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중순 이명박 대통령은 2009년 초 출범할 대통령 직속 ‘국가브랜드위원회’ 준비위원장에 어윤대(魚允大·63) 전 고려대 총장을 발탁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어 전 총장은 고려대를 브랜드화해 국제적 대학으로 키웠고, 기업 등 민간분야와의 협력에도 적임자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12월 초에는 국가브랜드위 사무처장으로 김근수(50) 기획재정부 국고국장이 내정됐다.
국가브랜드위원회는 이 대통령이 2008년 8·15 경축사를 통해 한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놓기 위해 만들겠다고 한 조직. △주요 도시의 국제경쟁력 제고 △기업 마케팅과 국가 마케팅의 선순환 △문화·예술국가 기반 조성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 제고 △한국 인지도 제고 △한국인·한국문화에 대한 호감도 제고 등을 과업으로 삼게 된다.
어윤대 준비위원장은 준비위 회의를 주재하며 조직구성, 인력충원 등 실무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어 국가브랜드위 초대 위원장에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 4년 가까이 총장을 맡는 동안 4700억원의 기부금·연구비를 유치해 고려대를 속속들이 리모델링하고, ‘민족 고대’ ‘막걸리 고대’를 ‘글로벌 고대’ ‘와인 고대’로 깜짝 변신시킨 그가 대한민국 브랜드 리모델링에서도 큰일을 낼 수 있을까.
‘더 미룰 수 없는 일’
대통령이 국가브랜드위 설립 계획을 밝힌 8·15 이후 여건이 많이 바뀌었다. 세계적 불황과 금융위기 충격으로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상황이라 국가 브랜드 가치상승이라는, 다소 한가해 보이는 주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이뤄내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가장 강력한 지원자인 대통령도 지금은 이 사안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내지 않았을까.
“당연히 영향 받을 것이다. 2009년 한 해 동안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같은 선진국들의 실질 경제성장률이 제로 이하가 된다. 실물경제가 후퇴하면 사회 모든 분야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가 브랜드 강화라는 것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를 키우자는 것이다. 한국 다국적기업의 브랜드 가치보다 한국 국가 브랜드의 가치가 훨씬 더 낮으니 그 갭을 줄이자는 얘기다. 국가 브랜드는 장기적으로 수출 같은 하드웨어를 성장시키는 데도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국가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하는 일, 즉 국가 브랜딩은 그 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니 더 미룰 수가 없는 일이다. 대통령도 늘 ‘국가 브랜드는 소프트웨어의 힘’이라고 강조할 정도로 관심이 크고 이것이 결국 한국경제를 고도화하는 주역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국가 브랜딩 작업에 대한 기대가 크다.”
국가 브랜딩의 영역이나 범위는 어디까지로 잡고 있나.
“국가 브랜딩을 단순하게 생각하면 슬로건을 정해서 알리는 ‘국가 광고’ 수준으로 볼 수 있겠으나 넓게 보면 모든 게 다 얽혀 있는 중요한 일이다. 소국들의 경우 깨끗한 자연환경을 강조하는 뉴질랜드의 ‘100% Pure’나 태국의 ‘Amazing Thailand’, 말레이시아의 ‘Truly Asia’처럼 관광에 방점을 찍는 브랜딩 사례가 많다. 우리의 ‘Korea, Sparkling’도 마찬가지다. 물론 한국도 서비스 부문의 경쟁력을 소홀히 할 수 없겠지만 내 생각에 국가 브랜딩을 관광 같은 분야로 좁게 볼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런 식으로 국한하는 게 아니기에 국가브랜드위 업무와 관련해 여러 부처가 힘을 모으고 있다. 청와대 홍보기획실과 미래기획위원회를 비롯해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외교통상부 등 8개 부처가 준비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산업계로부터도 많은 지원을 받으려 한다. 예컨대 수출을 많이 하는 기업들의 국제 마케팅 전문가를 추천받아 별도의 팀을 꾸리고 그분들이 속한 기업의 인력과 조직력도 활용할 생각이다. 아주 바람직한 산관(産官)협력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사무지원국 설치해 집행력 강화
