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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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여성들 “임신하러 해외로”

자국에선 인공수정 규제 까다롭고 비용 많이 들어 … 인근 국가들 관련 업계 ‘대호황’

  •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gmail.com

    입력2006-01-04 15: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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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일 여성들 “임신하러 해외로”

    불임 부부의 비율이 10%가 넘어가는 현실에서 출산 관련 독일 법이 지나치게 엄격하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2005년 11월 중순 독일의 시사 주간지 ‘슈피겔’ 46호는 한 젊은 부부의 흥미로운 이야기를 전했다. 20대 중반의 다니엘과 카트린 부부는 아이를 갖기 원했다. 그런데 아내인 카트린은 헌팅턴 무도병(舞蹈病)이라는 심각한 유전적 병원인자를 갖고 있었다. 아직은 비활동성이지만, 발병되면 뇌세포가 점차 파괴되고 주체할 수 없는 사지의 경련이 일어나며 결국 치매에 걸리게 된다. 어머니와 이모가 이 병에 걸려서 얼마나 고통스레 죽어갔는지 그녀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카트린은 아이를 갖기 전 먼저 이 문제에 대한 전문가 자문을 듣고자 지난해 유전자 검사를 했다. 좋은 결과가 나왔다. 그녀의 경우 발병 가능성이 매우 낮으며, 발병하더라도 빨라야 60세 이후에나 나타날 것이라 했다. 그러나 염색체 병원인자가 신생아에게 전이될 가능성이 50%라는 말에 그녀는 다시 어두워졌다. 의사는 그녀를 위로하는 차원에서 “현행법상 3개월 이내의 태아는 낙태시킬 수 있다”고 말해줬다. 유전적 병원인자가 전이되면 중절하고, 새로 아이를 만들라는 것. 이것이 난처한 상황에 처한 이 가정에게 독일의 병원이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조언이었다.

    독일은 인공수정 수준 아직 ‘초보’

    남편 다니엘은 “건강한 태아를 얻기까지 계속 중절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카트린은 이 끔찍한 병의 유전인자를 가진 아이라면 출산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 결국 부부가 선택한 방법은 외국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었다. 몇 주 후 부부는 이웃 나라인 체코 플젠의 한 병원을 찾았다. 독일에서 엄히 금하고 있는 의료행위가 여기서는 자유로이 시행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전문 의료진이 시험관에서 수정된 난자의 이상 유무를 검토한 뒤 자궁에 이식하고 있었던 것. 그리하여 카트린은 올해 7월 헌팅턴 무도병 유전인자가 없다는 것이 확인된 배아를 이식받았다. 독일에서는 절망과 한숨뿐이던 아이 문제가 체코에서 해결 방법을 찾아낸 것이다.

    매해 수백 쌍의 독일 부부가 국경을 넘는다. 임신중절이 금지됐던 1970년대 수많은 독일 여성들이 밤안개를 헤치고 국경을 넘어 네덜란드에 가서 아이를 떼고 오던 것과 유사한 양상이 21세기에 다시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아이를 지우기 위해 국경을 넘었다면 요즘은 아이를 갖기 위해 외국으로 나가는 차이가 있다.



    제정된 지 14년이 지난 독일의 태아보호법은 다소 모순되어 보이는 규정들을 갖고 있다. 예컨대 석 달 이내의 태아 낙태는 허용하나, 시험관에서 수정된 난자를 제거할 수는 없다. 자궁 안의 태아는 이상 여부를 검사할 수 있어도 시험관 안의 수정란은 검사할 수 없다. 정자 기증은 허용하지만, 난자 기증은 불법이다 등등.

    인공수정이 독일에서 전혀 시행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독일에서 보편적으로 행해지는 것은 배란 시점에 맞춰 자궁에 정액 주사를 놓는 초보적인 방법. 더욱 발전된 기술인 체외수정(시험관 수정)도 일부 행해진다. 단, 시험관에서 수정 후 2~3일 이내에, 즉 수정란의 세포분열이 일어났음이 확인되면 곧바로 배아를 자궁에 이식해야 한다. 체코나 폴란드, 스위스에서는 수정란을 5일까지 시험관에 놔두면서 세포분열이 일어나기를 기다렸다가, 가장 건강한 세포들만 자궁에 이식하고 나머지는 버리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 행위는 독일이라면 불법이다. 왜냐하면 독일 법상, 수정된 배아는 선택의 여지 없이 무조건 자궁에 이식해야 하기 때문.

