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가 한창인 송도국제도시의 최근 모습.
송도국제학교는 인천경제구역 내 외국인 자녀들을 위한 시설이지만 외국인학교와 달리 내국인 입학이 일정 비율 허용되고 국내 학력도 인정받을 수 있어 학부모들의 관심이 높았던 곳. 2006년 송도국제학교 공사가 착공될 즈음, 이 학교 입학을 위한 학부모들의 ‘인천 러시’가 언론에 자주 소개되곤 했다. 학원가에서는 수년 전부터 송도국제학교 입시준비반이 개설돼 운영 중이다.
그런데 외국인학교로 설립되면 이들 학부모와 학생들의 반발은 물론, 외국인 정주 환경 개선을 꾀한다는 당초 취지와도 배치된다. 내국인이 외국인학교에 입학하려면 일정 기간 해외 거주 경험이 있어야 한다. 국제학교 건립 약속을 믿고 인천으로 이주한 학부모들의 집단 소송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이하 인천자유청)과 송도신도시개발유한회사(NSIC)의 성격 및 관계를 법률적으로 파악해봐야 한다. 만일 국가기관으로 해석될 경우 소송도 가능하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그렇다고 ‘약속 불이행’에 따른 비난을 피하고 학부모와 외국인들의 불만을 잠재울 묘수도 찾아내기 쉽지 않다. 실무자들이 고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외국인학교로 방향 선회, 왜?
안팎으로 복합적인 문제가 발생했다. 가장 큰 이유는 학생 수 부족. 송도국제학교 설립 주체인 NSIC 측은 학생 수가 최소 100명은 돼야 일부 학년의 입학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지만 현재까지 자체 파악한 외국인 학생 수는 20명을 넘지 않는다. 법에 따라 재학생 수의 30% 비율로 내국인을 선발한다 해도 학교 운영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외국인학교로 설립하면 문제는 해결된다. 최근 교육과학기술부가 입법 예고한 ‘외국인학교 등의 설립·운영에 관한 규정’(대통령령)에 따르면 외국인학교는 ‘총정원’의 30%를 내국인으로 선발할 수 있다. 총정원이 2100명인 것을 감안한다면 최대 630명의 내국인 학생이 입학할 수 있어 학교 운영이 가능해진다.
NSIC의 관계자는 “현재 외국인학교 입학을 준비하는 학생도 많고 셔틀버스를 운영하면 서울 강남지역 학생들도 통학이 가능해져 학생 모집에 숨통이 트인다. 그렇다고 학비를 낮출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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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학교 규정을 제정하면서 내국인 입학 규제를 완화한 것도 외국인학교로의 방향 선회를 도왔다는 분석이 나온다. 제정된 안에는 외국인학교의 내국인 입학 규정(해외 거주 5년 이상에서 3년 이상으로 변경)을 완화하고 일정 과목을 이수하면 국내 학력으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재정지원을 할 수 있는 근거도 마련했다.
“외국인학교 관련 규정이 곧 시행되면 NSIC가 외국인학교 설립 신청을 낼 것이다. 각종 규제가 풀리면서 돌파구를 찾던 NSIC의 선택을 도왔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NSIC 내부적으로도 외국인학교 설립이 ‘안전하다’는 판단이 우세하다. 국제학교 운영 주체인 미국 인터내셔널 스쿨 서비스(ISS)가 NSIC에 운영 적자 보전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제학교 개교를 강행한다면 NSIC의 부담은 그만큼 커진다. 세계적 명성의 ISS가 한국(송도국제학교)에서 운영에 ‘실패했다’는 오명을 얻게 되는 것도 부담이다.
