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된 삼화제분은 혼맥으로 정계는 물론 재벌가와도 긴밀히 연결돼 있다.
수천억 원대 자산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박만송(77) 삼화제분 회장은 정계는 물론, 여러 재벌가(家)와 혼맥으로 연결됐다. 친박(친박근혜)계 좌장 격인 서청원 새누리당 의원의 사돈이고, 사촌 박담회 전 온누리교회 부목사를 매개로 범LG, 범두산가와 혼맥이 연결된다.
삼화제분은 박 회장의 이버지 박무신 씨가 1957년 9월 24일 설립했다. 2012년 매출 600 억 원, 영업이익 80억 원을 기록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내실이 단단한 알짜기업이라는 평가를 듣는다.
‘경향신문’은 1991년 10월 10일자에서 ‘박만송 삼화제분 사장(현 회장)이 종합토지세 부과 대상 개인 10위 안에 이름을 올렸다’고 보도했다. 당시 종합토지세 부과 대상 개인 1위는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정부기관 등에서 파악한 박 회장의 자산 규모는 1430억 원(2012년 기준)이다. 부동산가격을 공시지가로 집계했다는 점에서 실제 자산은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박 회장은 부인 정상례 씨와 1남 4녀를 뒀는데, 외아들 박원석 씨는 2012년 10월 5일 삼화제분 대표이사에 취임했다. 박 대표가 바로 서청원 의원의 사위다. 박 대표 부부는 경기초교 동기동창이라는 인연으로 결혼까지 이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혼맥 때문에 삼화제분이 한국일보 인수에 뛰어든 것을 두고 박 대표의 장인이자 ‘조선일보’ 기자 출신인 서 의원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한국일보 인수 우선협상 대상자
서 의원 측 한 인사는 이에 대해 “(서 의원은) 한국일보 인수를 반대했다”며 “사실과 다르다” “억울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한국일보 관계자들도 “서 의원의 만류가 워낙 거세 박 대표가 발을 빼는 것 아니냐는 얘기마저 있다”고 전했다. 박 대표를 잘 아는 경제계 인사들은 “한국일보 인수는 박 대표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28세 때인 1997년 9월에도 삼화제분 대표이사에 오른 바 있으나 2004년 1월 장인인 서 의원이 한화그룹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후 대표이사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언론은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이 서 의원에게 건넨 10억 원의 국민주택채권을 사위인 박 대표가 현금으로 바꿔 사업자금 등으로 사용했다’고 검찰 관계자 입을 빌려 보도했다.
박 대표가 물러난 후 삼화제분 대표이사는 자주 바뀌었다. 사임 직후인 2004년 1월 박만송, 김이조 두 대표이사 체제로 운영됐고, 1년 8개월 뒤인 2005년 8월에는 전문경영인 출신 양성모 씨가 단독으로 대표이사를 맡았다. 2009년 10월 박만송 회장이 다시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2012년 10월 박 대표가 컴백했다. 10년 동안 경영진이 빈번하게 교체됐지만 삼화제분 지분은 2011년 말까지 박만송 90.39%, 박원석 7.96%, 기타 1.65%로 변동이 없었다. 박 대표가 복귀해 재취임한 2012년 박 회장 지분 90.39%가 박 대표 명의로 바뀌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지분을 넘긴 후 가족 간 분쟁이 일어났다. 박 회장 부인 정씨가 아들 박 대표를 상대로 주주권반환청구 소송을 제기한 것. 건강이 악화된 박 회장이 주주권 양도를 위임할 수 없는 상황에서 주주권 변경이 이뤄졌다는 이유에서다. 박 회장은 현재 와병 중이다. 정씨를 대신해 소송을 진행 중인 A 변호사는 “지분 이전이 정당했는지를 다투는 소송”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은 평소 재산을 관리하는 일에 치밀하고 꼼꼼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일례로 1996년 지인 최모 씨에게 빌려준 2억5000만 원을 받아내려고 2009년 서울 서초구 방배동 한 아파트에 대해 대위등기와 경매를 직접 신청한 적도 있다. 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고 사망하자 대위등기와 경매신청을 법원에 직접 한 것. 방배동 아파트 경매 진행은 현재 중단된 상태다. 경매업무를 취급하는 한 전문가는 “돈이 많은 분은 주로 법무법인 등을 통해 경매 신청을 하는데, 특이하게도 채권자가 직접 대위등기와 경매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제분업은 과거 황금알을 낳는 거위였다. 한국이 고도성장하기 전인 1960년 대한제분이 재계 순위 4위에 올랐을 만큼 제분업의 위상은 높았다.
삼화제분 위상도 대단했다. 1967년 박정신 삼화제분 당시 전무는 조인상 미도파백화점 사장이 주축이 돼 결성한 뉴코리아 컨트리클럽 제1호 등록단체 ‘진달래회’ 설립 멤버로 활동했다. 진달래회는 40대 사업가와 고위직 공무원이 어울린 그 시대의 ‘파워엘리트 모임’이었다.
과거 황금알 낳았던 제분업
박정신 씨는 박무신 삼화제분 창업주의 동생으로 삼화제분에서 전무와 사장, 회장을 지낸 후 1995년 타계했다. 박정신 전 회장의 아들이 박담회 전 부목사다. 박 전 부목사는 80년대 중반까지 사업가 길을 걸었다. 85년에는 삼흥 대표이사 자격으로 청년회의소(JC) 서울지부 부회장을 역임했고, 86년에는 국제청년회의소(JCI) 부회장에 선임되기도 했다. 한동안 사업가로 활약하던 박 전 부목사는 여동생의 간절한 중보기도와 고(故) 하용조 온누리교회 목사의 권유로 기독교에 귀의해 목회자 길에 들어선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위치한 탈봇신학대학원에서 목회학과 종교철학을 공부한 뒤 캘리포니아 주 토런스에 위치한 코너스턴 교회에서 사역했다. 이후 서울 온누리교회로 옮겨 부목사를 지냈다. 온누리교회 부목사 재직 때는 미국 바이올라대 재단이사와 출판사 ‘빛과 소금’ 편집장을 역임했다. 2010년 온누리교회에서 떨어져 나와 한홍 목사가 주도한 ‘새로운 교회’에서 부목사를 지냈고, 현재는 목회 활동을 중단한 상태다.
박 전 부목사 부인이 재벌가와의 커넥션으로 유명한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다. 홍 대표의 여동생 홍정원 씨 남편이 구자철 예스코 회장이다. 구 회장은 구태회 LS전선 명예회장의 4남. 구태회 회장은 LG그룹 창업주 구인회 회장의 동생이다. 홍 대표가 재벌가와 교류하며 그림 거래를 활발히 할 수 있었던 데는 이 같은 혼맥이 배경이 됐으리란 얘기도 있다.
박담회, 홍송원 부부는 아들 둘을 뒀다. 두 아들 모두 홍 대표를 이어 미술품 거래를 한다. 큰아들 박원재 씨가 원앤제이 대표고, 둘째 박필재 씨는 서미앤투스 이사로 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