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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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딱한 정비 잣대가 인사동 망친다

문화지구 관리계획 현실과는 괴리 … 살아 있는 문화공간 만들기 보완책 필요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3-04-23 18: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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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딱딱한 정비 잣대가 인사동 망친다

    문화지구로 지정돼 있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거리 전경.

    미술과 전통, 문화의 공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찾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 일대가 문화지구로 지정돼 있음에도 당국의 근시안적인 관리로 원래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는 사례들이 빈발하고 있다.

    인사동 관리는 2000년부터 준비되고 올 2월 서울시가 최종 승인한 ‘인사동 문화지구 관리계획’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 주 내용은 전통문화업소를 지키고 문화의 거리 이미지를 가꾸는 것 등이다. 이에 따라 골동품점, 표구점, 필방·지업사, 화랑, 공예품점 등 5개 업소를 권장시설로, 전통찻집, 한정식집, 생활한복점, 액자점 등 4개 업소를 준권장시설로 지정해 조세 감면, 신·개축비 융자 등의 혜택을 주고 있다.

    반면 단란주점, 유흥주점, 패스트푸드점, 패밀리레스토랑, 커피전문점 등 인사동 이미지와 맞지 않는 업종은 신규 영업이 제한된다. 서울시는 기존의 비문화 업종에 대해서도 불법영업 단속이나 위생감시 등 행정지도를 통해 인사동 문화지구에서 퇴출시킬 방침이다. 또 현재 주말에만 실시하는 ‘차 없는 거리’도 전일제로 점차 확대하고 최종적으로는 인사동거리를 보행전용지역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언뜻 이런 계획은 인사동의 전통을 살리고 문화적인 공간으로 가꾸어 나가는 데 더없이 좋은 방법으로 보이지만 실제 시행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차 없는 일요일 거리’ 잡상인 판쳐

    인사동은 수십년 동안 미술인과 미술 애호가들의 공간으로 사랑을 받아왔다. 도시 한가운데에 위치해 내·외국인들이 생활 속에서 미술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자연스럽게 고대와 현대 미술이 만나고 오래된 것과 현대적인 것이 어우러져 있었다.



    그런데 행정당국이 획일적인 정비의 잣대를 들이대면서 오히려 인사동에서 미술이 사라져가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가로 정비를 위해 플래카드를 인사동 남단에만 부착할 수 있게 함으로써 ‘미술의 거리’라는 정취가 크게 줄어들었다. 게다가 일반음식점 등의 성업으로 지가가 상승하면서 임대료가 크게 올라 갤러리들이 사관동 등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지난해 인사동을 떠난 화랑은 갤러리 사비나, 인사미술공간, 갤러리 버질, 전갤러리, 갤러리아치윌, 갤러리 보다의 6개. 이 화랑들은 기획전을 통해 인사동을 문화적으로 풍요롭게 가꿔온 공간이었다. 반면 새로 개관한 화랑은 갤러리 가이아, 하나아트갤러리, 노암갤러리, 갤러리 드림, 하나로갤러리 5개로 기획전보다는 전시공간을 빌려주는 대관화랑으로 기능하고 있다.

    미술전문지 ‘미술시대’ 유석우 주간은 “일요일을 차 없는 거리로 지정한 이후 인사동은 한마디로 아수라장이 됐다”며 “예술이 꽃피고 서정과 미감이 넘쳐야 할 거리가 잡상인이 판치고 미술과는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이 넘쳐나는 유원지가 되고 말았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또 “1주일 단위로 전시회가 열리는 곳이 인사동인데 평일에도 차 없는 거리로 지정하면 전시회를 여는 작가들이 무거운 작품을 어떻게 운반하느냐”며 “이 같은 여건을 고려하지 않은 탁상행정은 미술계를 지원하기는커녕 침체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당국에서 전통과 문화를 장려하는 취지에서 권장시설로 지정한 공예품점, 문화상품점 등에서 전통과 무관한 외국 공예품이나 액세서리 등을 파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고, 유흥업소도 크게 늘어 인사동이 ‘제2의 대학로’가 돼간다는 우려도 높다. 대학로도 원래 연극 공간으로 유명했으나 정비 이후 유흥업소가 크게 늘어나고, 지가 상승으로 공연장이 삼선교 등 주변으로 밀려나 문화의 거리로 만들고자 했던 당국의 원래 취지가 무색해진 사례다.

