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8

2006.01.10

한국 언론이여! 정신 차려라

사기극에 놀아나고도 반성 없이 침묵 … 9·11 테러 후 맹목적 애국주의 미국도 과오 저질러

  • 보스턴=선대인/ 전 동아일보 기자 battiman@daumcorp.com

    입력2006-01-04 15: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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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언론이여! 정신 차려라

    황우석 교수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는 9·11 테러 이후 미 언론 못지않게 편향적이었다.

    케네디스쿨 한국 학생들 사이에 2005년 연말의 최고 화제는 단연 황우석 교수 사태였다. 이는 유학생들에게도 충격과 당혹감, 안타까움과 분노를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필자 역시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눈물이 날 만큼 안타까운 감정을 억누르기 힘들었다.

    황우석 사태는 ‘견제와 균형(check and balance)’ 기제가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청와대를 중심으로 한 정부, 정치권, 과학계의 과오와 실책이 적지 않았음은 늦었지만 여러 차례 지적됐다. 하지만 언론에 몸담았던 필자에게는 무엇보다 언론의 잘못이 가장 크게 와 닿았다. 특히 ‘애국주의적 열정(patriotic fervor)’에 기초한 일부 언론의 왜곡, 편향 보도와 이에 따른 대중의 지나친 애국심 표출은 매우 당혹스러운 수준이었다.

    이번 사태에 대한 한국 언론의 보도 태도는 ‘9·11테러’ 이후 대(對)테러전 당시의 미국 언론의 보도 태도와 겹쳐 보였다. 당시 미국 방송사들은 각종 뉴스 프로그램 배경에 성조기를 최대한 크게 노출하는 경쟁을 벌였다. CNN 방송의 한 유명 앵커는 “지금 우리가 최고사령관(조지 W 부시 대통령을 지칭)의 뒤에 서서 지지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미국 시민이라고 할 수 있느냐”라고 선동하기도 했다.

    언론은 물론 학자들도 반성 행렬

    하지만 9·11테러가 일어난 지 3년이 지난 현재의 사정은 사뭇 다르다. 9·11테러 당시 사상 최고의 지지율을 보였던 부시 대통령의 지지율은 40% 아래로 떨어졌고, 미 언론은 이라크전의 문제점과 비판 여론을 전달하는 데 바쁘다. 당초부터 미국 언론의 지나친 애국적 열정을 경계했던 일부 학자들에 이어 언론인들도 뒤늦게 반성의 대열에 합류했다.



    이번 학기 하버드대학 케네디스쿨의 객원 연구원이었던 CNN의 간판 여성 앵커인 주디 우드러프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는 한 세미나에서 9·11테러 직후 CNN 보도국의 애국주의적 분위기를 전하면서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움으로 얼굴이 달아오른다”고 말했다. 그는 “9·11테러와 이후 대테러 전쟁 과정에서 미국 언론들이 애국적 열정에 휩싸여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과 감시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며 “이런 언론의 애국적 태도가 미국에 도움이 됐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덧붙여 “특히 부시 행정부가 아프가니스탄에 이어 이라크로 과녁을 옮길 때 그 절차와 정책 목표에 문제가 많았는데도 미국 언론이 비판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반성했다. 그는 이라크전 당시 저널리스트들이 미군과 함께 이동하며 취재하는 ‘임베디드 저널리스트(Embedded Journalists)’ 프로그램에 대해 “전쟁의 생생함을 전달할 수 있게 한 반면 기자들이 가져야 하는 ‘비판적 거리’를 없애버렸다”고 평가했다.

    NYT 회장 “독자 신뢰가 관건”

    최근 몇 년간 보여준 황 교수팀의 연구에 대한 상당수 한국 언론들의 보도 태도 또한 이 같은 애국적 열정에서 크게 벗어나 보이지 않는다. 한국 언론들은 9·11테러 직후 미국 언론이 그랬던 것처럼 황 교수의 뒤에 도열해 그를 옹호하는 기사들만 쏟아냈다. 황 교수 연구의 윤리적·법적 문제점과 경제적 실용화 측면의 문제점, 정부 및 정치권의 과잉 지원 등을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데는 매우 소극적이었다.

    그렇다면 미국 언론도 저질렀던 과오이니 한국 언론도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하지만 9·11테러와 같은 엄청난 외부의 충격이 아닌, 한 과학자의 연구 성과를 둘러싸고 미국 유력 언론들이 이런 애국적 열정을 집단적으로 분출하는 것을 상상하기는 어렵다. 이번 황 교수 사태는 순전히 한국 언론 스스로 만들어낸 허상이었을 뿐이다. 언론이 만들어낸 허상에 국민들이 편승하고, 이것이 다시 언론의 ‘황우석 신화화’를 더욱 조장하는 순환구조가 형성됐다.

    이번 학기 케네디스쿨의 한 세미나에 참석한 아서 설즈버거 주니어 뉴욕타임스 회장에게 필자가 “인터넷 뉴스 포털 등의 급성장으로 구독률이 크게 떨어진 한국 신문이 살아날 방법이 뭐냐”는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설즈버거 회장은 “어떤 압력에도 독자들이 신뢰할 수 있는 뉴스 콘텐츠를 생산할 수 있는 능력만 갖추고 있다면 매체 환경의 변화는 큰 문제가 아니다”며 “그런 점에서 뉴욕타임스는 자신 있다”고 답했다.

    매우 원론적인 답변이었다. 하지만 생각할수록 매우 적절한 답변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년 동안 한 과학자의 사기극을 검증하지도 못한 채 국민을 오도했고, 자신들의 잘못이 드러난 시점에서도 제대로 반성할 줄 모르는 언론. 과연 그들은 스스로 생산하는 뉴스를 신뢰할 수 있는가. 그런 뉴스를 국민들이 신뢰해주기를 자신 있게 바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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