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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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이 미련이 있었나 봐…”

스승 정창국 서울대 명예교수 … “바보나 그런 연구, 한 번 더 기회 주었으면 좋겠어”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6-01-04 13: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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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놈이 미련이 있었나 봐…”

    。1923 평북 선천 출생<br>。1951 서울대 수의과대학 <br>。1961 미국 미네소타주립대학 대학원 수의학<br>。1958~88 서울대 농과대학(수의과대학) 교수<br>。1985~87 서울대 수의과대학 학장<br>。1970 서울시수의사회 회장<br>。1984~86 임상수의학회 회장<br>。1987~93 대한수의사회 회장<br>。1990~93 아세아수의사회연맹(FAVA) 감사<br>。1994~99 대한수의사회 명예회장<br>。현 서울대 명예교수<br>。현 대한수의사회 고문

    학내에서 엉뚱한 파벌문제가 불거져 뜻하지 않게 낭인생활을 하게 됐어요. 시골에 가서 농사를 지으려고 했는데, 그때 정창국 수의대학장이 선진국에 가서 미래를 대비하라며 1985년 일본 홋카이도 대학에 가도록 다리를 놓아줬어요.”(황우석 교수)

    한때는 ‘국민적 영웅’에서 이제는 ‘희대의 풍운아’로 바뀐 황우석 교수. 그런 그에게도 잊지 못할 스승이 있다. 황 교수는 힘들었던 과거를 회상할 때면 언제나 정창국(83) 서울대 명예교수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하곤 했다. 평범한 연구조교에게 세계적인 학문 흐름인 ‘수정란 이식’ 연구를 권하고, 교수 자리까지 마련해줬다는 정 명예교수. 외부와의 소통을 끊어버린 황 교수에 대한 억측이 분분하지만 그에 대한 정확한 평가는 그의 스승만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2005년 12월29일은 마침 서울대 조사위원회(위원장 정명희)가 황 교수 사건에 대해 기자간담회를 하는 날이었다. 이 간담회에서는 누구나 짐작했듯 황 교수 팀이 만들었다는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는 존재하지 않았고 원천기술 또한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방향으로 결론이 모아졌다. 용인시 상갈의 한 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는 정 교수는 간담회에서 나온 내용을 TV로 접한 뒤 기자를 맞이했다.

    그는 그간의 경과가 궁금했던지 오히려 기자에게 “황 교수가 교수직을 유지할 수 있을 가능이 얼마나 되는지”부터 물었다. 황 교수는 12월23일, 서울대 조사위의 1차 발표 직후 서울대 교수직을 사퇴한다고 밝힌 바 있다. 제자에 대한 안타까움이 앞섰는지 그는 “결과적으로 서울대를 망신시켰다는 이유만으로도 교수직 유지는 힘들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정 교수는 2006년에는 83세가 된다. 현직에서 물러난 지 17년이 흘렀지만 한국 수의학을 개척한 원로 학자답게 또렷한 기억력으로 황 교수 사태를 분석해냈다.

    -황 교수와는 어떤 관계인가요.



    “사실 황 군은 나의 직속 제자는 아니에요. 그는 동물의 생산을 다루는 산(産)과인데, 나는 수술을 다루는 외과니까요. 그의 학문적 스승은 고 오수각 교수라는 분인데 황 군이 연구조교로 있을 때 갑작스럽게 별세하는 바람에 황 군의 처지가 어려워졌어. 그래서 내가 도울 기회가 있었던 거지.”

    정 명예교수는 황 교수에게 수정란 연구를 권유하고 교수 자리까지 마련해줬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대부분 그 정황이 맞다고 기억했지만, 교수직에 대해서는 자신의 배려라기보다 일본에서의 연구생활로 인해 자연스레 임용 기준에 충족되는 점수를 확보했던 것이라고 정정했다.

    -젊은 시절의 황 교수는 어떤 사람이었나요.

    “소와 씨름하던 열성적이고 성실한 조교였어요. 인상적이었던 것은 도시락 반찬으로 매번 김치만 싸왔던 거죠. 허허. 열심히 일하려면 고기를 먹어야 한다고 충고했는데도 줄곧 김치만을 고집하더군요.”

    -우리나라 축산업이나 수의학도 이제는 세계적인 수준에 올랐는데요.

    “축산은 특별할 게 없어요. 동물을 사랑하고 성질이 느긋한 사람이면 누구나 다 할 수 있어요. 수의과 자체는 동양에서 그다지 높은 대접을 못 받았어요. 우리나라에서도 동물을 누가 쳐다보기나 했나요.”

    -황 교수 덕분에 수의과 대학의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그건 큰 공이야. 고마운 일이야. 누구 하나라도 크게 성공해주면 학과의 인기가 올라가는 건 당연한 일이지.”

    -오늘(2005년 12월29일) 서울대가 중간조사 결과를 발표했는데요.

    “스너피까지도 근친상간으로 순종혈통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검증에 시간이 걸린다더군. 허허. 그런데 과학이란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과학자란 자기가 스스로 교정하면서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오. 자연과학자들은 인문학자들과 달리 기본적으로 대단히 성실한 사람들이거든. 오류를 수정할 능력이 있는 사람일 텐데….”

    -그런데 어째서 황 교수는 무리했을까요.

    “….”

    -그는 출중했던 연구자였던가요.

    “출중이라…, 대학을 나와서 공부하자고 덤빈 사람이라면 그 정도는 다 했을 거요. 적어도 과학적 훈련은 제대로 받은 애들이니….”

