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회의 어느 계층까지 마약이 번졌는지를 보면 해결할 수 있는지 없는지 답이 나온다. 14세 여중생이 텔레그램 마약방에서 필로폰을 구매해 투약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단순 투약에 그치지 않고, 10대가 마약 운반책으로 활동하거나 직접 마약방을 운영하기도 한다. 이대로 뒀다간 한 해에 수십조 원을 쏟아부어도 마약에 취한 사람들이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미국처럼 될 것이다. 지금이 골든타임 끝자락이다.”
검사 재직 시절 마약범죄를 전문적으로 수사한 김희준 법무법인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대표변호사가 최근 ‘대치동 마약 음료’ 사건 등으로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던진 마약 문제에 대해 강조한 말이다. 김 변호사는 검찰에 근무하던 1990년대부터 마약 사건을 다수 수사했다. 1998년 광주지검 강력부 차장검사 시절에는 이른바 ‘물뽕’(감마하이드록시뷰티르산·GHB)이라는 신종 마약을 최초로 적발했다.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장으로 재직 중이던 2011년에는 중독성 수면 마취제인 ‘프로포폴’을 마약류로 등재하는 데 기여했다. 넷플릭스 인기 드라마 ‘수리남’과 영화 ‘공공의 적 2’ 검사의 실제 모델로도 유명하다. 4월 12일 만난 김 변호사는 “마약이 과거에 비해 저렴해진 것은 물론,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통해 쉽고 은밀하게 유통되면서 일반인, 특히 청소년에게까지 손을 뻗치고 있다”며 마약의 대중화, 마약사범의 연소화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얼마 전 서울 대치동 학원가에서 벌어진 마약 음료 사건을 보면 마약범죄 형태가 갈수록 진화하는 것 같다.
“강남 한복판에서 시음 행사를 빙자해 마약을 나눠준다는 건 사실 상상도 못 할 일이다. 마약범죄에 이런 신종 수법이 나타나고 또 늘어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마약이 사회에 널리 퍼졌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과거에는 마약이 소위 ‘뽕쟁이’로 불리는 전형적인 마약사범들 사이에서만 거래됐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 일상으로 깊숙이 들어와 있는 것이다.”
김희준 엘케이비앤파트너스 대표변호사. [홍태식]
“마약 이미 일상 깊숙이 들어왔다”
마약 음료 사건 피해자들이 당한 일명 ‘퐁당’(타인에게 몰래 마약을 먹이는 행위)은 아직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던데.“퐁당은 자신에게 마약을 투약하는 통상의 경우와는 정반대다. 거기에는 여러 목적이 있다. 첫 번째는 이번 사건처럼 마약 복용을 빌미로 협박해 금품 등을 갈취하기 위함이다. 두 번째는 상대를 마약에 중독시켜 자신의 충성 고객으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래서 본인이 시키는 일을 다 하는 상태로 만든다. 마약을 살 돈이 없으면 심지어 성상납까지 요구하기도 한다. 일반 마약범죄보다 더 악질적이고 죄질이 안 좋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이를 직접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법률 조항이 없다. 현재는 다른 법률을 통해 간접적이고 우회적인 방식으로 처벌하고 있다. 마약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로 마약소지죄를 적용하거나, 이번 사건의 피해 학생 중 한 명이 어지럼증을 호소한 것처럼 생리적 장애에 대해 상해죄를 적용하는 식이다. 이제는 직접적으로 처벌할 근거 조항을 둬야 할 시점이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자기 자신이 투약한 것보다 훨씬 더 가중 처벌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만약 타의로 마약을 복용했다면 어떻게 해야 처벌을 피할 수 있나.
“모르고 마약이 든 음료, 음식 등을 먹었다면 기본적으로 처벌받지 않는다. 다만 모르고 먹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 문제가 남는다. 굉장히 복잡한 상황에 놓이는 것이다. 강조하고 싶은 건 자신이 마약을 복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바로 수사기관에 알려야 한다는 점이다. 마약을 먹인 사람들의 협박에 끌려 다니면 그 순간부터는 진짜 마약사범이 된다.”
[자료 | 대검찰청]
마약 빠지기 쉬운 ‘디지털 세대 ’
대검찰청 통계에 따르면 최근 5년 사이 마약사범 수는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그래프 참조). 그중에서도 10대 마약사범이 가파르게 늘고 있다. 10대 마약사범 수는 2017년 143명에서 2022년 481명으로 5년 만에 약 3배 급증했다. 김 변호사는 “마약범죄가 대표적인 암수범죄(수사기관의 인지가 어려운 범죄)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마저도 빙산의 일각”이라고 지적했다.요즘 나타나는 마약범죄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인가.
