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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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A 미아찾기’ 민·관 싸움에 미아될라

시민단체·대검 ‘유전정보 오용 위험’ 공방 … 한편에선 ‘복지부 아이디어 도용설’ 놓고 옥신각신

  • 입력2005-03-11 16: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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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NA 미아찾기’ 민·관 싸움에 미아될라
    “정부 주도의 유전자 DB(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절대 반대한다.” 한겨레가족찾기운동본부(공동이사장 김상근 KNCC 통일위원장·정화 실천불교전국승가회장·함세웅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신부, 이하 한가본),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등 53개 시민-사회단체가 1월10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보건복지부의 새 아동복지사업에 급제동을 걸고 나섰다. 이들의 타깃은 ‘DNA 미아(迷兒) 가족찾기 프로그램.’ 복지부는 1월7일 보도자료를 통해 “DNA 감식을 통한 미아 찾기 사업을 올해 1월부터 본격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길 잃은 아이들을 부모 품으로 돌려보내주겠다는, 지극히 당연한 취지의 사업이 왜 이런 반대에 부닥쳤을까.

    이 사업은 복지시설 수용 미아 1만7000여명과 미아를 찾고자 하는 부모들의 머리카락, 혈액, 침 등 시료를 채취해 DNA를 분석하고 그 정보를 다자간 DB화한 뒤 이를 서로 대조해 가족을 찾아준다는 게 그 골자. 복지부는 이를 위해 지난 86년부터 정부의 미아찾기 사업을 위탁 운영해온 한국복지재단(회장 김석산)에 사업운영 전반을 맡기고 대검찰청 유전자감식실이 DNA분석을, 바이오벤처인 ㈜바이오그랜드(대표 김성수)가 분석 정보의 DB를 구축-검색-관리하도록 1월5일 업무협약을 맺었다. 이에 앞서 복지부는 이들 기관과 함께 지난해 11월 DNA 감식을 통해 2명의 미아에게 친부모를 찾아준 바 있다.

    DNA 감식기술을 이용한 미아 찾기 프로그램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일. 주로 인적 자료를 바탕으로 홍보에만 의존했던 기존 미아 찾기의 한계를 뛰어넘은 획기적 대안임은 분명해 보인다.

    문제는 감식 주체가 대검이라는 점. 공권력을 가진 기관이 DNA분석을 맡을 경우 자칫 관련정보가 오용될 수 있다는 게 민간단체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실제 미국에선 미아 찾기를 위한 것은 아니지만, 중범죄자 대상의 DNA DB구축 사례가 있으며 이조차 인권침해 논란의 불씨가 되고 있는 실정.



