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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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선진화? 정부부터 선진화하라”

신중식·오홍근 전 국정홍보처장 취재지원 선진화 방안에 쓴소리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7-08-29 10: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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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언론 선진화? 정부부터 선진화하라”

    오홍근 전 처장

    노무현 정부는 언론계의 강력한 반발에도 국정홍보처(처장 김창호)가 일방적으로 마련한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이하 선진화방안)에 따라 기자실 통폐합을 강행하고 있다.

    국정홍보처의 선진화방안은 서울 광화문 중앙청사, 경기 과천청사, 대전청사 세 곳에 합동브리핑센터를 마련하는 대신 각 부처의 기자실을 전면 폐지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청와대, 검찰청, 경찰청, 국방부, 금융감독위원회 등은 업무 특수성과 지리적 위치를 감안해 기존 브리핑실과 기사송고실을 유지하도록 했다. 이는 현 정부가 2003년 출범과 동시에 도입한 개방형 브리핑제도를 확대 강화한 것이다. 선진화방안은 또 각 부처에 브리핑실과 기사송고실을 제외한 업무공간에 대해 기자들의 무단출입 방지 조치를 강구하라는 내용도 담고 있다.

    국정홍보처는 이에 대해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모든 언론에 취재 기회를 공평하게 제공하기 위한 취지라고 설명한다. 일선 기자들의 취재편의를 위한 조치라는 말도 덧붙인다. 과연 그럴까?

    최근 경찰청에서 국정홍보처의 선진화방안을 토대로 내놓은 추가 조치는 기자들의 취재를 지원하기는커녕 오히려 통제하려는 속내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추가 조치는 합동브리핑센터와 서울지역 8개의 기사송고실 및 접견실을 제외한 지역에 기자들의 출입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것. 특히 기자들이 일선 형사를 만나려면 사전에 공문으로 신청해야 하고, 전화취재는 홍보담당관실을 거쳐야 한다.

    “언론통제 위한 수단” vs “출입기자 기득권 지키려는 저항”



    일선 기자들은 당연히 반발하고 있다. 여전히 인권침해 소지가 많은 경찰이 언론의 접근을 원천적으로 봉쇄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민의 알 권리가 침해당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여기에 국정홍보처가 마련한 ‘취재지원에 관한 기준안’이 기자들의 반발에 기름을 부었다.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자율적으로 이뤄졌던 비보도나 엠바고(보도유예)를 어긴 언론사에 대한 제재를 정부가 직접 하겠다는 내용이 기준안에 포함된 것. 국정홍보처 차장과 각 부처 정책 홍보관리관들로 구성된 ‘취재지원 운영협의회’에서 그에 대한 제재 권한을 갖겠다고 했다.

    청와대는 8월13일 남북 정상회담 개최 사실에 대한 엠바고를 깼다는 이유로 국내 언론사 두 곳과 해외 언론사 한 곳에 이미 제재 조치를 한 차례 단행했다. 제재 내용은 3개월 또는 2주일간 청와대 출입 제한과 일정 기간 정보접근 권한 제한이다.

    이런 가운데 일부 부처가 정부 합동브리핑센터에서 브리핑을 시작하자, 급기야 기자들이 단체행동에 돌입했다. 노동부, 외교통상부, 건설교통부 출입기자들이 내부 결의를 통해 정부의 선진화방안에 반대성명을 내고 해당 부처의 브리핑 참석을 거부한 것. 보건복지부와 과학기술부 기자단도 이에 동참했다. 이 같은 움직임은 다른 부처의 기자들에게까지 확대될 태세다. 청와대는 그러나 “기본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현재 정부와 기자들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기자들은 국정홍보처의 선진화방안을 ‘언론통제를 위한 새로운 수단’으로 인식하는 반면, 청와대와 국정홍보처는 기자들의 반발을 폐쇄적인 출입기자제도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저항으로 보고 있다. 이를 바라보는 국민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과연 국정홍보처의 선진화방안은 이름 그대로 선진화방안일까, 아니면 새로운 언론통제 수단일까?

    국정홍보처가 신설된 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5월24일. 지금까지 이곳을 거쳐간 전직 처장은 모두 5명이다. 오홍근 처장을 시작으로 2대 박준영, 3대 신중식, 4대 조영동, 5대 정순균 처장이다.

    ‘주간동아’는 정부의 선진화방안에 대한 전직 처장들의 평가를 들어보기로 했다. 한때 국정홍보처의 책임자로 정부의 대(對)언론정책을 총괄했던 이들이기에 어느 정도 합리적인 평가와 대안을 내놓으리란 기대에서다. 특히 현 정부에 몸담았던 조영동 정순균 두 전 처장의 의견이 궁금했다.

    조영동·정순균 전 처장은 “노코멘트”

    조 전 처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후배다. 부산일보 출신으로 2003년 3월 노무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국정홍보처장을 맡았다가 이듬해 2월, 17대 총선에 출마하기 위해 그만뒀다. 그는 출범 초기에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개방형 브리핑제도를 도입한 장본인이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정부의 선진화방안에 대해 누구보다 할 말이 많을 듯했다. 하지만 그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요즘 그런 일에 일절 신경을 끄고 산다. 전혀 관심을 갖고 있지 않아서 뭐라고 말할 처지가 못 된다”는 것. 조 전 처장은 원론적인 입장마저도 밝히길 거부했다.

    - 그래도 현 정부 초기에 언론정책을 총괄하지 않았는가. 대언론 정책에 대한 기본적인 입장은 있을 것 같은데….

