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협은 그러나 곧바로 파업에 들어가지 않고 3월 3일까지 유예기간을 두면서 “정부 태도에 변화가 없을 경우 총파업을 강행한다”고 밝혔지만, 의협 회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동네 의원 의사가 느끼는 위기감은 의약분업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의·약사 함께 파업할 수도
일각에선 의협이 “국민을 볼모로 한 극단적 파업은 피해야 한다”는 여론을 의식하고 정부와 협의체를 만들어 개선안 논의에 들어간 만큼 ‘의료대란’이라는 파국만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그러나 각 의료단체 주장을 ‘괴담’으로 몰아붙이며 공개 광고까지 낸 정부여당이 박근혜 대통령의 강력한 추진 의지를 거스르면서 대폭 양보할 개연성은 거의 없어 보여 추후 상황은 예측 불허 상태다.
의협 총파업과 의료대란 현실화 가능성을 높이는 또 하나의 요인은 이번 다툼이 과거와는 판이하게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가는 양상인 데다, ‘의료 민영화’ 또는 ‘영리병원’ 반대 투쟁의 핵심 세력인 의협이 이번 투자대책과 원격진료 허용 방침의 실질적 수혜자로 지목된 중·대형 병원을 대변하는 대한병원협회를 제외한 모든 의료직능단체로부터 지원을 받는다는 점이다. 심지어 의협은 의약분업 반대 투쟁 당시부터 지금까지 사안별로 사사건건 ‘밥그릇 싸움’을 해오던 대한약사회(약사회), 대한한의사협회와도 손을 잡았다.
1월 9일 낸 대정부 성명서에는 대한치과의사협회, 대한한의사협회, 약사회, 대한간호협회,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참여했다. 14일에는 이 단체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여 ‘박근혜 정부 의료 영리화 정책’ 진단 토론회를 개최하고 공동 기자 회견문을 낭독하기도 했다. 이런 모습은 전문 의료직능단체 탄생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약사회 또한 정부가 영리법인약국 도입을 강행할 경우 파업을 불사한다는 방침이라 극단의 경우 의사와 약사가 함께 파업을 벌이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특히 그간 사용자와 노동자로 갈려 의협과 첨예하게 대립하던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의료 민영화’ 또는 ‘의료 영리화’ 반대 투쟁에 동참한 사실은 이번 사안이 의료 전문 직역 간 ‘밥그릇 싸움’이나 ‘직능 이기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한편으론 정부의 투자대책과 원격진료 허용 방침이 의료 소비자인 국민과 의료계 종사자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줄 수 있으며, 의협이 파업하지 않더라도 재야와 범시민단체 차원의 반발에 부딪힐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의료 민영화 문제는 국민 개개인에게 직접적으로 피해가 갈 수 있는 사안이라, 경우에 따라선 전국철도노동조합의 ‘수서발 KTX 자회사 설립 반대’ 투쟁보다 더한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정부의 투자대책과 원격진료 허용 방침이 실제 시행된다면 국민과 의료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각 단체와 노동조합(노조) 주장처럼 ‘의료 민영화’ 또는 ‘의료 영리화’가 돼 동네 의원이 거대 병원의 체인 병·의원으로 전락하거나 고사하고, 의료비가 폭증해 동네 의사와 시민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게 될까. 아니면 정부와 새누리당 주장처럼 ‘의료 공공성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중소병원의 수익을 극대화하고 장기적으로 의료비를 줄일 것’인가. 이번 싸움의 핵심 논란 사안인 정부의 투자대책부터 살펴보자.
