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골퍼는 스코어를 스스로 적지 못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대표적인 잘못된 습관이다.
골프장을 이용하는 골퍼는 대체로 경제적 여유와 함께 그럴듯한 지위도 갖춘 사람들이다. 직업 끝에 사(士) 자가 붙는 전문직이거나 실장님이거나 사장님에 가끔씩은 회장님도 있다. 어딜 가도 정중한 대접을 받아왔고, 골프장에서는 특히 그러했다. 얼마 전 소위 ‘명문’이란 수식어가 붙은 골프장에 갔을 때 일이다. 물론, 특정 골프장만이 아니라 골프장 대부분에서 일어나는 일이기도 하다.
젊고 예쁜 캐디가 티잉그라운드에서 홀을 설명한다. “고객님, 이번 홀은 왼쪽으로 휘어지는 좌 도그레그 파4 홀이십니다.” 말이 뭔가 어색해 “다른 홀에서는 티샷이 슬라이스가 나며 오른쪽으로 많이 벗어난 것 같다”고 했더니 캐디는 “그냥 가셔도 됩니다. 오비(OB·Out of Bounds) 티가 있으세요”. 뭔지 모를 말의 어색함은 바로 ‘사물존칭’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골퍼의 지위가 높다 한들, 골프 홀이나 오비 티까지 존칭을 받아야 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골프 룰은 물론, 로컬 룰 어디에도 없다. 하지만 한국 골프장에선 유독 이런 잘못된 존칭이 당연한 듯 반복된다. 심지어 그 내용을 교정할라 치면 괜한 시비나 걸고 사사건건 까다롭게 따지기만 하는 꼰대 취급을 받는다. 백화점이건 쇼핑몰이건 이런 식의 잘못된 존칭 표현이 많은데, 골프장에도 만연해 있다.
캐디만의 잘못이 아니다. 골퍼가 함께 고쳐나가야 할 잘못된 습관이다. 언어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린에서는 캐디가 라인을 살펴서 공을 놔주는 것을 당연시한다. 가끔은 캐디가 공을 닦고 난 뒤 골퍼에게 의향을 묻지도 않고 공을 놓는다. 이 역시 한국에서만 통용되는 잘못된 골프 습관이다. 공에 묻은 모래나 잔디 등 이물질을 닦아달라고 캐디에게 공을 건네고 휘는 브레이크 방향을 물을 수는 있지만, 공을 그린에 놓는 건 골퍼 자신의 일이다. 캐디가 공을 줍는 것도 잘못이고, 닦은 공을 캐디에게 놔달라고 요구하거나 기대하는 것도 골프 룰과는 거리가 멀다. 마치 갓난아기가 엄마의 밥숟갈을 기다리는 것과 같다.
더 심각한 문제는 당연한 것 같은 이런 잘못된 골프 습관들이 외국에 나가서도 그대로 드러난다는 데 있다. 심지어 동남아시아 국가에 골프하러 가서 캐디에게 공을 놔달라고 요구해 진상 취급을 받는 경우도 적잖다. 이는 한국 골퍼가 외국 골프장에서 많이 범하는 무지의 소산이자 실수다.
한국 골퍼가 스스로 스코어를 못 적는 것도 문제다. 아예 습관이 돼 있지 않다. 항상 캐디가 알아서 적고, 트리플 이상은 깎아주기도 한다. 골퍼는 라운드를 마치면 자기 스코어만 대충 확인하고 사우나장으로 향하기 바쁘다. 스코어카드에는 누구도 관심 없다. 누구도 자신의 스코어를 적지 않는다. 언젠가 일본에서 온 친구와 라운드를 한 적이 있는데, 라운드를 마치고 오는 차 안에서 그는 “한국 골프는 뭔가가 좀 빠진 것 같다”고 지적해 뜨끔했다. 일본에서는 각자 자신의 스코어카드를 적고 또 ‘오케이’나 ‘기브’ 없이 끝까지 스코어를 센다. 좀더 정확하게 하려면 자신이 상대방의 증인(attestor)이나 마커(marker)가 돼 상대 플레이어(player)의 스코어를 적고, 플레이어는 마커가 적은 스코어에 서명을 해야 스코어카드가 완성된다. 아마도 스코어카드에는 라운드한 날짜와 캐디, 마커, 플레이어의 서명 공간이 버젓이 자리하고 있을 것이다.
홀 아웃 때도 좀 이상하다. 고객에 대한 친절 교육 때문인 것으로 이해되는데, 캐디가 핀을 홀컵에 꽂은 다음 뒤 팀을 향해 고개 숙여 인사를 하고 간다. 어떤 때는 뒤 팀이 없어도 인사를 한다. 너무 로봇 같지 않은가. 서비스는 뒤 팀이 아니라 현재 팀에게만 해도 충분하다. 그들을 위해 인사를 할 필요가 있을까. 혹 에티켓의 과잉 아닐까. 스코어카드를 대신 적고 공도 놔주고, 이런 것 역시 서비스의 불필요한 사족(蛇足) 아닐까. 사물존칭은 허례허식의 사례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