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그렇게 따지고 사나’라며 2005년 중국산 김치 파동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1000원짜리 김밥도 곧잘 사먹었다. 그러나 화학약품으로 만든 중국의 가짜 달걀은 그냥 지나치기엔 너무 큰 충격이었다. 각종 중국산에 어떤 비밀이 숨어 있을지, 중국이 무서워졌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지난해 수입된 중국산 농산물만 해도 약 1조5000억원어치. 중국 땅에서 난 먹을거리를 안 먹고 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과연 우리 생활은 중국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돼 있을까. 미뤄 짐작하지 말고, 직접 내 생활의 ‘중국 함수’를 풀어보기로 했다. ‘차이나 프리(China Free)’, 일주일간 중국산은 입지도 먹지도 쓰지도 사지도 않기. 과연 가능할까?
[8월17일]
출근 준비부터가 고역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닌 게 없다. 요새 즐겨 입는 청바지, 스커트, 셔츠가 죄다 중국산이다. 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과 번갈아 신는 두 켤레의 구두도 모두 중국산. 난감했다.
중국산이면 어쩌나 싶어 옷에 붙은 라벨을 살피기가 겁날 정도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얼마 전 미국 출장길에 산 스커트가 ‘메이드 인 모로코’다. 상의로는 구입한 지 오래돼 라벨이 지워진 탓에 원산지 판별이 불가능한 것으로 골랐다. 신발장을 뒤져 2년 전 태국에서 8000원에 산 샌들을 찾아냈다. 당연히 태국산일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메이드 인 브라질’이다.
목이 말라 편의점에 들렀다. ‘천재적인 맛’이라 찬양하며 요즘 거의 매일 마시다시피 하는 옥수수차 음료도 안타깝지만 중국산 옥수수가 원재료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산 자몽 과즙 30%가 들어간 자몽주스를 샀다. ‘정말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한 출근길이군!’ 혼자 속으로 웃었다.
사무실에서 쓰는 텀블러도 중국제다. 삼성전자는 2005년부터 모든 노트북 제품을 중국 청진 현지 공장에서 생산하고 있다. ‘내 노트북도 삼성전자 제품이니 일주일간 차이나 프리를 위해 일을 하지 말아야 하나?’ 그러나 안타깝게도(?) 내 노트북은 2002년 모델 센스Q10이어서 ‘국산’이라고, 삼성전자 홍보실의 어떤 과장이 판정해줬다.
이날 밤, 아예 옷들을 모두 꺼내 원산지별로 구분해봤다. 중국산 20벌, 국산 18벌, 원산지 표기 없음 10벌, 기타 5벌로 중국산이 가장 많았다. 10만원대의 스커트에서부터 인터넷에서 7500원을 주고 산 반바지까지, 그동안 다양한 가격대의 ‘메이드 인 차이나’를 입어왔던 것이다.
[8월18, 19일]
18일 토요일 점심, 결혼한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차이나 프리’ 중이라고 했더니 친구가 딸아이의 장난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죄다 중국산이야. 먹을거리는 중국산을 피해보겠는데 장난감은 찜찜해도 어쩔 수 없어.” 영어그림책을 집어들었다. 그래도 이 책은 미국에서 생산됐으려니 했는데 ‘Printed in China’라고 써 있다.
늦게 도착한 다른 친구가 멋진 검은색 가방을 메고 나타났다.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3만원에 산 것이란다. 요즘 동대문시장은 ‘중국제 유통시장’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광저우 등지에서 들여온 중국산 제품들로 넘쳐나고 있다. 분명 중국제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라벨을 찾아 가방 속을 뒤졌다(이제 완전히 버릇이 됐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메이드 인 코리아’였다. 무척 반가웠다.
저녁에는 서울 강남역 근처에서 약속이 있었다. 저녁식사 메뉴를 골라야 하는데 ‘차이나 프리’가 문제였다. 스파게티를 먹자니 소스와 버무려진 음식재료들의 정체가 의심스러웠고, 삼겹살을 먹자니 김치며 마늘이 모두 중국산일 것 같았다. 낙지불고기 집에 들어갔다. “여기 중국산 낙지를 쓰나요?” 주인 아주머니는 “중국산은 아니다”라며 먼 산을 바라본다. 그래서 그냥 나왔다. 일행의 따가운 눈총이 느껴졌다. 주꾸미 요리를 하는 식당에 들어갔다. 요새는 주꾸미철이 아니라 베트남산 주꾸미를 쓴단다. “주재료가 중국산 아니면 된 거지 뭐…”라며 자리에 앉았다.
