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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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호랑이 등’에 누가 올라 탈까

햇볕정책 대미장식 10월 답방설 들먹 … 한반도 화해·협력 국내 정치 ‘상수’로 작용

  •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9-30 16: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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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정일의 ‘호랑이 등’에 누가 올라 탈까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역사적인 평양 방문에 나선다. 1972년 다나카 가쿠에이 당시 일본 총리가 중국을 방문, 중·일 수교의 물꼬를 튼 이래 세계의 이목은 고이즈미 총리의 평양 방문이 몰고 올 동북아 정세의 변화 가능성에 다시 쏠리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방북 발표를 접한 미국의 반응은 일단은 차분하다. 핵 전략 측면에서는 북·일 관계의 과속을 경계한다. 그러면서도 대(對)중국 전략상 일본의 대북 접근을 환영하는 이중 입장이 엿보인다. 중국은 완충지대인 북한 주변의 세력 재편을 경계한다. 유라시아 철도 연결을 통해 이해관계를 같이하게 된 러시아는 느긋한 입장으로 실리외교에 나설 전망이다. 100년 전 그때처럼 이제 한반도는 주변 열강의 각축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흐름 속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대외적으로는 개혁과 개방을 표방하며 변화를 주도하고 있고 남북간 제2차 교류협력추진위를 통해 막혔던 벽을 허물었다. 그 한편으로 김위원장의 답방설은 동북아 냉전구도를 청산할 수 있는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김정일 위원장은 과연 남행에 나설 것인가.



    DJ, 김정일 초청 아시안게임이 ‘절호의 기회’




    지난 4월 임동원 외교안보통일특보의 방북 행적이 정치권과 외교가의 관심을 끈 것은 월드컵 개막식(5월31일)에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초청할 것이라는 소문 때문이었다. 당시 청와대와 여권 주변에서는 ‘임특보가 6·15 남북정상회담 2주기의 성과를 만들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의 초청장을 들고 갔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민주당 외교통으로 활동하는 L씨의 말이다. “(월드컵은)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비정치적 행사다. 명분이 서지 않는가. 당시 여권 핵심부가 월드컵 기간중 미·일·중·러 등의 정상을 불러 2+4 정상회담을 추진하려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임특보의 비밀 임무를 일부 인정한 셈이다. 그 한편으로 남북문제를 주변 열강들과 묶어 풀어내려는 청와대의 노련함도 엿보인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일부 인사들은 아직도 김 국방위원장의 답방이 햇볕정책의 알파요 오메가란 인식을 가지고 있다”며 답방에 대한 청와대의 기대감을 표시했다.

    그러나 월드컵 개막식 및 폐막식에 김위원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임특보가 풀어놓은 방북 보따리에는 ‘남북관계에서 제기되는 제반 문제들에 대해 폭넓게 협의한다’는 공동발표문만 들어 있었다. 무슨 이유가 있었던 것일까. 앞서 임특보의 비밀 임무론을 입에 올렸던 당직자 L씨의 설명은 북한 내부와 국제사회에 답방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미국 부시 행정부는 ‘악의 축’ 발언으로 북한을 자극하며 압박해 들어가는 분위기였다. 답방을 위해 김위원장이 먼저 풀어내야 할 내부 문제 중 하나는 군부의 지원인데 그 부분이 생각보다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북한 방문과 함께 김위원장의 10월 답방설이 다시 터져나온 이면에는 월드컵과 비슷한 성격의 아시안게임이 자리잡고 있다. 김대통령이 김위원장을 초청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로 아시아경기대회(AG·9월29일~10월14일)의 개·폐막식을 활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최근 불거진 김위원장의 답방설은 정형근 의원이 지난 8월 초 언급한 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도라산 프로젝트’와 서로 엉켜 돌아간다. 정의원은 당시 김위원장의 10월 답방을 위해 한대표가 김대통령의 친서를 갖고 방북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대표는 정의원의 방북 주장을 부인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대북 역할을 모색하던 한대표는 6·13 지방선거 패배 후 두툼한 대북 파일을 들고 청와대를 방문해 김대통령 및 임특보와 의견을 교환했다. 그 직후 그의 방북설이 정치권에 퍼졌다. 한대표는 지난해 8월에도 방북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김위원장이 아시안게임 기간중 답방을 하는 것이 말처럼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답방은 김위원장으로서는 체제를 위기에 빠뜨릴 수 있는 큰 모험이다. 북한 군부는 여전히 김위원장의 개방, 개혁 정책에 대해 부정적이다.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남한을 방문했을 경우 낮은 단계 연방제의 진전 및 남북한 평화협정 체결 등 가시적 선물을 받아가야 한다. 그러나 임기 만료를 5개월 앞둔 김대통령이 김위원장에게 줄 수 있는 선물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김정일의 답방 여부와 관계없이 한반도의 ‘9월’은 열강의 각축 속에 화해와 협력의 분위기가 넘쳐난다. 경의선 및 동해선 철도·도로 연결공사 착공 등 광범위한 교류협력 이벤트가 잇따라 예정돼 있다. 이를 보는 한나라당의 신경은 예민하다. ‘뭔가 거대한 시나리오가 흐르고 있다’며 의혹을 떨치지 못한다. 김위원장의 답방을 통한 신북풍론의 등장을 경계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지난 8월 당 기획위에서 작성해 이회창 후보에게 전달한 보고서에는 김위원장의 답방 가능성과 이에 대한 한나라당의 우려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청와대 통일부 국방부 국정원 등의 정보를 종합하면 김정일 답방 가능성 높음. DJ, 아시아 경기 개(폐)막식 초청 가능성 있음. 답방시 햇볕정책 대미 장식과 남북관계 붐 조성됨.”

