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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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이화여대

올해 각종 고시 120여 명 합격 ‘女風 주도’ … ‘이화’ 브랜드 자부심이 숨은 힘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8-12-22 17: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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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더풀! 이화여대

    누구한테도 지지 않으려는 승부욕과 성실함은 이화여대의 강한 경쟁력이다.

    여풍(女風)이 거세다. 이제는 여풍이니 알파걸이니 하는 말이 새삼스럽지도 않다. 최근 각종 국가고시와 취업 등 사회 진출에서 여성들의 괄목한 성장이 두드러진다. 2008년 사법시험 합격자 중 여성이 38.01%를 차지해 역대 최다를 기록했고, 행정고시에서는 여성 합격률이 사상 처음 50%를 돌파했다(51.2%). 그 밖에 어느 분야를 살펴봐도 이런 양상엔 큰 차이가 없다.

    그 여풍의 중심에 이화여대(이하 이대)가 있다. 여대 중에선 단연 독보적일 뿐 아니라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의 명문대에도 뒤지지 않는다.

    지도층 여성 배출 옛 명성 회복

    올해 실시된 각종 고시 성적표를 보면 이대는 사법시험 64명(5위), 행정고시 13명(4위), 변리사 12명(5위), 공인회계사(CPA) 30명(10위) 등의 합격자를 배출해 A급 성적표를 받았다.

    과거부터 이대는 서울대 연·고대 등과 함께 전통 명문대학으로 손꼽혀왔다. 사회지도층 여성을 꾸준히 배출하고 입시 성적도 우수해 여학생들 사이에서는 ‘서울대 못 갈 바엔 이대 간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부터 학생들 사이에서 전반적으로 여대를 기피하는 기류가 확산되고 특히 대학평가에서 종합대학 순위 10위권 언저리를 맴돌면서 ‘예전만 못하지 않냐’ ‘지금의 평판에는 거품이 끼었다’는 식의 비아냥거림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앞에서 본 것처럼 최근 각종 고시에서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많은 졸업생이 사회 각 분야로 보란 듯이 진출하면서 명문대로서의 옛 명성을 회복하고 있다. 일각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저 ‘여학생들은 군대를 가지 않아 공부 흐름이 끊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면 편협한 시각일 터. 그렇다면 과연 그 숨은 원동력은 무엇일까.

    우선 우수한 학생들이 꾸준히 이대에 진학하고 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입시전문기관에 따르면 이대 입시는 합격자 점수 편차가 큰 것이 특징이다. 김영일교육컨설팅㈜ 이치우 진학연구실장은 “대입 수능 400점 만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합격자 성적은 355점에서 380점까지로 폭이 넓다”며 “상위권은 연·고대 일부 학과들과, 그리고 중하위권은 서강대 성균관대 한양대 등과 경쟁을 벌이는 양상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최상위권 학생들이 여전히 이대에 진학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실장은 “상당수 학생과 학부모 가운데 여전히 이대를 선호하는 마니아층이 있고, 여성 엘리트를 키운다는 학교 정책에 대한 선호로 수능 최상위권 학생들이 꾸준히 지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대 특유의 경쟁심도 빼놓을 수 없다. 45회 변리사 시험에서 수석 합격한 박슬기(26·여) 씨는 “좋은 성적으로 들어왔든, 소위 ‘문을 닫고’ 들어왔든 일단 이대라는 틀 안에 들어오면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해야 한다”며 “남녀공학 대학에서처럼 (공부 안 하는) 남학생들이 학점을 ‘깔아주는’ 일이 없기 때문에 매 순간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쟁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서로를 자극하는 것이 커다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한다는 설명이다.

    원더풀! 이화여대

    이화여대 경력개발센터가 1학년 때부터 실시하는 단계별 커리어맵은 취업시즌에 큰 힘이 된다. 이화여대에서 열린 ‘2008 이화 커리어 엑스포’.

    교수들은 학생들의 성실함을 높이 평가한다. 예를 들면 고시를 준비하는 학생들이 대개 학교 수업을 등한시하는 데 비해 이대생들은 고시생들의 학점이 오히려 더 높을 정도로 양쪽 모두를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것. 이대 행정·외무고시 고시반을 지도하는 이근주 교수(행정학)는 “요즘은 고시에서도 예전처럼 암기 위주의 답안을 써내서는 우수한 성적을 거두기 힘들다. 학교 수업을 열심히 듣고 각종 보고서를 제출하면서 종합교양능력이 몸에 밴 덕분에 고시에서도 우수한 성과를 거두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는 외부에서도 웬만큼 동의하는 부분이다. 고려대 사법시험반을 지도하는 김규완 교수(법학)는 “실제 집중도를 봐도 남학생보다 여학생이 뛰어난 것 같다”며 “남학생의 경우 게임이나 술 등 공부를 방해하는 갖가지 유혹에 노출되기 쉬운 반면, 이대생을 비롯한 여대생들은 서로에 대한 경쟁의식과 성실함이 흔들림 없이 공부를 하게 하는 큰 힘이 된다”고 말했다.

    취업 빙하기 서글픈 현실 반영도

    학교의 전폭적인 지원도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각종 고시별로 지도교수가 배정되고, 별도의 예산을 책정해 학생들의 시험준비를 지원한다. 특강 개설, 학습실 지원, 도서구입 지원, 복지후생 지원, 장학금 지원, 선배와의 만남을 통한 멘토링 프로그램 등이 다양하게 운영되고 있다. 변리사반을 지도하는 이대 조윌렴 교수(물리학)는 “예컨대 물리학과의 경우 금년도 대교협 평가에서 학생교육, 장학금, 연구논문 및 연구비 등의 평가항목에서 98.5점(정량평가 만점)이라는 탁월한 점수를 받을 만큼 학생들에게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이화’라는 브랜드에 대한 자부심이 결합되면 화룡점정(畵龍點睛). 사법시험을 준비하는 김모(27·여) 씨는 “합격하는 선배들을 보면 나도 합격해서 ‘이화’라는 이름을 빛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공부에 지쳐 힘들 때도 ‘나는 이화인이니까 결국 잘될 거야’라는 자기암시를 통해 몸을 추스른다”고 했다.

    물론 고시에서 독보적 실적을 내고 있는 것이 한국의 서글픈 현실을 반영한다는 지적도 있다. 경기 악화로 취업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일부 여성 구직자들 사이엔 ‘최고의 스펙(spec)은 남자’라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 정도다. 이처럼 여성들의 취업이 어려워진 상황에서 여성이 자신의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받을 수 있는 영역이 고시를 비롯한 각종 자격증 시험이라는 것이다. 이대 재학생으로 올해 외무고시에 합격한 김정윤(25·여) 씨는 “내 능력을 제대로 평가받고 발휘할 수 있는 분야는 고시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시험준비에 매달렸다”며 “아직까지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차별이 엄연히 존재하다 보니 많은 여대생이 고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이대 교수와 학생들은 “이대가 ‘여대 중 최고’라는 데 만족하지 않고 한국에서, 나아가 세계에서 최고 대학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힌다. 고시에서 괄목할 성과를 보인 것은 숨은 역량의 일부가 드러난 데 지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고시뿐 아니라 사회 각 분야에서 변함없이 여성 엘리트의 사회 진출을 주도해가겠다는 것. 이화여대의 힘, 그 미래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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