19일 일요일에는 엄마가 차려준 ‘안전한 밥상’ 덕에 차이나 프리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잘 지냈다. 집에서 먹는 쌀, 김치, 마늘, 생선, 각종 채소는 친척이 사는 시골이나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구해온 국산이다. “멸치만 중국산이다”라는 엄마의 말에 멸치볶음에는 젓가락을 댈 수 없었다. 요새 시장에서는 국산 멸치를 구경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8월20, 21일]
20일 점심은 광화문의 ‘에코밥상’에서, 21일 점심은 서교동 ‘문턱 없는 밥집’(‘주간동아’ 600호 윤구병 인터뷰 기사 참조)에서 안전하게 해결했다. 두 식당 모두 국산 유기농 식재료만으로 음식을 만드는 ‘차이나 프리’ 식당이다.
에코밥상의 한 끼 가격은 8000원(정식과 비빔밥 모두)으로 직장인 점심값으로는 좀 비싼 편이다. 그러나 1인분 식재료 값만 5000원에 이른다고 하니, 알고 보면 싼 가격이다. 김경애 대표는 “5000원 이하를 받는 식당에서 국산 재료만 쓰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내친김에 국산 유기농 식재료만으로 반찬을 만들어 판다는 마포의 ‘동네부엌’을 찾아가봤다. 이 가게 박미현 대표는 16년 경력의 영양사 출신으로, 자기 자신도 20년 가까이 유기농 식생활을 실천하고 있다. ‘동네부엌’은 식재료를 구하지 못하는 반찬은 아예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에는 연근조림을 내놓지 않는다. “여름에는 연근이 파랗게 물들어서 사용하질 못하거든요. 요새 시장에서 파는 연근은 모두 표백처리됐다고 보면 돼요.” 박 대표의 말이다. 중국산 멸치가 올라오는 우리 집 식탁을 위해 이날 ‘동네부엌’에서 진도산 멸치로 만든 멸치볶음을 샀다.
우연히 식당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한 업체의 물품단가표를 구해서 봤다. 갈비탕 1600원, 육개장 1200원, 추어탕 1100원, 뚝배기불고기 1500원…. 1인분씩 깡통이나 팩에 들어 있어 따로 요리할 필요없이 끓여 내놓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이 업체에 전화를 걸어봤다. “거의 뭐, 중국산이죠. 저희도 국내 회사에서 물건을 받아 공급하는데, 그 회사들이 중국에서 수입해오는 것 같아요. 깡통제품은 중국산이고, 팩에 들은 제품은 중국에서 재료를 수입해 만든 것 같고요.”
취재를 가는 와중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우산을 사려고 문구점에 들렀다. 하지만 죄다 중국산. “국산 우산은 없나요?” “요샌 중국산 아니면 없어요.” 비를 맞으며 터덜터덜 걸었다. 금세 비가 그쳐 다행이었다.
저녁때가 되었다. 왜 이렇게 밥 때가 자주 돌아오는지….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인사동 떡카페 ‘질시루’에 들렀다. 우리 쌀, 우리 농산물로만 떡을 만들어 파는 곳이다. 그곳에 가는 길에 4500원짜리 식사에 밑반찬으로 양념게장이 나와 대학 때부터 자주 다니던 식당을 봤다. 어떻게 그 가격이 가능할까? 이날은 도저히 입맛이 당기지 않았다. 밤톨만한 떡 2개와 명함 크기만한 떡 3개를 5000원에 샀다. 예쁘고 맛있게 생겼지만 밥 한 그릇도 안 돼 보이는 양이다. “이거 먹고 배가 부를까요? ㅠ ㅠ ” 나도 모르게 이렇게 묻고 말았다.
[8월22일]
‘인도산 꽃무늬 스커트에 국산 흰 운동화’라는 괴상한 조합의 모습으로 출근했다. 전날 브라질산 샌들에 달린 3가닥의 줄 중 한 가닥이 끊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며칠째 계속 신고 다녀서 생긴 재앙인 듯했다. 줄 한 가닥이 끊어진 샌들을 신고 뒤뚱뒤뚱 걸으니, 생일선물로 받은 튼튼한 중국산 웨지힐 구두가 그리워졌다.