1월 1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열린 의료영리화저지와 국민건강권 수호를 위한 6개 보건의료단체 공동 기자회견. 노환규 대한의사협회 회장(가운데)이 민주당 김용익, 이언주 의원과 김세영 대한치과의사협회장, 조찬휘 대한약사회장, 김필건 대한한의사협회장, 유지형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참가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3일 정부가 발표한 투자대책의 핵심 내용은 의료법상 규정된 의료법인의 부대사업 종류를 전면 확대하고, 확대된 부대사업을 통해 수익을 창출할 영리자회사(자법인) 설립을 허용하며, 병·의원 간 인수합병을 허용하는 한편, 영리를 추구하는 법인약국을 허용한다는 것이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법인과 의료기관을 개설한 비영리법인은 의료업(부대사업 포함)을 할 때 공중위생에 이바지해야 하며 영리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으며, 의료법인에 대해서는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의료법인이 아닌 비영리법인이 세운 병원은 비영리자회사를 세울 수 있다. 하지만 그 어떤 경우에도 인수합병은 금지되며, 법인이 약국을 개설할 수도 없었다.
의협 소속 회원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동네 병·의원은 개인의사가 혼자 또는 여러 명이 모여 사업자등록을 내고 의료기관을 운영하는 형태로, 최고 40%의 종합소득세율을 적용받는다. 의료법인이 운영하는 의원은 없다시피 하며, 의료법인 병원은 전국 2700여 개 병원 중 40%인 1100여 개다. 3차 의료기관인 대형 병원 중에선 길병원과 강북삼성병원이 유일하게 의료법인이고 나머지 대형 병원 대부분은 사회복지법인(삼성의료원), 학교법인(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등), 재단법인(현대아산병원 등) 등 다양한 형태의 비영리법인이 운영한다.
정부는 비영리법인이 운영하는 대형 병원은 법인세 감면 혜택을 모두 받으면서 각종 자회사를 만들어 편법적으로 수익 활동을 벌여왔기 때문에 형평성 차원에서 의료법인에게도 자회사를 만들 수 있게 하고 이참에 모든 비영리법인이 세운 자회사에 영리 행위를 허용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정부는 의료법인을 포함한 비영리법인의 영리 추구를 금지한 의료법 규정을 어기지 않으려고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대통령령으로 자회사 설립을 허용하면서 부대사업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계산이다.
지난해 12월 15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광장에서 대한의사 협회가 의료제도 바로세우기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를 가동, 전국 의사들이 모인 집단 시위가 벌어졌다.
법인화가 허용된 약국도 마찬가지다. 약사는 앞으로 혼자 또는 여러 명이 모여 다른 이들에게 투자받은 돈이나 자신의 돈으로 법인약국(유한책임회사 형태)을 만들면 다른 법인약국을 인수할 수 있다. 상법상 약국의 인수합병은 금지됐지만 법인약국 주인인 유한책임회사 간 인수합병은 불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인약국이 생기면 소규모 자본을 가진 동네 약국은 모두 망하기 쉽고 약사는 법인약국의 월급 약사로 전락할 수 있다. 의료 소비자는 좀 멀어도 많은 종류의 약을 싸게 파는 약국을 선호할 것이기 때문이다.
돈을 벌어야 할 대상이 환자
대형 제과업체와 몇몇 대형 서점 때문에 작은 빵집과 서점이 동네에서 자취를 감춘 것처럼, 정부의 투자대책이 전면 시행될 경우 향후 이르면 5년, 길면 10년 안에 동네 의원과 동네 약국 씨가 마를 것이라는 게 의협과 약사회 측 우려다. 정부의 투자대책에 대해 자본금이 적은 개인 병·의원을 운영하는 의협과 개인 약국을 운영하는 약사회가 강력하게 반발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자신의 명운이 걸린 일이기 때문이다. 이는 1·2·3차 의료기관 간 의료전달체계 붕괴로 이어져 우리나라 전체 의료체계 근간을 뒤흔들 수도 있다.
동네 의원과 동네 약국 붕괴는 의료 소비자에게 많은 불편을 가져온다. 당장 아파도 걸어서 갈 수 있는 병·의원과 약국이 없어 힘들 것이다. 그뿐 아니다. 가장 큰 피해는 중·대형 병원에 가서 내야 하는 병원비, 즉 의료비가 폭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큰 병원에 가면 특진비를 비롯해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특정 시술과 검사를 강요당하고 영양제까지 사야 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진다. ‘맹장염 수술비 1500만 원’ 괴담이 조금 과장되긴 했지만, 실제 현실로 벌어질 수 있는 얘기다.
