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17개월 된 자녀를 둔 스무 살 엄마 김미선(가명) 씨 가족의 즐거운 한때.
생후 17개월 된 자녀를 둔 초보 주부 김미선(20·가명·인천 거주) 씨의 이야기다.
요즘 어린 엄마, 어린 아빠가 화제다. 영화나 TV 드라마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심지어 ‘이른 출산’ 또는 ‘이른 결혼’이 트렌드가 아니냐는 생각마저 들 정도다. 얼마 전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종영한 KBS TV의 ‘쾌걸 춘향’은 고교 2학년 때 혼인신고를 한 남녀의 이야기였다. 현재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MBC TV 일일연속극 ‘굳세어라 금순아’와 미니시리즈 ‘원더풀 라이프’도 예기치 않은 임신으로 어린 나이에 결혼한 여성들을 주인공으로 삼고 있다. 지난해 말 큰 화제를 모았던 같은 방송의 미니시리즈 ‘12월의 열대야’ 또한 비슷한 설정이었다.
영화 쪽도 마찬가지. ‘어린 신부’ ‘여고생 시집가기’ 등에 이어, 얼마 전에는 15세 중학생 커플의 소꿉놀이식 임신-출산기를 그린 ‘제니, 주노’가 개봉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여기에 인기 개그맨 정만호(29) 씨의 “17세 때 아빠가 됐다”는 고백까지 터져나오면서 인터넷은 때 아닌 10대 출산과 양육 문제로 떠들썩한 상태다.
영화·TV 드라마 주요 소재로 자주 등장
‘제니, 주노’가 “출산이 애들 장난이냐”는 비난에 직면했다면, 정만호 씨에게는 오히려 “아기를 포기하지 않고 키우느라 고생했다”는 격려가 쇄도했다. ‘생명은 소중하다. 그러나 청소년의 출산·양육에는 수많은 난관이 뒤따른다’는 누리꾼(네티즌)들의 냉정한 현실인식 때문일 것이었다.
청소년 성상담기관인 ‘구성애의 아우성’ 박성임 총무팀장은 “과거에는 ‘무조건 낙태하겠다’는 쪽이 많았지만, 요즘은 ‘입양을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낳겠다’는 수가 절반 정도 된다”고 말했다. 박 팀장은 “직접 키우겠다는 아이들도 많아졌다. 생명 존중, 낙태 유해성 등에 대한 정보가 늘어난 때문인 듯하다. 드라마 등에서 ‘예쁘게’ 또는 극적으로 각색된 유사 스토리를 자주 접하게 된 것도 한 이유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산의 미혼모 시설 ‘혜림원’ 관계자는 “2004년의 경우 이곳에서 아이를 낳은 316명 중 52명이 직접 아이를 키우기로 결정했다. 산모의 50% 이상이 10대임을 감안할 때 적지 않은 청소년이 직접 양육을 선택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아직도 10대에 출산을 겪는 여성의 대부분은 이런저런 이유로 낙태 시기를 놓쳐 어쩔 수 없이 아이를 낳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박성임 팀장은 “10대들은 생리불순이 많아 보통 임신 10~12주경이 돼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다. 크게 당황하는 데다 낙태에 필요한 비용을 마련 못해 우왕좌왕하다 금세 임신 6, 7개월이 된다. 거기까지 가면 결국 아이를 낳을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15세 중학생의 임신·출산을 소재 삼아 논란이 된 영화‘제니, 주노’
“이번이 두 번째 임신이에요. 작년 초 임신 7개월일 때 120만원 들여 낙태를 했거든요. 산부인과에서 (낙태 수술을) 안 해주려는 걸 억지로 했어요. 그런데 곧바로 또 임신이 된 거예요. 설마 하다가 임신 7개월이 넘어서야 알았어요. 다시 (애를) 떼려니 돈도 200만원은 있어야 한대고….”
도리 없이 낳았지만 김 양은 현재 아이를 직접 키울 결심을 하고 있다.
“낳고 보니까 너무 예쁜 거예요. 엄마가 반대를 많이 하셨는데 제가 하도 울고 그러니까…. 지금은 애를 ‘쉼터’(미혼모 복지시설)에 맡겨놓고 있어요. 출산 후 4개월까지 봐준다니, 그 기간 끝나면 애아빠를 찾아가서 같이 살자 그러려고요. 싫다 그러면 저 혼자라도 키울래요.”