우리 회사 구내식당은 중국산 먹을거리로부터 안전할까? 구내식당을 책임지고 있는 업체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죽순 등 일부만 중국산이라고 했다. 전체 식재료의 6%, 그러니까 한 끼에 한두 가지 식재료만 중국산이라고. 중국산 김치 파동을 계기로 비싸더라도 국산 고춧가루를 쓴다고 했다. 나는 아무래도 의심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 업체의 설명이 못 미더워 구내식당의 쌀밥에 집에서 싸간 총각김치와 김으로 저녁을 때웠다. 이로써 차이나 프리 체험이 끝났다.
[에필로그]
고백하건대, 지난 일주일간 사용 중단에 실패한 중국산이 하나 있다. 음악을 들려주고 ‘미드’를 보여주는 나의 절친한 벗 MP3플레이어를 심각한 금단 증세 탓에 하루 만에 다시 집어들고 만 것. 애플 아이팟이 전량 중국에서 생산되듯, 국산 브랜드인 내 MP3 플레이어도 중국 현지공장에서 전량 생산된다. 이런 의문이 들었다. 한국 본사가 기획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디자인하며 판매하는 이 제품을 중국에서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로 ‘중국산’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한가?
물론 이것 말고도 지난 일주일간 알게 모르게 먹고 입고 쓰고 산 중국산이 더 있을 것이다. 엄마가 싸준 김밥 속 단무지가 중국산일 수도 있고, 사은품으로 받은 사무실용 슬리퍼가 사실은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것일 수도 있다. 테이크아웃 커피의 일회용 컵도 중국에서 수입된 것일지도 모른다. 매일 사용하는 샴푸와 린스는 아예 원재료가 어디서 난 것인지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1년 동안 중국산을 사용하지 않은 경험을 ‘A Year Without Made In China’라는 책으로 펴낸 미국의 프리랜서 여기자 사라 본지오르니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산 없이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까다롭고 돈이 많이 드는 일이 돼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뒤, 아마도 나는 ‘중국산 안 쓰고 살기’에 도전할 만큼 용기가 있지 않을 것 같다.”
나도 그렇다. 중국산을 안 쓰고 사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돈과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어쩌면 바보 같은 일이다. 그렇다면 모든 중국산이 깨끗하고 안전하며 정직해지길 바라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글로벌 경제체제하의 세계시민으로서 한국인과 미국인, 그리고 각국의 사람들이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던져진 셈이다.
‘중국은 세계의 공장’,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지난해 수입된 중국산 농산물만 해도 약 1조5000억원어치. 중국 땅에서 난 먹을거리를 안 먹고 살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과연 우리 생활은 중국과 얼마나 밀접하게 연관돼 있을까. 미뤄 짐작하지 말고, 직접 내 생활의 ‘중국 함수’를 풀어보기로 했다. ‘차이나 프리(China Free)’, 일주일간 중국산은 입지도 먹지도 쓰지도 사지도 않기. 과연 가능할까?
[8월17일]
출근 준비부터가 고역이다. ‘메이드 인 차이나’가 아닌 게 없다. 요새 즐겨 입는 청바지, 스커트, 셔츠가 죄다 중국산이다. 매일 들고 다니는 가방과 번갈아 신는 두 켤레의 구두도 모두 중국산. 난감했다.
중국산이면 어쩌나 싶어 옷에 붙은 라벨을 살피기가 겁날 정도였다.
그러나 다행히도 얼마 전 미국 출장길에 산 스커트가 ‘메이드 인 모로코’다. 상의로는 구입한 지 오래돼 라벨이 지워진 탓에 원산지 판별이 불가능한 것으로 골랐다. 신발장을 뒤져 2년 전 태국에서 8000원에 산 샌들을 찾아냈다. 당연히 태국산일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메이드 인 브라질’이다.
목이 말라 편의점에 들렀다. ‘천재적인 맛’이라 찬양하며 요즘 거의 매일 마시다시피 하는 옥수수차 음료도 안타깝지만 중국산 옥수수가 원재료였다. 그래서 이스라엘산 자몽 과즙 30%가 들어간 자몽주스를 샀다. ‘정말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한 출근길이군!’ 혼자 속으로 웃었다.
2년째 즐겨 입던 블라우스도 ‘중국산’이었다.