    “하필이면 왜 대검인가. 전문수사기관이 중범죄자도 아닌 일반인의 DNA 정보를 분석하고 감정서까지 발급해주면 인권침해 문제가 발생할 소지는 다분하다.” 한가본 이병주 기획조정실장은 “본인이나 후견인 동의를 받는다고는 하지만 의사결정능력이 부족한 미성년 고아의 유전자 정보를 정부측에서 관리한다는 건 그 어떤 경우든 언어도단”이라고 주장했다. 통계적으로 결손 아동의 비행 확률이 높은 마당에 관련범죄가 발생할 경우 이미 구축된 DB를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DNA 미아찾기’ 민·관 싸움에 미아될라
    한가본의 이런 주장엔 사회적 공론화 과정이 생략된 채 급작스레 추진된 이번 사업의 효과에 의외로 허구적 면이 적지 않다는 인식도 바탕에 깔려 있다. 연평균 전국 미아 발생 수는 3500여명(수용시설 기록 기준)이지만 이중 대부분이 1년 내 부모를 찾기 때문에 수용시설 입소자는 연간 150여명에 불과하다는 것. 또 보호시설에 수용된 1만7000여명의 미아 중 상당수는 부모가 장기간 찾지 않은 기아(棄兒)들이므로 굳이 실익이 크지 않은 DB를 구축하려는 저의가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한가본측과 별도로 1월10일 자체 성명을 낸 참여연대도 대검의 DAN 분석에 적극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미 ‘과학 수사’를 내세워 94년부터 기결수의 채혈을 통해 범죄자 DNA 정보를 DB화할 수 있는 유전자 정보은행 설립을 추진해 온 대검에 DNA분석을 의뢰하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 맡기는 격’이란 것. 또 인간 유전정보의 수집, 관리, 이용을 규제하는 ‘생명과학 보건안전윤리법’(안)을 입법할 예정인 복지부가 스스로 DNA DB 구축에 앞장서는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한재각 간사는 “이번 사업의 기본취지엔 공감하지만 아직 국내에 개인 유전정보를 보호할 법조차 없는 만큼 아무 규제장치 없이 DB가 구축되면 오용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시민단체의 이런 비판에 대해 해당기관들은 한마디로 어불성설이라며 일축하고 있다. 대검 이승환 유전자감식실장은 “대검은 순수하게 DNA시료만 받을 뿐 인적사항까지 받진 않으므로 누구의 DNA인지 전혀 알 수 없다. 복지재단이 대검을 ‘사업 파트너’로 추천했고 대검의 감식능력이 충분해 이를 수락했을 뿐 다른 의도는 전혀 없다”고 밝혔다. 인권침해 가능성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한국복지재단측도 마찬가지 입장이다. DNA분석을 민간업체에 맡기면 상업 목적으로 오용될 우려가 있으므로 ‘공신력 있는’ 대검에 협조를 요청했고 대검이 이를 받아들여 사업이 가능하게 됐다는 것. 또 비록 민간기업이긴 하지만 DB 구축 및 관리업체로 ㈜바이오그랜드가 선정된 것은 이 회사가 다자간 유전자정보 DB시스템 분야의 특허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한가본은 이런 ‘반민반관’(半民半官)의 사업시스템에 대해 이의를 제기한다. DNA분석과 DB관리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감시와 참여가 배제된 상태에서 사업 진행이 과연 투명하게 이뤄질지 의문스럽고 만의 하나 유전자 정보 유출 등 부작용이 불거질 경우 책임 소재가 불명확해진다는 것. 따라서 미아 등 이산가족 찾기를 위한 사회적 조력은 인도적 차원에서 종교계와 비영리 시민단체의 몫이어야 정당하며 국가기관은 이에 대한 감독권만 행사하면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실 한가본이 복지부에 대해 이같이 비판의 강도를 높이는 것은 한가본의 정체성과 무관하지 않다. 한가본은 지난해 10월 발족한 민간사회단체. 복지부와의 마찰이 불거진 직접적 계기는 이 단체의 설립 취지가 바로 미아를 포함한 남-남, 남-북 이산가족찾기사업으로 복지부의 이번 사업과 그 내용이 중첩되기 때문이다.

    한가본에 따르면 지난해 8월 한가본이 DNA DB 구축을 통한 이산가족찾기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사단법인 승인을 주무부서인 복지부와 협의하는 과정에서 사업 아이디어가 복지부측에 공개됐고 공교롭게도 사단법인 승인 여부를 통보받기로 예정된 1월8일 직전 갑자기 복지부의 사업발표가 나왔다는 것. 한가본의 사단법인 승인 신청은 복지부 발표 직후 반려됐다. 현행법상 동일 사업을 추진하는 두 개의 주체가 있을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우리는 2년 전부터 이 사업을 추진해왔다. 감식은 이 방면의 권위자인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이정빈 교수팀이 맡고 DB관리는 한가본이, 재원은 국민성금과 기업 후원금으로 충당하려 했다. DB관리 감독은 여러 시민-사회단체와의 협의로 선정된 심의위원들에게 맡길 계획이었다.”

    한가본 김성만 사무총장은 “사업 아이디어를 도용하지 않았다면 협의 당시 이번 사업에 대해 아무런 언질도 없던 복지부가 이렇게 즉흥적으로 사업을 추진할리 없다. 반드시 의혹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공익사업 아이디어를 가로챈 복지부의 ‘히트 앤드 런’에 당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한가본은 최근 함세웅 신부를 특위 위원장으로 선임해 ‘도용 여부’의 진상조사에 나서는 한편, 법적 대응도 강구중이다. 또 유전자 정보 보호의 근거법으로 ‘생명윤리와 인권에 관한 법안’(가칭)에 대한 입법청원도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도용’에 대한 당사자의 주장은 크게 엇갈린다. 복지부 아동보건복지과 관계자는 “지난해 7월부터 한국복지재단과 이 사업을 공동 추진해 왔다. 한가본의 주장은 억지에 불과하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복지재단 어린이찾아주기종합센터 이재구 팀장도 “장기간의 생이별로 객관적 입증자료가 부족하고 관련기록이 누락된 미아들이 많아 복지재단 실무진 차원에서 사업 아이디어를 냈다”고 말했다.

    진실이야 어떻든, 복지부의 이번 사업엔 뒷말이 무성하다. 여론수렴 없이 추진된 정책이 몰고온 파장의 한가운데 새삼 떠오른 건 유전자 정보 보호법의 조속한 입법 필요성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관련 법이 없었기에 고속 추진이 가능했던 새 아동복지사업이 자신을 묶어둘 새로운 법을 요청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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