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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北 조여가는 위조달러 ‘의심 폭탄’

위폐 소지 적발된 사람 거의 ‘외교관’ … 美, 특수종이·초정밀 인쇄기 수입 증거 제시

  • 곽대중/ 데일리 엔케이 기자 big@dailynk.com

北 조여가는 위조달러 ‘의심 폭탄’

北 조여가는 위조달러 ‘의심 폭탄’

서울 남대문경찰서가 2005년 12월 12일 공개한 100달러짜리 초정밀 위조지폐(일명 슈퍼노트). 슈퍼노트는 육안으로는 식별이 불가능하다.

작전명 ‘베른하르트’는 이 작전을 제안한 독일 나치군 장교 베른하르트 크루거 소령의 이름에서 따왔다. 적국(敵國)의 지폐를 대량으로 위조해 적국의 경제와 사회 전반을 교란하겠다는, 실로 ‘나치다운’ 발상에서 출발한 유례없는 작전이었다.

1942년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 이 작전은 영국과 미국 화폐를 주 타깃으로 했다. 연합군은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 작전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도대체 나치가 얼마를 위조해 유통시켰는지 파악하지도 못한 것이다. 1945년에 찍어낸 돈만 1억3000만 파운드라 하고, 베를린을 함락한 후 2000만 파운드가 실린 트럭을 발견하기도 했다.

이 작전은 대체로 성공을 거뒀다. 전시에는 물자조달이나 노임 지급 등을 위해 많은 돈을 찍어내게 마련이다. 때문에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는데 그 정도가 심해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의구심만 갖고 있었다. 그런데 전쟁이 끝난 후 나치 땅에서 파운드 위폐 잔여분과 인쇄 원판 등이 발견되자 영국 정부는 경악했다. 영국은 곧바로 지폐 도안을 바꾸었고 1980년대까지 그 여진(餘震)을 감당하느라 곤욕을 치렀다.

“정황상 증거는 충분하다”

현대판 ‘베른하르트 작전’이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미국은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고 나섰다.



2005년 12월16일(현지 시각) 미국 국무부는 40개국의 외교관과 위폐 관련 전문가들을 초청, 북한의 위조달러 제조와 유통에 관련한 설명회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위조달러의 제조 양상과 북한이 개입하고 있는 각종 증거들이 제시되었다고 한다.

미국은 3년 전부터 국무부 내에 ‘북한실무그룹(North Korea working group)’을 만들어 운영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위조달러·마약·불법무기의 제조와 유통 등을 추적하는 것이 이 그룹의 주 임무다. 이 그룹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데이비드 애셔 전 동아태 선임자문관은 2005년 11월 ‘노틸러스 연구소’에 발표한 기고문에서 북한을 “국가 경제전략과 외교정책의 핵심의 하나로 범죄를 적극 지휘하는 세계 유일의 정부”라고 표현했다.

애셔 자문관뿐 아니다. 스튜어트 레비 미 재무부 테러리즘· 금융정보담당 차관은 북한이 위폐 제조를 계속하면 “심각한 결과(significant consequences)”를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버시바우 주한 미대사는 북한을 “범죄정권(Criminal Regime)”이라 지칭했다. 그리고 “(정권 차원에서) 그 같은 불법 행위를 한 것은 아돌프 히틀러 나치 정권 이후 처음”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미국과 위폐 문제 전문가들은 북한의 위폐 제조에 대해 ‘정황상 증거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인터폴의 한 관계자는 “민감한 문제라 단언할 수는 없지만 북한은 슈퍼노트(Super Note, 정교하게 위조한 100달러)의 발원지로 오랫동안 의심받아 왔다”고 말했다.

北 조여가는 위조달러 ‘의심 폭탄’

“이게 진짜일까, 가짜일까.” 국내 한 위조지폐 감식 전문가가 100달러짜리를 들여다보고 있다.

슈퍼노트, 혹은 진본과 다름이 없다고 하여 ‘슈퍼달러(Super Dollar)’라고도 불리는 100달러짜리 초정밀 위폐는 1990년대 이래 꾸준히 그 수준이 업그레이드돼 왔다. 공교롭게도 슈퍼노트가 발견되면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거기에는 북한이 연관되어 있었다.

1994년 6월28일. 마카오 경찰은 마카오인 2명과 북한인 16명을 긴급 체포했다. 체포된 이들은 ‘방코 델타 아시아(匯業銀行)’ 은행을 통해 위폐 25만 달러를 환전한 혐의를 받고 있었다. ‘방코 델타 아시아’는 그동안 북한의 돈세탁 창구로 의심받다가, 최근 전격적으로 북한과의 자금거래를 중단한 은행이다.

당시 마카오 경찰이 북한의 최대 무역회사인 조광(朝光)무역 사무실을 비롯한 북한 관련 시설 12곳을 압수 수색하자 상당량의 위폐가 추가로 발견되었다. 미국에서도 위폐 관련 특수경찰을 마카오로 급파해 현지조사 활동을 벌일 정도로 사태는 심각했다.

