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9일 15대 총선 때 안기부의 자금을 지원받은 사람들 명단이 밝혀지자 정치권이 발칵 뒤집혔다. 최하 3000만원에서 최고 15억원까지, 당시 여당이던 신한국당은 물론 야당이던 국민회의 인사까지 모두 180명의 자금 지원 명세가 공개됐기 때문이다. 1995년 지방선거 때까지 포함, 1월15일 현재 ‘안기부 돈’을 받은 정치인은 186명인 것으로 밝혀졌다.
특이한 것은 민주계 인사 상당수가 명단에서 빠져 있거나 소액을 지원받았다는 점. 당시 출마자 가운데 명단에 빠져 있는 민주계 인사는 김철기 김덕룡 김영춘 홍인길 김무성 최형우 김운환 서석재 신상우 유성환 박태권 황병태 우명규 황낙주 등 10여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종웅 의원은 3000만원밖에 지원받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정권 주축세력이었던 민주계 인사들이 여권 핵심부로부터 총선자금을 지원받지 못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통로를 통해 자금을 지원받았을까. 또 당시 여권의 총선자금 모금과 지원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일까.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당시 여권이 세웠던 총선승리 비책인 암호명 ‘V96’전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사정에 정통한 한 민주계 인사는 “15대 총선이 정권의 운명을 가름한다는 생각으로 95년 말부터 총선 준비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이번에 밝혀진 ‘안기부 자금’이 1995년 10월7일부터 1996년 1월27일 사이에 빠져나갔다는 검찰 발표는 이 인사의 말을 뒷받침해준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리서치플러스’라는 조직. 당시 신한국당의 15대 총선 출마자들에 대한 자금지원은 기본적으로 이 조직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이루어졌다. 세종문화회관 뒤 신문로 빌딩 5층에 있었던 ‘리서치플러스’의 책임자는 김원용 당시 성균관대 교수였다. 경남고 출신인 그는 92년 대선 당시 김 전 대통령 차남 현철씨가 운영하던 여론조사연구소의 객원연구원으로 들어가며 상도동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이 사무실에서 일했던 민주계 인사 A씨의 설명. “김교수의 성균관대 제자들 4명과 분석-전략을 담당한 민주계 소장파 인사 등 15명 정도가 일했다. 여론조사 회사에 의뢰해 처음에는 253개 전 지역구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으나 150개-70개-30개-10개 식으로 계속 범위를 압축해갔다. ‘리서치플러스’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횟수만 1500회가 넘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경합지역 등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자금지원이 이루어졌다.” 김현철씨도 97년 한보청문회에 출석했을 때 “25억원을 여론조사 비용으로 썼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당시 신한국당의 자금 지원이 이 조직의 조사 결과만을 바탕으로 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서울 지역에 출마했던 한나라당 한 초선의원은 “당시 여권 지도부는 기본적으로 안기부와 경찰 조사를 믿지 않았다. 뿌리깊은 불신을 갖고 있었다”고 ‘외곽조직’을 활용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A씨는 “리서치플러스의 조사와 신한국당 부설기구였던 사회개발연구소의 조사, 현지에 파견된 당 관계자의 보고, 현지의 별도 사설라인의 보고 등 네 가지를 종합해 각 후보별 판세를 분석했다”고 밝혔다. 우세-약간 우세-경합-약간 열세-열세 등 다섯 개로 모든 선거구를 나눠 매일매일 상황을 체크하며 ‘우세’와 ‘열세’ 지역을 제외한 곳을 집중 지원해 ‘전략 지역’을 줄여나갔다는 것. 리서치플러스 조직원 가운데 일부는 이들 ‘전략 지역’을 직접 방문해 두툼한 조사 자료를 후보자들에게 건네고 ‘실탄’을 뿌렸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엄밀하게 말해 15대 총선 당시 여권의 선거사령탑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아니었다. 이원종 청와대 정무수석,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 김현철씨 등 ‘삼두마차’가 모든 것을 기획하고 집행했다. 당시 신한국당 대표였던 김윤환 현 민국당 대표의 한 측근도 “15대 총선은 강삼재 의원을 비롯한 민주계가 모든 것을 주도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을 베이스캠프삼아 일주일에 서너 차례씩 모임을 갖고 선거 전반을 점검하며 전략을 짰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이번 ‘안기부 자금’까지 포함하면 15대 총선 당시 신한국당의 자금줄은 크게 네 가지였다”고 말했다. 안기부 자금, 당 후원금, 14대 대선 잔금, 재계의 정치자금 등이라는 것. 