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3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면세점에서 관광객들이 쇼핑을 즐기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국내 면세시장은 2010년 4조5000억 원에서 2014년 8조3000억 원 규모로 매년 20% 넘는 성장세를 보였다. 2012년부터는 영국, 중국 면세시장을 제치고 규모 면에서 세계 1위에 등극했다. 면세시장 규모가 올해 10조 원을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꾸준히 나온다. 관세청은 면세점 사업자를 5년마다 심사해 재선정한다. 11~12월 사업권이 만료돼 재입찰에 들어가는 면세점은 서울 롯데면세점 본점과 월드타워점, SK네트웍스의 워커힐면세점, 부산 신세계조선호텔면세점 등 총 네 곳이다.
롯데, 면세점 사업권 지킬 수 있을까
업계에서는 1위 사업자인 롯데가 면세점 두 곳의 사업권을 모두 사수할 수 있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지금까지 기존 사업자가 면세점 사업권을 뺏긴 사례는 한 차례도 없었다. 롯데의 경우 형제간 경영권 다툼 이후 ‘사실상 일본 기업 아니냐’는 여론이 보태져 여러모로 불리한 상황인데, 신동빈 회장이 9월 17일 열리는 국회 정무위원회의 공정거래위원회 국정감사(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하게 돼 내부적으로도 어수선한 분위기다. 신 회장은 2012년 국감 때 증인으로 채택됐으나, 해외 출장 등을 이유로 출석하지 않아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본사는 재무적 안정성과 브랜드 인지도, 물류 역량을 바탕으로 1980년 개점 이래 국내 1위를 유지하고 있고, 지난해에는 전 세계 3위 면세점으로 성장했다. 양성평등과 여성 일자리 창출에도 높은 기여를 했으며 국산품 판매 판로 확대를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며 사업권 확보의 당위성을 강조했다. 롯데면세점은 2014년 기준 외국인 대상 관광 수입의 20%에 해당하는 4조 원을 창출했다. 2014년 말 기준 직접고용 1574명, 간접고용(판촉직원) 6310명을 포함해 총 7884명을 고용하고 있다. 롯데면세점 관계자는 “면세점 산업은 독과점 규제 대상이 아닌, 경쟁력 강화가 뒷받침돼야 하는 수출 산업이다. 국내 사업자 간 경쟁은 해외 브랜드와의 협상력을 약화하고 해외 면세점 사업자들과의 경쟁력을 저하할 뿐 아니라, 내국인 및 방한 관광객의 쇼핑 만족도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일본, 중국, 대만, 태국 등 주변국들은 면세점 사업의 대형화와 집중화, 면세 정책의 과감한 변화를 통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중국인 관광객에 대비하고 있다. 반면 국내에서는 면세점 산업을 둘러싼 각종 규제로 산업이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답했다.
정치권에서는 롯데를 비롯한 기존 사업자의 면세점 재승인을 제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김영환 의원은 공정거래위원회 등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바탕으로 “서울 시내면세점 시장에서 롯데그룹(호텔롯데·롯데DF글로벌 합산)의 독과점 구조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7월 10일 이돈현 관세청 특허심사위원장이 인천 중구 인천공항세관에서 서울과 제주 시내면세점 선정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8월 11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형제간 경영권 분쟁 등에 대해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며 머리를 숙이고 있다.
업체별로 보면 롯데면세점 매출액이 2조2914억 원(50%), 호텔신라 매출액이 1조3542억 원(30%)으로 전체 매출액의 80%에 달했다. 사실상 국내 면세점 사업은 두 기업의 독과점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심 의원은 “면세사업은 기업이 자생적으로 개발한 사업이 아닌 국가에서 허가해주는 특혜사업”이라며 “이제는 국내 면세점도 해외 면세점과 경쟁할 만한 경쟁력을 갖춘 만큼 특정 업체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말했다. 심 의원은 면세점 사업자 선정 시 면세사업이 전체 매출액의 30%를 초과하는 기업을 제한하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할 예정이다.
