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 히딩크의 수제자들이 침울해진 ‘대한민국호’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 ‘순둥이’ 박지성(24)과 ‘꾀돌이’ 이영표(28). 네덜란드 PSV 에인트호벤 듀오의 눈부신 투혼에 한국은 3월30일 상암벌에서 우즈베키스탄을 2대 1로 누르고 사우디전 패배의 아픔을 깨끗이 씻어냈다.
김호 전 수원 감독은 “승리는 박지성과 이영표의 합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이들의 플레이는 단연 발군이었다. 이영표가 영리한 플레이로 공수를 조율했다면, 박지성은 ‘두 개의 심장을 지닌 사나이’로 불리는 체코 출신의 파벨 네드베드(유벤투스)를 연상케 하는 놀라운 체력을 보여줬다.
좀처럼 골이 터지지 않아 조마조마했던 후반9분. 단비와 같은 선제골을 만들어낸 것도 이들이었다. 박지성이 무서운 돌파로 우즈베키스탄의 수비수들을 연거푸 제치고 찔러준 공간패스를 받아 이영표가 오른발 슛으로 우즈베키스탄의 골문을 통타했다.
우즈벡 2대1 승리 ‘일등 공신’
2월9일 쿠웨이트전에서도 박지성의 찔러주기 패스를 이영표가 오른발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해 쐐기골을 터뜨린 바 있다. 한국 축구에 승리가 필요할 때마다 골을 만들어내는 ‘홀랜드 듀오’는 이제 태극호의 새로운 승리방정식으로 불리고 있다.
믿음직한 이들의 경기 모습에 본프레레 감독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우즈베키스탄전을 마친 뒤 본프레레 감독은 모처럼 환한 얼굴로 “박지성의 플레이에 만족했다. 그는 오늘 아주 좋은 경기를 펼쳤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영표는 “전반전을 마친 뒤 침울한 분위기였던 우리들에게 감독님은 ‘이대로만 하면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후반 들어 감독님의 생각이 적중했다”며 승리의 공을 감독에게 돌리는 넉넉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독일 출신의 위르겐 게데 우즈베키스탄 감독이 “박지성과 이영표가 위협적”이라고 예견했던 것은 적중했다. 이들을 막지 못한 우즈베키스탄은 결국 패배를 맛보고 귀국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사우디전에서 패한 뒤 한국 대표팀은 “사우디전 패배는 보약”이라는 말을 내뱉으며 우즈베키스탄전에서만큼은 달라야 한다는 자기 주문을 거는 듯 훈련에서 말보다는 행동으로 승리를 준비했다.
박지성은 소속팀에서 오른쪽 윙포워드로 활약하지만, 대표팀에서는 중앙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아 공수를 조율하는 중책을 수행하고 있다. 이날 박지성은 상대 공격을 차단할 뿐 아니라 패스의 강약 조절과 세련된 드리블로 상대 수비라인을 무너뜨렸다. 특히 불필요한 동작을 없앤 간결하면서도 흐름을 읽는 돌파력과 경기 운영 감각은 전성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소속팀에서 왼쪽 윙백으로 뛰는 이영표는 대표팀에서 오른쪽 미드필더로 보직을 바꿨다. 이영표도 당초 우려와는 달리 제 몫을 다했다. 특히 오른쪽으로 보직을 변경한 뒤 쿠웨이트전에서 5년 만의 A매치 골맛을 본 이영표는 상승세를 이어가며 우즈베키스탄전에서도 잇따라 골을 잡아냈다. 다양한 포지션에서 멀티플레이어의 진가를 보여준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1999년 허정무 감독이 지도한 시드니올림픽 대표팀의 연습생 출신이다. 이동국, 박진섭, 설기현 등 스타들에 비해 당시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이영표는 올림픽대표팀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라 붙박이 왼쪽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이영표의 트레이드마크인 12번의 등번호는 당시 올림픽팀에서 얻은 것이다.
명지대에 다니던 박지성은 정말 왜소한 체격이었다. 지금이야 178cm의 당당한 체구지만 당시만 해도 170cm가 갓 넘는 소년이었다. 당시 박지성은 잠시 대표팀에 머물다가 도중하차할 것이라는 예상이 비등했다. 하지만 타고난 체력과 순발력을 눈여겨본 허 감독은 박지성을 대성할 재목으로 삼아 조련했고,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의 재능을 활용하며 월드컵 4강의 기적을 완성할 수 있었다.
