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을지로 3가 ‘동우집’ 감자탕(왼쪽)과 ‘을지면옥’ 냉면.
테이블 간격이 좁아 옆자리 사람의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듣게 되는 ‘동우집’은 순대, 모듬수육, 감자탕 같은 일상의 평범한 음식을 팔지만 맛은 비범하다.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새끼보(짐승 아기집)를 만날 수 있고, 미슐랭 ‘스리스타 셰프’도 만들기 힘든 고소한 순대와 붉은색에 순한 맛을 내는 감자탕은 대한민국 국물 문화의 깊이를 보여준다.
‘동우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빈대떡을 대표선수로 전 열다섯 종류를 만드는 ‘원조녹두집’이 있다. 늙은 노부부의 전 부치는 모습이 눈물겹게 아름답다. 기름에 지진 정직한 빈대떡과 전은 막걸리와 한몸처럼 자연스럽다.
‘동우집’과 ‘원조녹두집’보다 더 깊은 공구 골목에 자리 잡은 ‘우화식당’의 코다리(반건조 명태)찜과 겨울에 제맛을 내는 생굴보쌈은 작고 소박한 것이 뿜어내는 작은 우주다. 식당 입구에서 코다리가 콩나물, 미나리와 섞이고 진한 양념으로 새롭게 태어난다. 쇠고기전도 빠뜨리면 서운해할 이 집의 간판음식이다.
이 세 집이 가진 공통점은 노인 요리사가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다. 거칠고 빠르게 돌아가는 전쟁터 같은 현대식 주방과 다른, 느리게 천천히 돌아가는 고향의 부뚜막 같은 공간에서 오물조물 소꿉장난하듯 음식을 만들어낸다. 자식 같은 노동자들에게 파는 음식의 기술은 배운 것이 아니라 익힌 것이다. 책을 보고 습득한 것이 아니라, 부모에게서 배운 체험이다. 맛과 깊이가 다르고 생각이 다른 음식들이다.
을지로 음식은 을지로 사람을 위한 동네 식당에서 출발했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음식을 먹으려고 외지 사람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을지로는 여전히 좁은 골목을 간직하고 있다. 좁고 작은 것이 지켜낸 순하고 개성 있는 음식이 골목마다 살아 있다.
골목 맛집을 넘어선 평양냉면의 최강자 ‘을지면옥’의 겨울냉면은 더 맛있다. 하얀 속살을 간직한 메밀면이 냉수같이 맑은 양지육수 속에 곱게 자리 잡고 있다. 정화수 같은 국물을 마시면 숙취와 근심이 함께 날아간다. 겨울냉면은 냉면 마니아의 인증서와도 같다. 국물을 내는 데 사용된, 냉면의 오랜 친구인 돼지제육을 이 집보다 잘하는 집을 나는 알지 못한다.
암소구이로 유명한 ‘통일집’과 옛날식 갈비로 명성이 자자한 ‘조선옥’, 그리고 소곱창으로 유명한 ‘우일집’과 ‘양미옥’까지 일일이 거론할 수 없는 식당들이 한국적인 맛으로 살아남았다. 여름이면 을지로 3가역 4번 출구 뒤 이면 도로는 ‘한국의 옥토버페스트’란 말이 딱 들어맞을 정도로 거대한 생맥주 광장으로 변한다. ‘만선호프’ ‘오비호프’ 등 생맥주와 노가리라는 단순하고 강력한 맛 궁합이 만들어낸 술집은 그 나름의 문화가 됐다. 겨울이면 노상에서 먹는 모습은 사라지지만 실내에서 술꾼들이 생맥주와 노가리로 시름을 잊는다.
을지로는 맥주 같은 서양 먹을거리도 한국적인 먹을거리로 변신하게 한다. 작고 좁고 오래된 것만이 만들어내는 음식의 다양성이 참으로 고맙고 소중하다. 을지로 3가 주변에 가면 곧장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