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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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비즈니스에 푹 빠진 ‘미스터 비전’

뭐든지 한번 시작하면 끝장보는 적극파… 벤처네트워크 투자로 이미지 탈피 ‘야심찬 시도’

  • 입력2005-03-11 14:5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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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비즈니스에 푹 빠진 ‘미스터 비전’
    신년 초 이웅열 코오롱 회장과 인터뷰를 요청했던 언론사는 모두 여섯 곳이나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론사들이 신년기획과 관련해 인터뷰를 요청할 당시 정작 이회장은 미국에 있었다. 해외출장지에서 2001년을 맞은 이회장이 귀국한 지난 1월9일, 코오롱 구조조정본부 고위 관계자는 각 언론사마다 전화를 걸어 인터뷰 거절 의사를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이회장이 언론에 나서기를 극구 사양했기 때문이다. “회사 일만 열심히 하면 되지 내가 탤런트 노릇 할 필요가 뭐 있겠느냐”면서 이회장 스스로 인터뷰에 나서길 꺼렸다는 것이 구조조정본부 관계자의 설명.

    언론은 최근 그에게 ‘탤런트 노릇’을 요구할 정도로 ‘인간 이웅열’에 대해 관심이 많다. 최근 들어 그와 ‘패키지’로 언론에 오르내리는 최태원 SK 회장이나,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등 ‘재벌 2세 3인방’과 비교하더라도 기업 규모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 그룹의 젊은 회장에게 세인들이 이렇게 관심을 쏟는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최근 그의 행보를 둘러싸고 가장 관심을 모으는 포인트는 뭐니뭐니해도 이회장이 본격적으로 e-비즈니스의 전도사로 나서고 있다는 것이다. 이회장은 요즘 가는 곳마다 e-비즈니스를 입에 달고 다닌다. 전경련에서는 e-비즈니스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e-비즈니스에 푹 빠진 ‘미스터 비전’
    지난해 20명의 코오롱 직원들은 이웅열 회장의 지시로 전자상거래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갖고 있는 미국 카네기 멜론대학에 단기연수를 다녀왔다. 그러나 이 연수에 참가한 직원들은 정보통신 분야에서 근무하고 있는 직원들이 결코 아니었다. 인사 경리 홍보 등, 말하자면 ‘문과 계열’의 직군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대부분. 이회장 스스로 ‘전통산업의 정보기술(IT)화’를 강조하는 만큼 임직원들도 자기 분야에서 인터넷과 정보 기술을 이용해 효율성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라는 메시지에 다름아니었다. 이 연수에 참여했던 코오롱 직원은 “분야를 떠나 e-비즈니스 마인드를 체험할 수 있는 쉽지 않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이회장은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지난해 소속 계열사에 관계없이 인터넷 사업 관련 부서를 하나의 건물로 모으는 ‘이사’를 단행하기도 했다. 정보통신, 건설, 상사 등 소속 계열사에 관계없이 인터넷 사업 분야는 한데 모여 있어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코오롱 관계자는 “이제 개개인의 IT지수로 직원을 평가하는 방식이 테헤란밸리에서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이웅열 회장이 얼마 전부터 강조하고 나선 것이 이른바 ‘청바지와 곡괭이론’이다. 미국의 골드러시 당시 금광을 갖고 있는 사람도 돈을 벌었지만 청바지와 곡괭이를 만드는 회사도 많은 돈을 벌었다는 것. 인터넷과 IT를 바로 청바지와 곡괭이에 비유한 것이다.



    ‘기존 산업의 IT화’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경영자답게 이웅열 코오롱 회장의 개인 홈페이지를 한번 둘러보면 충실한 내용과 세련된 디자인에 한번쯤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기껏해야 경력사항이나 의례적 인사말 정도를 올려놓은 여느 기업 최고경영자의 홈페이지와 달리 그의 홈페이지에는 ‘빈틈’이 없다. 인사, 마케팅, 기술개발 등 각 분야에 걸친 이회장의 경영철학이 날줄과 씨줄을 짜듯이 차곡차곡 쌓여 있다. 감각적인 구성과 디자인도 눈길을 끄는 대목. 특히 ‘A to Z’ 코너에는 ‘Academic background(학력), Blood type(혈액형), constellation(별자리)부터 zzz(수면시간)까지 시시콜콜한 26개의 정보들을 순서대로 모아놓아 젊은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도록 배려해놓고 있다.

    주변의 평가를 종합해 보면 이회장은 젊은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스스로도 무척 ‘젊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회장을 자주 접하는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워낙 성격이 소탈한데다 주변 사람들로 하여금 친근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재벌 오너다운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최근 그를 만났던 유력인사들도 이회장이 연장자에 대해 깍듯하게 대하는 모습에서 신선한 느낌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e-비즈니스에 푹 빠진 ‘미스터 비전’
    그의 별명이 ‘3박4일’인 것은 주변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뭐든 한 번 빠지면 끝장을 본다는 의미에서 주변에서 붙여준 별명. ‘3박4일’의 대상은 운동이든 술이든 가리지 않는다. 골프를 포함해 ‘공으로 하는 건 다 잘한다’는 말을 들을 정도의 만능 스포츠맨. 미국 유학시절에는 골프를 연마하기 위해 전문교습학원에 다니면서 하루에 무려 3000개의 공을 쳐댄 일화도 있다. 그리고 회장 취임 이후에는 폭탄주 실력에 직원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 그러나 최근에는 술을 많이 줄이고 있다는 것이 코오롱 관계자의 설명.