    독일 여성들 “임신하러 해외로”

    현재 독일의 출산율은 1.3명. 특히 젊은 부부들 사이에 두 명 이상의 자녀를 둔 경우는 무척 드물다.

    독일 법이 이런 강경한 요구를 하는 이유는 독일의 역사에서 찾을 수 있다. 나치 시절 히틀러 정권은 종족 간의 차등성을 역설했다. 순수 독일 혈통인 아리안 민족이 세상에서 가장 우월하고 그 밑으로 여러 등급이 있으며, 최하 계층인 집시나 유대인들은 청소해야 할 쓰레기와 같은 사람들이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이었다. 이런 견해에서 보면 병약한 사람들, 장애인들 역시 용납될 수 없었고, 생체실험도 전혀 거리낌 없이 행해질 수 있었던 것. 그 후 독일은 이처럼 잔혹했던 시절에 대한 아픈 상처가 있기 때문에, 누군가 자의적으로 ‘살 가치가 있는 것’과 ‘살 가치가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것을 용인할 수 없었다. 태아보호법은 이러한 정신을 반영한 것. 이 법은 모든 증식 가능한 수정란은 존중되어야 한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설령 결함이 있는 배아라도 일단은 자궁에 이식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독일에선 한 차례 인공수정에 500만원 들어

    슈뢰더 정부 시절 시행된 의료보험제도 개혁도 아이를 원하는 독일 부부를 국외로 내모는 결과를 낳았다. 인공수정 하는 데 본인 부담률을 50%로 대폭 높였기 때문. 2004년 1월1일부터 공보험 가입자들은 한 차례 인공수정을 위해 4000유로(약 500만원)에 달하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그것도 세 차례 시도 이후에는 100% 본인 부담이다. 25세 이하거나 40세 이상 여성은 인공수정 할 때 전혀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 미혼이라면 나이에 상관없이 보험 혜택을 기대할 수 없다.

    계약조건에 따라 내용이 다르겠지만 사보험 역시 마찬가지. 요컨대 독일의 여성들은 인공수정 하는 데 최신 의료기술의 혜택도 못 받으면서, 돈만 많이 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그 결과 2003년 독일에서의 신생아 출산 중 인공수정 비율이 1.6%였던 반면, 지난해인 2004년에는 0.8%로 절반가량 줄어들었다. 꾸준히 성장하던 인공수정 신생아의 비율이 급락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좀더 여건이 나은 이웃 나라로 ‘원정임신’을 떠났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독일과 이웃한 나라의 인공수정 사업은 대호황이다. 네덜란드는 익명의 정자를 제공받고 싶어하는 레즈비언들의 천국이고, 벨기에 브뤼셀은 맞춤형 태아를 이식받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루마니아의 부카레스트에서는 300달러에 난자 매매가 이뤄지고 있고, 이렇게 구입된 난자는 더 비싼 가격에 영국으로 다시 팔려간다. 크로아티아 자그레브의 학생 기숙사촌에는 정자 기증 250유로, 난자 기증 2500유로라는 팸플릿이 돌아다닌다.

    그러나 문제는 원정 임신을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일반인들의 시선이 별로 곱지 않다는 것이다. 줄기세포나 인간복제 논란과 마찬가지로 인공수정 역시 신의 창조 영역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 마치 자동차의 옵션을 정하듯, 부모가 아이의 신체를 마음대로 디자인하도록 그냥 내버려둬야 할 것인가? 또 약간의 결함을 가진 생명체는 처음부터 사회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도록 제거되어야 할 것인가? 이런 식의 윤리적 문제 제기는 자연스러워 보이긴 한다.

    하지만 평균 결혼연령이 점차 높아지면서 아이를 갖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부부가 늘어나고 있는 현실(현재 10% 이상)에 비춰보면, 인공수정에 대해 지나치게 엄격한 현 독일 법이 반드시 옳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게다가 독일은 이미 저출산 고령화 사회다. 현 출산율은 1.3명인데, 이는 출산율 통계를 발표하는 세계 191개국 중 180위에 해당한다. 출산을 장려해도 시원치 않을 상황인데, 낡은 법으로 의사들을 통제해 아이를 간절히 원하는 부모들을 해외로 내모는 것이 올바른 방향인지, 무엇이 진정 윤리적인 것인지 생각해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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