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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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시장엔 ‘기회와 위험’ 동거

‘가장 뜨는 곳’ 기업들 앞다퉈 진출 … 부패·관료주의·관행 등으로 쪽박차기 십상

  • 모스크바=김기현 동아일보 특파원kimkihy@donga.com

    입력2005-01-13 16: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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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4년 12월2일 모스크바 북쪽 근교의 소도시인 힘키. 세계 10대 갑부 중 한 사람으로 스웨덴의 조립가구 체인 기업인 이케아의 잉그바르 캄프라드 창업주(78)와 러시아 주재 스웨덴 대사 등 250여명의 고위 인사들이 모여들었다. 이케아가 이곳에 세운 70만평 규모의 초대형 쇼핑 몰 메가2의 개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던 내빈들은 갑자기 현지 경찰관의 제지를 받았다. 당황한 주최 측은 VIP들을 급히 인근의 레스토랑으로 ‘모시고’ 상황 파악을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결론은 시 당국이 최후 순간에 개점을 불허하기로 결정했다는 것. 주차장 밑에 설비된 가스 파이프라인이 안전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개점 당일에 ‘날벼락’을 맞은 이케아 측은 발끈했다. 다른 곳에서는 문제도 안 되는 사소한 사안을 트집 잡고 나왔다는 것. 당국의 지적대로 파이프라인을 재배치하려고 해도 복잡한 행정 절차 때문에 사실상 작업이 불가능했다.

    유통업체 ‘이케아’ 망신당해

    이케아는 유통 부문에서는 러시아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는 외국 기업이다. 2000년 모스크바 남쪽 외곽의 초플리스탄에 대형 가구할인점 이케아와 종합쇼핑몰 메가1을 개점해 러시아의 쇼핑 문화를 바꿔놓았다. 인근에 프랑스의 하이퍼마켓 아샨까지 들어서면서 평일에도 1만1000대를 수용하는 주차장은 빈자리가 없고, 인근 도로는 늘 차로 길이 막혀 ‘이케아 정체’라는 말까지 생겼을 정도다.



    제2의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와 남부 카잔에도 메가를 열었고 최근 “앞으로 10년 동안 4500만 달러가 드는 매장 10개를 추가로 러시아에 건설하겠다”고 발표했다. 이케아가 들어오기 전까지 러시아에 진출한 외국계 유통회사는 핀란드 백화점 스토크만과 터키계 슈퍼마켓인 람스토르가 전부였다. 그런데 이케아가 러시아에 뛰어들면서 전 세계의 대형 유통회사들이 대거 뒤따라왔다. 러시아 투자에 신중하던 롯데도 모스크바 중심가 아르바트 거리에 백화점과 호텔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쯤 되면 러시아 정부가 이케아를 보물단지처럼 대접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였다. ‘일개’ 지방정부로부터도 망신을 당한 것이다. 캄프라드 창업주는 즉시 크렘린에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과의 면담을 신청했다. 보리스 그로모프 모스크바 주지사와 게르만 그레프 경제개발통상부 장관에게도 강력히 항의했다.

    사실 이케아의 수난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4년에도 이케아 러시아 지사장이 연말 휴가 기간에 스웨덴으로 일시 출국했다 다시 입국하려다가 아무런 설명도 없이 재입국 비자를 받지 못한 적이 있다. 당시에도 ‘열받은’ 이케아가 투자 계획을 취소하겠다고 협박하자 러시아 당국은 슬그머니 입국 비자를 내줬다.

    이케아가 파악한 ‘메가 사태’의 원인은 지방 정부 관리들을 무시했다는 것. 크렘린 등 중앙정부와 핫라인이 있는 이케아는 현지 지방 관리들에게 당연히 해야 하는 ‘성의 표시’를 소홀히 했다. 그러자 지방정부 관리들이 ‘몽니’를 부리고 나섰다는 것이다.

    결국 이케아는 시정부에 청소년 체육육성기금 100만 달러를 내고 사태를 마무리했다. 우여곡절 끝에 2주일 뒤 메가2를 무사히 개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러시아에서 사업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해 다시 한번 실감해야 했다.