그렇게 여러 부처가 관여하고 민간부문에서도 참여하게 된다면, 그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유기적 협조와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정부가 국가브랜드위에 상당한 힘을 실어줘야 할 것 같은데….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훨씬 작은 뉴질랜드가 국가 브랜딩에 돌입할 때 첫해 예산이 1000억원이었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예산은 80억원이다. 그러니 비용 대비 효과를 철저하게 따져보는 수밖에 없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국가 홍보를 하겠다며 ‘다이내믹 코리아’를 브랜딩해서 인지도가 많이 높아졌다. 그 후 총리실 밑에 국가이미지위원회를 만들어 일을 했는데, 아이디어는 나와도 위원회에 집행력이 없고 피드백하는 시스템이 없다 보니 효율도 낮고 효과도 미미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국가브랜드위 준비위의 공식, 비공식 회의에서도 많은 전문가가 집행력에 초점을 맞췄다. 나 역시 지금까지 맡아온 일을 통해 충분히 액션 오리엔티드(action-oriented)돼 있기 때문에 그런 쪽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국가이미지위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아예 관련법을 만들어 사무지원국을 설치하기로 했다. 사무지원국 책임자는 1급 공무원이 맡고, 그 아래 40명의 스태프를 둘 계획이다. 민간은 계약직으로 충원하게 된다.”
집행력은 그렇게 확보한다 치고, 피드백 작업 또한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요구하는 난제일 것 같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해외 교민, 특히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피드백 메커니즘을 만드는 것이다. 외국에 나가 계신 분들은 고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지대하지 않나. 이분들을 조직화해 온라인 시스템으로 우리 브랜드 가치의 현주소를 지표화하는 작업을 하는 데는 그리 큰돈이 들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다양한 메커니즘을 가동해 우리의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일을 반드시 할 것이다.”
한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가 경제 규모에 비해 왜 이렇게 낮다고 보나.
“단기간에 물질적으로 급성장을 했지만 그걸 뒷받침할 시스템이 따라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꼭 우리가 뭘 잘못해서라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면 시스템도 따라올 텐데 우리는 이 대목에서도 성미가 급해서 그냥 기다리질 못하는 것이다. ‘독일과 일본도 전후 급성장한 나라인데 왜 국가 브랜드 가치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독일은 산업전통에서 이미 오래전에 미국을 앞선 선진국이었고 일본만 해도 2차 세계대전 이전에 항공모함을 만든 나라다. 그런 일본이 100년 동안 해낸 일을 우리는 40년 만에 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리고 국가 브랜드 가치 평가기관의 설문항목을 보면 우리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예를 들어 ‘People’ 항목에선 ‘이 나라 사람을 고용하겠는가’ ‘이 나라 사람을 친구로 사귀고 싶은가’ 하는 식으로 묻는다. 우리의 짧은 국제화 경험을 감안하면 이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긴 어렵다. 또 ‘Governance’ 항목에선 그 나라가 환경보전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후진국을 얼마나 돕고 있는지를 묻는다. 이런 부문에 취약한 우리나라가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엔 특출한 아이콘이 없다. 강력한 국가 브랜딩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프랑스의 멋, 이탈리아의 관능미, 독일의 품위, 미국의 실용성, 영국의 독창성, 일본의 정교함, 브라질의 젊음처럼 그 나라의 이미지와 직결되는 아이콘이 있는데, 우리가 지닌 속성 가운데 브랜드화할 만한 아이콘은 어떤 것일까.
