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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일씨의 빈소가 마련된 경기도 일산의 국립암센터 분향소는 코미디계에 막 발을 들여놓은 신인부터 한동안 브라운관을 통해 보기 어려웠던 왕년의 코미디언까지 코미디계는 물론이고, 각계의 인기 연예인들이 모두 모여 방송국을 방불케 했다. 영화배우 이덕화씨가 장례위원장으로서 모든 행사를 총지휘했고, 고인의 친구인 코미디언 방일수씨가 유족들 곁에서 조문객을 맞았다. 정부에서는 국민훈장 모란장을 추서했다. 그러나 훈장 추서는 고인의 문화활동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금연 확산을 위해 마지막까지 애쓴 고인의 노고를 기리기 위한 것. 이 역시 코미디라면 코미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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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2주 전에 중환자실에서 뵈었을 때도 의식이 없었다. 하지만 기적을 바랐다. 5000회 공연을 같이 했고, 생명을 구해준 은인인데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 지금 너무 허전하고 비통하다”며 “두 달 전까지만 해도 꼭 병마와 싸워 이겨 함께 공연하자고 약속했었는데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돼 더욱 야속하다”고 울먹였다.
정계 인사들도 대거 빈소 찾아 고인의 넋 위로
이에 앞서 빈소를 찾은 강부자씨는 가족들을 위로한 뒤 취재진의 인터뷰 요청을 거절하고 장례식장을 빠져나갔다. 강씨는 1980년 언론통폐압 당시 방송출연 금지 연예인 명단에 오르는 설움을 고인과 같이 겪었다. 20여 년간의 고생 끝에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로 순식간에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빼어난 미모의 여자 연기자들 사이에서 외모보다 사실적인 연기로 많은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던 두 사람에게는 어렵게 잡은 기회를 한순간에 날릴 수도 있는 암담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에 굴하지 않았고, 대중들의 신뢰와 인기에 힘입어 국회에 입성하는 등 많이 닮은 길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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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오후의 전두환 전 대통령의 등장은 특별히 눈길을 끌었다. 그가 등장하기로 예정된 시각은 오후 5시. 5시가 넘어서자 장세동씨를 비롯한 5공 실세들이 장례식장에 속속 들어서면서 전 전 대통령의 등장을 예감케 했다. 5시20분경 전 전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헌화와 분향을 마치고 이덕화 남보원 이용식 최병서씨 등과 자리를 함께 한 전 전 대통령은 “박종환과 이주일은 축구를 사랑하는 후배로 정말 아끼는 사람들이었다”고 말해 이주일씨가 대통령과 닮았다는 이유로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사실을 무색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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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상은 밤새도록 이어졌다. 영화배우 이경영씨가 윤다훈씨와 함께 빈소를 찾아 눈길을 끌었고, 이순재 주병진 박중훈 안성기 임백천 김동건씨, 한완상 전 교육부총리 등도 문상했다. 이날 오후까지 빈소를 찾은 조문객 수는 3000명을 넘은 것으로 알려졌다. 새벽 1시가 넘어 연극인 주호성씨가 빈소를 찾았다. 다소 한산해진 빈소 주변을 돌아보던 주씨는 “개인적인 왕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주일씨의 영화 12편 중 11편의 목소리를 내가 녹음했다”고 말해 두 사람이 특별한 인연이었음을 밝히기도 했다.
유재석 강호동씨와 함께 빈소를 찾은 이휘재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이주일 선배님의 춤을 흉내내고 있는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다. 선배님은 나의 영웅이었고, 코미디언이 되겠다는 꿈을 갖게 한 분이다”며 “어린 후배들까지도 관심을 갖고 챙겨주시던 선배님의 모습을 본받겠다”고 말했다.
첫날에 이어 영결식이 있던 날 새벽, 빈소를 다시 찾은 김영철씨는 고인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었다. 지난해 겨울 방송 때문에 김한석씨와 이주일씨 집을 직접 방문해 삼겹살을 구워 먹고, 땅에 묻어둔 김장 김치까지 받아 들고 돌아왔던 기억이 생생한 것. “설마 저를 아실까 생각했는데 ‘영철아, 열심히 해’` 하며 격려해주시던 모습을 잊을 수 없어요”라고 말하는 그는 눈이 벌겋게 충혈돼 있었다. 김씨도 번듯하지 못한 외모 탓에 방송 초기에는 고인처럼 “넌 못생겨서 뜨기 어렵다”는 말을 숱하게 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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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연예인들은 영결식장에서 고인에게 이별을 고했지만 친구 박근형 백일섭씨는 화장터까지 동행했다. 남다른 외모 때문에 극단 단장들로부터 외면받던 때, 그를 친구로 맞아 공연 기회를 만들어줬던 방일수씨는 그를 묻고 난 뒤에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좀 전에 화구에 들어갔는데 붉게 타오르는 불길이 매직쇼를 보는 듯했어. 마치 함께 춤추고 노래하며 사회 보던 그 시절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것 같더라고.”
가난과 무명 설움 이겨낸 진정한 ‘코미디 황제’
강원도 춘천의 경춘가족공원은 이주일씨 모친의 묘가 있는 곳이다. 차에서 내려 영정과 함께 미리 준비된 납골묘로 향하는 동안 부인 제씨는 유독 힘들어했다. 오르막길을 오르는 내내 비틀거리다 결국은 주저앉고 말아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했다. 잿빛 자기에 담긴 고인에게 마지막으로 손길을 전하며 두 딸과 부인은 오열했다. 어느 누가 남편의 죽음 앞에서 온전할 수 있을까마는 제씨는 금호동 판잣집에서의 가난과 서글픔, 살벌한 충무로 바닥에서의 고생과 설움이 한꺼번에 되살아나는 듯 통곡했다.
이주일씨의 모교인 춘천고 동문회에 그를 맡기고 돌아서며 3일 동안 장례위원장으로 애쓴 이덕화씨는 “허망하다. 지금 당장은 그의 죽음이 우리들을 크게 변화시킬 것 같지만 곧 또 일상으로 돌아가 잊혀질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어렵고 힘든 시절 눈물을 웃음으로 승화시켰던 황제, 웃기기 위해 울어야 했던 이주일은 그렇게 떠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