    최근 한나라당에서는 김위원장의 답방과 관련해 심각한 검토에 들어간 흔적이 포착되고 있다. 미·중·러·일 등 열강들이 얽힌 신북풍의 실체와 이것의 파괴력에 대해 긴장하는 눈치다. 한나라당은 당장 김위원장의 답방이 ‘6·15’ 감동의 재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햇볕정책은 다시 한번 이슈로 부각되고 이는 반(反)이회창 세력의 재결집을 유도할 것이란 분석이다. 김위원장이 여기에 발맞춰 개혁, 개방의 목소리를 높이고 일본 등 주변 열강들이 보조를 맞출 경우 김정일 신드롬이 남한을 강타할 것은 분명해 보인다.

    이런 흐름에 역행할 경우 한나라당은 보수 수구 냉전집단이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퍼주기’ 등을 내용으로 하는 밀실거래 의혹과 신북풍론을 제기한다는 원칙을 세웠지만 동북아를 중심으로 재편되는 국제정세를 보지 못한 ‘우물 안 개구리’란 비난을 자초할 수도 있다.

    한나라당은 김위원장의 답방이 성사될 경우 필연적으로 대선 후보들 사이에 수혜자와 피해자가 갈릴 것으로 본다.

    이후보는 지난 8월 말 긴장완화와 교류협력에 관한 평화원칙을 발표, 대북 유화 제스처를 취한 바 있다. 이후보의 한 측근은 이를 “북한이 긴장완화에 협력하면 한나라당이 집권할 경우 경제협력에 나서겠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한나라당의 고민이 커진 만큼 민주당은 대북 화해 분위기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설사 김정일 답방이 불발로 그치더라도 화해 무드는 흩어졌던 반이회창 세력을 결집시키는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판단이다. 김대중 대통령이 햇볕정책의 성공을 위해 지나치게 무리수를 동원하지만 않는다면 ‘북풍’은 강할수록 좋다는 것이 민주당의 생각이다.

    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은 8월9일 “최근의 남북 관계 진전은 모두 J의원 띄우기와 관련돼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름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신북풍과 무소속 정몽준 의원을 연결시켰다.

    김정일 위원장의 답방시 월드컵 4강 진입을 축하한다는 명분으로 김위원장과 J의원의 면담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정의원은 분석했다. 그의 주장대로라면 김위원장 답방의 최대 수혜자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아닌 정몽준 의원이다. 정의원측 역시 신북풍의 수혜자로서의 입지를 구축하기 위해 고심중이다. 정의원측은 아시안게임과 이에 앞서 개최되는 남북한 축구를 통해 ‘정풍(鄭風)’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킬 계획이다.

    그러나 북한 또한 남한의 대선정국을 주도면밀하게 관찰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북풍 여부를 섣부르게 판단하기는 어렵다. 개혁과 개방을 표방한 김위원장에게 필요한 것은 “빵’과 공장을 건설할 수 있는 ‘달러’다. 김위원장은 누가 더 많은 빵과 달러를 쥐고 있는지 면밀한 검토작업을 끝냈는지 모른다. 남쪽의 지도자들은 이제 자의반 타의반으로 호랑이 등에 올라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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