은 완벽하게 파탄지경을 맞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아사이 다카시는 이렇게 극단적 비관론을 전개할 수밖에 없는 원인을 연간 세수 52조엔의 16배가 넘는 800조엔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부실채권에서 찾고 있다.
그가 ‘2003년 일본국 파산’에서 인용한, 일본 경제기획청연구소 작성 비공개 보고서에는 ‘일본의 차입금을 100년 사이에 제로로 만들려면 무려 35%나 되는 소비세율을 100년간 부과해야 한다’는 무시무시한 대목마저 들어 있다.
또 일본 잡지 ‘선데이마이니치’의 특집기사에서 경제평론가 이노우에 다카시(井上隆司)는 일본 GDP의 1.3배에 이르는 일본의 현재 차입금 규모는 태평양전쟁을 수행하던 1943년과 비슷하며, 막부 시대 말기인 에도 막부 당시의 상황과도 비슷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두 시기의 공통점은 한 국가가 패망하거나 종말을 고하기 직전이라는 것.
침몰 직전의 ‘일본호(號)’를 구하기 위해 나선 고이즈미 총리는 이에 맞서 구조개혁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극심한 불황에도 불구하고 ‘30조 엔 이상으로는 국채를 발행하지 않겠다’는 배수진도 쳤다. 그러나 고이즈미의 일본 내 지지도에도 불구하고 고이즈미식 개혁을 바라보는 경제전문가들의 시각은 별로 호의적이지만은 않다는 데 문제가 있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최근 일본의 시사잡지 ‘중앙공론’(中央公論)에 기고한 특집기사에서 고이즈미의 개혁 프로그램에 대해 신랄한 비난을 퍼붓고 있다. 크루그먼은 “고이즈미의 구조개혁 정책은 애매모호할 뿐 아니라 경기 성장 지속에는 도움을 줄 수 있으나 파국을 피하는 데는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진단한다. 크루그먼은 구조개혁은 정치적 슬로건일 뿐 소비심리를 부추겨 경기를 활성화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인플레이션의 필요성을 강조한 뒤 이러한 역할을 뒷받침하지 못하는 일본 중앙 은행을 비난하기도 했다.
고이즈미에 대한 개혁 기대심리에도 불구하고 정작 기업들이 느끼는 실물경기 역시 개선되기는커녕 악화되는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12월 일본 중앙은행이 발표한 일본 기업의 단기경제 관측지수. 이 관측지수를 보면 9월 조사 때보다도 기업들의 체감경기가 더욱 나빠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의 실물경기 체감도를 나타내는 경기판단지수(Diffusion Index)는 9월 조사 때보다도 4포인트 하락한 -47을 기록했다. 경기판단지수는 경기가 좋다고 대답한 기업의 비율에서 나쁘다고 대답한 기업의 수치를 뺀 것으로, 마이너스 수치로 갈수록 기업들이 피부로 느끼는 경기가 좋지 않다는 말이다. 특히 제조업의 경우 9월 조사에서 2포인트 정도 개선될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결과는 5포인트 하락으로 나타나 4분기 연속 악화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이 최근 주요기업 100개를 대상으로 경기실태를 조사한 결과를 보더라도 31개 기업이 ‘급속히 후퇴’라고 응답했고 60개는 ‘서서히 후퇴’, 9개는 ‘침체상태’라고 응답했다. 나아지고 있다는 응답은 한 군데도 없었다.
서방의 경제전문가들은 이 때문에 고이즈미가 구조개혁을 내세우면서 일본 내에서 얻고 있는 인기 역시 ‘거품’에 불과하다고 폄훼하고 있다. 폴 크루그먼의 고이즈미에 대한 평가는 차라리 독설에 가깝다.
“고이즈미의 인기는 과거 지도자들에 비해 ‘개혁지도자’의 이미지를 얻는 데 성공했기 때문일 뿐이다. 일본에서는 9·11 테러사태 이후 어떤 정치지도자도 어떤 정책을 펴는지에 관계없이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고이즈미는 테러사건으로 구제된 것이나 다름없다.”
또 일본 내에서 소수기는 하지만 아예 고이즈미 내각에 대해 완전한 방향 전환을 주문하는 목소리도 있다.
리츠메이칸대(立命館大) 다카하시 노부야키(高橋伸彰) 교수는 특수법인 민영화 등 고이즈미 개혁이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꿰고 있다며 생산성 증대만 목표로 하는 구조개혁 작업을 중단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다카하시 교수는 공기업 민영화 정책이 오직 생산성 향상만을 위한 수단으로 추진되고 있다며 ‘정부=비효율적, 민간=효율적’이라는 선입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지금과 같은 구조개혁 작업이 계속되면 결국 경제의 장기적 안정이 깨지고 부담이 늘어난 데 대한 청구서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는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역대 정치지도자들에 비해 매우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데도 이래저래 시험대에 올라 있는 셈이다. 항해의 방향은 제대로 잡았더라도 풍랑에 휩쓸려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거나 바닥에 물이 차오르는 상태에서는 목표를 향해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나도는 항간의 시나리오대로 일본 경제가 몰락하면 그도 함께 몰락하고 일본 경제가 소생하면 그도 함께 소생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