    최근 러시아는 브라질 중국 인도와 함께 브릭스(BRICs)로 불리며 가장 주목받는 시장으로 떠올랐다. 석유 수출로 벌어들인 오일 달러 덕분이다. 러시아는 고유가에 힘입어 지난해 800억 달러의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했다. 외환보유고도 사상 최대 규모인 1200억 달러에 이른다.

    돈이 넘치니 소비가 크게 늘 수밖에 없다. 특히 휴대전화 등 가전제품과 자동차의 판매 증가는 폭발적이다. 2004년 러시아에서 휴대전화는 모두 2000만대가 팔렸다. 2003년에 비해 200만대 이상 늘어난 규모다. 자동차 시장도 해마다 두 배씩 성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니 전 세계 기업들이 다투어 러시아에 뛰어드는 것이 당연하다. 지난해 중순 러시아를 방문한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제프리 이멜트 회장은 “지금이 러시아 시장에 투자할 적기”라고 선언했다. 이후 러시아 시장에 대한 대규모 투자 계획 발표가 쏟아져나오고 있다. 하루라도 빨리 현지 생산 기지를 세워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신중하기로 소문난 일본 기업까지도 서두르기 시작했다. 도요타는 2006년 가동을 목표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자동차 조립공장 설립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시장에서 1위를 다투는 현대가 로스토프 주에 있는 현지공장 확장 계획을 세우자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러시아 시장은 규모가 큰 만큼 위험도 크다. 러시아 시장에 대한 평가도 ‘지구상에 남은 유일한 거대 시장’에서부터 ‘절대로 투자해서는 안 되는 곳’까지 극단적으로 엇갈리고 있다. 당초 계획대로 사업이 진행되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다국적기업들도 쩔쩔매는 시장

    러시아 시장에 뛰어든 외국 기업이 호소하는 어려움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부패와 기막힌 관료주의, 현지 파트너의 배신, 합리적인 서구식 사고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지 관행 등이 문제다. 러시아는 최근 경제 자유도 조사에서 155개국 중 124위를 차지했다. 루마니아보다는 낫지만 인도네시아보다 경제활동에 제한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의 안전성 보장도 부족하다. 러시아 최대 민간 기업인 석유회사 유코스가 정부에 의해 하루아침에 공중분해됐다. 제2위의 이동통신 사업자인 비라인도 최근 세무조사를 받았다. 크렘린이 마음만 먹으면 기업 하나쯤 문닫게 하는 것은 일도 아니고 거기에 투자한 외국인 지분이라고 해서 보호되는 것도 아니다.

    유수한 다국적기업들이 러시아 시장에서 쩔쩔매고 있는데, 한국 기업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삼성전자와 LG전자 현대차 등 대기업은 그나마 자금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선전하고 있지만 한국 중소기업이 러시아 시장을 공략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 대기업들조차 까다로운 통관 때문에 인근 핀란드까지만 전자제품 등을 운반해서 러시아 현지 딜러들에게 넘겨준다는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러시아 수출이 크게 늘었지만 통계와 차이가 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통계상으로는 대(對)러 수출이 아닌 핀란드 수출만 늘어난 셈이다.

    지난해 국내 중견 휴대전화 업체들이 일제히 러시아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대부분 빈손으로 돌아갔다. 현지 정보가 없어 믿을 만한 파트너를 구하지 못했고, 외상 거래를 요구하는 현지 관행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던 탓이다.

    더욱이 휴대전화 시장이 과열 기미를 보이자 러시아 정부가 지난해 중반부터 인증제도를 강화하는 바람에 국내 업체 중 겨우 4~5개 업체만이 인증을 받을 수 있었다. 이처럼 예측하지 못한 변수가 갑작스레 일어나는 경우도 흔하다.

    러시아는 올해부터 이번 달 10일까지를 신년 연휴로 정했다. 언뜻 보면 사소한 것 같지만 이 기간에 물류는 물론 금융까지도 모두 정지됐다. 이런 사실을 미처 몰랐던 한국 업체들은 ‘피 말리는’ 열흘을 보내야 했다.

    결론적으로 말해 러시아는 분명 기회의 땅이 다. 그러나 치밀한 준비를 하지 않으면 위험하기 짝이 없는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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