“그것이 아마도 국가브랜드위의 가장 중요한 결정사항이 될 것이다. 위원회 전문가들의 의견도 듣고 컨설팅 회사나 광고회사 같은 곳으로부터 자문도 구해야 한다. 지금 단계에서 내 개인적인 의견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다만 실체가 있는 이미지를 찾아야 한다는 전제는 확고하다. 단지 이미지뿐이 아닌, 한국이 정말로 강점을 가진 실체 말이다. 그런 것을 끄집어내 브랜딩해야 수출, 관광, 투자유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려면 그저 브랜드 홍보에만 그칠 게 아니라 피드백을 통한 결과 분석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브랜딩 테마는 ‘누가 봐도 분명한 실체’
경영학자인 어 위원장도 그런 전문가 가운데 한 분 아닌가. 국가브랜드위원장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전문가로서 그 ‘실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들어보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참고용’으로.
“무엇보다 지금 세계인들에게 한국이 무엇으로 알려져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가령 휴대전화는 어디를 가도 한국 제품이 노키아와 1, 2등을 다투고 있지 않나. 조선, 자동차 같은 것도 많이 알려져 있고.
물론 우리의 5000년 역사와 문화도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겠으나 이런 분야는 상대적으로 봐야 할 측면이 있다. 우리가 7세기에 첨성대를 만들었지만 이집트 룩소르에 가보면 그보다 몇 세기나 앞서 만든 비슷한 유적지가 있다. 또 경복궁에 깃든 역사와 건축미를 제대로 모르는 외국인이 경복궁과 중국의 자금성을 한눈에 비교한다면 어떤 결론을 내리겠는가. 이런 상대적 고려에 소홀하다간 자칫 한국인의 관점에서 한국 브랜드를 만드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국가 브랜드는 국민의 응집력을 높이는 수단으로도 쓸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외국인의 눈높이에 맞춰 만들어야 한다.
2차대전이 끝난 뒤 독일은 ‘엔지니어링’이라는 아이콘을 팔기로 마음먹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독일은 ‘좋은 상품’ ‘좋은 기계’라는 실체를 갖고 있었다. 그것이 제대로 먹혀들었고 마침내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그래서 나는 ‘누가 보더라도 분명한 실체’가 대한민국 브랜딩의 테마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총장 시절의 고려대 브랜딩 경험도 국가 브랜딩에 활용할 만한 자산이 될 듯하다. 세계 400위 수준이던 고려대를 184위로 도약시킨 배경에는 정교한 홍보전략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대학 순위를 매기는 영국 ‘더 타임스’의 평가기준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거기에 맞춰 준비했다. 배점이 특히 높은 항목은 외국 대학교수들의 평가인데, 고려대가 이 부문 성적이 좋았다. 여기엔 고려대 100주년 기념식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때 100개 대학 총장을 초청해 공항에서부터 VIP로 예우했다. 자기 대학 박사학위 졸업 가운을 입고 참석하게 하고 기념식수도 했다. 기념식에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축사를 했고, 이명박 서울시장이 만찬을 열어줬다. 훌륭한 캠퍼스, 막강한 영향력, 빈틈없는 진행 등을 목격하고서 고려대를 대단한 대학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실이 없는 홍보는 아무 의미가 없다. 홍보효과는 제품의 질이 우수해야 지속되지, 그렇지 못하면 비용만 날리고 몇 달이면 과거로 되돌아간다. 내가 총장으로 있을 때 고려대는 공대 교수가 80명에서 160명으로 2배 늘었고,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 등재 논문 수도 2배 늘었다. 총장 재직 때 짓기 시작했거나 완공한 학교 건물이 전체의 40%에 이른다. 해외 교환학생으로 가는 학생은 연 200명 안팎에서 1500명으로 늘었고. 교우들과 학교재단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국가 브랜드 홍보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강점이 탄탄하게 뒷받침해줘야 날개를 달 수 있다.”
국가브랜드위원회는 이 대통령이 2008년 8·15 경축사를 통해 한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놓기 위해 만들겠다고 한 조직. △주요 도시의 국제경쟁력 제고 △기업 마케팅과 국가 마케팅의 선순환 △문화·예술국가 기반 조성 △국제사회에서의 리더십 제고 △한국 인지도 제고 △한국인·한국문화에 대한 호감도 제고 등을 과업으로 삼게 된다.