    그는 황 교수의 논문 조작 건에 대해서 침울한 표정으로 답했다. 주제를 바꿔서 수의과학의 역할에 대해 물었다. 황 교수는 잘 알려진 대로 의대 출신이 아닌 수의과대학 출신으로 생명공학(BT)계의 1인자 자리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BT 분야에서는 의대, 생물학과, 수의과 등 여러 분야 출신들이 함께 연구를 진행합니다. 그런데 인간을 다루는 법적인 권한은 의사에게만 있기 때문에 분쟁이 발생하기도 하는데, 황 교수는 그 파워게임에서 이기기 위해 언론과 정치권 힘을 빌린 것 같습니다.

    “그랬을 거야. 의사들이 난자를 안 주면 그만이니까. 아마도 황 교수 팀에는 소 복제 연구를 통해 기술력을 쌓은 섬세한 애들이 많아서 큰 힘이 됐겠지. 수의과는 동물을 다루는 학문이야. 넓게 보면 인간도 동물이라지만 사회 통념이란 게 그렇지 않잖아. 인간에 대한 면허는 의사에게만 있고 연구비란 모조리 의대에서만 나오거든. 그럼에도 의대 출신들은 거의 개업의나 하고 순수 연구는 안 하고 있어. 전국적으로 해부학, 생물학, 미생물학에는 수의과 출신들이 많아요.”

    -황 교수는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잘해왔습니다.

    “마지막에 틀어져서 그렇지 아주 잘했지. 그가 처음부터 ‘사이언스’에 엉터리 논문 내려고 생각이나 했겠어요. 순전히 내 생각인데 ‘이것은 어느 정도 되겠지’ 하고 생각했겠지. 줄기세포를 손아귀에 쥐고 발표했어야 했는데….”

    -난자 1000개 이상을 써서 겨우 한 개를 만든 셈이 됐습니다.

    “그 수준으로는 경제성이 없어요. 난자 1000개의 비용? 어휴…. 줄기세포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게 효과를 볼 수 있나, 모든 게 의문 아냐? 그런데 기자는 왜 그가 11개의 줄기세포를 만들었다고 그랬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잘 모르겠습니다. 몇 가지 해석이 있긴 한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런 연구에는 통계적 의미가 중요한데, 10개 이상은 나와야 그 조건에 부합한다고 생각한 듯해요.”

    -황 교수는 원천기술을 갖고 있었을까요.

    “글쎄요. 연구는 사실상 젊은 연구원들이 중요해요. 교수야 판단만 하고 방향 제시만 할 뿐이지. 난자를 핵과 분리하고 배양하는 일들이 얼마나 힘든 고행인지 알아요? 그 얼마나 많은 난관이 있었겠어. 이런 거대한 연구는 팀워크가 절대적이에요. 황 교수 처지는 군대의 사단장, 군단장과 비슷했을 것이오. 학생들에게 강의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지.”

    결국 원천기술이란 그 연구팀에 있다는 의미이지, 황 교수 개인에게 있을 수 없다는 설명이었다. 팀이 해체되면 원천기술도 사라진다. 때문에 연구 팀이 해체돼서는 원천기술을 논할 상황이 아니라는 의미다. 그의 한탄은 계속됐다.

    “그런 연구는 황 군 같은 바보나 하는 거다. 정말로 그는 바보가 아닌가. 무엇 때문에 그 고생을 했을까. 다달이 월급이나 타먹고, 남들처럼 편히 살지. 결국엔 남에게 수모나 당할 걸….”

    -동정론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닙니다.

    “열심이 연구해도 판단이 조금만 틀리면 반대파들이 죽이려고 하는 걸 왜 몰라. 그래도 그 친구는 파면당하지 않는다면 또 시작할 인물이오.”

    -상황이 이렇게 틀어졌는데도 황 교수팀 연구원들이 앞으로 그와 함께 일하려고 할까요.

    “그게 걱정이야. 다른 대학에서 스카우트를 해가겠지. 섀튼 교수만 해도 손재주 쓸 만한 사람들 벌써 다 데려갔잖아.”

    -그의 교수직 유지가 과학계를 위하는 길인가요.

    “글쎄. 그 문제는 서울대가 판단할 문제겠지. 이 연구가 크게 물의를 빚긴 했지만, 지금 있는 연구진을 데리고 계속 연구하는 길이 버리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 이들이 함께한다면 또 하나의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황 군도 지금은 정신을 차렸겠지. 본인도 연구 이외에 무슨 일이 있겠소.”

    -그는 현재 사회적으로 퇴출 직전입니다.

    “그렇지. 교수직을 내줄 대학도, 연구비를 댈 기업도 없겠지. 며칠 전에 지인들이 나에게 황 교수에 대해 묻더라고. ‘난 잘 모르지만, 그가 연구를 앞당기려고 초조해서 그렇게 됐다, 연구하는 사람들이 성과에 매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어요. 나를 욕해도 좋은데, 당분간은 그를 위해 나서는 사람이 없을 테니까….”

    -가장 안타까운 대목은 황 교수는 왜 일찍 조작을 시인하고 사과하지 않았냐는 겁니다.

    “그렇지. 결국은 거짓말한 꼴이 됐어. 그놈이 미련이 있었나 봐. 과학 하는 사람은 미련이 많은 법이야. 이것을 잘 키워서 배양하면 물건이 될 게 아닌가 하고 생각했겠지. 처음부터 조작을 시인하는 것은 거짓말을 자인하는 꼴일 테니. 정말 어려운 일이었겠지….”

    그는 아직도 황 교수에 대한 식지 않은 애정을 갖고 있었다. 지금도 황 교수의 솔직담백한 고백과 새 출발을 기다리는 이들이 적지 않다. 모두가 황 교수의 재능과 열정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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