하지만 역시 10대인 아기 아빠는 김 양의 임신 사실조차 모르는 상태라 한다. 때문에 두 사람의 결합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김 양도 그런 사실을 아는지라 아직 부기조차 빠지지 않은 몸으로 아침부터 자정까지 카페 종업원으로 일하며 힘겹게 양육비를 모으고 있다. 이혼한 어머니가 있지만 경제력이 부족해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미혼모 시설 ‘에스더의 집’ 조숙경 상담사는 “출산 전 아기 아빠가 임신 사실을 안다 해도 별 힘이 못 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처음에야 아르바이트로 낙태 비용을 마련한다든가 하는 노력을 기울이기도 하죠. 하지만 시기를 놓치면 나 몰라라 도망치는 사례가 더 많아요. ‘같이 키우자’고 나서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고요.”
미혼모 시설에 들어간 경우 출산 전에는 10대 산모의 90% 이상이 입양 결심을 밝힌다. 그러나 김 양처럼 출산 후 “직접 키우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는 이 또한 적지 않다. 극심한 갈등으로 인해 5, 6차례씩 입양 결심을 번복하기도 한다. 특히 부모의 사망, 이혼, 불화 등으로 해체된 가정에서 성장한 산모일수록 ‘아기를 버리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그러나 정작 이런 결심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양가 부모나 남자친구는 대부분 입양을 강요한다. 미래에 대한 염려, 경제적 부담, 사회적 편견 등이 주된 이유다. 대한사회복지회 광주사무소 이혜선 상담원은 특히 10대 부부에 대한 비판적 시각에 대해 “10대 출산과 양육을 무조건 나쁘게만 보는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아기를 낳고 직접 키우기로 결심하는 아이들이야말로 평범한 경우가 많다. 그렇지 않은 애들은 아예 유산을 시켜버리지 낳지를 않는다. 친구나 애인 사이로 평범하게 만나다 성적 무지로 인해 임신한 사례가 대부분”이라는 주장이다.
10대 부부 무조건 나쁘게만 보는 삐딱한 시선
미혼모 시설인 구세군여자관 박창숙 관장은 “산모의 상당수가 가정 형편이 어렵다. 또 임신 사실을 부모에게 알리지 못했거나, 보호자라 할 만한 이가 없는 산모도 여럿이다. 특히 아버지에게는 거의 말을 못 하는 것 같다. (산모의) 어머니라도 나서서 살뜰하게 뒷바라지를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전했다. 그나마 책임감을 보이는 아기 아빠가 있다면 천만다행이라는 것이다.
실제 10대 산모가 양육을 결심한 뒤 안정적 생활을 누리는 경우는 대부분 양가 혹은 적어도 한쪽 집안 어른들의 보호 아래 아기 아빠와 성공적 결합을 이루었을 때다. 혼인신고와 아기 출생신고도 함께 이루어진다. 첫머리에 소개한 인천의 김미선 씨가 바로 그런 경우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서울영아일시보호소’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미혼모가 낳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임신 사실을 알게 되자 남편이 ‘안 그래도 빨리 결혼하고 싶었다’면서 일을 서둘러줬어요. 시댁에 먼저 인사드리고 결혼 날짜를 잡았는데 문제는 친정이었죠. 도저히 말할 용기가 나지 않더라고요.”
결국 결혼식까지 치른 뒤에야 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 당황하고 실망스러워 어쩔 줄 모르던 김 씨 부모도 결국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한다. 그럼에도 아직 김 씨 친척들은 현재 상황을 전혀 모르고 있다. 남편 역시 지인들에게 아내의 나이를 밝히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어린 나이에 출산과 육아를 경험한다는 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김 씨는 “흔히 ‘애가 애를 키운다’고 말하지 않나. 딱 그런 기분이었다. 대학 입시 끝낸 친구들이 나이트클럽에 가거나 여행 가는 모습도 많이 부러웠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씨는 “남들보다 조금 일찍 결혼했을 뿐 사회적 지탄을 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정식으로 결혼식도 올렸고 혼인신고도 했기 때문에 다른 부부와 다를 게 없다”고 강조했다. 남편인 주모 씨 역시 “아내가 아직 어려 사회적 판단 미숙으로 곤란을 겪을 때도 있지만 그만큼 순수해 생활의 활력소가 된다”고 밝혔다. 또한 김 씨는 어린 엄마들의 가장 큰 문제인 학업 중단을 극복하기 위해 고교 입학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합격한 뒤에는 간호조무사가 되기 위한 직업교육도 받을 계획이란다.
‘에스더의 집’ 조숙경 상담사는 또 다른 ‘성공 사례’를 이야기해줬다.
“아기 아빠, 엄마 모두 열여덟 살이었거든요. 그런데 엄마 쪽에서 한사코 아기를 키우겠다고 했어요. 그 자신 워낙 어렵게 자라 제 아이에게만은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던 거죠. 남자친구 어머니 되는 분이 그런 산모의 맘을 이해하고 받아들여주셔서 정리가 잘됐어요. 산모는 ‘시댁’에 들어가 살게 됐고, 아기 아빠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동시에 혼인신고도 하기로 했고요.”
