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주총회에서 소액주주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
소액주주는 벌써부터 주주총회(이하 주총)에서 캐스팅보트 구실을 하고 있다. SK와 소버린이 벌인 SK㈜ 경영권 다툼이 대표적이다. 또한 한국전력 등의 본사 지방 이전이 주주들의 반대로 무산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개미 떼를 대주주처럼 ‘모셔야’ 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주주 자본주의로 무장한 소액주주는 이렇듯 ‘의식화’했으나, 제도는 소액주주의 ‘수준’을 따라가지 못한다. 주총을 일회성 행사로 여기는 기업이 적지 않으며, 주총이 특정 시기에 집중돼 있어 주주들은 주총에 일일이 참여하기 힘들다.
소액주주 의결권 행사 쉬워져 주주 권익 제고
어떻게 하면 주주의 권익을 높이고, 주총의 경영 감시 및 정책결정 기능을 강화할 수 있을까. 이상경 의원(열린우리당·오른쪽 사진)은 IT(정보기술)에 답이 있다고 말한다.
“전자투표제와 전자증권제를 도입하면 소액주주들의 의결권 행사가 쉬워져 주주 권익이 높아질 것입니다.”
전자투표제는 ‘사이버 주총’을 말한다. 사이버 주총은 주주가 주총에 직접 참석하지 않더라도 온라인 등을 통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안방’에서 주총에 참여하는 것이다. 사이버 주총이 이뤄지면, 기업의 주총 비용은 줄어들고 소액주주의 권리 행사는 쉬워진다.
현재 주주들은 주총에 참석하지 못하면 우편 배달된 의안서를 읽고 찬성 혹은 반대를 표시한 뒤 우편으로 주총 전날까지 돌려보내야 하는데, 이런 번거로운 절차 때문에 주주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선진국들은 이미 전자투표제도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일본, 영국, 미국의 일부 주에선 2000년부터 전자투표제를 운용하고 있다. 사이버 주총을 도입한 일본 기업들은 ‘모바일 주총(휴대전화를 이용한 모바일 투표제)’으로 업그레이드 중이다. 혼다, 마쓰시타전기산업 등 120여개 일본 기업들은 모바일 투표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전자증권제는 실물(종이)로 유가증권을 발행하는 대신, 기관의 증권등록부에 등록하는 것만으로 증권의 권리자와 권리 내용이 인정되는 것이다. 실물 증권이 사라지면 기업은 유가증권 발행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거래 비용도 크게 줄어든다. 다만 전자정부처럼 뚫리는 일은 없어야 한다. 전자증권제는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에서 채택해 시행하고 있으며 미국, 독일 등 42개국에서 부분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서울대(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0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뒤 변호사로 출발해 98년 판사로 임용된 독특한 법조 경력을 가진 이 의원은 국회에서 공청회, 토론회, 세미나를 많이 열기로 유명하다. 보도자료도 잘 내지 않는데, ‘한건주의’로 주목받기보다는 입법을 통해 시스템을 바꿔나가겠다는 생각에서다.
이 의원은 ‘전자투표 및 전자증권제도 도입’ 관련 법안을 올 정기국회 중(12월 초)에 발의할 요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