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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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예술 화음은 언제 흐르나

서울시 예술단원 한 달 넘게 농성 계속 … ‘개혁인가 개악인가’ 시민들은 헷갈려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5-10-05 15: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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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예술 화음은 언제 흐르나

    한 달째 서울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에서 천막시위를 하고 있는 세종문화회관 예술 노조의 모습.

    #장면1: 9월30일 청계천 개통 전야제, 광화문 동아일보사 앞 청계천 광장. 백두산 천지를 비롯한 한반도의 대표적인 10개의 강과 저수지에서 가져온 물이 청계천에 도착하면서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이어 ‘마에스트로’ 정명훈 씨가 이끄는 서울시교향악단(서울시향)의 아름다운 오케스트라 선율이 흘러나왔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새로운 출발’로 이름 붙여진 이날 행사에 시민들은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장면2: 같은 장소 청계천 새물맞이 행사. 애당초 서울시향과 함께 서울합창단, 서울시국악단의 합동 공연이 예정돼 있었지만 얼마 전 전격적으로 취소됐다. 세종문화회관 예술단 노조의 결사적인 반대 때문. 행사가 열리는 시각, 서울시예술단원들은 세종문화회관 중앙계단 위 비닐천막에서 한 달 넘게 농성을 계속하고 있었다.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서울시 예술단 소속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극단적인 엇갈림이다. 지휘자 정명훈 씨의 영입과 함께 세간의 관심을 집중시킨 서울시향과 달리, 국내 최고 수준의 예술단체임을 자부해온 세종문화회관 산하 5개 예술단체(서울시국악관현악단, 서울시극단, 서울시무용단, 서울시합창단 등)들은 2005년 10월, 서울시로부터 한마디로 버림받는 신세가 됐다. 최근 1년 사이에 세종문화회관에는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음악계, 특히 성악계는 지금 공황 상태라고 할 수 있죠.”

    국립오페라단 한 단원의 고백이다. 그간 ‘국립’이라는 명칭만 빼고는 여타 국립 예술단들과 동일한 대접을 받아온 서울시합창단의 해체 소식 때문이다. 함께 음악을 하는 처지에서 바라보는 서울시 예술단체들의 상황은 자못 충격적이다.



    “예술계 전체가 공황 상태”

    그간 이들 서울시 소속 예술단체들(서울시향 포함)은 조직구조상 재단법인 세종문화회관의 산하 단체지만 서울시로부터 연간 200억원에 이르는 예산을 지원받아 왔다. 그러나 최근 서울시향이 독자적인 재단법인으로 분리되자 여타 비인기 서울시 예술단들은 낮은 수익성과 눈에 띄지 않는 공연 성과로 인해 여론의 도마에 오르내리게 됐다. 이어 이러한 성과 부진이 낮은 예술적 수준 논쟁으로 이어지며 청산 대상으로까지 거론되기 시작한 것.

    반발도 거세게 일었다. 가장 먼저 성악계는 “서울시합창단 입단을 목표로 공부하고 있는 수많은 성악과 학생들에게 절망을 안기는 것은 물론, 40여년을 이어온 합창단을 해체하거나 비정규직화하는 것은 지방 합창단에 연쇄적인 파급 효과를 미친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절박한 상황은 성악계에만 그치지 않고 국악계와 무용계를 비롯한 전체 예술계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처지가 바뀌리라고 믿는 사람은 드물다. 이미 오래전부터 서울시 소속 예술단체들은 적잖은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는 것이 이명박 서울시장을 비롯한 서울시 공무원들의 공통된 시각이기 때문이다.

    한 달 넘게 천막농성을 하고 있는 세종문화회관 산하 5개 서울시 예술단 노조원들은 세종문화회관 분수대에서 예술단 해체 계획에 반대하는 ‘광화문 음악회’를 무료로 열거나 야간 촛불시위를 벌이며 시민들을 상대로 한 홍보전에 돌입했다.

    예술단 노조에 따르면 서울시는 교향악단을 제외한 5개의 서울시 예술단체를 해체할 계획이라며 이를 저지하기 위해 행동에 나섰다고 주장한다. 노조는 “문화도시 건설을 기치로 내걸고 당선된 이명박 시장이 취임하면서 바로 예술과 무관한 일본의 금융 컨설팅 회사인 ‘노무라 컨설팅’에 세종문화회관 개혁방안을 맡겨 공공예술 통제책을 마련했다. 서울시 3급 공무원을 세종문화회관에 파견하여 정상적인 노사관계를 훼방하고 일방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해왔다”며 반발한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강력히 부인하고 있지만 노조가 입수한 서울시 비밀 문건이나, 서울시향에 집중된 서울시의 지원 행태를 보면 어느 정도 사실임을 부인하기 힘들다.

