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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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코미디史 ‘바보들의 행진’

일제·군부정권 거치며 소재 제약 … 풍자 빠진 바보 연기 ‘언제나 인기’

  • < 전영호/ 개그작가·하이텔 아이스쿨 대표 > gold0515@hanmail.net

    입력2004-09-30 17: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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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코미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이들을 좇다 보면 어김없이 바보 연기자들을 만나게 된다. 최근 고인이 된 80년대의 국민적 스타 이주일을 비롯해 70년대의 비실이 배삼룡, 90년대의 영구 심형래와 맹구 이창훈, 그리고 최근 개그콘서트에서 맹구 흉내를 내며 스타로 떠오른 심현섭 등. 세대별로 나눠보면 10년 주기로 바보 스타가 탄생해왔다는 사실을 읽을 수가 있다. 그렇다면 바보 연기자가 시대를 막론하고 한국 코미디계의 스타로 군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은 우리나라의 코미디가 태동하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80년 코미디史 ‘바보들의 행진’
    한국의 코미디는 1920년대 초 유랑 악극단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탄생한다. 당시 악극의 레퍼토리는 최루성 강한 신파극이 주류를 이루었다. 한 막이 끝나고 다음 막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무대장치를 바꾸어야만 했던 시절, 그 막간(幕間) 동안 관객의 지루함을 달래주기 위해서 막간극이 등장하게 된다. 막간극은 주로 가수들과 재담꾼들의 차지가 되었는데, 바로 이때 재담꾼들이 진행한 만담(漫談)과 소극(笑劇)을 한국 코미디의 뿌리라고 보아야 한다. 소극은 주로 슬랩스틱(slapstick)으로 꾸며졌고 당시는 스케치, 난센스 등의 이름으로 불렸다.

    이 시대 난센스의 대가로는 단연 강원도 출신의 석와불을 꼽을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가수가 윤심덕이라면 우리나라 최초의 직업 코미디언은 석와불로 인정해야 한다. 난센스라는 장르에 희극을 접목시킨 그는 딸인 귀녀와 함께 동양극장을 비롯한 전국의 무대를 순회하며 한국 코미디를 태동시킨 공로자다.

    배삼룡→이주일→심형래→심현섭 ‘바보스타 계보’

    만담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되는데 혼자서 1인 2역 내지 3역을 하는 독(獨)만담, 만요(漫謠)를 곁들인 민속만담, 그리고 둘이서 호흡을 맞추는 대화만담이 그것이다. 독만담에서는 월북한 신불출의 재담을 따를 사람이 없었다. 그의 주특기는 마이크 줄을 의인화해서 간드러지는 여자 목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관객들의 반응은 박장대소의 연속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제 치하의 만담이나 소극은 소재 면에서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예를 들면, 악극단에서 연극 ‘콩쥐팥쥐’를 공연할 때도 한복 대신 기모노를 입어야만 대본 검열을 통과할 수 있었던 시대였다. 일본 경찰이 검열석에 칼을 차고 앉아 있는 상황에서 만담이나 소극의 생명인 풍자를 섞기는 어려웠다. 그 때문에 코미디 소재는 자연히 바보나 신체장애자의 흉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난센스는 가수들의 노래처럼 제목이 있었는데 그 시절 난센스의 제목들을 훑어보면, ‘멍텅구리 동물원 구경’ ‘무식한 부부’ ‘꼴불견’ 등 무식하거나 바보라서 겪는 에피소드를 연상시킬 뿐, 풍자적인 제목은 찾아보기 힘들다.

    일제 치하에서 비참하게 출발한 한국 코미디는 8·15 광복 이후에도 정치나 사회를 꼬집는 풍자는 피해가기만 했다. 일제 때 길들여진 ‘몸조심’이 그만 타성이 되어버린 것이다.

    막간극에서 출발한 코미디는 6·25 이후 난립한 쇼 단체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이때는 악극단 출신 단원들의 전성기였다. 막간극에서 코믹 무용을 했던 이종철(영화 ‘5부자’의 아버지 역), 악사 출신의 구봉서, ‘쑈 오리엔탈’ 출신인 배삼룡, 신세기 악극단을 거쳐 서울 악극단의 전속으로 활동했던 서영춘 등 극장 쇼의 스타들이 대중의 별로 떠올랐다.

