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적(政敵)의 송곳니를 뽑아버리려면? 상대가 특허라도 내놓은 양 떠드는 이슈를 먼저 해결하면 된다. 이 전략으로 정적을 무너뜨린 사람이 조지 W 부시 현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아버지 부시나 레이건 전 대통령의 공화당식 전략으로는 절대 대통령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미국 43대 대통령선거 때 부시 대통령은 낙태와 복지개혁과 같은 공화당의 핵심 이슈는 잠시 제쳐두고, 대신 교육여건 개선, 빈곤층 축소 등의 민주당 이슈를 슬쩍 훔쳐왔다. 이렇게 구축한 ‘보수적인 머리와 동정심 있는 가슴’이라는 이미지로 전체 인구의 24%를 차지하는 흑인과 라틴계 유권자들의 마음을 일부 공화당 쪽으로 기울게 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공화당은 백인들의 표만으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해온 백인 표는 줄어들고, 라틴계 인구가 급속히 늘고 있었던 것이다(1990년부터 10년 사이 라틴계 미국인은 60%나 늘어났다). 부시는 백인과 소수민족을 동시에 달랠 ‘복수문화주의’라는 수상쩍은 기치를 내세우면서 공화당 전당대회 때 콜린 파월과 곤돌리자 라이스와 같은 흑인 지도자에게 지지 연설을 부탁했다. 흑인 성가대의 등장이 선전효과를 극대화했다. TV 채널을 돌리다 이 광경을 본 미국인들은 채널이 잘못된 게 아닐까 의심했을 것이다.
‘파워게임의 법칙’은 정치 승부사들의 이야기다. 이 책의 저자 딕 모리스는 ‘대통령을 만드는 남자’로 기억되는 정치 컨설턴트다. 그는 96년 불가능해 보였던 클린턴 대통령의 재선을 성공시켜 ‘불패 신화’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미 그는 ‘신군주론’과 ‘VOTE. COM’에서 자신의 정치전략을 소개한 바 있는데, ‘파워게임의 법칙’은 이야기체로 풀어 쓴 ‘신군주론’쯤 된다. 역대 미국 대통령선거 현장에서의 ‘승리 전략’을 정리한 이 책은 때론 노골적인 표현도 주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부시 진영의 ‘민주당 따라가기’에 적잖이 당황한 당시 고어 민주당 후보가 부시와의 차별화를 위해 TV 토론에 나와 자신의 계획을 시시콜콜 설명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주제넘다’ ‘역겹다’ ‘거칠고 무례하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것이 고어 후보의 주요 패인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따라오는 부시를 떨쳐내려다 자신이 떨어진 것이다. 96년 클린턴을 재선시킬 때 모리스가 선택한 카드가 바로 상대의 이슈를 선점하는 전략이었다.
모리스는 이 책에서 정치적으로 승리하는 여섯 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첫째, 상대의 이슈를 내 방식으로 선점, 해결한다. 둘째, 첨예한 이슈로 상대 진영을 분할, 제압한다. 셋째, 겸손과 설득과 비전으로 조직을 개혁한다. 넷째, 첨단기술로 대중의 감성을 사로잡는다. 다섯째, 공동체에 위기가 닥치면 적대적인 사람들까지 결집시킨다. 여섯째, 원칙이 아니라 방법을 바꿔서 승리한다.
원칙만 나열해놓으면 추상적으로 느껴지지만 실제 파워게임의 현장은 흥미진진하다. 자, 그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링컨을 ‘정직한 모사꾼’이라고 부른 까닭은 무엇일까. 링컨의 승리 전략은 둘째 ‘첨예한 이슈로 상대 진영을 분열시켜 정복하라’였다. ‘노예제 폐지’라는 급진적인 이슈를 들고 나온 링컨의 지지율은 40%에 지나지 않았다. 10명 중 6명이 반대했는데도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의 분열 덕분이었다. 노예제의 유지냐 폐지냐를 놓고 절묘하게 양다리를 걸쳤던 민주당은 공화당 후보 링컨이 ‘노예제 폐지’를 들고 나오자 쪼개져버렸다.
100년 뒤 역시 공화당 후보였던 닉슨은 링컨과 정반대의 방식으로 적을 분열시켰다. 즉 링컨이 노예제에 반대하는 원칙을 분명히 해서 민주당을 분열시켰다면, 닉슨은 베트남전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 속내를 감춤으로써(일명 꿀 먹은 벙어리 작전) 라이벌 민주당이 서로 싸우게 만들었고 그 분열을 틈타 대통령이 됐다.
놀랍게도 2002년 노무현의 대선전략은 딕 모리스의 ‘파워게임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시장개혁이라는 보수적 아젠다를 선점하고, 인터넷이라는 첨단 미디어를 제대로 활용했으며, 무엇보다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불가능해 보였던 대통령 당선을 이루어냈다.
‘승자만이 꿈을 이룰 기회를 얻는다’는 저자의 말은 냉혹한 정치세계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그러나 승리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중도 퇴진한 닉슨의 예에서 보듯 원칙 없는 승자에게는 비참한 말로가 있을 뿐이다. 모리스의 전략은 당선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당선 후에도 유용한 지침이 될 것이다. 겸손하라, 그러나 원칙을 버리지 마라.