어윤대 준비위원장은 준비위 회의를 주재하며 조직구성, 인력충원 등 실무작업을 진두지휘하고 있어 국가브랜드위 초대 위원장에 임명될 가능성이 높다. 4년 가까이 총장을 맡는 동안 4700억원의 기부금·연구비를 유치해 고려대를 속속들이 리모델링하고, ‘민족 고대’ ‘막걸리 고대’를 ‘글로벌 고대’ ‘와인 고대’로 깜짝 변신시킨 그가 대한민국 브랜드 리모델링에서도 큰일을 낼 수 있을까.
‘더 미룰 수 없는 일’
대통령이 국가브랜드위 설립 계획을 밝힌 8·15 이후 여건이 많이 바뀌었다. 세계적 불황과 금융위기 충격으로 당장 먹고살 길이 막막해진 상황이라 국가 브랜드 가치상승이라는, 다소 한가해 보이는 주제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이뤄내기가 쉽지 않을 듯하다. 가장 강력한 지원자인 대통령도 지금은 이 사안을 우선순위에서 밀어내지 않았을까.
“당연히 영향 받을 것이다. 2009년 한 해 동안 미국, 유럽연합(EU), 일본 같은 선진국들의 실질 경제성장률이 제로 이하가 된다. 실물경제가 후퇴하면 사회 모든 분야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국가 브랜드 강화라는 것은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를 키우자는 것이다. 한국 다국적기업의 브랜드 가치보다 한국 국가 브랜드의 가치가 훨씬 더 낮으니 그 갭을 줄이자는 얘기다. 국가 브랜드는 장기적으로 수출 같은 하드웨어를 성장시키는 데도 중요한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국가 브랜드를 키우기 위해 하는 일, 즉 국가 브랜딩은 그 효과가 단기간에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니 더 미룰 수가 없는 일이다. 대통령도 늘 ‘국가 브랜드는 소프트웨어의 힘’이라고 강조할 정도로 관심이 크고 이것이 결국 한국경제를 고도화하는 주역으로 인식하고 있기에 국가 브랜딩 작업에 대한 기대가 크다.”
국가 브랜딩의 영역이나 범위는 어디까지로 잡고 있나.
“국가 브랜딩을 단순하게 생각하면 슬로건을 정해서 알리는 ‘국가 광고’ 수준으로 볼 수 있겠으나 넓게 보면 모든 게 다 얽혀 있는 중요한 일이다. 소국들의 경우 깨끗한 자연환경을 강조하는 뉴질랜드의 ‘100% Pure’나 태국의 ‘Amazing Thailand’, 말레이시아의 ‘Truly Asia’처럼 관광에 방점을 찍는 브랜딩 사례가 많다. 우리의 ‘Korea, Sparkling’도 마찬가지다. 물론 한국도 서비스 부문의 경쟁력을 소홀히 할 수 없겠지만 내 생각에 국가 브랜딩을 관광 같은 분야로 좁게 볼 것은 아닌 듯하다.
그런 식으로 국한하는 게 아니기에 국가브랜드위 업무와 관련해 여러 부처가 힘을 모으고 있다. 청와대 홍보기획실과 미래기획위원회를 비롯해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외교통상부 등 8개 부처가 준비작업에 동참하고 있다. 산업계로부터도 많은 지원을 받으려 한다. 예컨대 수출을 많이 하는 기업들의 국제 마케팅 전문가를 추천받아 별도의 팀을 꾸리고 그분들이 속한 기업의 인력과 조직력도 활용할 생각이다. 아주 바람직한 산관(産官)협력 모델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사무지원국 설치해 집행력 강화
그렇게 여러 부처가 관여하고 민간부문에서도 참여하게 된다면, 그들 사이의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유기적 협조와 지원을 이끌어내기 위해 정부가 국가브랜드위에 상당한 힘을 실어줘야 할 것 같은데….