이들이 놀랐던 것은 위폐의 기술적 수준. 종이 질은 진짜 달러와 거의 똑같았고, 빛에 비춰봐야 나타나는 ‘USA-100’이라는 글자도 똑같이 위조해냈다. 위폐 감별기도 감별해내지 못할 정도로 정교한 위폐였다.

더욱 놀랐던 것은 이들의 대담함. 보통 위폐를 환전할 때는 진폐(眞幣)에 위폐를 섞는 방법으로 세탁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들은 기술력(?)을 단단히 믿었는지 수십만 달러 위폐를 통째로 환전하려 했다.

이 위폐의 공통점은 제조년도가 모두 1990년이고 100달러짜리였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카오 정부는 ‘1990년 발행 100달러’ 지폐의 유통을 전면 금지시켰다.

1996년 3월, 캄보디아-베트남 국경에서는 ‘김일수’라는 이름의 북한 외교관 여권을 소지한 사람이 체포됐다. 그의 가방에는 수만 달러에 달라는 위조달러가 들어 있었다. 나중에 조사해보니 그는 북한인이 아닌 일본인 다나카 요시미. 1970년 일본항공(JAL) 소속 요도호를 납치해 북한으로 갔던 적군파(赤軍派) 테러리스트 9명 가운데 한 명이었으므로, 그의 배후에 북한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추측 가능한 일이었다. 그가 갖고 있던 위조달러는 일련번호가 모두 K로 시작해 ‘슈퍼K’로 불리는데, ‘슈퍼K’는 지금도 북한산 위조달러의 대명사가 되었다.

위폐 감별기도 깜박 속아

북한이 위조달러를 제조하고 있다고 의심을 받게 된 계기는 다나카처럼 외교관 여권을 갖고 있는 북한인들이 대량으로 위조달러를 소지하고 있다 체포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다나카 요시미가 체포된 같은 달, 러시아 모스크바 주재 북한 공관원이 위폐 80만 달러를 환전하려다 적발돼 추방되었다. 베트남 하노이에서는 북한 대사관 직원이 위폐 300만 달러를 갖고 있다 베트남 당국에 압수됐는데, 북한은 이를 끝까지 ‘국유재산’이라고 주장해 베트남 정부로부터 돌려받기도 했다.

그해 12월에는 몽골 울란바토르 주재 북한 영사관의 3등 서기관이 10만 달러를 환전하다 적발돼 추방됐는데, 그가 환전한 위폐 중 7만5000달러는 회수했으나 나머지는 유통되었다고 한다. 같은 달 루마니아 주재 북한 무역참사가 위폐 5만 달러를 환전하다 적발돼 추방됐고, 1998년 4월에는 김정일의 비자금 담당서기인 길재경(2000년 사망)이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위폐 3만 달러를 환전하다가 적발되었다.

이렇듯 위폐를 소지하고 있다 적발된 북한인은 거의 모두 ‘외교관’ 신분이었다. 그러니 북한은 정권 차원에서 위폐 제조와 관련돼 있다는 의심을 피할 수 없었다. 북한이 정권 차원에서 위조달러 제조에 개입되고 있다고 의심받는 주요한 이유는 위폐 제조의 기술적 절차 때문이다. 위폐를 만들려면 특수한 용지와 잉크, 인쇄 장비가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용지와 잉크, 장비는 국가 기관이 아니면 구입하기 힘들다.

지금까지 발견된 슈퍼노트는 일반인이 구입할 수 없는 진폐(眞幣)용 종이에 일반 기업은 구사할 수 없는 요판인쇄 기법으로, 일반 기업은 구입할 수 없는 특수잉크로 제작되었다. 때문에 미국은 진폐를 만들 수 있는 국가 조직이 슈퍼노트를 제작했을 것으로 보고 그 국가로 슈퍼노트를 소지한 외교관이 많았던 북한을 지목한 것이다.

12월16일 미국은 40개국 관계자를 초청해 북한 관계자가 외국 은행에 위폐를 입금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과 북한이 지폐 제조에 쓰이는 특수종이와 잉크, 인쇄 장비 등을 수입한 자료 등을 증거로 제시했다.

2005년 4월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 차관보는 주한 미대사를 이임하면서 반미단체인 ‘평화네트워크’ 주최의 토론회에 참석했다. 이날 참석자들이 북한의 고농축 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증거 부족을 지적하자 힐 차관보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장비의 원료인 고강도 알루미늄을 비밀리에 대량 구입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트랙터 살 돈도 없는 나라가 뭣 하러 이런 장비를 샀겠느냐”고 되물었다.

북한은 자체 지폐를 만들면서 위폐 제작을 방지하기 위한 첨단 기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초정밀 인쇄기를 수입했으니 슈퍼노트를 제작한다는 의심을 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과연 북한은 이 의심을 피해나갈 수 있을 것인가.



주간동아 2006.01.03 517호 (p36~37)

곽대중/ 데일리 엔케이 기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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