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돔야구장인 서울 구로구 고척스카이돔.
2015년 9월 15일 대한민국 최초 돔구장인 고척스카이돔이 완공됐다. 서울시는 취재진을 초청해 스카이돔을 공개했다.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돔구장은 신선했다. 그러나 수차례 방문한 미국, 일본 돔구장과 비교하면 규모 자체가 1만8000석 규모로 사실상 미니급이다. 작은 크기만큼이나 대한민국 최초 돔구장을 바라보는 시선은 뜨겁지 않다. 그러나 규모 탓만은 아니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반응 속에는 한국 야구의 축복이 아닌 재앙이 될 거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따른다. 계획보다 6년이나 늦게 완공됐고 사업예산은 6배가 더 투입된 고척스카이돔은 탄생은 물론, 그 잉태부터 거센 반대 속에서 이뤄졌다.
사라진 동대문야구장의 빈자리
2006년 10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동대문야구장 철거 계획을 발표한다. 한국에 야구를 처음 소개한 주인공은 선교사 필립 질레트로, 그 시기는 1904년이다. 동대문야구장이 있었던 터에서 1905년 황성기독교청년회와 한성고교의 경기가 열렸다. 지금까지 확인된 국내 최초 공식 경기다. 이후에도 많은 경기가 이곳에서 열렸다. 1925년 경성운동장이 개장됐고 야구장도 문을 함께 열었다. 당시에는 아시아에서 가장 최신식 시설을 자랑하는 야구장이었다.
광복 이후 1959년 서울운동장 야구장으로 재개장했고 고교야구의 메카가 됐다. 82년 3월 27일 역사적인 한국 프로야구 첫 시즌 개막전도 동대문야구장에서 치렀다. 82년 잠실야구장이 문을 열었고 85년 명칭도 서울운동장 야구장에서 동대문구장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고교야구의 성지, 한국 야구의 역사를 상징하는 터로 자리를 굳게 지켰다.
많은 야구인과 야구팬은 도심에 위치한 이곳에 축구장 대지를 합쳐 한국 최초의 대형 돔구장을 지어야 한다는 의견을 말해왔다. 지금도 그 아쉬움은 이어지고 있다. 1912년 문을 연 보스턴 펜웨이파크가 최신식 시설을 자랑하는 초대형 돔구장이 즐비한 미국에서 여전히 가장 아름다운 최고 야구장으로 꼽히는 점을 생각하면 사라진 동대문야구장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2006년 12월 동대문야구장 철거를 반대하는 많은 시위가 이어지기도 했다. 이를 달래기 위해 서울시는 2007년 3월 서울에 국제대회를 치를 수 있는 아마추어 전용 야구장을 건립하겠다고 약속한다. 송파구, 광진구 등이 후보였지만 교통영향평가가 최하위였던 구로구 고척동이 야구장 터로 확정됐다. 학교로 둘러싸여 있고 상습 정체 구간, 그리고 야구장이 겨우 비집고 자리를 잡아야 하는 크지 않은 대지였지만 서울시는 그대로 밀어붙였다.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2008 베이징올림픽 금메달 등 한국 야구가 국제대회에서 높은 성적을 올리며 야구에 대한 인기는 뜨거워졌다. 서울시는 2007년 하반기부터 고척동 야구장을 하프돔 형태로 바꿔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알리기 시작했다. 설계 변경이 이어졌다. 야구장 완성을 약속한 2009년에야 기공식이 열렸는데 그 자리에서 오세훈 당시 시장은 “한국 야구에 선물을 드리겠다. 한국 야구의 숙원인 완전 돔구장으로 건설하겠다. 3만~4만 명 규모의 대형 경기장이다”고 선언했다.
홈구장 잃어버린 넥센에 돔구장 강요?
아마추어 야구장으로 잉태된 고척동 야구장은 결국 돔구장으로 태어났다. 완공 약속은 수십 차례 바뀌었다. 공사비는 최초 409억 원이었지만 올해 추경예산까지 추가 투입해 약 2442억 원으로 6배나 늘어났다. 프로경기를 치르려면 추가로 수십억 원이 필요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후 교통 개선비, 인근 3000가구 아파트를 위해 지급해야 할지도 모르는 소음 방지 비용과 교통 대책 등을 고려하면 최종 사업비는 3000억 원 이상으로 추산된다.