“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훨씬 작은 뉴질랜드가 국가 브랜딩에 돌입할 때 첫해 예산이 1000억원이었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예산은 80억원이다. 그러니 비용 대비 효과를 철저하게 따져보는 수밖에 없다. 2002년 한일월드컵을 계기로 국가 홍보를 하겠다며 ‘다이내믹 코리아’를 브랜딩해서 인지도가 많이 높아졌다. 그 후 총리실 밑에 국가이미지위원회를 만들어 일을 했는데, 아이디어는 나와도 위원회에 집행력이 없고 피드백하는 시스템이 없다 보니 효율도 낮고 효과도 미미했다.
그런 경험 때문인지 국가브랜드위 준비위의 공식, 비공식 회의에서도 많은 전문가가 집행력에 초점을 맞췄다. 나 역시 지금까지 맡아온 일을 통해 충분히 액션 오리엔티드(action-oriented)돼 있기 때문에 그런 쪽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국가이미지위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고 아예 관련법을 만들어 사무지원국을 설치하기로 했다. 사무지원국 책임자는 1급 공무원이 맡고, 그 아래 40명의 스태프를 둘 계획이다. 민간은 계약직으로 충원하게 된다.”
집행력은 그렇게 확보한다 치고, 피드백 작업 또한 막대한 비용과 인력을 요구하는 난제일 것 같다.
“그래서 여러 가지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그중 하나는 해외 교민, 특히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피드백 메커니즘을 만드는 것이다. 외국에 나가 계신 분들은 고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지대하지 않나. 이분들을 조직화해 온라인 시스템으로 우리 브랜드 가치의 현주소를 지표화하는 작업을 하는 데는 그리 큰돈이 들지 않을 것이다.
아무튼 다양한 메커니즘을 가동해 우리의 브랜드 가치가 올라가는지 내려가는지, 그리고 그 이유는 무엇인지를 찾아내는 일을 반드시 할 것이다.”
한국의 국가 브랜드 가치가 경제 규모에 비해 왜 이렇게 낮다고 보나.
“단기간에 물질적으로 급성장을 했지만 그걸 뒷받침할 시스템이 따라오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꼭 우리가 뭘 잘못해서라기보다는, 시간이 지나면 시스템도 따라올 텐데 우리는 이 대목에서도 성미가 급해서 그냥 기다리질 못하는 것이다. ‘독일과 일본도 전후 급성장한 나라인데 왜 국가 브랜드 가치가 우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독일은 산업전통에서 이미 오래전에 미국을 앞선 선진국이었고 일본만 해도 2차 세계대전 이전에 항공모함을 만든 나라다. 그런 일본이 100년 동안 해낸 일을 우리는 40년 만에 하겠다는 것 아닌가.
그리고 국가 브랜드 가치 평가기관의 설문항목을 보면 우리에게 불리할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예를 들어 ‘People’ 항목에선 ‘이 나라 사람을 고용하겠는가’ ‘이 나라 사람을 친구로 사귀고 싶은가’ 하는 식으로 묻는다. 우리의 짧은 국제화 경험을 감안하면 이 항목에서 높은 점수를 받긴 어렵다. 또 ‘Governance’ 항목에선 그 나라가 환경보전에 얼마나 신경을 쓰는지, 후진국을 얼마나 돕고 있는지를 묻는다. 이런 부문에 취약한 우리나라가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다. 한국엔 특출한 아이콘이 없다. 강력한 국가 브랜딩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프랑스의 멋, 이탈리아의 관능미, 독일의 품위, 미국의 실용성, 영국의 독창성, 일본의 정교함, 브라질의 젊음처럼 그 나라의 이미지와 직결되는 아이콘이 있는데, 우리가 지닌 속성 가운데 브랜드화할 만한 아이콘은 어떤 것일까.
