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속인터넷 VDSL 서비스 속도경쟁이 뜨겁다. 속도를 강조한 KT(왼쪽)와 하나로 통신의 VDSL 광고.전문가들은 VDSL 전용 콘텐츠가 상용화되기 전까진 VDSL로 바꿀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다.
“가정용으론 ADSL이면 충분”
각 통신업체의 ‘안티’사이트에는 인터넷 속도가 느리다거나 접속이 자주 끊긴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고 올라온다. 사정이 이런데도 초고속인터넷 업체들이 품질개선은 뒤로 한 채 ‘제 살 깎기’식 과당경쟁을 벌여 빈축을 사고 있다. KT와 하나로통신이 가입자를 ‘빼앗고’ ‘지키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들여 설치한 ADSL을 VDSL로 교체하며 자원을 낭비하고 있는 것. KT 하나로통신 두루넷 등 사업자들은 1999년 이후 7조원에 가까운 자금을 투입하며 가입자 확보 경쟁을 벌여왔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속도가 빠른 상품을 출시해 가입자를 빼앗아 시장에서 우위를 차지하겠다는 사업자들의 전략이 ‘VDSL 전쟁’을 일으켰다”고 말했다.
시장을 혼탁하게 만든 ‘주범’은 KT. KT는 신규 시장 중 아파트 단지엔 VDSL을 설치하고 있고, 일부 기존 시장에서도 VDSL을 ADSL과 병행해 깔면서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하나로통신도 국내 최초로 20Mbps급 VDSL 서비스를 상용화하며 KT의 공격에 맞불을 놓았다. 하나로통신 관계자는 “시장을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선 KT보다 속도가 빠른 VDSL을 출시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KT가 무리수를 두는 바람에 ‘울며 겨자 먹기’로 경쟁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는 것. “초당 13Mbps의 전송속도가 필요한 콘텐츠가 별로 없고 기존 ADSL로도 이용자들이 충분히 빠른 인터넷을 즐기고 있다”는 게 하나로통신의 주장이다.
케이블TV는 ‘패키지 상품’ 출시
“VDSL에 어울리는 콘텐츠는 개발하지도 않으면서 VDSL만 대대적으로 광고하고 있다”는 소비자들의 불만도 나온다. 일부 소비자들은 “초당 8Mbps ADSL 프로의 경우엔 VDSL과 속도 차이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VDSL은 ADSL에 비해 2∼5배 가량 속도가 빠르다고 알려져 있지만 ‘VDSL 라이트’의 경우 ‘ADSL 프로’보다 속도가 떨어진다는 것. 결국 VDSL 서비스를 제대로 이용하려면 월 사용료 5만원대의 KT ‘VDSL 스페셜’이나 하나로통신의 ‘하나포스 V Dream I’을 이용해야 한다. ADSL보다 최고 2만원까지 가격이 비싼 셈이다. 전문가들은 “VDSL 전용 콘텐츠가 본격적으로 상용화되기 전까진 VDSL로 바꿀 필요는 없다”고 조언한다.
문제는 업체측이 ADSL 투자비를 회수하지 못한 상태에서, 쓰는 데 별 문제가 없는 ADSL 장비를 뜯어내고 새 장비를 설치하고 있다는 점. 하나로통신은 지금까지 ADSL에 투입된 1조2000억원 이상을 공중에 날릴 것으로 예측한다. 통신전문가들도 “설치한 지 수년밖에 안 된 ADSL 장비를 걷어내고 VDSL 장비로 교체하는 것은 자원낭비”라고 입을 모은다. 또 다른 문제는 ‘VDSL 전쟁’이 외화낭비로까지 이어진다는 것. 통신업계의 한 관계자는 “VDSL 경쟁으로 외국회사들만 쾌재를 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ADSL 도입 초기에도 ADSL칩 생산업체인 프랑스 알카텔사가 특수를 누린 바 있다. 한국이 아직 쓸 만한 ADSL을 버리고 VDSL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VDSL칩을 생산하는 외국 업체들의 입이 다시 한번 벌어졌다. 이 관계자는 “VDSL칩이 다시 진화하면 업체들이 지금 깔고 있는 VDSL을 버리고 다시 새로운 시스템을 깔지도 모른다”고 꼬집었다.
한편 속도경쟁에 나선 KT와 하나로통신에 또 다른 복병이 나타났다. 분당지역 케이블TV 방송국인 아름방송이 월 1만3000원짜리 초고속인터넷 상품을 내놓은 것. 서울 강남케이블TV도 아름방송과 같은 시스템을 구축, 상용서비스에 나선다. 이 밖에 서울지역 씨앤엠커뮤니케이션도 테스트를 끝내고 서비스 시기를 검토하고 있다. 강남케이블TV 등 메이저 SO(종합유선방송사업자)들은 월 3만원에 케이블TV와 인터넷을 서비스하는 ‘패키지 상품’까지 출시한다. ‘출혈 경쟁’에 나서면서 호시탐탐 현재의 정액제를 사용량에 따라 요금을 부과하는 종량제로 바꾸려 하고 있는 통신업체들로서는 SO들의 ‘저가 공세’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