넥센 히어로즈가 쓰고 있는 목동야구장의 주차 수용 능력은 총 1100대다. 지난해 64경기에서 47만5000대가 주차장을 이용했다. 1만8000석 규모의 고척스카이돔은 아마추어 전용구장으로 출발한 탓에 주차 가능 대수가 492대뿐이다. 그것도 상습 정체 구역에 위치한다. 지하철 1호선 구일역이 가깝지만 교통 환경은 전국 프로야구장 가운데 최악이다.
국내에서는 아직 돔구장을 운영해본 경험이 없다. 추산되는 연간 운영비는 80억~100억 원이다. 분명 동대문야구장 대체구장으로 건설됐지만 대한야구협회는 막대한 운영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2014년 9월 이병석 전 대한야구협회 회장은 결국 프로야구 구단 넥센이 사용하고 있는 목동야구장을 대한야구협회 전용구장으로 사용하기로 서울시와 합의한다.
대한야구협회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최상의 선택을 했지만 서울시에 연간 40억 원 사용료를 내고 홈경기를 치러왔던 넥센은 순식간에 홈구장을 잃었다. 서울시의 사전 통보도 없었다. 이제 서울 연고지팀이 사용할 수 있는 야구장은 한 군데뿐이다. 축복인지 재앙인지 알 수 없는 고척스카이돔이다.
국내에서 가장 최근 완공된 야구장은 광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다. 내년 대구시 대구삼성라이온즈파크가 개장을 앞두고 있다. 수원kt위즈파크는 리모델링 구장이지만 사실상 신축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새 단장됐다. 공통점은 설계 과정부터 실사용자인 프로야구 구단과 긴밀한 협의를 거쳤다는 점이다.
KIA와 삼성은 건설비 일부를 부담하면서 장기 운영권을 약속받았다. kt와 함께 프로야구 제10구단을 유치한 수원시는 야구장 25년 무상임대에 매점, 광고 운영권을 모두 양보했다.
양기선 수원시 체육진흥과 주무관은 “kt가 연간 350억 원을 야구단에 투자한다. 수원시민들이 가까운 곳에서 야구를 관람할 수 있게 됐다. kt가 200억 원의 수입을 올려도 연간 150억 원은 적자다. 그런 부분을 고려해 무상임대와 사업권 양보 등이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서울시 생각은 다르다. kt는 야구장을 무상으로 쓰고 사업권까지 갖고 있지만 연간 150억 원의 적자를 내고 있다. 모기업 kt가 사회 공헌과 기업 이미지 홍보 등의 비용으로 이를 대신 부담하고 있다. 서울시는 이러한 프로야구 시장의 환경을 고려하지 않고 넥센 측에 강제 홈구장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아마추어 전용구장을 자기 마음대로 돔구장으로 바꿔놓고 대한야구협회가 거절하자 목동을 내주고 그 대신 넥센에게 돔구장 사용을 강요하는 셈이다. 연간 100억 원 안팎의 유지 관리비가 필요하지만 이 역시 대부분 넥센이 떠맡아야 하는 상황이다. 서울시는 운영권, 매점, 식당, 구장 내 수영장 등의 권리는 시가 갖고, 2년간 한시적으로 광고 운영권만 넥센에게 주겠다고 일방적으로 제안했다. 구장 사용료도 당연히 존재한다. 일일 대관 방식으로, 사용료에 관중 수입의 일정 부분을 가져가는 구조다. 아직 정확한 금액은 제시하지 않았다. 넥센은 목동에서 광고 운영권을 갖고 일일 대관을 통해 연간 40억 원 규모의 사용료를 납부해왔다. 앞으로는 광고 운영권도 2년간 한시적이며 더 높은 사용료를 내야 한다. 약 70여 개 기업의 광고로 구단을 운영해오고 있는 넥센은 아직도 연간 40억 원 적자를 내고 있다. 만약 고척스카이돔 사용료가 관리비 규모인 80억 원에 육박할 경우 구단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