이날 밤, 아예 옷들을 모두 꺼내 원산지별로 구분해봤다. 중국산 20벌, 국산 18벌, 원산지 표기 없음 10벌, 기타 5벌로 중국산이 가장 많았다. 10만원대의 스커트에서부터 인터넷에서 7500원을 주고 산 반바지까지, 그동안 다양한 가격대의 ‘메이드 인 차이나’를 입어왔던 것이다.
[8월18, 19일]
18일 토요일 점심, 결혼한 친구 집에 놀러 갔다. ‘차이나 프리’ 중이라고 했더니 친구가 딸아이의 장난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죄다 중국산이야. 먹을거리는 중국산을 피해보겠는데 장난감은 찜찜해도 어쩔 수 없어.” 영어그림책을 집어들었다. 그래도 이 책은 미국에서 생산됐으려니 했는데 ‘Printed in China’라고 써 있다.
늦게 도착한 다른 친구가 멋진 검은색 가방을 메고 나타났다. 동대문 평화시장에서 3만원에 산 것이란다. 요즘 동대문시장은 ‘중국제 유통시장’이라는 자조적인 목소리가 나올 정도로 광저우 등지에서 들여온 중국산 제품들로 넘쳐나고 있다. 분명 중국제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라벨을 찾아 가방 속을 뒤졌다(이제 완전히 버릇이 됐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메이드 인 코리아’였다. 무척 반가웠다.
저녁에는 서울 강남역 근처에서 약속이 있었다. 저녁식사 메뉴를 골라야 하는데 ‘차이나 프리’가 문제였다. 스파게티를 먹자니 소스와 버무려진 음식재료들의 정체가 의심스러웠고, 삼겹살을 먹자니 김치며 마늘이 모두 중국산일 것 같았다. 낙지불고기 집에 들어갔다. “여기 중국산 낙지를 쓰나요?” 주인 아주머니는 “중국산은 아니다”라며 먼 산을 바라본다. 그래서 그냥 나왔다. 일행의 따가운 눈총이 느껴졌다. 주꾸미 요리를 하는 식당에 들어갔다. 요새는 주꾸미철이 아니라 베트남산 주꾸미를 쓴단다. “주재료가 중국산 아니면 된 거지 뭐…”라며 자리에 앉았다.
19일 일요일에는 엄마가 차려준 ‘안전한 밥상’ 덕에 차이나 프리에 대한 스트레스 없이 잘 지냈다. 집에서 먹는 쌀, 김치, 마늘, 생선, 각종 채소는 친척이 사는 시골이나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서 구해온 국산이다. “멸치만 중국산이다”라는 엄마의 말에 멸치볶음에는 젓가락을 댈 수 없었다. 요새 시장에서는 국산 멸치를 구경하기가 어렵다고 한다.
서울 광화문 ‘경희궁의 아침’ 단지 내 상가의 에코밥상에서는 안전하게 ‘차이나 프리’ 식사를 할 수 있었다.<br> 에코밥상의 상차림(오른쪽).
20일 점심은 광화문의 ‘에코밥상’에서, 21일 점심은 서교동 ‘문턱 없는 밥집’(‘주간동아’ 600호 윤구병 인터뷰 기사 참조)에서 안전하게 해결했다. 두 식당 모두 국산 유기농 식재료만으로 음식을 만드는 ‘차이나 프리’ 식당이다.
에코밥상의 한 끼 가격은 8000원(정식과 비빔밥 모두)으로 직장인 점심값으로는 좀 비싼 편이다. 그러나 1인분 식재료 값만 5000원에 이른다고 하니, 알고 보면 싼 가격이다. 김경애 대표는 “5000원 이하를 받는 식당에서 국산 재료만 쓰리라 기대하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동네부엌’ 박미현 대표(왼쪽)와 진도산 멸치볶음을 사는 기자.
우연히 식당에 식자재를 납품하는 한 업체의 물품단가표를 구해서 봤다. 갈비탕 1600원, 육개장 1200원, 추어탕 1100원, 뚝배기불고기 1500원…. 1인분씩 깡통이나 팩에 들어 있어 따로 요리할 필요없이 끓여 내놓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이 업체에 전화를 걸어봤다. “거의 뭐, 중국산이죠. 저희도 국내 회사에서 물건을 받아 공급하는데, 그 회사들이 중국에서 수입해오는 것 같아요. 깡통제품은 중국산이고, 팩에 들은 제품은 중국에서 재료를 수입해 만든 것 같고요.”