    먼저 세종문화회관이 작성한 ‘예술단체 운영체제 개선방안’은 규정상 노조와의 협상을 통해 운영체제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으나, 협상이 실패할 때는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라는 항목을 원용해 “서울시는 예술단에 대한 예산지원 중단 방침 결정 등의 조치를 선행해야 한다”고 제안하고 있다. 한마디로 비효율적인 예술단체들은 차례로 독립 법인화해 서울시의 지원을 끊겠다는 계획이다. 이 방안은 (재)세종문화회관은 대관(공연단체에 유료로 빌려주는 사업) 중심으로 수익성을 올리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예술단 노조원들은 서울시가 이미 예술단 해체를 결정했고 단원들을 해고했다고 간주한다. 현재 세종문화회관 측에 의해 해고를 당한 김은정 노조지부장 또한 “1600억원의 거금을 들여 효용성이 애매한 노들섬 오페라 하우스를 짓겠다는 이명박 시장이 수십 년을 이어온 예술단체에 대해서는 단지 수익성이 낮다는 이유로 해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분개한다. 노조에서 미디어를 담당하는 한상희(32) 씨는 “서울시가 자체적인 노사 합의를 무시하고 일방적인 평가(오디션)를 근거 삼아 자연스레 인원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인원 감축이 진행되다 보면 단체의 해체로 이어지는 절차를 밟을 것이다”면서 “이는 예술의 공공성을 무시하고 예술인들의 자존심을 해치는 서울시의 횡포”라고 주장한다.

    이 같은 파열음에 대한 서울시의 생각은 무엇일까.

    “서울시 예술단 문제는 세종문화회관 사안으로 서울시가 관여할 문제가 아닙니다. 한마디로 단원들이 오디션을 피해 철밥통을 지키겠다는 뜻이겠죠.”(서울시 박희수 문화과장)

    서울시는 서울시 예술단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확정된 계획도 갖고 있지 않다고 답한다. 노조 측이 제시한 각종 비밀 문건에 대해서도 “이들을 경쟁력 있는 예술단으로 변모시키기 위해 각계 전문가들의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을 뿐이다”며 일방적인 추진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서울시는 만 55세까지 실효성 있는 평가 절차를 거치지 않고 정년을 보장해준 관행은 폐지하고, 단원들에 대해서는 적확한 재평가(오디션)를 통해 재계약을 결정하겠다는 것.

    공공예술 화음은 언제 흐르나

    새로운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서울시향 단원들을 지휘하고 있는 정명훈 예술고문.

    사실상 공무원 신분을 가진 예술인들에 대한 평가와 재계약 문제는 가장 뜨거운 논란거리가 되고 있다. 노조 측은 “평가 방법도 일정치 않고 단 5분의 시험으로 인생이 뒤바뀌는, 감원을 위한 수단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반발하지만, 서울시와 세종문화회관 측은 오디션 강행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다.

    평가와 재계약 뜨거운 논란

    이러한 대립이 격화되자 음모론까지 제기됐다. 서울시가 서울시향을 세계 수준의 교향악단으로 키우기 위해 수십억원을 들여 세계적인 지휘자 정명훈 씨를 고문으로 섭외하고, 100억원에 이르는 예산을 지원하고 있는데, 이는 필연적으로 비인기 예술단의 지원 감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내용이다. 이는 2009년 노들섬에 세워질 오페라 하우스를 위해서 서울시향이 빠른 시간 안에 세계적 수준으로 올라서야 한다는 조바심이 한 원인이라는 해석과 궤를 함께한다. ‘서울시향 프로젝트’는 일류만을 챙기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시정 방향과도 일맥 상통하기 때문에 비난의 화살이 자연스레 이 시장으로 집중되기도 하지만, 일각에서는 “과거 누구도 하지 못했던 문화개혁을 이 시장이 하고 있다”는 찬사가 나오기도 한다.

    예술계에 정통한 한 인사는 “서울시가 비인기 예술단의 재단법인화, 혹은 오디션을 통한 단원 선발을 들고 나온 얘기는 한마디로 조용히 없어지라는 얘기나 다를 바 없다”고 해석한다. 그럼에도 애당초 ‘시립’이라는 타이틀에 안주하고 경쟁력 있는 예술단으로 거듭나지 못한 비인기 예술단에 대한 비난 여론도 비등해졌다. 이미 문화예술계에서 ‘공공성’만을 강조하는 사회주의 성격의 예술단의 존립 근거가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비난의 화살이 서울시 공무원과 세종문화회관 경영진에게 쏟아지지 않고 예술인에게 책임이 전가된다는 것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비인기 예술단체에 대해 제대로 지원을 해준 적이 있냐”는 단원들의 주장과, “경쟁력 없는 예술단은 설 자리가 없다”는 서울시의 정책이 세종문화회관에서 대충돌하고 있는 셈이다. 과연 시민들은 어느 편을 들어줄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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