면세업계 관계자는 “국민적으로 롯데그룹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두 곳 모두에게 재승인을 해주는 건 관세청으로서도 부담스러울 수 있다. 형평성을 위해서라도 한 군데 정도는 다른 기업에게 줄 가능성도 있다”고 예측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그전 같으면 롯데의 재승인에 이견이 없었을 것이다. 롯데가 잘해서가 아니라, 그간 기존 사업자가 재승인을 받지 못한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시끌시끌한 상황에서는 어떤 결과가 나올지 업계에서도 궁금해하는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 동대문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
두산그룹의 면세점 사업 예정지인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두산은 9월 2일 서울 시내면세점 특허 신청을 했다. 동대문 두타를 면세점 입지로 삼아 기존 쇼핑몰을 유지하면서 다른 층을 면세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9월 7일에는 동대문 내 30여 개 도소매 쇼핑몰을 회원사로 둔 동대문패션타운 관광특구협의회와 ‘동대문 상생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다. 두산 관계자는 “동대문은 관광, 쇼핑, 교통 인프라와 외국인 관광객 방문 선호도 등을 고려할 때 면세점 입지로서 최적의 여건을 갖췄다”면서 “주변 상인과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해 경제 및 지역발전 기여 방안 등에 대해 폭넓게 검토하면서 사업 전략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동대문은 명동과 함께 서울 최대 외국인 관광지로 꼽힌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쇼핑을 즐길 면세점이 없어 새로운 면세점이 들어설 강력한 후보지로 꼽혀왔다. 7월 롯데, SK네트웍스 같은 대기업 외에도 그랜드관광호텔, 중원면세점, 동대문소상공인연합회 등이 이곳을 후보지로 시내면세점 특허 입찰에 참여했으나 고배를 마셨다.
두산이 꼽는 면세점 사업자로서 강점은 16년간 두타를 운영하며 축적한 유통 노하우와 두타를 연간 700만 명의 외국인이 방문하는 동대문 랜드마크로 성장시켰다는 점이다. 두산 관계자는 “도쿄는 시부야, 롯폰기, 신주쿠 등 차별화된 3~4개 허브 관광지가 일정 거리를 두고 비슷한 규모로 형성된 반면, 우리나라는 명동에 한정돼 있다”며 “동대문 지역의 관광 인프라 업그레이드를 위해 면세점 입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면세사업 핵심은 재고관리, 명품 유치
중공업 위주의 사업에 집중하던 두산이 면세점 사업에 관심을 보이는 것을 두고 업계에서는 여러 이야기가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7월 주요 기업이 동대문에 면세점 유치를 계획했으나 불발된 것을 보고, 동대문 상권의 터줏대감인 두산이 위기의식을 느낀 것으로 보인다. 두타에 면세점이 들어서면 동대문 관광 및 상권을 재부흥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면세점은 백화점과는 운영 방식이 다르다. 제품을 직매입해 이윤을 남겨야 하기에 재고 관리가 중요하고, 고객을 유인할 수 있는 인기 명품 브랜드를 유치하는 노하우가 없어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두산이 신규 사업자가 된다면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여름 1차 면세점 대전에선 HDC신라면세점(호텔신라·현대산업개발)과 한화갤러리아타임월드가 사업권을 따냈다. 현대백화점, 이랜드 등 지난 입찰에 참여했던 기업 외에도 서울 시내면세점에 재도전할 유인이 충분한 신세계 등은 이번 연말 입찰에 대한 공식적인 의견을 아직 내놓지 않은 상황이다. 관세청은 사업자 선정을 백지 상태에서 검토한다고 밝혔다. 9월 25일 시내면세점 특허 입찰 접수를 마감하고 11월 중 특허심사위원회를 열어 사업자를 선정한다. 관세청 관계자는 “기존 사업자도 동일한 절차를 거쳐 공정하게 심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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