“마약사범의 연소화다. 10여 년 전만 해도 마약범죄를 일으키는 주된 연령층은 40대였다. 2~3년 전부터 20대로 내려오더니 최근에는 10대, 청소년 마약사범이 급격히 늘고 있다. 그 이유는 마약 거래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서로 신뢰할 수 있는 사람끼리 만나 대면 거래를 했다면, 이제는 상대가 누군지 알 필요도 없이 SNS, 다크웹 등으로 마약을 사고판다. 디지털에 능숙한 젊은 세대가 마약에 발 담그기 쉬운 환경이 된 것이다.”
필로폰 1회 투약분이 3만~4만 원대까지 내려갔다던데, 과거에 비해 마약 값이 저렴해진 이유는 무엇인가.
“중국산, 동남아산 싸구려 마약이 국내에 무분별하게 들어오면서 가격 경쟁이 이뤄졌고, 그 결과 마약이 ‘피자 한 판 값’까지 가게 된 것이다. 그만큼 청소년의 마약 투약 진입장벽도 낮아졌다. 마약은 당연히 몸에 안 좋지만, 이런 마약은 건강에 더 치명적이다. 품질이 낮고 불순물이 많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이런 마약을 주로 투약하는 청소년은 신체와 정신이 망가지는 속도가 더 빠르다.”
배우 유아인처럼 여러 종류의 마약에 손대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맞다. 보통은 대마로 시작하고 거기서 점점 더 강도가 센 마약으로 넓혀가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대마를 ‘관문 마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청소년은 뇌의 보상체계가 성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무너지기 때문에 다양한 마약에 손댈 가능성이 크다. 수사기관에 적발돼 여러 종류의 마약이 검출됐다면 특정된 공소사실 중 가장 중한 법정형의 2분의 1까지 가중처벌 된다.”
우수한 마약수사 인력 활용 안 해
일각에서는 수사기관의 마약범죄 대응 능력이 미흡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검경수사권 조정 당시 마약수사를 담당하던 강력부가 반부패부에 통폐합된 게 그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정부가 부랴부랴 마약수사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 배경이다. 4월 10일 범정부 마약범죄 특별수사본부가 꾸려졌고, 12일에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대검찰청에 마약강력부 복원을 지시했다.일명 ‘던지기’(서로 접촉하지 않고 마약을 거래하는 수법) 등 마약 유통 방식도 진화하고 있어 수사에 어려움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
“그야말로 배달음식 주문하듯이 마약을 받을 수 있는 시대다. 과거에는 대면 거래 현장에서 공급책과 마약사범을 일망타진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서로가 서로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약사범을 잡아도 “텔레그램에서 샀어요” 하면 더는 수사할 방법이 없다.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에 한해서만 허용되는 ‘언더커버(위장)’ 수사 기법을 마약수사에도 도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검경수사권 조정이 마약수사 능력을 약화했다는 지적이 있다.
“마약범죄를 적발하는 시스템이 붕괴된 건 사실이다. 500만 원 이상의 밀수사범만 수사하도록 제한이 걸리면서 검찰의 수사 효율성이 떨어졌다. 그렇게 단순히 쪼갤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검경수사권 조정 이후 검찰의 마약범죄 인지 건수가 73%가량 감소했다는 통계도 있다. 또 검찰이 마약수사를 하지 않더라도 검찰의 우수한 마약수사 인력은 따로 활용했어야 하는데, 그대로 방치했다. 검찰 마약수사 인력은 처음부터 마약수사직으로 들어와 마약만 전담하는 사람들이다. 전문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마약 문제를 어떻게 뿌리 뽑아야 하나.
“마약범죄는 중독성 탓에 재범률이 매우 높다. 따라서 예방 교육, 수사, 치료 및 재활까지 통합 전담하는 ‘마약청’ 같은 조직이 신설돼야 한다. 교육부, 검경, 보건복지부 이런 식으로 조직이 따로 움직여서는 효율적인 대처가 어렵다고 본다. 검경은 서로 경쟁구도를 형성하고 있어 정보 공유나 수사 협조가 잘 안 되는 상태다. 부처별 사일로 효과(다른 부서, 조직과 담 쌓고 내부 이익만 추구하는 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 미국 마약단속국(DEA) 같은, 혹은 그 이상으로 기능을 확장한 조직이 필요하다.”
이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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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이슬아 기자입니다. 국내외 증시 및 산업 동향을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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