그러나 양가 허락 아래 남자친구와 결합을 했다 해서 모두 끝이 좋은 것은 아니다. 서울 영등포에 사는 이미연(가명·19) 씨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세 살 많은 남자친구와의 사이에 아이를 갖게 됐다. 출산을 결심한 뒤 결국 학교를 자퇴했다. 정기검진을 위해 병원을 다닐 때부터 마음고생이 적지 않았다. 의사, 간호사는 물론 주변 사람들의 눈총에 시달리느라 노심초사해야 했다. 결국 언니의 의료보험증을 사용할 수밖에 없었다.
출산 직후 양가 부모를 어렵게 설득해 결혼에 이르렀다. 경제력이 없어 시댁에 신접살림을 차렸다. 얼마 후 남편에게 입영 영장이 나왔다. 설상가상, 입대 직전 둘째 아이를 가진 까닭에 아직 어리던 이 씨는 남편 없는 시댁에서 두 아이를 키우는 상황에 처했다. 외로움과 고부 갈등, 극심한 육아 스트레스, 주변의 시선 등에 시달리던 이 씨는 결국 아이들을 포기한 채 남편과 갈라서고 말았다.
한창 놀고 공부해야 할 나이 ‘놓쳐버린 것들’ 갈증
아주 드문 예이긴 하지만 양가 도움 없이 두 사람만의 노력으로 안정된 가정을 일군 10대 부부도 있다. ‘에스더의 집’ 이광미 원장은 “둘 다 고등학교를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결합해 굉장히 힘들게 아이들을 키웠다. 남편은 중국음식점 배달원 등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았고 아내도 고생을 잘 참아냈다. 지금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오로지 둘’만으로는 역시 버티기가 쉽지 않다. 몇몇 미혼모 시설로부터 성공적인 10대 부부 자립 사례가 있다는 말을 듣고 인터뷰 의사를 타진했으나, 며칠 후 대부분으로부터 “다시 확인해보니 지금은 같이 안 산다더라”는 답이 돌아왔다. 한 시설 상담사는 “무조건 동거를 시작한 경우 5, 6개월을 넘기기가 힘들다”고 했다.
경제적 어려움이 가장 큰 이유다. 문제를 해결하려 어린 엄마, 아빠가 범죄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경우도 있다. 2004년 10월 부산 사하경찰서는 양육비를 벌기 위해 성매매를 한 혐의로 유모(18) 양을 불구속 입건했다. 당시 수사 담당 형사는 “유 양은 동거남과의 사이에 생후 5개월 된 아이가 있었다. 경제적 어려움으로 아이를 위탁보호시설에 맡기게 되자, 돈을 벌어 아이를 찾아오려 성매매에 나서게 된 것”이라 설명했다. 유 양은 수사 내내 동거남에게 성매매 사실이 알려질까 노심초사했다고 한다.
하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어린 나이로 인한 ‘미성숙’, 그 자체다.
“30대 성인들도 힘들어하는 것이 육아와 그로 인한 부부 갈등이에요. 하물며 양가 어른 등 적당한 조언자 없이 시작한 ‘어린아이’들만의 가정생활이 얼마나 힘들겠어요. 남자는 돈 버느라 힘들고, 여자는 아이와 생활고에 치여 짜증만 느는 거지요. 무엇보다 한창 놀고 공부해야 할 나이잖아요. ‘놓쳐버린 것들’에 대한 갈증이 심할 수밖에요.”
구세군여자관 박창숙 관장의 말이다. 때문에 애초 “아이를 키우겠다”며 데려갔다 결국 다시 와 입양을 요청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박 관장은 “그런 만큼 어린 부부에게는 친인척 등 경제적·정신적인 후견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사정이 여의치 않다면 국가와 사회가 그 몫을 대신해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 엄마’ 수는?
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2004년 10대 출산은 2376명, 이중 14세 출산이 19명, 15세 출산은 56명이었다. 2003년은 모두 2749명으로 14세, 15세 출산은 각각 11명, 53명이었다. 10대 낙태 건수는 4~5만건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5년마다 이루어지는 통계청의 인구 일제조사에 따르면 2000년 현재 15~19세 기혼여성은 1만1925명에 이르렀다. 1~4명의 자녀를 가진 20~22세 기혼여성도 3만4703명이나 됐다. 미혼모 혹은 호적에 아이를 등재시키지 못한 경우를 감안할 때, 청소년기에 ‘엄마’가 되는 여성들이 의외로 많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