6월 죽음의 원정길에서도 선봉
전문가들은 무명에 가까웠던 이들의 성공 비결은 타고난 성실함이라고 말한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는 은퇴를 앞두고 “이제 한국 축구대표팀은 박지성과 이영표의 팀이 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월드컵 영웅이지만 스타의식보다는 타고난 건실함을 지닌 이들이 대표팀의 주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올 시즌 히딩크 감독과 함께 최고의 해를 보내고 있다. 네덜란드 프로축구(에레디비지)에서 단독 선두를 내달리며 유럽 진출 후 두 번째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유럽 최고의 클럽대항전인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 올랐다. 특히 이들은 매 경기 주전자리를 꿰차며 유럽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 중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쳐보이고 있다.
데뷔 초기 적응에 부진함을 보여 팬들에게서 비난의 대상이 됐던 박지성은 이제 완벽한 에인트호벤의 일원이 됐다. 네덜란드 축구 전문지 ‘풋발 인터내셔널’이 정규시즌 경기의 평점을 집계한 올 시즌 리그 전체 선수 중간순위에서 이영표를 9위, 박지성을 14위에 올려놓을 정도로 이들의 성공신화는 이미 완성돼가고 있다.
박지성은 올 시즌 활약 덕분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눈독을 들일 만큼 주가가 상승했다. 이영표는 거의 매 경기 90분 풀타임 출전하며 팀 내에서 최다 출전시간 기록을 세우고 있다. 그만큼 에인트호벤에서 이영표의 존재감이 막강해졌다는 방증이다. 히딩크 감독의 변치 않는 믿음이 이들에게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곧바로 대표팀의 경기력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신화를 일궈낸 이들은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또 한 번의 기적을 노린다. ‘공이 구르는 곳에 박지성이 있었다’ ‘이영표의 드리블이 이제 경지에 올랐다’는 우즈베키스탄전 찬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 특명 ‘본프레레 구하기’에 성공한 이들은 6월3일 타슈켄트에서 우즈베키스탄전을 치른 뒤 6월9일 쿠웨이트시티에서 ‘한국 킬러’ 쿠웨이트를 상대해야 할 ‘죽음의 원정’의 선봉에 선다.
이번 원정은 독일월드컵 본선행을 가름할 최고 격전인 만큼 이들의 몫은 그야말로 막중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포르투갈과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보여줬던 이영표의 오른발 크로스에 이은 박지성의 멋진 발리슛을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다시 보고 싶다.
김호 전 수원 감독은 “승리는 박지성과 이영표의 합작품”이라고 평가했다. 이날 이들의 플레이는 단연 발군이었다. 이영표가 영리한 플레이로 공수를 조율했다면, 박지성은 ‘두 개의 심장을 지닌 사나이’로 불리는 체코 출신의 파벨 네드베드(유벤투스)를 연상케 하는 놀라운 체력을 보여줬다.
좀처럼 골이 터지지 않아 조마조마했던 후반9분. 단비와 같은 선제골을 만들어낸 것도 이들이었다. 박지성이 무서운 돌파로 우즈베키스탄의 수비수들을 연거푸 제치고 찔러준 공간패스를 받아 이영표가 오른발 슛으로 우즈베키스탄의 골문을 통타했다.
우즈벡 2대1 승리 ‘일등 공신’
2월9일 쿠웨이트전에서도 박지성의 찔러주기 패스를 이영표가 오른발 논스톱 슈팅으로 연결해 쐐기골을 터뜨린 바 있다. 한국 축구에 승리가 필요할 때마다 골을 만들어내는 ‘홀랜드 듀오’는 이제 태극호의 새로운 승리방정식으로 불리고 있다.
믿음직한 이들의 경기 모습에 본프레레 감독은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우즈베키스탄전을 마친 뒤 본프레레 감독은 모처럼 환한 얼굴로 “박지성의 플레이에 만족했다. 그는 오늘 아주 좋은 경기를 펼쳤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영표는 “전반전을 마친 뒤 침울한 분위기였던 우리들에게 감독님은 ‘이대로만 하면 우리가 승리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후반 들어 감독님의 생각이 적중했다”며 승리의 공을 감독에게 돌리는 넉넉함을 보여주기도 했다.
독일 출신의 위르겐 게데 우즈베키스탄 감독이 “박지성과 이영표가 위협적”이라고 예견했던 것은 적중했다. 이들을 막지 못한 우즈베키스탄은 결국 패배를 맛보고 귀국길에 올랐기 때문이다.
사우디전에서 패한 뒤 한국 대표팀은 “사우디전 패배는 보약”이라는 말을 내뱉으며 우즈베키스탄전에서만큼은 달라야 한다는 자기 주문을 거는 듯 훈련에서 말보다는 행동으로 승리를 준비했다.
