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육강식, 적자생존 같은 힘에 기반을 둔 정글의 법칙은 동물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힘이 있어야 자기를 지킬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정치인 누구나 당권, 대권 등 권력을 쥐려는 본질적 이유가 그 때문이다.

정당에서 당권을 잡으면 흔히 칼자루를 쥔 것에 비유된다. 인사, 재정, 공천 등 다양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그런데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당대표에 오르며 당권을 쥐었지만 1년이 지난 지금까지 당권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한다는 평가가 많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좋게 보면 민주적이고 나쁘게 얘기하면 ‘힘’과 ‘권위’가 예전만 못한 것”이라고 평했다. 특히 김무성 대표는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겠다며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박 대통령, 새누리당 대주주이자 오너

당권 핵심인 공천권을 김 대표가 행사하지 않으려는 모양새를 취하는 이유는 뭘까. 정치 전문가들은 새누리당 권력지형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최정묵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은 “김무성 대표가 겉보기에 주류지만 내용상으로는 여전히 비주류”라며 “새누리당 계파를 나눌 때 여전히 박근혜 대통령과의 친소관계를 기준으로 친박(친박근혜)과 비박(비박근혜)으로 가르는 것이 대표적인 예”라고 말했다.

새누리당 권력지형과 세력 분포는 2012년 총선과 그해 대통령선거(대선)를 거치며 굳어졌다.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주도로 치른 19대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했고, 그해 말 박근혜 대선후보가 대통령에 당선한 정당이 지금의 새누리당이다. 지난해 전당대회에서 김무성 대표가 친박계를 대표한 서청원 최고위원을 꺾고 당대표에 올랐지만, 여전히 당내 권력구조는 본질적으로 2012년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와 2012년 대선 선거대책위원회 구조에서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보는 시각이 많다.



여권 내 권력지형에 지각 변동이 일어날 변곡점이 내년 총선이다. 총선에 누가 공천을 받느냐, 누가 당선하느냐에 따라 당내 주류가 달라질 수 있다. 비유하면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주도해 두 번 모두 승리한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대주주인 동시에 오너에 가깝다. 새누리당 의원 가운데 박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내걸고 금배지를 단 ‘박근혜 키즈’가 적잖다. 그에 비해 김무성 대표는 지분이 약한 대표이사로 볼 수 있다. 김 대표는 내년 총선이란 주주 교체기에 국민 여론을 등에 업고 지분을 크게 늘려 오너십을 확보할 기회를 엿보고 있는 셈이다.

김 대표 주변에선 ‘두 번의 낙천 트라우마’에서 김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 소신 배경을 찾기도 한다. 한 측근은 “2008년 총선 때 친이(친이명박)계가 자행한 친박계 공천 학살로 낙천한 바 있고, 2012년 총선 때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주도한 공천에서 낙천한 경험을 갖고 있는 김 대표는 특정 세력과 특정인이 주도하는 공천이 아닌, 유권자가 선택하는 공천이 정치개혁이란 소신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오로지 ‘정치개혁 소신’ 때문에 김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를 주창하고 있다고 보는 당내외 인사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내년 총선에 청와대 입김을 최소화하기 위해 오픈프라이머리를 방패 삼고 있다는 시각이 더 우세하다. 이숙현 시사칼럼니스트는 “미래권력을 꿈꾸는 김무성 대표가 자신의 정치에 본격 시동을 걸기 위해서는 내년 총선에서 현재권력(청와대)의 입김을 극복해야 한다”며 “오픈프라이머리는 김 대표가 현재권력과 맞서 싸우지 않고 그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있는 명분 있는 묘수일 수 있다”고 말했다.

친박 차기주자론에 담긴 깊은 뜻

김무성 대표가 오픈프라이머리를 방패 삼아 내년 총선 공천 때 청와대 외풍을 막아낼 수 있을까. 전망은 비관적이다. 김 대표는 최근 연달아 터져 나온 ‘마약 사위’ 문제와 친박 차기주자론으로 리더십에 큰 상처를 입었다. 마약 사위 문제가 불거졌을 때 김 대표는 “32년간 한 번도 속을 썩인 적이 없는 딸이 울면서 결혼을 원해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허락했다”며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프레임으로 마약 사위에 쏠린 여론을 돌렸다.

그러나 마약 사위 사건은 김 대표 앞에 놓인 시련의 시작일 뿐이라는 관측이 많다. 수원대 교수로 최연소 임용된 김 대표의 차녀가 올해 국정감사(국감)에서 또다시 여론의 주목을 받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 박주선, 도종환, 배재정, 유은혜, 정진후 의원 등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야당 의원들은 9월 1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사학비리 척결을 위해서는 비리 사학으로 지목받는 이인수 수원대 이사장 등의 국감 출석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비록 이 이사장의 국감 증인 채택은 불발됐지만, 김 대표 차녀의 임용을 둘러싼 논란이 재현될 가능성이 남아 있는 것. 김 대표가 사위와 차녀 등 가족 문제로 여론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 사이 설상가상으로 이번에는 당내에서 ‘김무성 불가론’이 대두됐다.

“당 지지율이 40%대인데 김(무성) 대표 지지율은 20%대에 머물고 있어 아쉽다. 내년 총선으로 4선이 될 친박 의원 가운데 차기 대선에 도전할 분들이 있다. 영남에도 있고 충청에도 있다.”

윤상현 의원의 이 같은 발언이 ‘조선일보’에 보도된 9월 16일 새누리당은 발칵 뒤집혔다. 대통령비서실 정무특별보좌관(정무특보)이자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통하는 윤 의원이 무슨 배경으로 그 같은 인터뷰를 했는지를 두고 설왕설래했다. 새누리당 인사들은 ‘윤상현 의원의 개인적 발언이라기보다 대통령 정무특보의 발언’이란 점에 무게를 뒀다. 새누리당 한 관계자는 “대통령 정무특보가 청와대와 교감 없이 발언했다면 경솔한 것이고, 만약 교감이 있었다면 청와대가 당내 정치에 앞으로 적극 개입할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라며 “미묘한 시점에 윤 의원이 예민한 발언을 꺼낸 배경과 이유는 시간이 지나면서, 특히 총선이 가까워질수록 확연히 드러나지 않겠느냐”고 내다봤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사위의 마약 사건이 불거지고, 친박 차기주자론까지 대두되면서 김 대표의 오픈프라이머리는 사실상 물 건너간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청와대와 친박계가 내년 총선 공천권은 물론 내후년 대선까지 주도하려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무성 대표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박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이 50% 가까운 상황에서 차기주자 지지율이 20%에도 미치지 못하는 김 대표의 처지가 바람 앞에 촛불처럼 위태로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