당시 여권은 1192억원의 안기부 자금, 관훈동 당사매각-후원회 등을 통해 마련한 1000억여원에 대선 잔금과 재계 자금 등을 합쳐 대략 3000억원 이상 쓴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사정에 정통한 한 민주계 인사는 “야당 생활을 해본 민주계 인사들은 후환을 우려해 통장으로 돈을 받지 않고 강삼재 의원으로부터 직접 돈을 받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신한국당의 민주계 인사들은 은행 계좌를 통해서가 아니라 현금으로 직접 받았기 때문에 이번 안기부 자금 리스트에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15대 당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던 한나라당 민주계 한 초선의원도 “그 당시 당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지 않은 후보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강부총재는 그동안 ‘신한국당 자금세탁소’라는 소문이 무성했던 경남종금을 통해 총선 자금을 관리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경남종금 소유주였던 동남그룹 김인태 회장이 평소 민주계 인사들과 절친한 관계였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김회장은 정권교체 직후인 97년 12월2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도박 혐의 등과 관련해 해외로 도피한 상태다. 그의 도피에 대해 정치권에는 “자신의 후원세력이 몰락하자 위험을 직감하고 도피한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경남종금 전 직원 주모씨 등은 최근 검찰조사에서 “95년 12월쯤 강부총재가 100억원을 서울지점으로 들고 와 ‘충분히 세탁된 당 비자금이지만 당 명의로 할 수는 없다’며 차명으로 해줄 것을 요청해 통장을 발급해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부총재는 96년 3월쯤에도 1억원짜리 수표 100장을 들고 와 “쪼개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강부총재의 한 측근은 “경남종금측과 친분이 있어 돈을 맡긴 것으로 안다”며 “안기부 돈인 줄 알았으면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했겠느냐”고 말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현재 미확인 상태인 413억원을 끈질기게 추적하면 차명을 사용한 다른 정치인들의 연루도 드러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 대변인실 자료분석부장인 안상정씨에 대한 조사에서 자민련 김종호 총재권한대행이 2억원을 받았다고 진술한 것과 같은 사례가 계속 나올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검찰의 한 소식통은 “당시 강부총재는 정권이 바뀔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검찰이 강부총재를 끝까지 소환하려는 것은 ‘안기부 자금’에 대한 조사를 넘어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권에서는 ‘안기부 자금’을 만든 김기섭 전 안기부운영차장이 김현철씨를 ‘주군’으로 모셨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
특이한 것은 민주계 인사 상당수가 명단에서 빠져 있거나 소액을 지원받았다는 점. 당시 출마자 가운데 명단에 빠져 있는 민주계 인사는 김철기 김덕룡 김영춘 홍인길 김무성 최형우 김운환 서석재 신상우 유성환 박태권 황병태 우명규 황낙주 등 10여명.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박종웅 의원은 3000만원밖에 지원받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정권 주축세력이었던 민주계 인사들이 여권 핵심부로부터 총선자금을 지원받지 못했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어떤 통로를 통해 자금을 지원받았을까. 또 당시 여권의 총선자금 모금과 지원은 어떤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 것일까.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당시 여권이 세웠던 총선승리 비책인 암호명 ‘V96’전략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사정에 정통한 한 민주계 인사는 “15대 총선이 정권의 운명을 가름한다는 생각으로 95년 말부터 총선 준비에 들어갔다”고 전했다. 이번에 밝혀진 ‘안기부 자금’이 1995년 10월7일부터 1996년 1월27일 사이에 빠져나갔다는 검찰 발표는 이 인사의 말을 뒷받침해준다.
이와 관련해 주목되는 것은 ‘리서치플러스’라는 조직. 당시 신한국당의 15대 총선 출마자들에 대한 자금지원은 기본적으로 이 조직의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이루어졌다. 세종문화회관 뒤 신문로 빌딩 5층에 있었던 ‘리서치플러스’의 책임자는 김원용 당시 성균관대 교수였다. 경남고 출신인 그는 92년 대선 당시 김 전 대통령 차남 현철씨가 운영하던 여론조사연구소의 객원연구원으로 들어가며 상도동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이 사무실에서 일했던 민주계 인사 A씨의 설명. “김교수의 성균관대 제자들 4명과 분석-전략을 담당한 민주계 소장파 인사 등 15명 정도가 일했다. 여론조사 회사에 의뢰해 처음에는 253개 전 지역구를 대상으로 여론조사를 했으나 150개-70개-30개-10개 식으로 계속 범위를 압축해갔다. ‘리서치플러스’에서 실시한 여론조사 횟수만 1500회가 넘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라 경합지역 등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자금지원이 이루어졌다.” 김현철씨도 97년 한보청문회에 출석했을 때 “25억원을 여론조사 비용으로 썼다”고 말한 적이 있다.
