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의 자랑인 음악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가 일했던 토마스 교회.
라이프치히 도서전시회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시회만큼은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역사적으로는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시회보다 훨씬 더 화려한 과거를 갖고 있다. 유럽 대륙의 동서 축과 남북 축이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에 위치한 라이프치히는 일찍부터 원근 각처의 상인들이 만나 직거래하던 장소였다. 라이프치히는 1497년 황제 막시밀리안 1세에 의해 신성로마제국의 핵심 시장으로 지정되는 독점적 특권을 얻으면서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교역의 도시로 발전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유난히 출판사들이 많이 소재하는 ‘출판의 도시’이기도 해서, 이곳에서 매해 열리는 도서전시회는 1632년 이래 세계 최대 규모의 행사로 소문났다. 전 유럽의 수많은 출판업자들은 이 행사를 손꼽아 기다리면서 한 해의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10여명 작가 참가
그러나 1945년 독일이 분단되면서 라이프치히 도서전시회는 수백 년간 유지해온 최고의 명성을 서부 독일의 중심 도시인 프랑크푸르트에 넘겨주게 되었다. 그렇지만 ‘철의 장벽’이 드리워진 구동독 시절에도 라이프치히 도서전시회는 동서 세계의 출판업자들과 문인들, 책 애호가들에게 뜻깊은 만남의 자리를 제공했고 1990년 독일 통일의 격동기 이후 새롭게 단장한 뒤 오늘날까지도 면면히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1991년 개편 이후 라이프치히 도서전시회의 가장 큰 특징은, 일반 도서 애호가들을 행사의 중심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경쟁 관계인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시회가 어디까지나 출판인들 간의 거래에 중점을 둔 행사인 탓에 사실상 일반 방문객들에 대한 배려가 적은 것과 대조를 이루는 점이다. 예컨대 프랑크푸르트에서는 5∼6일간의 행사 기간 중 일반인이 입장할 수 있는 날이 하루나 이틀 정도로 한정되어 있다. 반면 라이프치히 도서전시회는 행사 기간 내내 누구에게나 입장을 허용할 뿐만 아니라, 모든 행사의 초점을 작가와 일반인들의 만남에 둔다. 단순히 서적을 전시하고 계약을 체결하는 상거래 장터가 아닌, 문화 교류의 장터 제공을 목표로 하는 것이다.
작가 찰스 아즈나부르의 사인회.
워낙 선택의 폭이 넓기 때문에 도서전시회 안내 책자를 들고 정신없이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작품 세계 속으로 몰입하는 기회를 만끽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도서전시회는 신인작가에게 자신의 이름과 작품을 널리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 만큼, 기대감과 아울러 부담도 적지 않아 보였다.
라이프치히 도서상을 수상한 번역가 토마스 아이히혼, 소설가 테레지아 모라, 철학자 뤼디거 자프란스키(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라이프치히 국제도서전시회 중 열린 기자회견 장면.
각종 모임과 시상식도 도서전시회 기간에 개최됐다. 시상식들 중 가장 언론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올해 새로 제정된 ‘라이프치히 도서상’이었다. 픽션과 논픽션, 번역의 세 분야에 각각 1만5000유로(약 2000만원)의 상금이 걸린 도서상은 소설가 테레지아 모라, 철학자 뤼디거 자프란스키, 그리고 번역가 토마스 아이히혼에게 돌아갔다.
헝가리 출신의 젊은 여류작가 모라는 소설 ‘하루, 또 하루(Alle Tage)’에서 전쟁 중인 발칸반도를 빠져나온 한 난민이 낯선 곳에서 소외의식과 싸우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또 자프란스키는 올해로 사후 200주기를 맞는 대문호 프리드리히 실러의 생애와 작품을 그 시대의 관념론적 정신 사조 속에서 재해석해낸 책 ‘실러와 독일 관념론의 탄생’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고,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도 올랐다.
이번 라이프치히 도서전시의 중심 주제는 올해로 수교 40주년을 맞는 독일과 이스라엘의 관계였다. 당연히 이 문제를 다룬 책도 많이 선보였고, 요시카 피셔 독일 외무장관과 시몬 슈타인 주독 이스라엘 대사가 참여한 저녁 강연회도 열렸다. 특히 17일에 있었던 TV 공개토론회에서는 양국의 전직 외교관과 언론인, 작가들이 패널로 나와 40년 전 수교 당시의 기대했던 바와 오늘날 두 나라의 관계, 그리고 향후 전망 등을 이야기했다.
獨-이스라엘 수교 40년이 주제
사실 독일과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처럼 매우 민감하고 조심스런 관계다. 나치 정권의 유대인 학살이라는 쓰라린 과거가 있기 때문이다. 매우 껄끄러운 관계였음에도 40년 전 두 나라가 비교적 신속하게 수교를 한 데에는 각각의 속내가 있었음이 이번 전시회에서 언급됐다. 독일은 하루라도 빨리 과거의 오명에서 벗어나고 싶어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독일이 유대인들과 별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다는 것을 전 세계 앞에 증명해 보여야 했다. 그리고 이스라엘로서는 아랍의 적대 세력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유럽에 강력한 동맹국을 하나쯤 갖는 것이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그 동맹국이 언제라도 필요에 따라 과거 역사를 들춰내어 압력을 가할 수 있는, 비교적 다루기 쉬운 나라라면 더더욱 환영이었다.
이러한 40년 전 수교 당시의 정황을 빗대어 ‘연애결혼이 아닌 정략결혼’이라고 표현한 사람도 있었다. 두 나라 간 우호·협력의 기반 위가 아니라, 정치적 이해관계 때문에 수교했다는 것. 그러나 우리 조상들이 생면부지의 배우자와 결혼해서도 잘 살았듯이, 지난 40년간 독일과 이스라엘은 별 문제 없는 관계를 유지해왔다. 쓰라린 과거가 무색할 정도로 말이다.
오디오북을 듣고 있는 청소년들.
해마다 상반기 출판 시장에 새로운 자극을 주며 도서 애호가들에게 더 넓고 깊은 세계와 만날 수 있도록 안내해주는 문화의 향연, 라이프치히 도서전시회가 올해도 그렇게 막을 내렸다. 많은 이야기가 오갔고, 많은 질문이 던져졌다. 독일과 이스라엘의 관계 같은 민감한 정치, 외교적 문제를 문화의 장으로 끌어올려 토론할 수 있는 역량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이는 최근 일본과 매우 불편한 관계가 돼버린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다. 또한 우리 문화도 이런 장을 통해 좀더 많이 세계에 소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다. 깊은 인상과 아쉬움을 간직한 채 내년 라이프치히 도서전시회를 기다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