취재를 가는 와중에 갑자기 소나기가 내렸다. 우산을 사려고 문구점에 들렀다. 하지만 죄다 중국산. “국산 우산은 없나요?” “요샌 중국산 아니면 없어요.” 비를 맞으며 터덜터덜 걸었다. 금세 비가 그쳐 다행이었다.
저녁때가 되었다. 왜 이렇게 밥 때가 자주 돌아오는지….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인사동 떡카페 ‘질시루’에 들렀다. 우리 쌀, 우리 농산물로만 떡을 만들어 파는 곳이다. 그곳에 가는 길에 4500원짜리 식사에 밑반찬으로 양념게장이 나와 대학 때부터 자주 다니던 식당을 봤다. 어떻게 그 가격이 가능할까? 이날은 도저히 입맛이 당기지 않았다. 밤톨만한 떡 2개와 명함 크기만한 떡 3개를 5000원에 샀다. 예쁘고 맛있게 생겼지만 밥 한 그릇도 안 돼 보이는 양이다. “이거 먹고 배가 부를까요? ㅠ ㅠ ” 나도 모르게 이렇게 묻고 말았다.
[8월22일]
‘인도산 꽃무늬 스커트에 국산 흰 운동화’라는 괴상한 조합의 모습으로 출근했다. 전날 브라질산 샌들에 달린 3가닥의 줄 중 한 가닥이 끊어지고 말았기 때문이다. 며칠째 계속 신고 다녀서 생긴 재앙인 듯했다. 줄 한 가닥이 끊어진 샌들을 신고 뒤뚱뒤뚱 걸으니, 생일선물로 받은 튼튼한 중국산 웨지힐 구두가 그리워졌다.
우리 회사 구내식당은 중국산 먹을거리로부터 안전할까? 구내식당을 책임지고 있는 업체에 전화를 걸어 물어봤다. 죽순 등 일부만 중국산이라고 했다. 전체 식재료의 6%, 그러니까 한 끼에 한두 가지 식재료만 중국산이라고. 중국산 김치 파동을 계기로 비싸더라도 국산 고춧가루를 쓴다고 했다. 나는 아무래도 의심이 많은 사람인가 보다. 업체의 설명이 못 미더워 구내식당의 쌀밥에 집에서 싸간 총각김치와 김으로 저녁을 때웠다. 이로써 차이나 프리 체험이 끝났다.
[에필로그]
고백하건대, 지난 일주일간 사용 중단에 실패한 중국산이 하나 있다. 음악을 들려주고 ‘미드’를 보여주는 나의 절친한 벗 MP3플레이어를 심각한 금단 증세 탓에 하루 만에 다시 집어들고 만 것. 애플 아이팟이 전량 중국에서 생산되듯, 국산 브랜드인 내 MP3 플레이어도 중국 현지공장에서 전량 생산된다. 이런 의문이 들었다. 한국 본사가 기획하고 기술을 개발하고 디자인하며 판매하는 이 제품을 중국에서 만들었다는 이유 하나로 ‘중국산’이라고 하는 것이 타당한가?
물론 이것 말고도 지난 일주일간 알게 모르게 먹고 입고 쓰고 산 중국산이 더 있을 것이다. 엄마가 싸준 김밥 속 단무지가 중국산일 수도 있고, 사은품으로 받은 사무실용 슬리퍼가 사실은 중국 공장에서 생산된 것일 수도 있다. 테이크아웃 커피의 일회용 컵도 중국에서 수입된 것일지도 모른다. 매일 사용하는 샴푸와 린스는 아예 원재료가 어디서 난 것인지 알아낼 방도가 없었다.
1년 동안 중국산을 사용하지 않은 경험을 ‘A Year Without Made In China’라는 책으로 펴낸 미국의 프리랜서 여기자 사라 본지오르니는 이렇게 말했다.
“중국산 없이 살 수는 있다. 그러나 이는 하루가 다르게 점점 더 까다롭고 돈이 많이 드는 일이 돼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뒤, 아마도 나는 ‘중국산 안 쓰고 살기’에 도전할 만큼 용기가 있지 않을 것 같다.”
나도 그렇다. 중국산을 안 쓰고 사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거니와, 돈과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어쩌면 바보 같은 일이다. 그렇다면 모든 중국산이 깨끗하고 안전하며 정직해지길 바라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글로벌 경제체제하의 세계시민으로서 한국인과 미국인, 그리고 각국의 사람들이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던져진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