    하지만 6·25와 5·16 등 굴곡 많았던 우리의 현대사는 코미디언들로 하여금 더욱더 풍자와는 거리가 먼 레퍼토리만 생산하게끔 했다. 군부정권 하에서 허용되는 것은 단세포적인 웃음뿐이었다. 자연히 ‘인천 앞바다에 사이다가 떴어도~’ 하는 랩송은 코미디언이 되는 통과 의례로, ‘시골 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라♪’로 시작되는 노래 후렴 부분의 웃음소리는 코미디언 지망생들의 필수 과목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60년대 말 한국 코미디는 커다란 변화를 맞이한다. MBC TV가 방송 코미디 ‘웃으면 복이 와요’(연출 김경태·유수열)를 시작해 코미디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키는 초석을 놓은 시기가 바로 이때다. 악극단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며 정극을 익힌 구봉서는 한국 코미디의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린 주인공으로 평가된다. 그러나 일제 치하부터 바보 연기에 맛들인 대중은 심심한 연기의 구봉서 대신 비실비실 등장하는 배삼룡을 코미디의 황제로 등극시켰다.

    뒤늦게 TBC에서 대응 편성된 ‘고전 유머극장’에서는 살살이 서영춘이 녹화 세트장과 객석을 종횡무진 뛰어다니며 관중의 배꼽을 뺐으며 ‘아이구 야~’를 연발하는 임희춘도 큰 박수를 받았다. 주로 탐관오리들을 혼내주는 내용들이 많았던 ‘고전 유머극장’은 그나마 현실을 풍자하는 코미디물로서 인정할 만하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여전히 바보 스타 배삼룡을 선호했다. MBC와 TBC 양사 PD들이 배삼룡을 차지하려고 백주에 몸싸움까지 벌였던 사건은 당시 배삼룡의 인기를 가늠케 한다.

    한편 양 방송사의 코미디 프로그램을 장악한 이들 때문에 대학가의 명물들은 전파를 타고 싶어도 엄두를 낼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때 TBC에서 새 얼굴들을 발굴해 ‘살짜기 웃어예’(연출 김웅래)라는 획기적인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당시 나타난 신인들이 꿀단지 클럽의 허원, 임성훈, 송영길, 최미나, 그리고 개그맨이라는 신조어를 고집한 전유성 등이다. 그러나 한국 코미디의 방향을 바꾸어보려 한 ‘살짜기 웃어예’는 신선하다는 점 외에는 시청자들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배삼룡에 대적할 만한 바보 스타를 만들어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후 80년대 초 정치·사회적으로 암울했던 시절, TBC에서는 일본 TBS의 프로그램 ‘8시다, 전원집합’의 포맷을 밀수(?)해 비슷한 프로그램의 제작을 시도했다. 시무라겐이 진행하는 ‘갈채’라는 코너는 온 방청객이 자지러질 만큼 우스꽝스런 몸짓을 보여주었다. 바로 이 코너에 이주일과 이상해가 투입되어서 시쳇말로 ‘대박’을 터뜨렸다. ‘수지 큐’ 반주에 맞춰 오리춤으로 등장하는 장면부터 폭소를 자아냈는데, 이주일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낀 시청자들은 그를 추앙하게까지 되었다.

    이후 90년대 들어서는 KBS 인기 드라마 ‘여로’의 영구(장욱제) 흉내를 낸 영구 심형래와 맹구 이창훈이 큰 인기를 얻었다. 그리고 2000년대에는 맹구를 벤치마킹한 심현섭의 바보 연기가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처럼 한국의 코미디 변천사는 곧 ‘바보들의 행진’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의 코미디에서도 정치나 사회를 제대로, 깊이 있게 풍자할 수 있었으면 한다. 대통령의 목소리를 흉내낸다고 정치 현실을 풍자하는 것은 아니다. 한 나라의 정치 수준을 보려면 그 나라의 코미디를 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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