‘괴담’이 ‘현실’로 바뀔 수 있는 근거는 정부의 투자대책 중 확대된 부대사업 영역이 대부분 의료와 조금이라도 관련된 의료 연관 사업의 모든 부분을 포괄하는 데다, 설립이 허용된 영리자회사의 자본금 49%를 민간에서 조달할 수 있게 해 자회사 배당수익금이 외부로 빠져나갈 수 있게 한 항목이다. 의료법상 기존 허용된 부대사업은 의료기기 임대 및 판매, 안경 조제 및 판매, 은행업, 산후조리, 노인의료복지시설업, 장례식장, 부설 주차장업, 구내식당, 이·미용업, 구내매점, 숙박업, 서점 등이었다.
여기에 정부가 확대한 부대사업에는 병원 임대, 의료기기 개발 및 구매, 의료용구 개발·임대·판매, 바이오 등 연구개발사업 및 응용, 의약품 개발처럼 의료 행위와 직접적으로 연관된 사업이 포함됐다. 건강식품, 건강보조식품, 화장품 개발·임대·판매 등 의료 행위와 간접적으로 연관된 사업, 나아가 유사의료행위와 연관된 호텔, 온천, 헬스클럽까지 들어가 있다.
정부는 “영리자회사가 이런 부대사업을 하면 병원 수익이 늘어 병원 의료업이 정상화된다”고 주장하지만 문제는 의료법인의 영리자회사가 부대사업을 통해 돈을 벌어들여야 할 대상이 바로 환자라는 점이다. 부대사업 영역이 모두 의료 연관 산업이기 때문에 자회사의 영리사업 대상이 환자와 그 보호자 등 병원을 찾는 사람이 될 확률이 매우 높을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무릎 연골이 다 닳아서 온 퇴행성관절염 환자가 있다면, 자신의 병원 자회사가 개발하거나 판매하는 특수 검사기계로 검사하게 하고, 자회사가 개발한 인공관절을 쓰게 하거나 자회사가 개발한 줄기세포 치료술을 권할 수 있다. 수술 후에는 자회사가 개발하거나 판매하는 의약품과 건강식품, 건강보조식품을 먹도록 권유한다. 자회사가 운영하는 헬스클럽, 호텔 등에서 물리치료와 치료 후 재활을 권유하면서 화장품을 팔 수도 있다. 질환 검사, 치료, 치료 후 재활, 약품 처방 등 모든 의료 항목에는 ‘특수’라는 말이 붙고 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부대사업 확대와 영리자회사 허용에 따라 환자가 부담해야 할 의료비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셈이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은 2009년 영리병원 전환과 관련한 분석 보고서에서 개인 사업자 병원의 20%가 영리병원으로 전환하면 국민 의료비 부담 증가가 연 7000억~2조2000억 원 증가할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는 영리병원 병상 수가 6.8%(2만여 개)일 때 의료비 증가 추정치다. 현재 영리자회사를 둘 수 있는 의료법인이 운영하는 중·대형 병원 병상 수가 6배에 가까운 40%에 이르는 데다, 이 통계가 5년 전 것임을 감안하면 실제 정부의 투자대책이 실시된 후 연 의료비 증가액은 수십조 원에 이를 수도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주장에 대해 “모병원과 자회사 간 ‘부당 내부거래’를 제한함으로써 해결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는 지키지 못할 법 규정을 만드는 것과 같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의료법상 이를 어기는 자에 대한 처벌조항이 아예 없거나 미미한 상황이라 이런 규제사항을 지키는 의료법인이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또 각 병원 간 경쟁이 이토록 치열한 가운데 다른 병원 자회사가 개발, 판매하는 의료 관련 제품을 구매하거나 써줄 병원이 단 한 곳도 없다는 점도 보건복지부 해명을 무색게 하는 대목이다. 더욱이 자회사에 지분 49%를 투자한 민간자본은 높은 배당을 받으려고 모병원에 자회사 상품 구매를 강요할 게 불 보듯 빤하다. 자유시장경제 체제에서 자본의 강요를 배겨낼 법인이나 기업은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 2008년 Y 학교법인이 운영하는 대학병원들은 A 자회사가 운영하는 약품도매상을 통해 실거래가보다 비싼 값에 약품을 구매하고 그 차익을 리베이트로 받아 대학 발전기금으로 냈다 감사원에 적발됐지만,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Y 학교법인 관계자는 “지난해에도 이와 관련해 공정거래위원회 조사를 받았지만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밝혔다.
