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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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책 배우자 법적·제도적 보호부터

대법원 이혼청구 유책주의 판결

  • 남성원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5-09-21 14: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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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책 배우자 법적·제도적 보호부터

    9월 16일 대법원은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9월 16일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 인정 문제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바람을 피우고 혼외자식까지 둔 60대 남성이 15년간 별거 중인 아내를 상대로 제기한 이혼소송으로, 이미 몇 달 전부터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상황이었다. 법조계에선 미국, 유럽 등 법률 선진 국가들이 파탄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데다, 2월 헌법재판소가 간통죄 위헌 판결을 내리자 대법원이 이번엔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판례를 변경할 것이란 예측도 나왔다.

    하지만 대법원은 유책주의 원칙을 유지함으로써 원고 측 청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무런 보호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파탄주의가 도입될 경우 잘못 없는(무책) 배우자의 희생을 강요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시기상조라는 판단이었다. 대법원은 이혼 후 배우자에 대한 부양책임이 법상 규정돼 있지 않은 상태에서 파탄주의가 도입되면 사실혼에 가까운 불륜관계를 조장할 우려가 크다는 점도 고려했다. 유책 배우자의 행복추구권보다 가족과 혼인제도를 중시한 것이다.

    좀 더 정확히 따져보면, 이번 대법원 판결은 유책주의 원칙을 좀 더 확고히 한 것이라기보다 유책주의에서 파탄주의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판결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대법관들 의견도 7 대 6으로 팽팽하게 갈린 데다 판결문에는 예외적인 설시 조항까지 부가돼 있기 때문이다. 무책 배우자나 자녀에 대한 충분한 배려가 있고, 별거 기간이 장기간 계속된 상태에서 잘못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다면 유책 배우자의 이혼청구도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실제로 이혼소송 실무를 하다 보면, 혼인 파탄의 책임이 끝까지 쟁점이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상대방 책임에 관한 주장만 있을 뿐 명확한 증거 제출이 어렵고(배우자의 불륜 증거를 확보하기 위해 도청을 하면 도청행위로 오히려 처벌받게 된다), 이혼소송까지 제기한 경우라면 이미 상대방도 마음이 떠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파탄 책임이 모호한 상황에서 피고가 일단 이혼청구의 기각을 구하는 경우는 재산분할 청구에 대해 우위를 점하기 위한 포석으로 보는 게 옳다. 이런 경우 변론이 진행되면서 쌍방이 이혼청구 부분에 대해선 합의하고 재산분할과 양육권 청구를 놓고 재판을 계속한다.

    실제 하급심에서는 파탄주의로 해석되는 판결이 많이 나온다. 장기간 집을 나가 다른 남성의 자녀를 출산한 여성 배우자의 이혼청구를 법원이 받아들인 경우도 있다. 이 여성은 남편의 도박과 폭행 때문에 집을 나갔지만 증거가 없어 유책 배우자가 됐다. 이처럼 단지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려는 목적으로 이혼을 거부하는 경우 법원은 이혼을 인정하는 추세다.



    이혼소송의 핵심 문제는 파탄 책임 여부를 가리는 게 아니라, 아무런 책임도 없이 이혼을 당한 배우자를 법적으로 또는 사회·경제적으로 어떻게 배려할 것인지에 대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파탄주의를 채택한 국가는 대부분 이혼 후 유책 배우자에게 일정 기간 부양책임을 지우는 등 상대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보호제도가 잘 마련돼 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전제로 한 파탄주의나 이를 조건으로 예외적으로 이혼을 허용하는 유책주의나 다를 바 없다. 따라서 지금은 법 논리를 따지는 싸움을 중단하고 파탄 책임이 있는 자의 위자료 또는 재산분할금의 상향 조정, 무책 배우자에 대한 일정 기간 부양의무 부과 등 제도적 장치의 보완이나 도입을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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