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0년간 플러스 투자수익률을 기록한 생활용품회사 P&G 본사.
장기투자 이론의 권위자인 제러미 시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고 1957년 초창기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지수에 편입된 종목들을 분석했다. S·P 500지수는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 500개로 이뤄진 인덱스다.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인수합병(M·A)돼 사라진 기업도 있지만, 비즈니스 기본구조는 여전히 변함없었다. 시겔 교수는 실적이 가장 좋은, 즉 기업 매출이나 이익 증가가 아니라 플러스 투자수익률을 기록한 20개 주식을 찾아낸 후 ‘황금 기업’이라고 이름 붙였다.
‘황금 기업’, 그들은 누구인가
1957부터 2003년까지 투자자에게 큰 보상을 해준 기업 리스트를 보면, 우리에게도 친숙한 곳이 적지 않다. 담배회사 필립모리스컴퍼니스, 제약회사 화이자와 머크, 음료회사 코카콜라, 케첩으로 유명한 H.J. 하인즈, 껌 회사 리글리, 생활용품 회사 P·G 등이다. 이 기업들의 공통점은 잘 알려진 소비재 기업이거나 제약회사라는 것이다. 즉 새롭게 혜성같이 나타나 파괴적인 혁신을 선보인 기업이 아닌, 평소 생활 속에서 만나는 기업들이다. 시겔 교수는 이 분석을 토대로 “50년간의 주식동향을 살펴본 결과, 신생 주식이 아닌 구관이 명관이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여기서 궁금한 것은 왜 이 기업들이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는지 하는 점이다. 시겔 교수의 얘기를 들어보자.
“투자자에게 최고 수익률을 보장해주는 기업은 소비재 제품과 제약 산업 분야에서 강력한 브랜드를 지니고 있었다. 워런 버핏이 정확하게 주장했듯, 폭넓고 지속적인 저변을 확보한 제품과 서비스만이 투자자에게 값진 보상을 가져다준다는 뜻이다.”
과거에 더해 소비재와 제약기업은 현재도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맞고 있다. 바로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되는 소비시장 확대와 시니어시장의 성장 때문이다. 인류 역사에서 수명과 소득 측면에서 비약적인 증가를 보였던 적은 총 2번이다.
수백만 년 전만 해도 인류 수명은 30세를 넘지 못했다.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석기시대인의 평균수명은 30세 남짓이었다. 1800년경까지도 평균수명은 35세로, 석기시대와 별 차이가 없었다고 한다. 인류 수명에 대전환이 찾아온 계기는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 일어난 산업혁명이었다. 이때부터 1인당 소득과 수명은 비약적인 고공행진을 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계기는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산업혁명이 기술 발달로 비약적인 생산성 증가를 가져온 것처럼, 전쟁은 짧은 시간 안에 기술을 응축해 발전시켰다. TV, 에어컨, 냉장고, 석유에너지 확대, 자동차 등 오늘날 라이프스타일의 원형은 1950~60년대 만들어졌다. 중산층의 거주공간인 신도시(레빗타운·Levittown)라는 개념도 이때 등장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10대에 접어들면서 패스트푸드 업체는 엄청나게 성장했다. 맥도날드, KFC 같은 패스트푸드 기업은 매년 거의 20%씩 성장했다.
지금은 세 번째로, 소비시장이 폭발하는 시기다. 이번 소비시장 확대는 고령화와 맞물렸다는 점이 과거와 다르다. 수명은 소득과 기술 발전의 함수다. 소득이 늘고 기술 발전으로 생산성이 증가하면, 수명도 늘고 소비도 증가한다. 인터넷과 모바일로 표현되는 정보기술(IT)의 비약적 발전과 그에 따른 생산성 증가, 중국과 브라질 등 대규모 인구를 거느린 국가의 경제발전에 따른 소득 증가 및 소비시장 확대가 맞물려 글로벌 소비시장은 크게 성장하고 있다. 범위도 과거와 달리 글로벌 차원에서 진행된다. 산업혁명은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 몇몇 국가, 그리고 아시아에서는 일본에만 영향을 미쳤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는 이념을 바탕으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으로 양분됐다. 1989년은 자본주의 승리가 선언된 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경제적 실험인 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것이다. 사회주의 붕괴와 중국의 국가자본주의 등으로 세계 절반이 드디어 자본주의 시장에 참여하게 됐다. 오늘날 소비시장 확대는 역사상 처음으로 전 대륙에서 진행되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위기와 기회의 고령화 시대
여기에 어린이(아동), 성인시장으로 양분되던 소비시장을 어린이, 성인, 시니어시장으로 삼분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64세 이상 인구 비율은 2012년 기준 9%지만 2013년이면 15%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비율로는 6%p 정도여도 숫자로는 엄청나다. 2012년 64세 이상 인구가 약 5억3400만 명인 데 반해, 2032년에는 9억7000만 명으로 81%나 증가할 예정이다. 고령화 흐름은 그 후에도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고령화는 위기와 기회 요인을 모두 내포한다. 맥도날드 같은 패스트푸드 업체를 예로 들면 젊은 인구가 증가하는 곳에서는 기회를 얻겠지만, 일본처럼 고령화가 상당히 진행된 곳에서는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 실제 일본 맥도날드는 일부 점포를 폐쇄하기도 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급증하는 시니어시장에서 성장할 수 있는 기업이 있다면, 그 회사는 상당한 수혜를 입을 것이라는 점이다.
흔히 인간은 새로운 것에 끌린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기술, 새로운 혁신 등 ‘새로운(new)’이란 수식어에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는 듯하다. 하지만 투자 역사에서 새로움은 종종 재앙으로 끝나기도 한다. 철도, 비행기, 자동차, 인터넷 등 새로운 혁신이 있을 때마다 투자자에게 열렬히 지지받던 많은 기업이 지금은 이름조차 남아 있지 않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 태동기에 미국 자동차업체는 2000개가 넘었지만 지금은 3개 사만 남았다. 비행기 산업도 마찬가지다. 1919~39년 미국에는 비행기 산업과 관련한 기업이 200개도 넘었다. 인터넷 거품 시기에 혜성처럼 등장했다 사라진 기업 이름을 적자면 아마 수십 쪽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인간이 사는 데 꼭 필요한 것을 만드는 소비재 회사, 인간의 아픈 몸을 고치거나 예방하는 기업은 필수불가결한 존재다. 투자 기회는 어찌 보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필수불가결한 비즈니스를 하면서 인간의 삶과 함께 성장하는 기업을 찾는 일인지도 모른다. 따라서 자신의 포트폴리오에 글로벌 소비재와 제약 관련 주식이나 펀드를 편입하는 일은 장기적으로 인간의 삶과 성장에 투자하는 것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