    딱딱한 정비 잣대가 인사동 망친다

    문화지구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당국으로부터 영업 정지 처분을 받은 갤러리 아트사이드 1층 갤러리 카페 밖(위)과 안(가운데).그러나 이곳은 시낭송회와 40여회의 전시회를 연 복합문화공간이었다(아래).

    또 이제까지 합법적으로 영업해온 기존의 ‘비문화적’ 업체들에 대해 업종 변화를 유도하고 있는 당국의 조치도 업소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인사동 주도로변의 경우 문화지구로 지정되기 이전부터 북쪽 입구에는 24시간 편의점, 커피를 파는 갤러리 카페(갤러리 아트사이드 건물 1층), 그리고 남쪽 초입에는 유명 커피숍 체인인 스타벅스 등이 영업중이다.

    특히 최근 갤러리 카페에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 것을 두고 구청의 잣대가 지나치게 경직돼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층은 카페와 갤러리 겸용의 복합문화공간이고 2, 3층은 전문 갤러리인 이 건물은 1999년 신축 당시 서울시가 정한 건폐율(60%)을 13% 넘어선 상태에서 준공허가를 받았다.

    그런데 2002년 1월 제정된 서울시 문화관리조례에 따라 인사동에 있는 3층 건물의 건폐율이 60%에서 80%로 완화돼 건물이 적법화되자 건물 소유주(대표 이동재)는 지난해 11월 설계변경을 신청했다. 이때 구청에서는 1층 시설을 인사동 문화지구조례에 맞는 용도로 바꾸면 승인해주겠다는 ‘조건부 승인’을 제시했고, 소유주가 이를 거부하자 12월17일 영업정지 처분을 내린 것.

    소유주는 이 처분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다시 행정소송을 냈으며 5월1일 법원의 최종선고를 앞두고 있다. 건물주인 이동재 대표는 “구청에서는 갤러리 카페가 인사동의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하지만 커피와 와인만 파는 게 아니라 벽면을 갤러리로 이용하고 수년 동안 시낭송회를 여는 등 복합문화공간으로 기여해왔다”며 “카페에서 전통차를 파는 것과 전통찻집에서 커피를 파는 것이 어떻게 다르다는 것인지, 구청이 생각하는 문화라는 게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갤러리 카페에서는 그동안 이생진, 박희진 시인의 시낭송회를 2년간 매달 1회씩 열어왔으며 젊은 작가들을 발굴, 그들에게 무료로 전시장을 제공해 2000년부터 3년간 모두 41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인사동 공평동 등의 주민과 상인, 갤러리 주인 등으로 구성된 인사전통문화보존회도 이 카페에 대해 “전시와 시낭송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주관해오며 작가와 시민의 만남의 장, 과거와 현대예술이 공존하는 시민 문화휴식 공간으로 기능해 인사동 문화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그러나 구청 관계자는 “인사동 건물의 건폐율을 80%로 완화한 것은 문화관리조례의 취지에 맞는 업종에 대해 인센티브를 주자는 차원”이라며 “갤러리 카페는 문화지구의 권장시설이 아니기 때문에 건폐율을 완화해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또한 구청측은 현재 문화지구조례에 정해진 업종 외에 다른 복합문화공간이나 대안공간은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이 사안이 인사동의 적절한 관리법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케 해주는 사례라고 지적한다. 인사동에서 갤러리를 운영했던 김모씨는 “일률적으로 커피를 팔지 못하게 하는 등의 형식적인 제재를 가할 게 아니라 커피를 팔면서도 갤러리 역할을 하는, 그야말로 문화적인 공간을 육성하고 지원하는 것이 더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며 “당국이 문화지구로 관리하기 위한 주민협약 채널로 활용하는 인사전통문화보존회에도 문화전문가들이 자문위원으로 참여해 인사동을 어떻게 꾸밀 것인지 등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논란 속에 갤러리 카페에서 진행됐던 이생진 시인 등의 시낭송회는 자취를 감췄고, 이곳에서 올해 열릴 예정이었던 신하순, 정규리 등 11건의 전시회는 빛을 보지 못하게 될 위기에 처했다. 당국의 획일적인 관리방식으로 인해 자연스럽고 오래된 것들이 가치를 잃어가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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