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8

2006.01.10

“삼족오 국새는 우리 상징 찾는 일”

  • 고구려 해양교섭사 ymc0407@yahoo.co.kr

    입력2006-01-04 11: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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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족오 국새는 우리 상징 찾는 일”

    최근 감사원 감사 과정에서 발견된 국새의 미세한 균열 부분을 한 관계자가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왼쪽). 지금은 실전되고 만 제1호 국새는 삽살개 문양이었다. 1958년 문화공보부가 촬영해놓은 국새 1호 사진(오른쪽 위). 고구려 벽화에서 보이는 삼족오.

    2005년 9월 감사원은 다소 놀라운 사실을 공개했다. 국새(國璽)에 금이 가 국새를 교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것이었다. 금이 간 부분은 용 문양을 하고 있는 국새의 아래쪽. 이 일로 국새에 대한 일반인들의 관심이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국새를 새로 제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최근 동아시아에서는 역학 관계가 복잡해지면서 ‘역사전쟁’이 일어났다. 이미 우리 역사를 ‘반도사관’으로 재단했던 일본은 우리를 중국과 일본의 식민지를 경험한 사대적 민족으로 몰아붙였고, 일련의 역사 교과서 왜곡 작업을 통해 우리 정체성을 왜곡해왔다. 또 중국은 한술 더 떠서 2002년 5월 국가 차원에서 동북공정을 만들어 고구려사는 물론이고 발해사, 원조선(고조선) 역사까지도 중국 것으로 만들고 있다. 우리 정체성에 대해 중대한 도전을 한 것이다.

    삼족오(三足烏)를 아는가. 다리가 셋이고, 날개가 둘이며, 머리에 뿔이 하나 있는 까마귀다. 늘 붉은 해 안에 있기 때문에 ‘일중(日中)삼족오’라고도 하는데, 해를 상징하는 새다. 삼족오는 북방 민족의 침략을 받아 남진을 해야 했던 한족(漢族)에게는 불길한 징조를 나타내는 새였다. 그런데 우리는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은 탓인지 오랫동안 이 새를 멀리해왔고, 급기야는 삼족오의 존재와 의미마저 잊고 말았다.

    하지만 우리나라 벽화들 곳곳에는 다양한 형태로 삼족오가 그려져 있다. 또한 주몽이 동부여를 탈출할 때 가장 충실한 신하로서 오이가 있었고, 신라 관품에는 대오(大烏)·소오(小烏) 등 까마귀 오(烏)자가 들어간 이름이 있었으며, 신라 아달라왕 때 일본 열도로 건너가 소국의 왕과 왕비가 된 연오랑과 세오녀는 까마귀로 상징된 신이다.

    일본축구협회 상징 어이없어



    “삼족오 국새는 우리 상징 찾는 일”

    일본축구협회의 상징물인 삼족오

    우리 민족은 하늘의 피를 받은 선택된 집단이며 빛을 신령스럽게 여겼다. 단군신화에 등장하는 환웅, 부여 건국신화의 동명, 고구려의 주몽, 신라의 박혁거세, 가야의 김수로왕 등은 하늘과 해의 자식임을 자임했는데, 하늘 세계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삼족오였다. 그리고 다리가 셋, 날개가 둘, 뿔이 하나인 삼족오는 3에서 1로, 다시 1에서 3으로 변화 순환하는 우리 식의 변증법(3의 논리)을 표현한다.

    이렇듯 우리 민족의 원형이자 정체성을 상징하는 삼족오가 어찌된 일인지 1930년대부터 일본축구협회의 엠블럼으로 사용되고 있다. 삼족오를 흉조로 보는 중국 문화의 영향을 받은 탓으로, 잃어버린 우리의 상징이 우리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일본축구협회의 상징으로 사용되는 게 말이 되는가.

    여기서 필자는 새로 제작할 국새는 삼족오 문양으로 할 것을 주장한다. 이는 편협한 민족주의적 주장만은 아니다. 삼족오는 한중일(3)이 좌우(2) 균형 있게 똑같이(1) 발전할 것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용이나 거북, 봉황은 중국 문화의 영향으로 신성시된 동물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국새는 우리의 정신세계에서 우주 질서를 표현하는 신성한 동물로 만드는 것이 옳지 않겠는가. 삼족오를 우리의 상징으로 되찾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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