“사실상 영리병원 허용 조치”
민간자본의 의료법인 병원 자회사 49% 자본 참여 허용 방침은 재벌이나 거대 자본의 병원 체인화를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 영리자회사가 할 수 있는 부대사업 항목은 병원에 들어가는 모든 의료기기, 의료용구를 포괄한다. 여기에다 병원 임대업까지 허용했으니, 거대 자본이 49% 투자자본금과 대여금을 통해 영리자회사로 하여금 건물을 짓게 하고 자회사가 개발, 판매하는 각종 의료기기와 의료 관련 제품을 그 건물에 넣은 후 의사에게 병원을 통째로 임대해주면 해당 병·의원의 실질적인 주인은 투자 자본이 된다.
또 이 거대 자본이 자신이 만든 체인 약국을 자신이 투자한 자회사의 모병원 인근에 포진하게 한 후 자회사가 만든 약품을 독점적으로 공급할 수 있는 구조도 생길 수 있다. 이는 의약분업 근간을 근본적으로 뒤흔들 수 있는 대목이다.
보건복지부는 이런 폐단을 막으려고 “자회사 수익을 모두 의료법인의 고유목적사업에 재투자하게 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마저도 잘못된 점이 있고 법적으로도 모순이라는 지적이다. 영리자회사에 49% 민간투자를 유치하려면 수익 배당을 해야 하는데 이를 막으면 투자할 기업이나 금융회사가 단 한 곳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의 한 변호사는 “투자자에게 수익을 배분하지 않고 병원에 재투자하라고 강제하면 이 자회사는 투자자로부터 투자를 받지 못할 것이다. 투자자는 자선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더욱이 자회사 이익을 모법인에게만 투자하도록 강제하는 것은 투자자 이익을 해치는 배임행위로 불법”이라고 꼬집었다.
우석균 건강권실현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의사)은 “병원 수익은 결국 환자가 의료비로 부담하는 것이기 때문에 병원 수익이 늘어날수록 환자의 병원 이용비, 즉 의료비는 증가할 수밖에 없다”며 “비영리병원과 영리병원의 차이는 투자자의 투자와 이윤 배당이 허용되는지 여부에 있는데, 이번 정부의 투자대책은 투자자의 투자와 이윤 배당 허용을 스스로 밝히고 있고 이를 자회사에 허용하든, 모병원에 허용하든 그 차이는 본질적인 게 아니기 때문에 사실상 영리병원 허용 조치며, 따라서 명백한 의료 민영화”라고 밝혔다.
최헌수 약사회 홍보팀장은 “영리법인 약국을 도입하면 결국 거대 자본으로 무장한 몇몇 법인약국이 시장을 독점하게 되고 동네 약국이 몰락한다. 이는 약국 접근성 저하, 시장 독점에 의한 약값 증가로 이어져 그 부담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전가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보건의료 분야는 전 국민 건강보험 가입 의무, 요양기관 당연지정제, 요양기관의 영리법인 불허 등 시스템 자체가 공공성을 지닌다. 영리법인을 허용하는 등 공적 요소가 하나씩 무너진다면 결국 보건의료의 의료 민영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