    “그때는 내가 총괄하지 않았다. 문화관광부에서 주로 했다.”

    - 개방형 브리핑제도를 처음 도입한 장본인 아닌가.

    “신문에서 언뜻 보기는 했지만 내용은 잘 모른다. 그래서 말할 처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 그렇다면 개방형 브리핑제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할 말이 없다. 양해해주기 바란다. 미안하다.”

    조 전 처장의 후임은 정순균 전 처장이다. 중앙일보 출신인 그는 2003년 국정홍보처 차장으로 시작해 2004년부터 1년간 일했다. 따라서 개방형 브리핑제도의 도입은 물론, 시행과정에 대해서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이다. 현재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으로 있는 그는 수차례 연락을 취했지만, 바쁜 일정을 이유로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반면 김대중 정부 시절 국정홍보처장을 지낸 오홍근 신중식 두 전 처장은 자신들의 소신과 견해를 비교적 솔직하게 밝혔다. 두 사람은 현 정부의 선진화방안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내놨다.

    오 전 처장은 먼저 정부가 취재지원 운영협의회를 만들어 비보도와 엠바고에 대해 직접 제재를 가하는 일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했다.

    “엠바고에 대해 이견이 많지만, 남북 정상회담처럼 국익과 관계 있는 일은 지켜줘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정부가 직접 나서는 것은 온당하지 않은 듯하다. 기자들이 자율적으로 해야 한다.”

    이어지는 일문일답이다.

    - 국정홍보처가 언론사의 입장이나 여론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채 선진화방안을 강행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론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았다면, 그것은 적절치 않다. 그리고 그것이 올바른 일이라면 기자들이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한다. 언론은 정부의 적이 아니다. 언론이나 정부는 모두 똑같이 국민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또 언론의 선진화도 필요하다. 우리나라 언론의 민주주의 역사는 일천하다. 게다가 언론과 정부는 함께 선진화돼야 한다. 어느 한쪽만 먼저 선진화하라고 하면 불평이 나오게 돼 있다. 그런 점에서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최근 경찰청이 서울시내 31개 일선 경찰서 기자실을 폐쇄하고 기자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이제 일선 경찰관들을 만나려면 사전에 공문으로 신청하고, 전화취재도 홍보담당관실을 거쳐야 한다. 국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이 있는데….

    “외국 경찰서에 기자실이 없다고 치자. 그게 옳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자들에게만 선진화하라고 하면 안 된다. 경찰 스스로도 그만큼 선진화돼야 한다. 경찰은 아직 선진화가 안 됐다. 특히 인권과 관련해서는 어느 누구도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미국 프랑스 영국 경찰만큼의 수준이 됐을 때 외국 기자실의 운영 사례를 참고하는 것이 맞다.”

    - 정부의 대언론 정책은 어떤 방향으로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는가.

    “내가 중앙일보에서 오랫동안 기자로 일해봐서 잘 안다. 동아 조선 중앙에도 문제가 많다. 언론은 사주를 신문제작의 잣대로 삼아서는 안 된다. 정부도 어떤 사람의 생각이 잣대가 돼서는 안 된다. 언론이나 정부 모두 국민의 알 권리를 잣대로 삼아야 한다.”

    신 전 처장의 평가는 더욱 비판적이었다. 17대 총선 때 열린우리당 후보로 출마해 국회의원이 된 그는 민주당으로 당적을 옮겼다가 다시 탈당, 얼마 전 대통합민주신당에 합류했다.

    신 전 처장은 “선진화방안이라는 표현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기자실의 준폐쇄 조치가 선진화와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라는 것. 오히려 정부 각 부처가 업무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면 보완을 위해 필요한 구역을 제외하고 더 개방해야 한다는 것이 신 전 처장의 생각이다.

    신 전 처장은 비보도와 엠바고에 대한 정부의 직접 제재 방침에 대해서도 “어리석기 짝이 없다. 정부는 언론을 통해 국민에게 정책을 전달하기 위한 방법으로 순기능을 강조하고 보완해야 하는데, 오히려 정책이 차단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평가했다.

    신 전 처장은 이어 “남북 정상회담과 대선 같은 중요한 일들이 있는데, 정부는 왜 언론과의 갈등관계를 지속적으로 끌고 가려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다음에 어떤 정권이 출범할지 모르지만 언론과의 관계는 분명 원상회복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최근 경찰청의 기자실 통폐합 및 출입통제 조치에 대한 신 전 처장의 생각은 어떨까?

    “국민이 가장 많이 접촉하는 것이 경찰이다. 경찰조직에는 아직 인권침해 우려가 남아 있고, 수사과정에 대한 민원이 수없이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그 대척점에 언론이 있다. 특별 사안을 제외하고는 수사 초동단계에서부터 기자들의 취재가 허용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 전 처장은 “언론과 권력은 항상 길항관계이자 긴장관계”라면서 “그 관계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정부 권력이 정책을 수립하거나 집행하는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것이 바로 정부의 바람직한 대언론 정책 방향이라는 것이다.

    한편 전남도지사를 역임 중인 박준영 전 처장은 “현역 지방자치단체장으로서 정부의 정책에 대해 평가하기 곤란하다”면서 답변을 유보했다.

    기자들의 집단반발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정부의 취재지원시스템 선진화방안. 과연 일선 기자들의 취재편의와 국민의 알 권리를 신장하기 위한 조치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재검토가 필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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