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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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상 마찰에 구조조정 발목 잡힐라

채권단 출자전환, 채무연장 등 외국기업 ‘도끼 눈’ 부릅떠… 정부, 시장 여건 조성에 머물러야

  • 입력2005-03-11 15: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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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상 마찰에 구조조정 발목 잡힐라
    기업 구조조정 과정에서 채권단의 출자전환, 채무 만기 연장, 회사채 인수 등 금융권이 구조조정 차원에서 취한 일련의 조치들이 잇달아 통상 분쟁에 휘말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통상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과거 정부 주도의 빅딜이나 한보철강에 대한 정부 보조금 지급 여부가 교역 대상국으로부터 통상 마찰의 대상으로 떠올랐던 점을 지적하며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산업은행 회사채 인수 분쟁 조짐

    통상 마찰에 구조조정 발목 잡힐라
    부실기업의 만기 도래 회사채를 산업은행을 통해 인수하기로 한 최근의 정부 조치에 대해 현대전자의 경쟁기업인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우리 정부가 WTO(세계무역기구)에서 금지하고 있는 보조금 지급 규정을 위반했다며 자국 정부에 조사를 의뢰했다. 마이크론테크놀로지는 우리 정부가 회사채 신속 인수제도를 도입해 정부 소유나 다름없는 국책은행으로 하여금 부실기업의 회사채를 인수하도록 함으로써 부실기업인 현대전자에 사실상의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예기치 못한 데서 문제가 불거지자 정부는 회사채 신속 인수제도가 통상 마찰로 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회사채 인수 금리를 낮춰달라는 현대전자측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시장 금리 수준을 유지하는 등 특혜성 지원 논란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보완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 뒤에도 이와 관련한 해프닝은 계속됐다. 산업은행의 회사채 인수 조치에 대해 ‘관치 논란’이 이는 가운데 외국인 대주주 소유의 제일은행이 정부 조치를 거부하고 나서자 정부는 ‘제일은행의 거래 기업들로 하여금 주거래은행을 바꾸도록 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을 내놓더니 결국 제일은행의 호리에 행장이 금융감독위원회를 방문해 사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정부가 개입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던 정부가 민간은행장을 불러 사과까지 받아냄으로써 스스로 정부 개입을 자인한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산업은행 회사채 인수에 대한 논란은 WTO 제소 사태로 번질 가능성도 있다. WTO 보조금 협정은 특정 산업이나 특정 기업에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그러나 특정 산업을 보호하려는 목적이 아니더라도 결과적으로 ‘사실상의 특정성’이 인정된다면 보조금 지급행위로 볼 수 있다는 데에 더 큰 문제가 있다.



    한국과 유럽연합(EU)간에 통상분쟁의 파고를 높이고 있는 조선분쟁에서도 EU측이 문제삼은 것은 바로 워크아웃 과정이었다. 유럽연합은 유럽조선공업협회가 지난해 10월 한국 정부의 보조금 지급을 이유로 한국 조선업계를 제소해옴에 따라 무역장벽해소조치(TBR)를 발동했다. TBR는 역외 국가의 불공정 무역관행을 조사할 수 있도록 한 EU의 내부 규정이다. EU는 한국 정부가 사실상 정부 소유인 산업은행을 동원해 워크아웃 과정에서 대우중공업(대우조선) 등 부실 조선업체에 대해 출자전환, 차입금 만기 유예 등의 방법으로 특혜성 보조금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현재 EU는 TBR 발동 이후 한국 방문 현장 조사에 앞서 질의서를 보내온 상태며 우리 정부는 이에 대한 답변서를 작성하고 있는 중. 우리 정부가 오는 26일까지 답변서를 보내면 유럽연합은 이를 바탕으로 현장 조사 여부를 결정하며 조사 결과에 따라서는 WTO 제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외교통상부 통상전문관인 손기윤 박사는 “유럽연합측의 TBR 발동은 EU의 내부 규정에 불과한 만큼 우리 정부에 어떤 강제사항이 부과되는 것은 아니다”고 전제한 뒤 “문제는 WTO로 갔을 경우 조선 분야만 패소하면 그만이지만 워크아웃 프로그램 전반으로 문제가 비화되는 사태”라고 우려했다.

    아직까지 우리 정부는 한-EU 조선분쟁에 대해 WTO 제소로 이어질 것으로는 보지 않고 있다. 산업자원부 수송기계산업과 박종원 사무관은 “워크아웃 제도는 정부가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은행이 부실기업의 청산과 회생에 따른 가치를 비교해 청산가치보다 존속가치가 높다고 판단하면 원활한 채권 회수를 위해 만기 연장 등의 조치를 취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부 보조금을 금지하는 WTO 규정과 충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러나 만약 수출국이 특정 수출산업에 대해 장려금이나 보조금을 지급해 수출 경쟁력 제고에 도움을 주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 해당 국가는 상계관세라는 일종의 무역 보복 조치를 당하게 된다. 반대로 수입국은 수출국 정부가 지급한 보조금액에 해당하는 만큼의 상계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 이는 수출국의 보조금 지급으로 인한 수입국의 국내 산업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WTO가 만들어 놓은 제도다.

    지난해에는 워크아웃기업인 강원산업에 대한 채무조정에 대해 미국 상무부가 보조금 협정 위반을 이유로 상계관세를 부과한 사건도 일어났다. 이보다 앞선 지난 98년에는 앨 고어 당시 미국 부통령까지 나서 부도기업인 한보철강에 대한 정부 지원을 문제삼았고 이 사건 역시 WTO 제소와 같은 통상 마찰로 비화할 뻔했다.

    워크아웃 과정 EU측서 문제삼아

    수출 보조금에 대한 WTO 차원의 시정 조치는 엄격한 것으로 유명하다. 얼마 전 WTO는 호주산 차량용 가죽시트의 대미 수출에 호주 정부가 보조금을 주었다고 판정하고 당시 지급된 보조금을 회수(withdraw)할 것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호주 정부는 수백만달러에 해당하는 보조금을 회수하는 홍역을 치렀다. 특정 산업이나 업체에 보조금을 줌으로써 발생한 이익을 상쇄하고도 남는 불이익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만큼 수출국으로서는 보조금 지급 금지 규정에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통상전문 변호사인 김두식 변호사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예상되는 통상 분쟁을 피해가기 위해 정부는 제도 개선 등 시장 여건을 조성하는 데 머물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 가치를 평가하거나 해당 기업에 만기 연장, 상환 유예 등의 조치를 취하더라도 공정한 기관에 용역을 주어 철저하게 ‘커머셜 베이스’에 입각한 조치를 취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 김변호사는 아울러 “언론들도 구조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조치와 관련해서는 정부가 모든 것을 주도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는 보도는 피해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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