박지성은 소속팀에서 오른쪽 윙포워드로 활약하지만, 대표팀에서는 중앙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아 공수를 조율하는 중책을 수행하고 있다. 이날 박지성은 상대 공격을 차단할 뿐 아니라 패스의 강약 조절과 세련된 드리블로 상대 수비라인을 무너뜨렸다. 특히 불필요한 동작을 없앤 간결하면서도 흐름을 읽는 돌파력과 경기 운영 감각은 전성기가 도래하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소속팀에서 왼쪽 윙백으로 뛰는 이영표는 대표팀에서 오른쪽 미드필더로 보직을 바꿨다. 이영표도 당초 우려와는 달리 제 몫을 다했다. 특히 오른쪽으로 보직을 변경한 뒤 쿠웨이트전에서 5년 만의 A매치 골맛을 본 이영표는 상승세를 이어가며 우즈베키스탄전에서도 잇따라 골을 잡아냈다. 다양한 포지션에서 멀티플레이어의 진가를 보여준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들은 1999년 허정무 감독이 지도한 시드니올림픽 대표팀의 연습생 출신이다. 이동국, 박진섭, 설기현 등 스타들에 비해 당시 전혀 알려지지 않았던 이영표는 올림픽대표팀에서 일약 스타덤에 올라 붙박이 왼쪽 미드필더로 성장했다. 이영표의 트레이드마크인 12번의 등번호는 당시 올림픽팀에서 얻은 것이다.
명지대에 다니던 박지성은 정말 왜소한 체격이었다. 지금이야 178cm의 당당한 체구지만 당시만 해도 170cm가 갓 넘는 소년이었다. 당시 박지성은 잠시 대표팀에 머물다가 도중하차할 것이라는 예상이 비등했다. 하지만 타고난 체력과 순발력을 눈여겨본 허 감독은 박지성을 대성할 재목으로 삼아 조련했고, 히딩크 감독은 박지성의 재능을 활용하며 월드컵 4강의 기적을 완성할 수 있었다.
6월 죽음의 원정길에서도 선봉
전문가들은 무명에 가까웠던 이들의 성공 비결은 타고난 성실함이라고 말한다. ‘영원한 리베로’ 홍명보는 은퇴를 앞두고 “이제 한국 축구대표팀은 박지성과 이영표의 팀이 돼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월드컵 영웅이지만 스타의식보다는 타고난 건실함을 지닌 이들이 대표팀의 주축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올 시즌 히딩크 감독과 함께 최고의 해를 보내고 있다. 네덜란드 프로축구(에레디비지)에서 단독 선두를 내달리며 유럽 진출 후 두 번째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유럽 최고의 클럽대항전인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 올랐다. 특히 이들은 매 경기 주전자리를 꿰차며 유럽에 진출한 한국 선수들 중 가장 돋보이는 활약을 펼쳐보이고 있다.
데뷔 초기 적응에 부진함을 보여 팬들에게서 비난의 대상이 됐던 박지성은 이제 완벽한 에인트호벤의 일원이 됐다. 네덜란드 축구 전문지 ‘풋발 인터내셔널’이 정규시즌 경기의 평점을 집계한 올 시즌 리그 전체 선수 중간순위에서 이영표를 9위, 박지성을 14위에 올려놓을 정도로 이들의 성공신화는 이미 완성돼가고 있다.
박지성은 올 시즌 활약 덕분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도 눈독을 들일 만큼 주가가 상승했다. 이영표는 거의 매 경기 90분 풀타임 출전하며 팀 내에서 최다 출전시간 기록을 세우고 있다. 그만큼 에인트호벤에서 이영표의 존재감이 막강해졌다는 방증이다. 히딩크 감독의 변치 않는 믿음이 이들에게 성공에 대한 자신감을 불러일으켰고, 이는 곧바로 대표팀의 경기력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신화를 일궈낸 이들은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또 한 번의 기적을 노린다. ‘공이 구르는 곳에 박지성이 있었다’ ‘이영표의 드리블이 이제 경지에 올랐다’는 우즈베키스탄전 찬사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우즈베키스탄전에서 특명 ‘본프레레 구하기’에 성공한 이들은 6월3일 타슈켄트에서 우즈베키스탄전을 치른 뒤 6월9일 쿠웨이트시티에서 ‘한국 킬러’ 쿠웨이트를 상대해야 할 ‘죽음의 원정’의 선봉에 선다.
이번 원정은 독일월드컵 본선행을 가름할 최고 격전인 만큼 이들의 몫은 그야말로 막중하다. 2002년 한일월드컵 포르투갈과의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서 보여줬던 이영표의 오른발 크로스에 이은 박지성의 멋진 발리슛을 2006년 독일월드컵에서 다시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