외국인학교는 외국인이면 누구나 일정 기준을 갖추면 설립할 수 있어 최악의 경우 NSIC는 ISS와 결별할 수도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재정문제 등으로 골이 깊어지면 ISS를 배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NSIC로서는 오히려 핸들(다루기)하기 편한 측면도 있다. 학교명은 ‘국제학교’로 하고 NSIC가 직접 학교를 운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NSIC 측은 현재 공식적으로 “확정된 게 없다. 발표 때까지 기다려달라”는 태도지만 내부적으로는 각종 후속대책 회의가 잇따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이달 초 미국에서 게일인터내셔널(상자기사 참조) 이사회가 열려 국제학교를 외국인학교로 전환할지, 자립형 사립학교로 운영할지에 대해 논의했다”며 “(외국인학교로 설립) 방향은 정해졌다. 다만 국제학교 때문에 이주해온 가족에게 어떤 조치를 취할지, 인천지역 학생들을 어떻게 배려할지 등 후속대책을 논의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얼마 전부터는 학부모들이 인천자유청과 NSIC로 문의전화를 하면 “(국제학교 대신) 외국인학교로 설립될 것 같다”는 답변을 듣고 있다. 인천자유청 관계자는 “자녀의 미래를 묻는 질문에 솔직히 답변해야 하지 않겠나. 그렇지 않으면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도 있다. ‘해외 거주 경험이 1, 2년인데 입학이 가능하냐’는 질문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송도국제학교(외국교육기관) | 외국인학교 | |
설립 근거 | 경제자유구역 및 제주국제자유도시의 외국교육기관 설립·운영에 관한 특별법 | 외국인학교 등의 설립·운영에 관한 규정 (현재까지는 교육부 지침에 의거) |
입학 자격 및 비율 | 외국인 및 내국인. 내국인은 재학생 수의 10% 이내, 개교 5년까지는 30% 이내에서 비율 결정 | 외국인 및 내국인. 내국인은 3년 이상 해외 거주자로 전체 정원의 30% 이내에서 결정 |
내국인 학력 인정 | 일정 시간 이상 국어, 국사 이수하면 인정 | 일정 시간 이상 국어, 사회 이수하면 인정 |
● 인천자유청 vs NSIC
‘국제학교 설립 불가’의 결정적 이유인 ‘학생 수 부족’을 보는 NSIC와 인천자유청의 시각은 엇갈린다. 전체적인 개발 일정이 늦춰지면서 외국인들의 입국이 지연됐고, 송도 지역에 대한 투자가치에 의문을 가진 투자자들이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는 게 NSIC 측의 설명. 국제학교 주변 진입로 등 기반시설 공사가 늦어진 데다 최근의 경제위기도 한몫했다고 본다. 하지만 인천자유청은 2008년 9월 개교와 외국교육기관 설립 약속을 못 지킨 NSIC의 ‘떠넘기기’라는 반응이다. 개발은 일정대로 진행 중이며, NSIC가 국제학교를 원안대로 지난 9월 개교했다면 개교에 맞춰 공사를 충분히 앞당길 수 있었으리라는 설명이다. 국제학교 설립이 어려워지자 대안을 찾으려는 NSIC의 변명으로 보는 것이다.
송도국제학교 조감도. 내년 3, 4월이면 모든 공사가 끝날 예정이다.
외국인학교를 설립하려면 학교 시설계획 설립 인가 후 승인까지 보통 2, 3년이 걸린다는 게 인천시교육청의 설명이다. 하지만 국제학교는 건축공사가 거의 마무리됐고 운영 프로그램도 갖춰져 있어 승인까지 1, 2개월이면 가능하다.
시교육청 나승혁 주사는 “송도국제학교의 경우 제반 시설을 이미 갖추고 있어 설립 신청을 하면 1개월 안에 인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외국인학교는 전국 단위로 선발하기 때문에 승인 과정에서 ‘기숙사를 설립하라’는 조언은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송도국제학교는 인근에 거주하는 외국인 자녀들의 교육기관이라 기숙사는 짓지 않았다.
관심사였던 인천 거주 학생 선발 비율도 학교장의 판단에 따라 조정할 수 있다. 나 주사는 “지원자가 많고 지역 발전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학교장이 학칙에 따라 선발 비율을 조정하면 교육청은 승인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NSIC의 국제학교 설립 계획을 믿고 인천으로 이주했거나 송도국제학교 입학을 준비해온 학부모와 학생들. 현재 지역민을 위해 무료 영어 프로그램 진행 등 대책을 세우는 것도 이들의 반발을 최소화하기 위한 움직임이다.
외국인 정주 환경을 개선한다는 당초 목표를 스스로 뒤집었다는 비판을 짊어지는 것도, 외국인의 학교 선호도 저하라는 남은 숙제도 NSIC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