물론 당시 신한국당의 자금 지원이 이 조직의 조사 결과만을 바탕으로 했던 것은 아니다. 당시 서울 지역에 출마했던 한나라당 한 초선의원은 “당시 여권 지도부는 기본적으로 안기부와 경찰 조사를 믿지 않았다. 뿌리깊은 불신을 갖고 있었다”고 ‘외곽조직’을 활용한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A씨는 “리서치플러스의 조사와 신한국당 부설기구였던 사회개발연구소의 조사, 현지에 파견된 당 관계자의 보고, 현지의 별도 사설라인의 보고 등 네 가지를 종합해 각 후보별 판세를 분석했다”고 밝혔다. 우세-약간 우세-경합-약간 열세-열세 등 다섯 개로 모든 선거구를 나눠 매일매일 상황을 체크하며 ‘우세’와 ‘열세’ 지역을 제외한 곳을 집중 지원해 ‘전략 지역’을 줄여나갔다는 것. 리서치플러스 조직원 가운데 일부는 이들 ‘전략 지역’을 직접 방문해 두툼한 조사 자료를 후보자들에게 건네고 ‘실탄’을 뿌렸다고 한 관계자는 전했다.
엄밀하게 말해 15대 총선 당시 여권의 선거사령탑은 김영삼 전 대통령이 아니었다. 이원종 청와대 정무수석, 강삼재 신한국당 사무총장, 김현철씨 등 ‘삼두마차’가 모든 것을 기획하고 집행했다. 당시 신한국당 대표였던 김윤환 현 민국당 대표의 한 측근도 “15대 총선은 강삼재 의원을 비롯한 민주계가 모든 것을 주도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을 베이스캠프삼아 일주일에 서너 차례씩 모임을 갖고 선거 전반을 점검하며 전략을 짰던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이번 ‘안기부 자금’까지 포함하면 15대 총선 당시 신한국당의 자금줄은 크게 네 가지였다”고 말했다. 안기부 자금, 당 후원금, 14대 대선 잔금, 재계의 정치자금 등이라는 것. 당시 여권은 1192억원의 안기부 자금, 관훈동 당사매각-후원회 등을 통해 마련한 1000억여원에 대선 잔금과 재계 자금 등을 합쳐 대략 3000억원 이상 쓴 것으로 추산된다.
당시 사정에 정통한 한 민주계 인사는 “야당 생활을 해본 민주계 인사들은 후환을 우려해 통장으로 돈을 받지 않고 강삼재 의원으로부터 직접 돈을 받았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다시 말해 신한국당의 민주계 인사들은 은행 계좌를 통해서가 아니라 현금으로 직접 받았기 때문에 이번 안기부 자금 리스트에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15대 당시 신한국당 후보로 출마했던 한나라당 민주계 한 초선의원도 “그 당시 당으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지 않은 후보가 있겠느냐”고 말했다.
강부총재는 그동안 ‘신한국당 자금세탁소’라는 소문이 무성했던 경남종금을 통해 총선 자금을 관리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경남종금 소유주였던 동남그룹 김인태 회장이 평소 민주계 인사들과 절친한 관계였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김회장은 정권교체 직후인 97년 12월28일 미국 라스베이거스 도박 혐의 등과 관련해 해외로 도피한 상태다. 그의 도피에 대해 정치권에는 “자신의 후원세력이 몰락하자 위험을 직감하고 도피한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
경남종금 전 직원 주모씨 등은 최근 검찰조사에서 “95년 12월쯤 강부총재가 100억원을 서울지점으로 들고 와 ‘충분히 세탁된 당 비자금이지만 당 명의로 할 수는 없다’며 차명으로 해줄 것을 요청해 통장을 발급해줬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부총재는 96년 3월쯤에도 1억원짜리 수표 100장을 들고 와 “쪼개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강부총재의 한 측근은 “경남종금측과 친분이 있어 돈을 맡긴 것으로 안다”며 “안기부 돈인 줄 알았으면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했겠느냐”고 말했다.
검찰 주변에서는 현재 미확인 상태인 413억원을 끈질기게 추적하면 차명을 사용한 다른 정치인들의 연루도 드러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 대변인실 자료분석부장인 안상정씨에 대한 조사에서 자민련 김종호 총재권한대행이 2억원을 받았다고 진술한 것과 같은 사례가 계속 나올 것으로 보고 있는 것. 검찰의 한 소식통은 “당시 강부총재는 정권이 바뀔 것이라고는 생각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영삼 정부 당시 청와대 정무수석실에 근무했던 한 인사는 “검찰이 강부총재를 끝까지 소환하려는 것은 ‘안기부 자금’에 대한 조사를 넘어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치권에서는 ‘안기부 자금’을 만든 김기섭 전 안기부운영차장이 김현철씨를 ‘주군’으로 모셨다는 사실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