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말러
R. 슈트라우스는 교향시와 오페라로 유명하다. 그래서 올해 주요 교향악단의 공연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R. 슈트라우스의 작품이 심심찮게 눈에 띈다. 일례로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은 새해 첫 공연을 그의 마지막 교향시인 ‘영웅의 생애’로 장식했고, 2월 내한하는 쾰른 필하모닉은 그의 최대 관현악곡인 ‘알프스 교향곡’을 들려줄 예정이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R. 슈트라우스보다 더 눈에 띄는 작곡가가 있다. 바로 R. 슈트라우스의 라이벌이자 친구였던 구스타프 말러다. 두 사람은 당대 최고 지휘자로 어깨를 나란히 했지만, 작곡가로서의 영예는 R. 슈트라우스가 먼저 누렸다. 그가 젊은 시절부터 독일을 대표하는 작곡가로 각광 받은 데 비해, 체코 출신 유대인이었던 말러는 마흔 살이 넘어서야 자신의 곡들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말러의 진정한 영예는 사후, 그보다 38년을 더 산 R. 슈트라우스까지 세상을 떠나고 나서야 찾아왔다. 그리고 오늘날 콘서트홀에서는 말러 인기가 R. 슈트라우스 인기를 능가한다.
R. 슈트라우스와 더불어 2014년을 뜨겁게 달굴 말러 공연의 첫 포문은 서울시향이 연다. 미국 휴스턴 교향악단 음악감독인 한스 그라프의 지휘로 말러의 마지막 작품인 교향곡 제10번을 연주한다. 사실 이 곡을 ‘말러의 작품’이라고 부르기엔 다소 어색한 면이 있는데, 말러가 미완성으로 남겨놓은 스케치를 바탕으로 영국 음악학자 데릭 쿡이 마련한 ‘연주가능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말러의 마지막 숨결이 녹아 있고, 그의 마지막 메시지가 담겼다. 무엇보다 ‘필생의 연인’이던 아내 알마를 향한 궁극의 헌사가 가슴을 울린다.
후기낭만파 음악의 극점에 위치한 곡이라 난해하긴 하지만,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곡이기에 말러 애호가라면 절대 놓칠 수 없는 공연이다. 1부에서는 서울시향 악장인 스베틀린 루세브가 영화음악가로 유명한 코른골트의 아름다운 ‘바이올린 협주곡 D장조’를 협연한다(1월 23일, 서울 예술의전당).
끝은 또 다른 시작을 의미한다고 했던가. 흥미롭게도 서울시향 공연 다음 날에는 같은 장소에서 KBS교향악단이 말러의 첫 교향곡인 교향곡 제1번 D장조 ‘거인’을 연주한다. 악단 음악감독이자 ‘말러 스페셜리스트’로도 알려진 요엘 레비가 지휘를 맡고, 지난해 독일 최고 권위의 뮌헨 ARD 국제음악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와 청중상을 수상한 크리스텔 리가 말러와 동시대 인물인 시벨리우스의 ‘바이올린 협주곡 d단조’를 협연한다(1월 24일, 예술의전당).
이틀 연속 공연장 걸음하기가 부담스럽다면 그다음 주 화요일을 주목하자. 최근 선전하는 코리안심포니오케스트라가 상임지휘자 최희준의 지휘로 역시 말러의 ‘교향곡 제1번’을 연주한다. 국내파 대표주자인 박종화가 협연하는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제1번’이라는 부록도 든든하다(1월 28일, 예술의전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