파워게임의 법칙/ 딕 모리스 지음/ 홍수원 옮김/ 세종서적 펴냄/ 472쪽/ 1만3000원
미국 43대 대통령선거 때 부시 대통령은 낙태와 복지개혁과 같은 공화당의 핵심 이슈는 잠시 제쳐두고, 대신 교육여건 개선, 빈곤층 축소 등의 민주당 이슈를 슬쩍 훔쳐왔다. 이렇게 구축한 ‘보수적인 머리와 동정심 있는 가슴’이라는 이미지로 전체 인구의 24%를 차지하는 흑인과 라틴계 유권자들의 마음을 일부 공화당 쪽으로 기울게 하는 데 성공했다. 당시 공화당은 백인들의 표만으로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해온 백인 표는 줄어들고, 라틴계 인구가 급속히 늘고 있었던 것이다(1990년부터 10년 사이 라틴계 미국인은 60%나 늘어났다). 부시는 백인과 소수민족을 동시에 달랠 ‘복수문화주의’라는 수상쩍은 기치를 내세우면서 공화당 전당대회 때 콜린 파월과 곤돌리자 라이스와 같은 흑인 지도자에게 지지 연설을 부탁했다. 흑인 성가대의 등장이 선전효과를 극대화했다. TV 채널을 돌리다 이 광경을 본 미국인들은 채널이 잘못된 게 아닐까 의심했을 것이다.
‘파워게임의 법칙’은 정치 승부사들의 이야기다. 이 책의 저자 딕 모리스는 ‘대통령을 만드는 남자’로 기억되는 정치 컨설턴트다. 그는 96년 불가능해 보였던 클린턴 대통령의 재선을 성공시켜 ‘불패 신화’를 다시 한번 입증했다.
이미 그는 ‘신군주론’과 ‘VOTE. COM’에서 자신의 정치전략을 소개한 바 있는데, ‘파워게임의 법칙’은 이야기체로 풀어 쓴 ‘신군주론’쯤 된다. 역대 미국 대통령선거 현장에서의 ‘승리 전략’을 정리한 이 책은 때론 노골적인 표현도 주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부시 진영의 ‘민주당 따라가기’에 적잖이 당황한 당시 고어 민주당 후보가 부시와의 차별화를 위해 TV 토론에 나와 자신의 계획을 시시콜콜 설명하는 모습은 시청자들에게 ‘주제넘다’ ‘역겹다’ ‘거칠고 무례하다’는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것이 고어 후보의 주요 패인이 되었음은 물론이다. 따라오는 부시를 떨쳐내려다 자신이 떨어진 것이다. 96년 클린턴을 재선시킬 때 모리스가 선택한 카드가 바로 상대의 이슈를 선점하는 전략이었다.
모리스는 이 책에서 정치적으로 승리하는 여섯 가지 전략을 제시했다. 첫째, 상대의 이슈를 내 방식으로 선점, 해결한다. 둘째, 첨예한 이슈로 상대 진영을 분할, 제압한다. 셋째, 겸손과 설득과 비전으로 조직을 개혁한다. 넷째, 첨단기술로 대중의 감성을 사로잡는다. 다섯째, 공동체에 위기가 닥치면 적대적인 사람들까지 결집시킨다. 여섯째, 원칙이 아니라 방법을 바꿔서 승리한다.
원칙만 나열해놓으면 추상적으로 느껴지지만 실제 파워게임의 현장은 흥미진진하다. 자, 그가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통령 링컨을 ‘정직한 모사꾼’이라고 부른 까닭은 무엇일까. 링컨의 승리 전략은 둘째 ‘첨예한 이슈로 상대 진영을 분열시켜 정복하라’였다. ‘노예제 폐지’라는 급진적인 이슈를 들고 나온 링컨의 지지율은 40%에 지나지 않았다. 10명 중 6명이 반대했는데도 그가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민주당의 분열 덕분이었다. 노예제의 유지냐 폐지냐를 놓고 절묘하게 양다리를 걸쳤던 민주당은 공화당 후보 링컨이 ‘노예제 폐지’를 들고 나오자 쪼개져버렸다.
100년 뒤 역시 공화당 후보였던 닉슨은 링컨과 정반대의 방식으로 적을 분열시켰다. 즉 링컨이 노예제에 반대하는 원칙을 분명히 해서 민주당을 분열시켰다면, 닉슨은 베트남전에 대해 침묵으로 일관해 속내를 감춤으로써(일명 꿀 먹은 벙어리 작전) 라이벌 민주당이 서로 싸우게 만들었고 그 분열을 틈타 대통령이 됐다.
놀랍게도 2002년 노무현의 대선전략은 딕 모리스의 ‘파워게임의 법칙’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시장개혁이라는 보수적 아젠다를 선점하고, 인터넷이라는 첨단 미디어를 제대로 활용했으며, 무엇보다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부각했다. 그리고 마침내 불가능해 보였던 대통령 당선을 이루어냈다.
‘승자만이 꿈을 이룰 기회를 얻는다’는 저자의 말은 냉혹한 정치세계를 잘 대변해주고 있다. 그러나 승리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으로 중도 퇴진한 닉슨의 예에서 보듯 원칙 없는 승자에게는 비참한 말로가 있을 뿐이다. 모리스의 전략은 당선을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당선 후에도 유용한 지침이 될 것이다. 겸손하라, 그러나 원칙을 버리지 마라.
파워게임의 법칙/ 딕 모리스 지음/ 홍수원 옮김/ 세종서적 펴냄/ 472쪽/ 1만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