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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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여행자 등치는 보석사기단

방콕에서의 황당 사연

  • 박동식 트래블게릴라 멤버 www.parkspark.com

    입력2008-12-22 18: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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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보 여행자 등치는 보석사기단

    보석상이 즐비한 태국 방콕 거리. 이곳에서 당한 보석사기는 지금까지도 소중한 경험이 되고 있다.

    방콕을 여행하고 있을 때였다. 가이드북에 나와 있지는 않았지만 작고 아담한 사원에 들렀을 때 일본인 여행자를 만났다. 그는 내 샌들이 멋지다며 어디서 구입한 것인지 물었다. 내가 신고 있던 샌들은 여행 출발 전 동대문을 샅샅이 뒤진 끝에 고른 것이었다. 그렇게 마음에 쏙 드는 디자인은 처음이었다. 그것을 칭찬하니 그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속으로 ‘너도 보는 눈은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사원 그늘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고 주소도 주고받았다. 그리고 그를 통해 중요한 정보를 얻게 됐다. 방콕에서 매년 보석 엑스포가 열리는데 지금이 그 기간이라는 것이다. 이 기간에는 보석을 아주 싸게 팔기 때문에 자신은 매년 보석 엑스포 때마다 방콕을 찾는다고 했다. 보석은 한 여권에 5개만 한정 판매하지만 3개만 구입한다고 해도 하나는 어머니에게 선물하고, 하나는 여자친구에게 선물한 뒤 남은 하나를 팔면 여행 경비까지 모두 회수된다고 했다. 매우 솔깃하고 유용한 정보였다.

    사실 그날 나는 이미 커다란 보석상에 다녀온 상태였다. 우리 돈 100원만 내면 방콕 시내 주요 관광지를 모두 순회시켜 주겠다는 툭툭 기사를 만났는데, 한 가지 조건이 있었다. 물건을 구입하지 않아도 좋으니 몇몇 상점에 들러달라는 것이었다. 손님만 모시고 가도 자신에게는 오일쿠폰이 나오기 때문에 100원을 받아도 자신은 이익이라고 했다. 시간이 조금 낭비되는 조건이기는 했지만, 거의 공짜로 시내 관광을 할 수 있는 기회이고 그는 하루 종일 바쁘게 일하는 것보다 더 큰 수입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나는 그의 제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면 이 모든 것은 잘 짜인 각본에 불과했으며 그날 나는 100만원이 넘는 보석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툭툭 기사는 나를 몇몇 사원에 안내한 뒤 커다란 보석상으로 데려갔다. 보석 전시가 돼 있는 1층은 매우 고급스러웠다. 그들은 나를 VIP처럼 대접했고 접견실이 있는 2층으로 안내했다. 직원은 거창하게 포장된 사파이어를 보여주며 지금 매우 싸게 파는 기간이기 때문에 고향으로 돌아가서 되팔면 큰 이익이 남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실 나는 보석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적당한 핑계를 둘러대고 빨리 그곳을 빠져나가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불쑥 나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곳에 머문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나에게는 무척 긴 시간이었다. 관심 있는 척 연기도 했고 그러다가 고민하는 눈빛도 보여야 했다. 그러다 결국은 더 생각해보겠다고 말하고 밖으로 나왔다. 보석상을 빠져나올 때의 기분은 감옥에서 해방되는 기분이었다. 그때까지 보석을 사본 적도 없었지만 내 평생 그렇게 고급스럽고 부담스런 상점은 처음이었다.



    우리는 다시 시내 관광을 시작했고 툭툭 기사가 나를 안내한 곳이 바로 일본인 여행자를 만난 작은 사원이었다. 같은 여행자의 정보는 신뢰감이 있었고 모든 것을 다시 한 번 차분하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보석을 구입한 영수증도 보여줬다. 그러나 그가 보여준 영수증 하단에 적힌 주소는 일본이 아니고 말레이시아로 돼 있었다. 그 이유를 물었을 때 그는 조금 당황했지만 내 ‘비상한’ 머리는 한참을 앞질러 있었다. 한 여권에 5개의 보석만 구입할 수 있으니 그는 분명 친구의 여권으로 더 많은 보석을 구입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한 것이다.

    ‘여행비나 뽑자’ 욕심 버려라

    그 순간부터 세상이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당장이라도 달려가 보석을 구입하고 싶은 조바심이 생겼다. 그리고 그의 결정적인 한마디. 오늘은 보석 엑스포의 마지막 날. 오늘 사지 않으면 기회는 영원히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나는 더 늦기 전에 아까 박차고 나왔던 보석상으로 돌아가 보석을 구입하기로 했다. 일본인 친구는 친절하게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툭툭 기사를 불러 나를 다시 보석상으로 데려다줄 것을 부탁했다.

    그날 나는 사파이어를 구입하기 위해 120만원의 카드를 긁었다. 그리고 일기장에 이렇게 썼다. 나는 행운아다. 그러나 그것이 사기라는 것을 다음 날 알았다. 왕궁 가는 길에 비슷한 여행자를 또 만난 것이다. 그 역시 보석 엑스포가 열리고 있으며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했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숙박비를 아끼려고 8명이 잠자는 다인실에 머물던 나에게 120만원은 엄청난 돈이었다. 영수증이 있기는 했지만 내가 갔던 보석상이 어딘지도 알 수 없었고, 찾아간다 해도 영어로 따져가며 환불을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더욱이 보석 구입 후 그들의 권유에 따라 국제특급우편으로 보내달라고 부탁했으니 이미 발송이 완료됐다고 말할 게 뻔했다.

    서울로 돌아왔을 때 다행히(?) 보석은 잘 도착해 있었다. 그러나 그 보석은 서울에서도 20만~30만원이면 충분히 구입할 수 있는 사파이어였다. 툭툭 기사가 나를 안내해준 사원들도 사실 아무 의미 없는 동네 사원에 불과했고, 일본인 여행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도 보석상 및 툭툭 기사와 연계된 한패에 불과했던 것이다.

    15년 전 처음 태국을 여행했을 때의 일이다. 지금도 배낭여행자에게 120만원은 적지 않은 돈이다. 첫 경험을 워낙 크게 당했지만 큰 공부가 됐다. 놀라운 것은 아직도 똑같은 각본의 사기가 방콕에서 벌어진다는 사실이다. 세상에는 언제나 초보 여행자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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