“그것이 아마도 국가브랜드위의 가장 중요한 결정사항이 될 것이다. 위원회 전문가들의 의견도 듣고 컨설팅 회사나 광고회사 같은 곳으로부터 자문도 구해야 한다. 지금 단계에서 내 개인적인 의견을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다만 실체가 있는 이미지를 찾아야 한다는 전제는 확고하다. 단지 이미지뿐이 아닌, 한국이 정말로 강점을 가진 실체 말이다. 그런 것을 끄집어내 브랜딩해야 수출, 관광, 투자유치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러려면 그저 브랜드 홍보에만 그칠 게 아니라 피드백을 통한 결과 분석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8월15일 경복궁 흥화문 광장에서 열린 대한민국 건국 60주년 및 63주년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이명박 대통령 부부와 국민 대표들이 입장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경축사에서 국가브랜드위원회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경영학자인 어 위원장도 그런 전문가 가운데 한 분 아닌가. 국가브랜드위원장으로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전문가로서 그 ‘실체’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들어보는 것은 무리가 아니라고 본다. ‘참고용’으로.
“무엇보다 지금 세계인들에게 한국이 무엇으로 알려져 있는지를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가령 휴대전화는 어디를 가도 한국 제품이 노키아와 1, 2등을 다투고 있지 않나. 조선, 자동차 같은 것도 많이 알려져 있고.
물론 우리의 5000년 역사와 문화도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겠으나 이런 분야는 상대적으로 봐야 할 측면이 있다. 우리가 7세기에 첨성대를 만들었지만 이집트 룩소르에 가보면 그보다 몇 세기나 앞서 만든 비슷한 유적지가 있다. 또 경복궁에 깃든 역사와 건축미를 제대로 모르는 외국인이 경복궁과 중국의 자금성을 한눈에 비교한다면 어떤 결론을 내리겠는가. 이런 상대적 고려에 소홀하다간 자칫 한국인의 관점에서 한국 브랜드를 만드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국가 브랜드는 국민의 응집력을 높이는 수단으로도 쓸 수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외국인의 눈높이에 맞춰 만들어야 한다.
2차대전이 끝난 뒤 독일은 ‘엔지니어링’이라는 아이콘을 팔기로 마음먹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독일은 ‘좋은 상품’ ‘좋은 기계’라는 실체를 갖고 있었다. 그것이 제대로 먹혀들었고 마침내 라인강의 기적을 일궈냈다. 그래서 나는 ‘누가 보더라도 분명한 실체’가 대한민국 브랜딩의 테마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총장 시절의 고려대 브랜딩 경험도 국가 브랜딩에 활용할 만한 자산이 될 듯하다. 세계 400위 수준이던 고려대를 184위로 도약시킨 배경에는 정교한 홍보전략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대학 순위를 매기는 영국 ‘더 타임스’의 평가기준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거기에 맞춰 준비했다. 배점이 특히 높은 항목은 외국 대학교수들의 평가인데, 고려대가 이 부문 성적이 좋았다. 여기엔 고려대 100주년 기념식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그때 100개 대학 총장을 초청해 공항에서부터 VIP로 예우했다. 자기 대학 박사학위 졸업 가운을 입고 참석하게 하고 기념식수도 했다. 기념식에선 당시 노무현 대통령이 축사를 했고, 이명박 서울시장이 만찬을 열어줬다. 훌륭한 캠퍼스, 막강한 영향력, 빈틈없는 진행 등을 목격하고서 고려대를 대단한 대학으로 인식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내실이 없는 홍보는 아무 의미가 없다. 홍보효과는 제품의 질이 우수해야 지속되지, 그렇지 못하면 비용만 날리고 몇 달이면 과거로 되돌아간다. 내가 총장으로 있을 때 고려대는 공대 교수가 80명에서 160명으로 2배 늘었고,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 등재 논문 수도 2배 늘었다. 총장 재직 때 짓기 시작했거나 완공한 학교 건물이 전체의 40%에 이른다. 해외 교환학생으로 가는 학생은 연 200명 안팎에서 1500명으로 늘었고. 교우들과 학교재단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은 바 크다. 국가 브랜드 홍보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강점이 탄탄하게 뒷받침해줘야 날개를 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