    취미나 여가 활동에 있어서 이렇게 적극적인 태도는 일에 있어서도 그대로 드러난다는 평가다. 형식을 싫어하기 때문에 ‘산소 호흡량이 줄어든다’며 직원들에게도 넥타이를 풀어버릴 것을 권장하고 상향식 업무보고보다는 자유로운 토론을 즐긴다. 코오롱 직원들은 이제 임원들조차도 거의 넥타이를 매지 않는다. 이사, 부장, 말단직원할것없이 모두 캐주얼이다.

    게다가 그의 소탈한 성격은 군 복무 경력에서도 드러난다. 이회장의 이력서 중 ‘병역사항’란에는 ‘예비역 육군 병장’이라고 쓰여 있다. 그것도 비무장지대(DMZ)에서만 꼬박 3년을 근무했다. 본인이 전방 근무를 자청했다고 한다.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가 DMZ에서 3년간 근무한 것은 아무런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잊을 만하면 부유층 자녀의 병역 기피 사건이 신문 지상을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이웅열 회장의 군 경력은 분명 관심을 끌 만하다. 코오롱 관계자는 “재벌가 자녀들의 병역 기피 문제가 화제에 오르면 이회장은 눈에 힘이 들어가고 말이 많아진다”고 귀띔했다.

    반면 이회장보다 네 살 아래인 부인 서창희씨는 이화여대 미대 출신이다. 서씨와의 사이에 1남2녀를 두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부인 서씨는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여가가 생기면 시아버지인 이동찬 명예회장의 집무실에 1주일에 한번씩 나와 함께 그림을 그리면서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돈독한 정을 주변에 확인해주곤 했다는 것. 이동찬 명예회장이 며느리와 함께 그린 그림은 지금도 무교동 사옥 17층 벽면을 차지하고 있다.

    이회장은 최근 들어 스스로 CEO(최고경영자)로 불리기보다는 ‘Mr. CVC’로 불리기를 바란다고 한다. ‘CVC’는 ‘Chief Vision Creator’ 의 약자. 계열사 경영 일반에 대해 시시콜콜하게 챙기는 것보다는 그룹의 비전을 제시해 나가는 선각자가 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패션이나 의류 산업, 상사 분야가 주력이던 코오롱 이미지를 탈피해 각종 벤처네트워크에 투자함으로써 그룹의 외연을 넓히는 작업에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회장은 B2B 컨소시엄 등 각종 벤처네트워크에 투자해 놓은 것은 물론 이 분야의 인재들을 모으는 데도 정성을 기울였다.

    무선 인터넷이라는 개념조차 생소하던 지난해 초,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진 50여명의 엔지니어들이 무선 인터넷 분야의 신기술과 트렌드를 공부하기 위해 연구포럼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많은 인원이 한데 모여 토론할 장소부터 마땅치 않았다. 코오롱상사를 통해 이 소식을 전해들은 이웅열 회장은 흔쾌히 과천 사옥의 강당을 내주도록 했고 이들은 코오롱 사옥에서 한 달에 한 번씩 모임을 열어 나갈 수 있었다.

    이회장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당시 포럼에 참여했던 일부 엔지니어를 코오롱이 출범시킨 이앤퓨쳐와 아이퍼시픽파트너스 등 벤처캐피털에 직접 채용하기까지 했다. 아이퍼시픽파트너스 관계자는 “한때 이웅열 회장이 1주일에 두 번씩 사무실을 방문하는 등 벤처 투자에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정작 이회장을 잘 아는 관계자들은 그가 벤처기업에 대규모 투자를 벌이고 있다는 시각에는 반대하고 있다. 각종 사업에 교두보를 확보하는 정도의 투자로 제한하고 있다는 것. 코오롱 관계자들도 ‘이회장이 벤처 투자를 주도하고 있다’는 시각에 대해선 경계하는 눈치가 역력하다.

    회사 운영과 관련해 특히 눈에 띄는 대목은 이회장이 주재하는 업무보고 방식. 지난해 이회장은 계열사 사장단 회의 석상에 국내의 유수한 애널리스트나 컨설턴트를 옆에 앉혀 놓고 회의를 주재했다고 한다. 자신을 그룹 회장이 아닌 코오롱 계열사에 관심을 가진 투자자로 보고 자신에게 ‘섹스어필’할 수 있는 보고를 해보라는 것이 각 본부장들에 대한 이회장의 주문. 물론 본부장들에게 보고서를 들고 줄줄 읽는 방식은 허용되지 않았다. 이른바 ‘맨손 회의’. 이회장이 ‘맨손 회의’를 선언하자 이러한 방식에 익숙지 않은 각 본부장들은 보고 자료를 만들어놓고 전날 밤 이를 암기하는 등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고. 이회장은 ‘맨손회의’ 석상에서 “전문 애널리스트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투자자들을 감동시키지 못하는 본부장들은 ‘원 스트라이크’다. 스트라이크가 세 개면 삼진 아웃이다”고 선언해 참석자들을 아연 긴장시키기도 했다고 한다.

    코오롱상사 사외이사인 연세대 정구현 교수(경영학)는 이회장에 대해 ‘변화에 민감하고 진취적인, 앞서가는 2세 회장’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그는 경영학을 전공한 학자로서 “전반적으로 2세 경영인들의 위기 대처 능력이 떨어진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정교수에게 그렇다면 이웅열 회장의 위기 대처 능력은 어느 정도 되는 것 같느냐고 물었더니 “취임한 지 5년밖에 안 되었으니까 좀더 두고봐야겠죠”라며 답변을 유보했다. 이웅열 회장에 대한 그룹 최고경영자로서의 평가는 어쩌면 이렇게 아직 유보되어 있는 셈이다. 그러나 IMF 사태 이후 재벌 2, 3세 경영인들이 그룹 내분, 경영 능력 부족 등으로 인해 집중적 비난을 받았던 점을 감안하면 이는 ‘청년 이웅열’의 또 다른 가능성을 예고하는 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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